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위기 21) JP모건의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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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위기 21) JP모건의 욕심
  • 김인영
  • 승인 2015.11.22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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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외채협상에서 한국에 고금리 부과할 것을 요구

 

월가 은행들은 윌리엄 맥도너 뉴욕 연준 총재의 지시로 한국 외채 구조조정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우선 해야 할 일은 한국의 해외 부채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보아야 했고, 채권은행들을 소집해야 했다. 한국은 이때가지 금융기관과 기업의 해외부채가 얼마나 되는지를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 언론들은 1,000억 달러가 넘을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채권 은행들도 한국의 대외채무가 정확히 얼마인지를 알지 못했다.

월가 은행들로선 두 가지 점에서 워싱턴 행정부와 중앙은행의 조치가 반가웠다. 첫째로 한국이 떼먹힐 뻔 했던 돈을 받을 수 있게 됐고, 한국의 외채 조정협상을 통해 미국의 주도권을 확실히 잡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개인간 채권채무 관계에서 돈을 빌릴 때는 채무자가 허리를 굽히지만, 채무자가 배짱을 부릴 땐 채권자가 안달하기 마련이다. 국가간에도 마찬가지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 채무국은 자금이 유통되지 않아 극심한 경제난에 봉착하지만, 채권은행도 부실 여신이 누적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돈을 받으려고 한다. 만기를 연장해주든가, 이자를 안받겠든가, 부채를 일부 탕감하든가, 담은 몇푼이라도 건지는 게 채권자의 입장에서 유리하다.

그런데 한국이 당장은 어렵지만, 언젠가 돈을 갚겠다고 하지 않는가. 한국은 공장시설, 인적 자원, 기술력, 경영 노하우 등이 건실한 나라인데 조금만 돈을 융통해주면 돈을 받을 수 있질 않는가. 채권은행도 신용도를 고려하지 않고 한국에 돈을 펑펑 빌려준 책임이 있었다.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를 전혀 따지지 않고 돈을 받을 길을 재무부와 연준리가 정치적으로 모색해주었는데 마다할 리 없었다.

▲ 뉴욕의 JP모건 본사.

뉴욕 은행들은 서로 역할을 분담, 발빠르게 움직였다. JP 모건은 협상안을 짰고, 시티은행은 유럽과 일본은행을 설득하고, 체이스맨해튼 은행은 미국내 은행을 동원하는 일을 맡았다. 주인공은 JP 모건의 어니스트 스턴(Ernest Stern) 전무, 시티은행의 윌리엄 로즈(William Rhedes) 부회장, 체이스맨해튼 은행의 데이비드 플루그(David Pflug) 대출담당 이사였다.

스턴씨는 세계 은행에서 23년간 근무하다가 1995년에 JP 모건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계 은행 근무시절 그는 개도국의 금융위기를 지원한 경험이 숱하게 많지만, 민간 은행에 와서 외국의 금융위기를 처리하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크리스마스 연휴를 가족과 함께 휴가를 즐기려던 일정을 포기하고, 그는 한국의 단기외채를 정부가 지급보증하는 중장기 채권으로 전환하는 이른바 「JP 모건안」을 만들었다.

로즈 부회장은 외채 협상 과정을 통해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베네수엘라 지점에서 출발, 40여년동안 한 우물을 판 정통 시티은행 사람이다. 뉴욕 금융가의 거물인 존 리드(John Reed) 시티은행 회장과 흉허물없이 지내는 몇안되는 사람이며, 리드 회장의 잦은 간부 숙청에도 버텨내온 이력의 소유자. 80년대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페루, 우루과이등 중남미 부채 구조조정에도 참여하는 등 수차례 국제적인 구제금융에서 소방수 역할을 맡았다. 그는 한국의 부채 만기 연장을 위해 유럽과 일본 은행을 설득하는 역할을 부여받아 며칠을 전화통과 씨름했다. “한국의 뇌출혈을 일단 막아야 한다. 한국이 국제 금융시장에 다시 나오도록 시간을 주자.”

그는 오랫동안 개도국 금융위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배운 노하우를 한국 외채 협상에서 여실히 발휘했고, 유럽 은행과 일본 은행들도 로즈씨를 기꺼이 따랐다.

플루그 이사는 대외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20년 이상 은행일을 하면서 방콕, 마닐라등에 근무하며 아시아에 정통했으며, 80년대초 필리핀이 IMF와 협상을 벌일 때 국제 채권은행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그의 역할은 한국에 돈을 빌려준 미국 국내 은행들에게 단기외채 만기를 연장하도록 설득하는 일이었다.

미국 은행들의 움직임에 일본과 유럽은행들도 보조를 같이 했다. 미국 은행이 만기를 연장해주는데 자기들만 연장하지 않을 명분이 없었으며, 월가의 국제금융시장 주도권을 인정해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26일 뉴욕에서 미국 채권은행단이 모였고, 동경과 파리, 프랑크푸르트 등에서도 은행단 회의가 열려 국제적인 공감대를 형성했다.

문제는 채권은행단이 각국에서 따로 한국 정부와 협상을 할 수는 없었다. 채권자와 채무자가 상대방이 되려면 한 곳에서 협상을 해야 모든 점에서 편하다. 한국 정부가 각국을 돌며 협상을 하러 다니면 불리한 것은 채권은행들이다. 채권은행단의 협상력이 약화될 뿐아니라 시간이 많이 걸려 며칠 내로 만기가 다가오는 돈을 받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채권은행단의 약점을 뉴욕 은행들이 잽싸게 파악했다. 미국 은행들은 12월 29일 각국의 대표 은행을 뉴욕에 소집했다. 이날 회의에는 프랑스의 소시에테 제네랄 은행, 독일의 도이체 방크, 일본의 도쿄-미쓰비시 은행, 캐나다의 로얄 뱅크 오브 캐나다, 이탈리아의 코머셜 이탈리아나, 스위스의 SBC 등이 각각 참석했다. 미국 측에서는 시티, 체이스맨해튼, JP 모건등 상업은행은 물론 메릴린치 증권, 리먼 브러더스, 모건 스탠리, 골드만 삭스, 살로만 스미스 바니등 투자은행들도 참가했다. 사실상 미국 채권은행단 회의에 유럽과 일본은행들을 옵저버 자격으로 참석한 것에 불과했지만, 대외적으로는 국제 채권단회의라는 명분을 얻었던 것이다.

해가 바뀌기 이틀전, 월가 은행이 주도한 국제 채권은행단 회의에서 12월말에 만기가 돌아온 채무의 만기를 한달간 연장해주기로 했다. 이때 만기가 한달 연장된 단기 외채가 150억~200억 달러 정도로 추산됐다. 이날 회의가 없었더라면 한국은 이틀후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 유럽의 금융감독당국은 만기가 임박한 여신을 연장해주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만기를 한달 연장해준 것은 이런 규정의 예외조항을 이용한 것이었고, 정치적 판단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한 은행 전문가는 “한국의 단기외채 만기연장이 배구경기에서 2분 남겨놓고 심판이 연장전을 선언한 것과 같다”며 비아냥거렸다.

같은날 한국의 재경원은 한국의 대외채무 규모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11월말까지 대외채무는 1,569억 달러이고, 이중 단기채무가 922억 달러로 3분의2를 차지했다. 12월 20일 현재 외채는 1,530억 달러이며, 이는 전년말 1,607억 달러보다 다소 줄었다. 그동안 엄청난 달러가 빠져나갔기 때문에 외채규모가 줄어든 것이다. 한국의 외채규모는 외국 언론들이 파악한 1,000억~1,200억 달러보다 훨씬 많았다. 만기 1년 미만의 단기 외채만 1,000억 달러에 육박했으니, IMF의 구제금융으로도 턱없이 모자랐다.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사는 한국의 외채중 40%가 일본에서 빌려온 것이고, 45%가 유럽국가에서, 나머지 15%가 미국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추산했다. 미국은 한국에 큰 돈도 빌려주지 않았으면서, 외채 협상을 주도했던 것이다.

어쨋든 한국에게 주어진 한달의 시간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한달동안 수백억 달러의 돈이 들어올 구멍이 없었다. 채권국과 협상을 하더라도 실무 행정 처리기간을 감안하면 3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3월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채무는 400억 달러 정도로 추산됐다.

 

연말 뉴욕 회의에서 슬그머니 나온 것이 앞서 말한 「JP 모건안」이었다.

당초 JP 모건안은 150억~300억 달러에 이르는 한국 기업, 은행의 단기 외채를 만기 1년, 5년, 10년등 세종류의 국채로 일괄적으로 전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당시 한국산업은행 글로벌본드의 유통금리가 10~11%로 발행금리 6~7%보다 4~5% 포인트 높게 거래됐기 때문에 국제시장에서 국채를 발행할 경우 한국은 고금리를 감수해야만 했다.

원안에는 콜 옵션(call option)이 있었다. 5년 만기 채권에는 1년후부터, 10년 만기 채권에는 3년후부터 발행자(한국 정부)가 여유가 있으면 조기상환할 수 있도록 한 조건이었다.

JP 모건안은 1980년대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의 외채 상환협상때의 방식을 본뜬 것이다. 당시 JP 모건이 월가 은행을 대표해서 협상을 주도했고, 한국 정부에 대한 협상안을 만든 스턴씨도 라틴아메리카 외채 협상에 참여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급조했던 것 같다.

중남미 국가들은 1982년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상태에서 채권은행단과 채무 상환협상을 벌였다. 협상은 7년을 끌어 1989년에 최종 타결을 보았다.

당시 니콜라스 브래디(Nicholas Brady) 미국 재무장관은 2,000억 달러에 이르는 중남미 국가의 채무를 채권(국채)으로 전환, 채권은행단이 일부를 매입하고 나머지는 국제시장에서 소화하도록 했다. 중남미 국가들은 신용력이 없어 채권 발행이 불가능했지만, 미국은 미국 국채를 담보로 중남미 국채 발행을 지원해줬다. 당시 미국 재무장관의 이름을 본뜬 브래디본드는 이렇게 해서 발행돼 아직도 국제 채권시장에서 정크본드로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채무 상태는 1980년대 중남미 채무와 달랐다. 중남미 채무가 정부 부채였으나, 한국의 것은 민간 부채였다. 또 중남미 국가들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상태에서 협상을 했지만, 한국은 경제전망이 양호하기 때문에 부채만기만 연장하면 신용력을 회복할 가능성이 컸다. 아울러 중남미 국가에 대한 채권은행은 주로 미국 은행이었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유럽과 일본은행들이 미국보다 더 많은 돈을 빌려줬다는데서 차이가 있었다.

 

채권은행단 회의가 열리자 JP 모건안에 대한 견제의 목소리가 높게 제기됐다. 이 안은 시티, 체이스맨해튼 은행과 같은 상업은행에게나, 채무자인 한국에게도 불리하게 짜여져 있었다.

상업은행들은 한국에 돈을 많이 빌려준 쪽은 자기네들인데 JP 모건이 생색을 내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다. 상업은행들로선 부실 여신을 채권으로 전환할 경우 빌려준 돈을 받게 될지 모르지만, 여러모로 손해를 보는 장사다. 그들에겐 부실 은행이지만 한국 시중은행에 대한 크레딧 라인(대출한도)을 완전히 폐쇄, 거래관계를 끊게 된다. 그렇게 되면 몇 년후 경제가 회복되면 한국이라는 대고객을 잃게 된다.

유럽계 은행들도 자신의 독자안을 협상테이블에 내놓겠다고 밝혔다.

채무자인 한국의 시중은행으로서도 만기를 연장함으로써 선진국 은행들과 거래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았다. 금리도 문제다. 1년전보다 4~5% 포인트 높은 채권을 발행하는 것보다 1~2% 정도만 더 높은 이자를 얹어주면 연장할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유리했다. 한달밖에 없는 시간이지만, 채무자가 채권자와 협상할땐 배짱을 부릴 필요가 있다. 한국이 원하는 것은 선진국 은행들이 그동안 끊었던 크레딧라인을 복원, 한국에 대한 대출을 재개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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