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한 칼럼] 의대 입학 정원을 늘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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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한 칼럼] 의대 입학 정원을 늘리기 전에
  •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 승인 2020.05.31 15:21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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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문신사법' 발의 계기, 의료행위에 대한 재정의 필요
의사 독점 영역은 전문 지식의 가장 핵심적인 영역으로 축소돼야
문신사 등 경계선 영역에 대해 타분야도 중첩 접근 허용해야
김장한 울산의대 교수
김장한 울산의대 교수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다. 문신을 시술한 예술가가 병역법 위반에 대한 공범과 무면허 의료행위로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 조치법으로 기소가 됐다. 고등법원에서 재판이 벌어진 상황에서 젊은 문신예술가 여성이 필자를 찾아 왔다.

문신 시술, 무면허 의료행위일까

문신 숍을 운영하던 시술자는 늘 그랬던 것처럼 고객에게 문신 시술을 했지만, 피고인들은 병역 면제를 받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 그들은 신체의 상당 부분을 문신으로 덮었기 때문에 병역법 위반으로 고소됐다. 시술자도 공범이 되었고 문신 시술이 영리 목적이라는 이유로 보건 범죄 위반으로도 처벌받게 됐다.

문신을 무면허 의료 행위로 처벌하기 위해선 먼저 무엇이 의료 행위인지를 정의해야 한다. 의료행위는 교과서적으로는 '질병을 치료하는 행위 또는 이에 더하여 예방, 재활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대법원 역시 질병을 중심으로 유사한 정의를 했는데, 이러면 코 높이기, 쌍눈꺼플 같은 미용 성형 수술이나 문신은 의료 행위가 아닌 것이 된다. 미용실에서 이런 시술을 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 문제를 고민한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로 '의학상의 전문 지식이 있는 의사가 아닌 일반인이 시술을 할 경우, 사람의 생명, 신체상의 위험이나 공중 위생상의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행위'라고 정의를 내리게 된다. 이 정의에 의하면 문신은 질병 치료는 아니지만, 시술 과정에서 간염 등이 옮겨질 수 있기 때문에 의료 행위가 된다. 이게 우리니라의 1970년대 사정이었다.

미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문제로 논쟁이 있었다.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B형 간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역학 조사 결과 감염원으로 지목된 문신 시술소가 폐쇄됐다. 당시 몇몇 주에는 의사만 문신을 할 수 있다는 법 규정이 있었지만, 대부분 주는 입법 자체가 없는 상태였다. 1980년대 주 입법들을 보면, 문신을 의료행위로 보는 입법이 다수 주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2000년대는 다수 주에서 문신시술자의 자격을 법으로 정하면서 시술소 개업를 인정했고, 2개 주에서만 의료행위로 규정하고 있었다.

문신 시술자의 자격을 정하고 의료행위에서 제외하는 입법이 대세가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설득력 있어 보인다. 첫째는 고압 증기 멸균법의 확산으로 문신 시술과 관련해 감염을 예방하는 방법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둘째는 모든 보건 위생상의 위험을 의료행위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예컨대 레스토랑 주방에서 음식을 조리하면 식중독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주방에서 조리를 모두 의사가 해야 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의료행위를 '건강 침해의 위험이 있을 행위'로 규정하면, 무면허 의료행위 범위가 너무 넓게 인정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 우리나라 판례에 대한 의료법학회의 비판도 그렇다. 옳은 지적인데 문제는 이같은 의료행위의 정의가 대법원 판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문신사법'을 발의한 바 있다. 타투협회는 환영했고, 의사협회 또는 피부과 의사들은 감염병 유병율이 높기 때문에 의사 또는 피부과에서만 문신을 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미국에서는 거리의 예술가들이 미국의 관련법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낸다. 문신사 자격 없이도 문신은 자유롭게 시술할 수 있는 '예술적 자유'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코로나 19 감염사태 장기화에 따라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한 장면. 사진= 연합뉴스
코로나 19 감염사태 장기화에 따라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한 장면. 사진= 연합뉴스

의학대학 입학정원 확대 논의 시작

의학대학 입학정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가 최근 확산되면서, 의과대학 교수인 필자에게도 의견을 물어보는 이가 있다. 개인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 논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문제 해결의 핵심은 의대 정원 확대보다 무면허 의료행위 처벌 범위를 좁히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현재 의료법은 일반인에 대해 무면허 의료행위를 넓게 처벌하는 것과 함께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간에도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면 무면허 의료행위로 처벌한다. 또 간호사, 의료기사 간에도 마찬가지이고, 의사와 약사 간에도 의약 분업위반 행위를 처벌하는 등 독점 영역을 인정하고 있다.

범위를 넓혀 살펴보면, 법조계에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는 등 우리나라 모든 전문 분야가 이 문제를 안고 있다. 전문 분야 면허를 가진 자들이 영역 내에서 독점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독점적 영역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 것인가는 다른 문제이다. 이를 침해하면 엄격하게 처벌하기 때문이다.

전문 분야로의 진입이 대학이라는 교육 기구를 통해서만 가능하지만, 이런 독점 유지 구조는 초중고 학생들을 입시 지옥에 빠뜨리 게 했으며 젊은이들의 미생(未生)화를 방조하기도 했다. 교육과 자격시험을 통해 전문 자격 허가를 받도록 하도록 하는 현 체계를 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무면허 행위를 광범위하게 처벌하는 독점적 구조가 우리 사회에서 전반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은 고민해야 한다. 의대 입학 정원 확대 문제는 논의 가능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영향을 주는 이 문제의 해답은 전문 영역의 독점 구조를 깨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의료행위 독점구조 깬다는 것의 의미

문신사 자격을 만들자는 입법 역시 이런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 역시 교육을 통하여 제대로 된 자격자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의사와 같은 고도의 지식을 요구하는 면허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의견이다.

자격간의 독점적 구조는 깨져야 한다는 주장이 누구나 고도의 지식 영역에 들어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독점 영역은 전문 지식의 가장 핵심적인 영역으로 축소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교육을 확대해 자격 진입을 원활하게 하는 것은 논의도 가능하지만, 그것보다는 전문 분야 중에서 핵심 역량이라고 보기 어려운 경계선에 위치한 영역에 대해 타 분야(좀 교육이 부족해도 시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판단되는 유사 영역 면허군)에 대해서는 중첩적 접근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입법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문신을 무면허 의료행위로 보거나 의사의 독점 행위의 핵심으로 보는 것은 입법 과잉이다. 의사와 문신사 자격 보유자가 시술할 수 있는 중첩 영역으로 보는게 바람직하다. 건강이 관련된 문제라서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는 점을 감안해서 현재는 어렵겠지만, 장래에는 문신은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진입과 퇴출이 원활하도록 교육과 시설에 대한 법적 규정이 필요한 수준으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전통식 문신을 '이레즈미(irezumi)' 라고 부르는데, 에도 시대(1603~1868) 때부터 문화 예술의 행위로 널리 보급됐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같이 문신행위를 공식적으로 '의료행위'로 본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를 처벌하는 경우는 극히 드믈다. 사실상 사문화된 법 규정이다. 일본 전통식 문신은 '이레즈미(irezumi)' 라고 부르며, 에도 시대(1603~1868) 문화 융성기에 발달했다. 당시 거리에는 많은 문신시술소가 있고, 가업으로 승계하기도 해 오래된 전통을 가진 영업소가 존재한다.

우리나라도 문신에 대한 반감이 줄어들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문신을 무면허 행위로 처벌하지 않으면 사회에 문신이 퍼지게 되는 것을 우려하는 기성 세대 인식이 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 것은 아닌지 고민해본다.

● 김장한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서울아산병원 교수(박사)는 서울 의대와 법대 및 동 의대, 법대 대학원(석사)을 졸업하고 법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법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부 전공은 법의학과 사회의학이다. 대한법의학회 부회장, 대한의료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 의학과 관련한 역사, 예술, 윤리, 법, 제도, 정책 주변 이야기를 두루 다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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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는 이 2020-07-06 12:32:52
귀에 쏙 들어오네요~~

뽀갱 2020-06-10 00:38:29
이런 깨어있는 분들도 계시네요~~감사합니다^^

미소 2020-06-08 09:10:41
내 주위 의사분들도 같은 생각이셨다~정형외과 외과 산부인과신경외과 치과 성형외과 ......피부과닥터는 없구나

김향근 2020-06-07 22:04:58
멋진 김장한교수님 정말감사합니다

이정민 2020-06-07 08:54:10
역시 김장한교수님 멋지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