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관찰일기] 프랑스 국민들 '코로나 위치추적' 앱 거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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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관찰일기] 프랑스 국민들 '코로나 위치추적' 앱 거부하는 이유
  • 김환훈 파리 통신원
  • 승인 2020.06.0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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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 사생활 침해 논란속 코로나 위치추적 앱 도입 결정
GPS가 아닌 블루투스...정보 교환 방식으로 방역과 사생활 보호의 타협점 제시
정작 국민들은 ‘절대 깔지 않겠다’며 반발...프랑스 정부, 코로나 대응 신뢰 잃어
김환훈 파리 통신원
김환훈 파리 통신원

[오피니언뉴스=김환훈 파리 통신원] "한국의 코로나 방역 시스템은 극단적으로 사생활 침해적이다. 유럽 차원에서 이 방식을 허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프랑스 정부 과학자문위원인 감염병 학자 드니 말비 박사의 말이다. 지난 3월에 있었던 이 발언은 한국의 여론까지 뜨겁게 달궜다. ‘개인의 사생활도 중요하지만, 사회집단 전체의 방역을 위해선 그 균형이 중요하다'는 대한민국 K방역의 이론적 근거와 대치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도 나름의 근거는 있었다. 프랑스는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무엇보다도 신봉하는 나라 중 하나다. 특히나 개인의 위치정보를 국가가 직접 통제한다는 개념은, 현대인들이 가진 일종의 빅브라더 공포증과 맞물려 프랑스인들에게 상당한 반감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국가가 그러한 개인의 권리를 한번 침해하기 시작한다면 언제든 그 선을 다시 넘지 말란 법이 없는 게 그런 발언의 이유다. 지금까지도, 프랑스 국민들은 그 생각에 변함이 없는 듯하다.

코로나 위치 추적 앱 도입하겠다고 밝혀

프랑스 정부는 5월 28일 1차 이동제한조치 일부 해제에 이어, 6월 2일(화)부터 적용되는 2차적 추가 해제 조치를 발표했다. 2차 추가해제 조치의 핵심은 바이러스 경계가 높게 유지되어야하는 수도권 등 일부 오렌지 지역(위험 지역)을 제외한 곳의 식당, 카페, 바와 숙박시설, 교육기관, 해변과 공원 같은 시설의 개방이다.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코로나 위치추적 어플리케이션 '스톱 코비드(Stop Covid)'의 도입이다. 이미 프랑스 IT장관 세드릭 오의 이같은 어플리케이션 사용 주장으로 격렬한 논란을 불렀던 사안이었기 때문에, 총리가 직접 나서서 이 앱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국민을 설득했다.

직접 '스톱 코비드' 앱에 관해 설명하는 에두아르드 필립 프랑스 총리.
직접 '스톱 코비드' 앱에 관해 설명하는 에두아르드 필립 프랑스 총리.

에두아르드 필립 총리는 "지난주 이 스톱코비드 앱이 프라이버시 보호와 관련된 규정을 전부 지키고 있다"고 발표한 프랑스 프라이버시 및 개인정보 보호 담당 기관인 CNIL의 주장을 근거로 들었다. 거기다 '스톱 코비드' 앱이, 사실상 위치를 추적하는 앱이 아니라는 사실 역시 강조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스톱 코비드'는 대한민국 등에서 사용되고 있는 앱처럼 사용자의 GPS를 추적하는 방식이 아닌, 블루투스를 통한 근거리의 모바일 장비끼리의 정보 교환 방식으로 구현된다. 사용자 개개인의 위치를 지도 위에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앱이 설치된 사용자들끼리 서로 가까워지면 블루투스 통신을 통해 감염된 사용자의 접근을 알려주는 원리다. 최대한 개인정보 침해라는 논란이 불거지지 않는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톱 코비드'는 앱 사용자의 정보를 임의 ID로 처리해 개개인의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다. 이는 개인 정보를 추적도, 저장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또 투명성 원칙의 준수를 위해 이 어플리케이션의 소스 코드는 인터넷에 공개된다. 해외 국가들이 '스톱 코비드'와 같은 앱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사용해도 괜찮다는 선의의 의도까지 담았다.

프랑스 국민들은 이 발표에 분개했다.

그렇지만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가장 취약한 계층은 노년층인데, 이들 노년층의 스마트폰 보급률이 상대적으로 저조하기 때문에 이 앱을 도입하더라도 큰 효과를 볼 수 없을 거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프랑스는 노년층 뿐만 아닌 국민 전체를 기준으로 봤을 때 전체 휴대전화 사용자 대비 스마트폰 사용자 비율은 약 75% 정도에 그친다.

또 '스톱 코비드'의 소스코드 공개가 투명성의 원칙을 충분히 준수하고 있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원칙적으로 ‘오픈소스’란 소스 코드의 100% 공개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앱을 개발한 기업은 해킹을 우려하는 보안상의 이유로 일부 코드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프랑스 국민들중에는 부분적이더라도 공개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사실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있다.

다수의 프랑스 국민들 "스톱코비드 앱 설치하지 않겠다"

무엇보다 코로나 바이러스 대처에 관한 프랑스 정부의 설득이 국민들의 공감을 사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정부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신뢰도가 연일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초기, 프랑스의 국가질병관리본부장 제롬 살로몽은 "일반 국민들의 경우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가 없다:며 의료진과 같은 최전선 업종 종사자에게 마스크를 기부하도록 장려하기까지 했다. 현재 프랑스 정부는 전국민에게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권장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대중교통을 탑승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완벽히 배치되는 정부의 입장 탓에 불신감을 느낀 국민이 적지 않다. ‘제롬 살로몽의 거짓말’이라는 영상은 1만 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으며 한 TV프로에 소개되기까지 했다. 거기다 지난 월요일, 제롬 살로몽 질병관리본부장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 숫자가 2만8200명이라고 발표했는데, 그 다음날에는 사망자 수를 200명 더 적은 것으로 공개한 것이 알려져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프랑스 질병관리 본부장 제롬 살로몽에 대한 비판으로 '제롬 살로몽의 거짓말’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SNS 영상의 한 장면.
프랑스 질병관리 본부장 제롬 살로몽에 대한 비판으로 '제롬 살로몽의 거짓말’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SNS 영상의 한 장면.

현재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비롯한 프랑스의 SNS상에서는 '스톱 코비드'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정부에서 이 어플리케이션의 사용을 의무가 아닌 권장사항으로 했음에도, 이 앱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반응이 대다수이다.

국민이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면 정부가 무슨 정책을 내놓든 의심의 눈초리로밖에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 지금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자회견에서 에두아르드 필립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결코 국민의 개인정보나 사생활을 침해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그러나 여론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가 그걸 어떻게 믿냐"고.

● 김환훈 파리 통신원은 서울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파리에선 한국문학에 매진 중인 자유기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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