[강대호의 책이야기] 20대 열광적 '지지' 이묵돌 작가의 ‘시간과 장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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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20대 열광적 '지지' 이묵돌 작가의 ‘시간과 장의사’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6.13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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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 족장의 이름을 딴 필명 '묵돌'(용기있는자)..."무근본 오랑캐 같은 글을 쓴다"고 피력
외면했던 감정을 되찾게 함으로써 인간다움을 향한 갈망에 답하게 하는 79편의 이야기
페이스북,인스타그램에 작품 게재...‘시간과 장의사’에 실린 작품들도 이렇게 발표됐다고
내일위해 오늘을 희생하기보다 현재를 열심히 살고 싶은 20대들에게 열광적 지지 받아
이묵돌 작가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브런치에 글을 올려 먼저 발표하고 책을 출간했다. 사진=unsplash
이묵돌 작가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브런치에 글을 올려 먼저 발표하고 책을 출간했다. 사진=unsplash

 

[오피니언뉴스=강대호 칼럼니스트] 저자 이름이 특이해서 서점에서 집어 든 책이다. ‘이묵돌’. 물론 본명은 아니고 필명이었다. ‘묵돌’은 오랑캐 족장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 했다.

“무근본 오랑캐 같은 글을 쓴다. 굳이 의미를 갖다 붙이자면 몽골 말로 ‘용기 있는 자’ 정도가 된다”로 마무리 짓는 저자 소개가 인상적이어서 내용도 훑어보게 되었다. 그러다 집에 데려온 책이다. 제목은 ‘시간과 장의사’.

‘이묵돌’은 사회 통념에 의하면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온 듯했다.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성인이 될 때까지 ‘정부보조금’으로 생활했다. ‘인서울’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생활고로 자퇴했다. 만 스무 살에 회사 생활을 시작했고 회사도 창업했다. 그러나 망했다.

그 후 중학생 때부터 써온 글을 더욱 열심히 쓰기 시작한다. 인터넷에 올린 글이 인기를 끌었고 한때 ‘김리뷰’라는 필명으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그동안 책을 여러 권 냈고 지금은 전업 작가의 어려운 길을 걷고 있다.

이묵돌 단편집 '시간과 장의사'.냉수 펴냄
이묵돌 단편집 '시간과 장의사'.냉수 펴냄

기존 문학의 흐름과는 다른 ‘이묵돌’의 단편들

책 표지에 ‘이묵돌 단편선’이라는 소개를 봤을 때 나는 ‘단편소설’을 떠올렸다. 최소한 200자 원고지 80장쯤에 주인공 캐릭터의 심리 묘사가 촘촘하게 표현된 그런 소설. 그런데 제일 처음에 실린 단편 ‘이력서’는 아무리 후하게 봐도 원고지 5장 정도 되는 내용이었다. 책 분량으로는 한 페이지가 겨우 넘는. 그런데 그 안에 20대 주인공의 인생이 모두 들어가 있었다.

다른 단편들도 주로 3~4페이지 정도이고 길어야 10페이지 정도였다. 흔히 문학에서 말하는 단편 소설보다는 매우 짧은 작품들이었다. 이런 단편 79편이 ‘시간과 장의사’에 실렸다. 굳이 장르로 구분하자면 ‘콩트(conte)’, 작품의 길이가 단편소설보다 짧은 서사 양식, 아니면 초단편, 원고지 10장 분량의 장편소설(掌篇小說)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여기서 장(掌)은 손바닥을 의미한다.

이묵돌은 기존 문학의 발표장과는 거리가 먼 SNS를 통해서 작품을 발표한다. 주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그리고 브런치에 게재한다. ‘시간과 장의사’에 실린 작품들도 이렇게 발표되었고 독자들의 ‘좋아요’를 많이 받았다. 그 글들을 인상 깊게 읽은 출판 관계자의 선택을 받아서 출간까지 이어졌다.

책을 읽다가 이묵돌의 글 세계가 궁금해서 그의 글이 올라온 SNS를 뒤져 보았다. 대중에게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을 ‘인플루언서’라 한다면 이묵돌은 ‘글 쓰는 인플루언서’였다. 많은 네티즌들이 그의 글에 ‘좋아요’로 환호하고 ‘공유하기’로 전파 시키고 있었다.

 

"세 권 사면 고양이 한 마리를 덤으로 드립니다". 이묵돌 페이스북. 사진=이묵돌 페이스북
"세 권 사면 고양이 한 마리를 덤으로 드립니다". 이묵돌 페이스북. 사진=이묵돌 페이스북

 

이묵돌의 작품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청춘들

‘콩트’ 혹은 ‘초단편’은 짧은 글이다. 인생의 순간적 단면을 날카롭게 포착하여 적절히 묘사해야 한다. 사건은 복선과 반전을 머뭇거림 없이 보여줘야 하고, 대화는 간결하고 속도감 있게 전달 되어야 한다. 이야기의 갈등은 절정에 이르자마자 숨 고를 틈도 없이 결말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한다.

이묵돌의 단편들이 그렇다. 특히 지금 한국에서 살아가는 젊은 초상들의 면면들이 잘 묘사되었다. 어떤 직업이든, 잘 나가든 못 나가든 그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상실감을 안고 산다. 가족 때문이든, 친구 때문이든, 아니면 시대 때문이든.

우리나라의 많은 젊은이가 도전하듯이 이묵돌의 주인공 중에도 ‘공시생’이 있다. 여기 어느 공시생 커플이 있다. 그들은 공허한 사랑을 나눈 후 공허한 대화를 나누곤 한다.

그래 수정이는 공허한 표정으로 내게 “어때, 넌 공무원이 적성에 맞을 것 같아?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 하고 물을 것이고, 나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는 체하다가 대답하겠지.
“글쎄, 난 일단 합격한 뒤에 생각하려고 지금은 그냥 아무 생각도 없어. 너도 그렇잖아? 하하…….” (이묵돌 단편선 ‘시간과 장의사’의 ‘닫힌 결말’ 중)

공허한 대화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젊은 세대들의 심정을 잘 대변한다. 이묵돌의 단편은 때로는 주인공의 눈과 입을 통해서 이 시대의 허점도 증언한다. 여기 택배를 기다리는 한 자매가 있다. 그들은 약속된 시간에 제때 도착하지 않는 택배 아저씨를 원망한다. 그런데 아까부터 ‘택배 배송 현재 위치’ 안내가 멈추고는 업데이트되지 않는다.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택배 아저씨는 더 이상 택배를 옮기지 못해 그냥 아저씨가 됐다. 다만 다음 주면 새로운 택배 아저씨가 와서 우리 집 현관에 박스를 가져다 놓을 것이다. 나는 조용히 합장한 채, 아저씨가 택배사로부터 산업 재해를 인정받고 최대한 많은 보험금을 받을 수 있길 기도했다. (이묵돌 단편선 ‘시간과 장의사’의 ‘총알, 배송’ 중)

‘시간과 장의사’에는 다양한 소재의 단편들이 담겼다. 그것들이 향하는 주된 정서는 ‘상실’이다. 죽음이나 이별과 같은 물리적 사건뿐 아니라 가난이나 계층의 단절 같은 심리적 요소들 역시 상실을 낳게 하는 주된 원인이 됨을 드러낸다.

드라마 '쌈 마이웨이'.부족한 스펙 때문에 마이너 인생을 강요하는 현실 속에서도, 마이웨이를 가려는 마이너리그 청춘들의 골 때리는 성장로맨스를 담은 드라마. 사진=KBS
드라마 '쌈 마이웨이'. 부족한 스펙 때문에 마이너 인생을 강요하는 현실 속에서도, 마이웨이를 가려는 마이너리그 청춘들의 골 때리는 성장로맨스를 담은 드라마. 사진=KBS

문학이 표현한 상실감에서 위로를 얻는 청춘들

이묵돌의 글을 읽으며 나는 주인공의 상황과 나의 과거 상황과 겹쳐지곤 했다. 때로는 지금과 겹쳐지기도. 그래서 글이 주는 현실감이 커지기도 했다. 모든 단편의 제목은 글 마지막에 붙어 있다. 읽는 동안은 제목을 모른다. 덕분에 어렴풋하게만 느껴지던 감정이 글의 마지막에 붙어 있는 제목을 접했을 때야 명확해진다. 글과 정확히 연결되는 제목. 오히려 울림이 크다고 할까.

작가가 글을 공개하기 위해 사용하는 플랫폼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그리고 브런치다. ‘좋아요’나 ‘댓글’ 같은 반응, 그리고 ‘그림 구매’ (이묵돌은 그림을 직접 그려서 후원을 받기도 한다) 등으로 이묵돌에게 지지를 표명하는 사람 중 20대의 비율이 많은 듯 보인다. 심지어 최근에는 ‘디씨인사이드’에 ‘마이너 갤러리’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20대는 왜 이묵돌의 글에 열광할까.

이는 같은 시대를 살아온 작가의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20대가 경험하고 있는 일과 사랑과 고민 등이 적절히 녹아든 글에서 독자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글 쓰는 인플루언서로 유명한 이묵돌도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는 위로 말이다.

이묵돌의 글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오늘이라는 현재에 충실한 젊은 세대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을 어른들의 금기 사항에 반기를 든 생각 없는 젊은이들이라고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그들은 어쩌면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하기보다는, 그저 현재를 열심히 즐기고 싶은 자연인이고 싶지는 않을까. 사회나 문화에 속박되지 않는 그런 사람.

그런데 세상을 그렇게 살고 싶게 만든 건 어른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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