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예술적인 法] 건축물 표절, 이젠 그냥 안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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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예술적인 法] 건축물 표절, 이젠 그냥 안넘어간다
  • 김민정 변호사(법무법인 휘명)
  • 승인 2020.06.0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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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법에 '건축저작물' 보호...'창작성' 일관되게 인정
대법원 강릉 '테라로사'카페 원심확정, 부산 '웨이브온' 표절소송 중
그동안 건축물 표절에 대한 경각심 부족...건축계, 더이상 표절에 침묵안해
김민정 변호사
김민정 변호사

[김민정 법무법인 휘명 변호사] 코로나19 이후 복잡한 도심보다 한적한 근교에서 주말을 보내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복잡한 인파를 피하려고 인스타그램 검색 끝에 어렵게 찾아간 유명 카페는 정작 시내의 스타벅스보다 더 붐비는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색다른 카페들을 찾는 이유는 단지 커피 맛 때문일까? 그보다는 멋진 카페 건물과 인테리어가 만들어 낸 세련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건물이 단지 주된 목적인 주거와 사용이라는 기능을 넘어 우리에게 어떤 심리적, 감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인데, 저작권법에서는 이러한 건축물을 예술 작품으로 인정하고 이를 만든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을까.   

저작권법에서 건축물에 대한 권리보호는  

저작권법에서는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라고 정의하고(제2조), 그 예시로 ‘건축물, 건축을 위한 모형 및 설계도서 그 밖의 건축저작물’을 들고 있다(제4조 제1항 제5호). 이를 해석하면 저작권법에서 보호하는 건축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이 표현된 건축물’인 것이다.

결국 기능성이 주가 되는 건축물에서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의 표현 즉, “창작성”이 있는지 여부가 판단 기준인데, “창작성”이란 굉장히 추상적인 개념이다. 지금까지의 우리 판례는 일관되게 “완전한 의미의 독창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떠한 작품이 단순히 남의 것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사상이나 감정에 대한 저작자 자신의 독자적인 표현을 담고 있어야 한다(대법원 2017. 11. 9. 선고 2014다49180 판결 등)”고 창작성 여부의 판단기준을 제시해 왔다.
 
그렇다면 이러한 판단 기준이 실제 사안에서는 어떻게 적용되는지 궁금한데, 마침 최근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건축물의 저작권 침해에 관한 대법원의 판결이 연달아 나왔다. 

먼저 지난 달 10일, 대법원은 강릉시 사천면에 위치한 카페 ‘테라로사’를 모방해 경남 사천시에 건물을 건축한 A에게 저작권 침해를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2019도9601).

판결 이유인즉슨, ‘테라로사’ 건물은 외벽과 지붕슬래브가 이어져 1층, 2층 사이의 슬래브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 형상, 슬래브의 돌출 정도와 마감 각도, 양쪽 외벽의 기울어진 형태와 정도 등 여러 외관적 특징이 함께 어우러진 점 등이 건축물의 일반적인 표현방법을 넘어선 창작자의 독창적인 표현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즉 ‘테라로사’ 건물의 외관에는 건축물의 기능 또는 실용성을 위한 일반적인 표현방법 이상의 독창적인 표현, “창작성” 있기 때문에, 이 건물은 저작권법상 보호받는 저작물이고 이를 허락 없이 모방한 A의 행위는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강릉시 사천면에 있는 테라로사 본관. 사진= 테라로사 홈페이지
강릉시 사천면에 있는 테라로사 본관. 사진= 테라로사 홈페이지

앞서 지난 4월, 대법원은 회원제 골프장 운영 회사들이 ‘스크린골프업체 골프존이 자신들이 소유·운영하는 골프장 코스 등 종합적인 이미지를 무단 사용해 3D 골프코스 영상으로 제작한 후 스크린골프장에 제공해 사용하고 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의 상고심에서(2016다276467)에서 “각 골프코스는 건축저작물에 해당하며 저작권자는 골프장의 설계자들”이라는 원심(2015나2016239)을 확정했다.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은 "기본적으로 골프코스는 기능적 저작물에 해당하지만, 이 사건 골프코스는 각 홀을 이루는 개별 구성요소들의 구체적인 배치에 있어 각 홀마다 페어웨이의 모양이나 길이, 폭, 꺾어진 방향과 각도, 벙커나 워터 해저드의 위치, 모양 및 크기 등이 모두 달라 전체 각 홀마다 독특한 특색을 가지고 있다"며 전체적인 디자인에서 다른 골프장의 골프코스와 구별되는 개성이 드러나 있다고 판단해 그 창작성을 인정했다.

즉, 위 두 판례를 보면 건축물의 전체적인 외관으로 보아 일반적인 기능성을 넘어 다른 건축물과 구별되는 개성이 드러나 있는 경우 저작권법에서 보호되는 저작물로 인정했고, 이를 무단으로 복제하는 것은 그 저작권자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므로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부담하도록 한 것이다.

부산에서 벌어진 건축계 표절시비 

위 사례들 뿐 아니라 최근 건축계에는 표절시비와 저작권 분쟁이 빈번한데, 한창 진행 중인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부산 기장군 바닷가에 위치한 유명 카페 ‘웨이브온’을 디자인한 건축가와 카페의 운영자는 ‘카페의 외형과 내부 인테리어가 유사하다’고 주장하며 울산 바닷가의 한 카페의 건축사무소와 건축주를 상대로 건물의 철거 및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원고들은 “건물이 자리잡은 좌향(坐向)부터 표현 기법이 똑같다. 건축에도 단어와 문장, 문단이 존재하는데 이 사건의 경우는 단어와 문장 수준이 아니라 책 전체를 베끼다시피 했다”고 주장하며,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건축물 표절에 둔감한 건축계의 자성을 촉구하기 위해 소송에 나섰다”는 입장이다.

부산 기장군 바닷가에 위치한 웨이브온 전경. 사진=IMM건축 홈페이지
부산 기장군 바닷가에 위치한 웨이브온 전경. 사진=IMM건축 홈페이지

건축물 표절에는 경각심 부족

원고들의 주장처럼 음악, 미술, 문학과 같은 다른 장르에서는 잦은 표절 논란이 있었고, 그 결과 저작권 위반에 대한 종사자들과 일반인들의 인식도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데 반해, 건축은 아직 표절에 대한 경각심조차 부족한 상태이다. 건축물의 디자인, 즉 심미성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거액의 건축 비용을 생각하면 철거 청구가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간 건축가들의 억울함을 침묵해 온 건축계에서도 표절은 이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는 반응이다.

가장 비인간적인 재료 콘크리트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건축저작물. 그 창작성이 건축물 본래의 기능성과 합쳐질 때의 효과는 대단하다.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에서 우리가 그토록 해외여행을 가고 싶던 이유도 이러한 멋진 건축물이 주는 힘 때문이 아니었을까.

장르를 불문하고 예술계의 발전을 위해서 저작자의 권리 보호는 필수이다. 이어지는 건축저작권 분쟁들을 계기로 건축계의 잘못된 관행들은 없어지고, 건축가들의 창작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개성있는 건축물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되길 기대해본다.  

● 김민정 변호사(법무법인 휘명)는 서울대 음악대 기악과(피아노 전공), 베를린 국립 예술대를 나왔다. 이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법무법인 휘명에서 변호사로 재직중이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감정인,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 정회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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