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위기 22) 총대 맨 루빈 美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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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위기 22) 총대 맨 루빈 美재무
  • 김인영
  • 승인 2015.11.2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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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중 매일 저녁 컨퍼런스 콜 열어 월가 은행에 협상 타결 종용

 

선진국 채권은행단 회의는 해를 넘겨 1월 5일에 재개됐다. 서울에서는 정인용 전부총리가 국제금융특사 자격으로 왔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루빈 미국 재무장관은 이날 아동기금모금을 위해 뉴욕의 살로먼 스미스 바니사를 방문, “한국(경제)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며 월가 은행들이 나서서 한국을 지원해주도록 지원사격을 했다.

정인용 특사는 성급하게 JP 모건안에 카드를 던지지 않았다. 아무리 빡빡해도 시간을 갖고 좋은 조건을 찾아보자는 배짱이기도 하고, 정권 이양 과도기에 차기정권에 부담이 되는 문제를 성급히 다룰 수 없는 사안이기도 했다. 그는 JP 모건 본사를 찾아 더글러스 워너 회장과 어니스트 스턴 전무를 만나 협상안을 들었다. 그는 한국의 경제실정, 김대중 당선자측의 IMF 조건 이행 방침, 한국의 경제 개혁 방향등을 설명했지만, JP 모건안에 대해서는 수락여부를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문에 몰려 있는 미국 기자들, 정확히 말하자면 월가 투자자들을 향해 󰡔한국은 외채 만기연장에 관한 많은 선택 방안이 있다󰡕면서 󰡔그렇지만 어떤 방안이 한국에 가장 유리한지를 말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정인용씨의 코멘트가 월가에 전해지자, 투자자들은 󰡔한국이 상황에 쫓기면서도 카드를 던지지 않고 있다󰡕면서 의아해 했다.

채권은행단 회의는 3일간 열렸지만, 한국 단기외채 만기를 3월말까지 90일간 연장해주는 내용 이외에는 아무런 합의도 보지 못했다. JP 모건안에 대한 반대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번엔 JP 모건이 수정안을 내놓았다. 채권은행들이 모두 만족하는 안이었다. 은행이란 남의 돈으로 장사를 하는 기업이다. 이자만 높고, 안전하게 자금을 운용할 수 있으면 그보다 좋은 장사가 없다. 그러나 은행에게 좋은 장사는 돈을 빌리는 채무자에게는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수정안의 골자는 중도상환을 허용하는 콜 옵션을 삭제하며, 3년과 20년 만기 채권을 신설했다. 그리고 10년과 20년 만기 장기 채권의 금리를 고정금리로 한다는 것. 만약 이 안이 채택되면 한국은 만기 1년 미만의 단기자금을 갚지 못한 죄로 10~20년동안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할 형편이다. 콜 옵션이 없어졌으니 경제가 호전되어서 갚을 능력이 생겨도 갚을 길이 없다. 특히 장기 채권은 단기 채권보다 금리가 높기 때문에 채권 투자자들이 장기채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1% 가산금리가 5~6%로 커지는 것도 불만인데 그나마 최장 20년까지 악성채권으로 남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채무자로선 받아들 수 없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한국은 20년간 이자만 물다가 파산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그런데 다행히 시티은행과 체이스맨해튼 은행이 JP 모건안에 동조하지 않았다. 다급해진 것은 JP 모건이었다. 한국의 외채협상을 통해 국제 금융계의 주도권을 쥐고, 대목 장사를 하려던 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월가에서는 한국의 외채 협상을 「빅딜」, 「사상 최대의 포커게임」이라며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 클린턴 정부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로버트 루빈. 사진은 2007년 9월 6일 씨티그룹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던 그가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씨티은행 한국 진출 40주년 및 한국씨티은행 출범 3주년 기념식에서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 앞날에 대해 기념 강의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1월 8일 JP 모건은 인터넷을 통해 고객들에게 전자메일을 띄웠다. 내용인즉 JP 모건이 만든 한국 외채 협상안을 채권 은행단이 만족스럽게 받아들였다는 것이었다.

뉴욕 금융가는 선진국 채권은행들이 한국의 단기 외채를 얼마나, 어떻게 처리해주는지 여부에 바짝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미국 은행은 물론 유럽, 일본 은행등 선진국 은행의 대출담당 중역들이 한국에 빌려준 돈을 어떻게 하면 받아내는가 하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대거 뉴욕에 와 있었다. 당시 채권은행단 회의를 JP 모건이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비쳐졌다.

회의 내용은 일체 비밀에 부쳐졌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회의 내용이 궁금했다. 협상이 잘되는지, 삐걱거리는지 하는 것도 투자자들에겐 주요한 정보가 된다. JP 모건은 한국의 단기외채 250억~300억 달러를 한국 정부가 지급보증하는 채권으로 전환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이 안이 받아들여질 경우 채권 투자자들은 한몫할수 있다. 이미 발행된 한국 채권을 미리 사두면 큰 돈을 벌 수 있다. 채권 발행을 위해 한국 정부가 국제 채권 시장을 관리할 것이므로 값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JP 모건은 이점을 이용했다. 모건사는 골드만 삭스나 살로만 스미스바니와 같은 경쟁회사를 따돌리고 협상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안을 기정사실화할 필요가 있었다. 300억 달러에 이르는 한국 단기 외채를 채권으로 전환할 경우 발행액의 1%를 수수료로 받아도 3억 달러의 수수료를 단번에 챙길 수 있다.

 

그러면 여기서 JP 모건이란 은행에 대해 알아보자.

창업자 JP 모건씨는 20세기초 미국의 철도와 철강산업을 비롯, 미국의 거의 모든 산업을 장악한 독선적인 금융자본가였다. 그는 부도 직전의 중소 은행가들을 뉴욕 맨해튼의 자택에 불러모아 구제금융을 해주면서 중앙은행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면서 JP 모건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당선되자 모건 은행 간부들은 하원 청문회에 불려가 대공황의 주범으로 몰렸다. 모건씨 후손들은 청문회가 끝나자 주식을 모두 내놓았다. 공개 주식회사로 전환된 JP 모건 은행은 80년대초까지 미국 최대 도매 금융회사로 독보적인 지위를 누려왔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모건사는 경쟁에서 밀려났다. 오랜 역사와 전통에 뿌리둔 자존심과 보수성이 그 원인이었다. 살로먼 스미스바니, 메릴린치등 투자은행 경쟁사들이 합병을 통해 소매 영업망을 구축, 영업환경에 발빠르게 변신한 반면 모건 은행은 혼자만으로 영업하겠다고 고집해 왔다. 시티와 체이스맨해튼등 상업은행들이 소매금융을 취급, 상품을 다양화하는데도 뒤따라가지 못했다.

JP 모건은 월가의 대표 은행이라는 상징성이 사라져갔다. 97년 4.4분기 순이익이 35%나 감소하는 등 모건 은행은 다른 은행에 비해 타격이 심했다. 아시아 금융위기로 물린 돈만 해도 6억 달러나 됐다. 모건 은행은 연초부터 경영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다른 금융기관과 합병을 추진하거나 대량 감원을 추진했다. 더 이상 사세가 기울어지는 것을 방관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금융 독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던 차에 한국 외채협상은 JP 모건에게 좋은 먹이감이었다. 한국 협상을 주도해서 생긴 수수료만으로도 아시아에서 물린 돈의 절반을 만회할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그러나 JP 모건의 음모는 시티와 체이스등 상업은행과 골드만 삭스와 살로만 스미스바니등 경쟁 투자은행에 의해 좌절됐다. 한국 외채협상의 주도권은 JP 모건에서 시티은행으로 넘어갔다.

한국도 미국 은행간 갈등을 이용, 독자안을 만들어나갔다. 한국 정부는 JP 모건의 경쟁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와 살로먼 스미스바니사를 자문회사로 위촉했다. 이들 두 투자회사는 한국 정부의 외채 협상을 측면 지원했다. 골드만 삭스는 미국 금융가에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을 배출한 회사다. 루빈이 재무장관을 맡은 후 골드만 삭스와 공식적 관계는 없지만, 월가의 다른 은행들이 골드만 삭스의 주도권을 은근히 시기하고 있었다. 살로만 스미스 바니는 미국 최대 금융그룹인 트래블러스 그룹의 투자회사다. 골드만 삭스사에서는 로버트 호매츠(Robert Hormats) 부회장, 살로먼 브러더스에서는 제프리 샤퍼(Jeffrey Shafer) 부회장이 한국을 드나들며, 경제 개혁과 외채협상에 많은 것을 지도했다. 여기에다 뉴욕 연준 총재를 지낸 제럴드 코리건(E Gerald Corrigan)씨가 한국 정부의 고문역을 무료로 맡았다.

 

한국과 채권 은행단의 본격적인 외채협상은 21일 시티은행 본사에서 시작됐다. 한국 정부는 1998년중 만기가 돌아오는 금융기관의 단기외채(당시 250억 달러로 추산)의 만기를 1~3년간 연장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협상에 앞서 유럽계 은행, 특히 독일 은행들이 이런 주장을 했고, 한국은 이 점에 포커스를 맞추었던 것 같다. 정덕구 당시 재경원 차관보는 정부가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해 독자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협상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 채권은행단은 한국측 제안을 선선이 받아들였다.

주도권을 잡으려고 치열하게 싸우던 채권은행들이 왜 한국에 유리한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을까. 이 의문의 해답은 간단하다. 협상의 배후에 미국 재무부가 미국은행을 강력하게 콘트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악관에서 이미 만기를 연장해주기로 한 만큼 한국측 제안은 쉽게 받아들여졌다. 한국을 도와준다는 대원칙이 백악관에서 결정됐기 때문에 협상은 금리를 어떻게 하느냐, 어느 금융상품을 범위에 포함시키느냐 하는 사소한 문제만 남았기 때문이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월가 은행들의 팔을 틀어(arm-twisting) 한국 단기외채의 만기를 연장시켰던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은 외채협상에서도 또다시 은행장들의 팔을 비틀었다. 욕심을 내지 말고 한국을 도와주라는 것이었다. 당시 외채협상에 참여했던 한국측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협상이 진행되고 있을 때 루빈 장관이 매일 저녁 4시가 되면 은행장들을 전화로 불러 컨퍼런스 콜(conference call)을 열었습니다. 시티, 체이스맨해튼, JP 모건은행의 회장들이 루빈의 지시를 받다시피 했지요. 월가 은행들도 루빈 말이라면 꼼짝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협상은 속전속결로 진행돼 양측은 29일 한국의 단기외채 만기를 1~3년 연장하되, 1년 만기의 경우 국제금리(LIBOR)에 대해 2.25%, 2년 만기는 2.5%, 3년 만기는 2.75%의 가산금리를 얹어주기로 합의했다.

(3월 13일 외채 만기연장 신청을 최종 마감한 결과 31개국 123개사 채권은행들이 총 213억7,400만 달러의 단기외채중 중장기로 전환시켜주겠다고 통보, 만기연장율이 94.8%에 달했다.)

채권은행들로서도 가산금리 1% 미만으로 빌려준 돈의 이자를 더 얹어 받았고, 떼먹힐 돈을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엄청난 이익을 보았다.

한국으로선 뉴욕 외채협상을 계기로 외환 위기의 급한 불을 끄고 국제 사회에 대외신용도를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를 남겨 놓았다.

금융기관의 단기외채만 만기가 연장됐을 뿐 신규자금(뉴머니)이 한국에 유입된 것은 한푼도 없고, 400억 달러에 이르는 재벌기업들의 단기외채도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었다.

협상을 마친 후 정덕구 당시 차관보는 󰡔재벌 기업의 단기 외채는 정부가 지급보증하지 않을 것이며, 이는 재벌 스스로가 알아서 해결할 문제󰡕라고 못박았다. 월가 은행들은 이번에 롤오버(만기연장:rollover)해준 자금이 한국 재벌에 흘러들어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기업의 단기외채는 3월말에 대부분 만기가 돌아올 예정이었다. 당시 국제 시장의 한국 프리미엄을 감안할 때 한국 기업들은 5~6%의 높은 가산금리를 물고 롤오버를 해야 했다. 그나마 신용도가 약한 기업들은 외국은행들로부터 만기 연장도 못받고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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