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가족끼리 왜 이래? 모녀가 벌이는 한판 승부…’초미의 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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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가족끼리 왜 이래? 모녀가 벌이는 한판 승부…’초미의 관심사'
  • 김이나 컬쳐에디터
  • 승인 2020.05.3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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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넓고 다혈질 엄마, 엄마 만나 고생하는 딸 이야기
다양한 인종, 자유로운 영혼이 모이는 '이태원' 배경
트랜스젠더, 성 소수자, 혼혈인 등 등장...'차별금지’라는 상투적 메시지 없어
모녀를 도와주는 이태원 '어벤져스', 긍정적이고 코믹하게 그려내
초미의 관심사. 사진=네이버영화
영화 '초미의 관심사'의 한 장면. 사진=네이버영화

[오피니언뉴스=김이나 컬쳐에디터]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던가. 영화 내내 주인공이 흥얼거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다시 들리는 노래 ‘I don’t need your love’. 그들은 정말 사랑을 바라지 않았을까. 아니면 사랑에 목말랐을까.

달라도 너무 다른, 그래서 의심의 눈길로 바라보게 되는 '자칭' 모녀.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지 아냐며 엄마가 고래고래 소리지르면 모유도 제대로 못먹었다고 눈을 치켜뜨고 응수하는 딸이 등장한다.

영화 ‘마녀’에서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선보였던, 하지만 이미 1986년 영화 '청 블루스케치'로 데뷔한 조민수가 이번엔 오지랖 넓고 다혈질에 불의를 참지 못하는, 하지만 재즈를 좋아하고 짝사랑 오빠에겐 혀짧은 소리를 내는 엄마 초미로 나오며 래퍼 치타(김은영)가 징글징글한 엄마를 만나 생고생을 시작하는 순덕 역을 맡았다.

코로나19로 다수의 개봉예정작들이 개봉을 연기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영화 '초미의 관심사'는 꿋꿋하게 지난 27일 개봉했다. 개봉 타이밍에 대해선 논란이 있을 법하다. 배경이 '이태원'이라는 이유에서다. 이태원이 코로나 집단감염의 또다른 진원지가 되며 질타를 받았지만, 비난이 온당한지는 의문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딸이자 동생 유리를 찾아 이태원을 헤매는 모녀. 왼쪽 조민수,오른쪽 래퍼 치타(김은영). 사진=네이버영화
딸이자 동생 유리를 찾아 이태원을 헤매는 모녀. 왼쪽 조민수, 오른쪽 래퍼 치타(김은영). 사진=네이버영화

너무도 닮지않은 모녀의 이태원 로드무비

10년만에 예고도 없이 집으로 들이닥친 엄마 초미(조민수 분). 딸 순덕(김은영)은 엄마와 같이 살 수 없어 중학교 때 이미 독립한 상태. 갑자기 엄마가 찾아온 것은 순덕과 함께 살던 동생 유리(최지수)가 엄마의 가겟세 300만원을 들고 사라졌기 때문. 아뿔싸, 순덕이 모아둔 비상금도 사라졌다.

오랫만에 엄마를 만나서도 툴툴 거리는 딸이 불만인 엄마. “우리가 오손도손 안부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잖아”라는 딸의 싸늘한 대답만 돌아올 뿐.

며칠째 집에 안들어온 유리를 찾기 위해 집을 나선 모녀. 실종신고를 하러 간 파출소에서 엄마의 첫사랑 파출소장(정만식)을 만나 엄마의 과거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다니던 학교를 찾아가니 유리 담임은 유리어머니가 영국에서 가수로 활동 중이고 유리가 외동딸인 줄 알았다고 한다. 반에서 3등을 하는 모범생인 유리의 엄마와 언니라고 자처하는 두 사람은 담임의 눈에는 어딘지 모르게 미심쩍다.

유리가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타투샵에 가서 엄마는 다짜고짜 딸을 찾아내라며 타투샵 사장을 다그치는데 이내 그는 동성애인이 있음을 알고 멋쩍어진다. 유리와 단짝인 친구를 찾기위해 클럽까지 찾아가지만여전히 행방은 오리무중. 괘씸하던 딸이 이제는 걱정되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오지랖 넓은 엄마는 길 가다 만난 외국인 관광객에게 길을 알려주고 타투샵 직원이 싱글맘이라고 하자 기저귀값을 슬쩍 쥐어 준다. 예전에 살았던 이태원은 내 구역이라며 큰소리치는 엄마, 그리고 현재 이태원에서 생활하며 가수로 활동중인 순덕. 모녀는 이태원 친구들의 도움으로 유리를 찾을 수 있을까.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혼혈한국인 역의 테리스 브라운, 타투이스트 안리나,드래그퀸 나나 영롱 킴, 트렌스젠더 안아주. 사진=네이버 영화 스틸컷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혼혈 한국인 역의 테리스 브라운, 타투이스트 안리나, 드래그퀸 나나 영롱 킴, 트렌스젠더 안아주. 사진=네이버 영화 스틸컷

서로의 상처를 보듬은 모녀...그리고 그들을 돕는 이태원 어벤져스

영화의 배경인 이태원은 다양한 인종, 자유로운 영혼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그려진다. 독특한 개성의 주인공 모녀 외에도 트랜스젠더, 성 소수자, 혼혈이라 차별 받아온 한국인, 클럽에서 공연하는 드래그퀸 등  인종, 성 정체성, 선입견 등으로 차별받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몇몇 역할은 실제 인물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극중 혼혈한국인 '정복' 역은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도 출연한 바 있는 '테리스 브라운'이 맡았는데 유창한 한국어와 연기로 토종 한국인으로 오해받을 정도다. 미국 하와이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웠으며 국내 방송 '신의 목소리'로 데뷔했다. 

초미의 지인 '사랑' 역은 실제 트랜스젠더 배우 '안아주'가 맡았고 타투샵 직원 싱글맘 역은 실제 타투이스트 '안리나'가 연기한다. 클럽에서 만나게 되는 드래그퀸 '슈슈' 역에는 '나나 영롱 킴'이 등장하는데 치타와의 인연으로 이번 작품에 참여했다. ('드래그퀸'은 여장을 의미하는 ‘드래그(drag)’와 '퀸(queen)’의 합성어. 남성이 예술이나 오락, 유희를 목적으로 여장을 하는 것으로 트랜스젠더와는 다름.)

그들은 자신의 삶을 비관하거나 사회를 탓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초미 모녀를 돕기 위한 어벤져스처럼 그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려 한다. 그들의 밝은 에너지와 유쾌함은 '차별금지’라는 상투적인 메시지를 내세우지 않아도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문제가 아닐까 깨닫게 해주는 장면도 눈에 띈다.

유리를 찾아 초미 모녀가 고시원에 들어서자 “가족 맞아요?”라고 묻는 고시원 총무. 초미는 “가족은 다 같아야하니?”라며 쏘아붙이며 고시원 총무에겐 공부 못하게 생겼는데 어떻게 고시원 총무를 하냐며 비아냥댄다.

또 타투샵 사장이 문신을 하지 않냐며 초미가 의아해하자 사장은 타투샵 사장은 문신을 꼭 해야하냐고 반문한다. 어쩌면 모녀도 서로에 대한 엇나간 기대와 부담으로 떨어져 살아야했는지 모른다. 도저히 타협할 수 없다고 서로를 단정지었던 모녀. 유리를 찾는 동안 만난 사람들을 통해 타인에 대한 관대함을 서로에게도 베풀며 모녀의 정을 새삼 느꼈는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딸의 공연을 보러 간 초미. 딸이 어릴적 기억으로 만들었다는 노래는 초미가 어릴적 딸 앞에서 흥얼거렸던 노래임을 알게된다. 딸 순덕은 엄마에게 노래를 바친다.

이제 떠날 때가 됐을까. 자리를 뜬 초미. 벽에 붙여진 딸의 공연 포스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자신의 상처난 얼굴에 딸이 붙여준 밴드를 포스터에 붙이고 떠난다. 이제는 상처가 다 아물었다는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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