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칼럼] ‘장혜영 정의당 혁신위’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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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칼럼] ‘장혜영 정의당 혁신위’에 거는 기대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0.05.2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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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전임연구원] 정의당이 21대 총선 패배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심상정 지도부의 조기퇴진과 혁신위원회 가동 결의 등 새로운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정치의 발전을 위해 정의당 혁신위원회의 성공과 함께 변화하는 당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난 25일 정의당 혁신위가 장혜영 국회의원 당선인을 위원장으로 선출하면서 본격적인 당 쇄신안 마련에 나섰다. 장 위원장은 장애인 인권운동가 출신이다.

그는 2011년  ‘공개이별선언문’을 남기고 연세대를 자퇴하면서 고려대·서울대 자퇴 학생들과 함께 대학의 무한경쟁 세태를 비판하며 ‘SKY 자퇴생’으로 세간에 알려졌다.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의 감독이자 정치·일상 소재인 ‘생각 많은 둘째언니’ 채널을 4년간 운영해 온 유튜버이기도 하다.

장혜영 위원장은 이날 혁신위 회의에서 “청년이자 여성이면서 혁신을 열망하는 모두를 대변할 수 있는 가교로서 역할을 하겠다"며 "해결을 위한 더 많은 대화를 촉발하는 것이 위원장으로서의 목표”라고 밝혔다.

정의당 혁신위원인 강민진 대변인은 첫 혁신위 회의를 마친 후 페이스북을 통해 “혁신위에 100일여가 주어졌다”며 “정의당은 새로운 길을 가야만 한다”고 했다. 또한 그는 “경험 중심으로 당이 운영돼온 결과 혁신위까지 만들게 된 지금에 이른 것”이라며 “경험과 관록의 계급장은 떼고 논의해야” 하며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상상력”이라고 언급했다.

정의당은 지난 25일 장혜영 제21대 국회의원 당선인을 당 혁신위원장에 임명하고 혁신위원회를 구성했다. 사진=연합뉴스.
정의당은 지난 25일 장혜영 제21대 국회의원 당선인을 당 혁신위원장에 임명하고 혁신위원회를 구성했다. 사진=연합뉴스.

오는 8월말로 예상되는 정기 당대회까지 독립된 집행권한을 갖는 혁신위엔 당의 근본적인 혁신과제 마련,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비전 도출 등이 주요과제로 부여됐다. 특히 새 지도부 출범을 위한 당직선거 시기를 포함한 혁신안을 당 대의원대회에 제출해야 한다. 대의원대회에서 안건이 통과되면 새 지도부 출범을 위한 당직선거가 개최된다. 

정의당 혁신위가 질서있게 출범할 수 있었던 것은 심상정 대표의 결단에 따른 것이다. 심 대표는 지난 17일 열린 전국위원회에서, 원래 내년 7월까지였던 임기를 마치는 대신 자신을 비롯한 현 지도부는 조기 사퇴하고 오는 8월 당 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선출하기로 결의하였다. 

심 대표는 “8월 말 예정된 당대회까지 혁신위원들이 당을 새롭고 탄탄한 길로 또렷이 안내해 달라"면서 "정의당의 길은 여전히 고단하겠지만,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믿음직한 대안정당의 길로 이어질 수 있도록 헌신적인 노력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장혜영 혁신위원장의 발걸음은 조금 신중한 편이다. 지난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대담에서 장 혁신위원장은 “정의당의 혁신은 단순히 정의당만의 혁신이 아니라 ‘정의롭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다시 규정하는 일”이라며 “또 진보정당이란 무엇인가, 코로나19시대에 진보정당이 가져야 하는 모습은 무엇인가 하는 새로운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화두를 제시했다.

또한 그 대담 중 논란이 되고 있는 윤미향 당선인의 거취에 대해서는 “정의당이 데스노트를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거라기보다는 윤미향 당선인께서는 또 비례대표로 오신 분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래서 정의당에서 나간 입장에서도 역시 민주당의 책임 있는 태도를 촉구하는 것”이지, “그 당선인에 대해서 저희가 왈가왈부했던 그런 관점으로 정리된 메시지는 저는 아니었다고 이해하고 있다”고 답변하면서 말을 아꼈다.

앞으로 3개월의 시간을 갖는 장혜영 혁신위가 정의당의 혁신과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무엇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동안 정의당이 ‘민주당의 2중대’로 비춰져서 혼란이 생긴 만큼, 정의당의 정체성확보에 도움이 되는 논의와 노선개발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노회찬 정신을 계승하는 문제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우선 쟁점이 되고 있는 노무현과 노회찬 노선의 비교 검토, 권영길과 심상정 노선의 비교 검토 그리고 정의당의 추락배경에 대한 논의가 요구된다.

그렇다면 첫 번째 쟁점인 진보정치가로서 노무현과 노회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진보정치가로서 노회찬과 노무현의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차이를 보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서로 논쟁했던 이슈(한미 FTA, 삼성 X파일, 노무현 정치자금수사)에 접근해 보면 좋을 것이다.

첫째로 양쪽은 한미 FTA에서 차이를 보였다. 노회찬은 2007년 4월 10일 한미FTA 협상의 주역인 노무현 대통령을 신자유주의 세력으로 비판하였다. 노회찬은 “만약 노대통령이 2002년 대선에서 한미FTA를 공약으로 내걸었다면, 지금 그 자리에 앉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노무현은 이런 비판에 대해 자신의 유작인 '진보의 미래'에서 “정통 진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신자유주의 정부라고 비판하지만, 진보가 ‘진보원리주의’라는 정통 구진보좌파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되며, 시장을 인정하는 ‘제3의 길’과 같은 신진보를 고려할 것”을 강조한다.

둘째로 삼성 X파일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8월 8일 ‘X파일’ 관련 간담회에서 “정경언 유착도 중요한 문제지만 도청 문제 자체가 더 중요하고 본질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노회찬은 2006년 5월 24일 “노무현 대통령이 삼성 X파일 수사가 시작되던 지난해 8월 ‘X파일의 핵심은 국정원의 불법도청이지 도청내용이 아니다’ 등 부당한 수사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셋째로, 양쪽은 권양숙 여사 불법자금 수사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노회찬은 2006년 4월 9일 PBC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부인인 권양숙씨가 박연차 태광실업 대표에게 돈을 받았다고 고백한 것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며 “참 구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물론 노회찬은 2011년 5월 11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2주기 추모 학술심포지엄에 참여하여, 참여정부 당시 야당의원으로써 정부여당에 대한 매서운 비판을 한 것과 관련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직후에 남기신 글을 보며 집권 당시 비판하던 것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비판을 누그러뜨린 바 있다. 

이어서 두 번째 쟁점인 권영길과 심상정 노선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과거 민주노동당 권영길은 영국 노동당이 양당제 구조에서 자유주의 세력인 자유당과 경쟁에서 승리하고 보수당과의 양당구도를 확보한 방법에 착안했기에, 한국의 ‘분단 속 대통령제 소선거구 양당체제’라는 현재의 권력구조를 인정했다.

그 인정속에서 권영길은 민주당을 제3당으로 밀어내기 위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와 노동자 조직화 및 민생노선을 강화하는 '하층연대정치'노선에 열중했다. 그 노력은 제17대 총선에서 13%의 정당득표율을 가진 10석의 국회의원 당선으로 입증됐다.

하지만 정의당 심상정은 17대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을 만든 민주노동당 권영길의 기본노선과는 달랐다. 거기에서 이탈했다. 심상정 지도부는 분단 속 대통령제라는 권력구조가 아니라 내각제, 다당제, 연립정부를 가정하고 전제하면서 민주당을 제3당으로 밀어내기 위한 정책경쟁을 사실상 포기했다. 

정의당 심상정(왼쪽부터)전 대표와 장혜영, 류호정 당선인이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21대 국회 의원 당선자 교육워크숍’에서 심 전 대표가 당선인들을 위해 준비한 노란색 셔츠를 입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심상정(왼쪽부터) 정의당 대표와 장혜영, 류호정 당선인이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21대 국회 의원 당선자 교육워크숍’에서 심 전 대표가 당선인들을 위해 준비한 노란색 셔츠를 입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심상정은 민주당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독자적인 민생정치에 전념하기보다는 민주당과의 선거연대 그리고 연동형비례대표제 확대와 결선투표제 실시로 민주당과의 연립정부 구성에 전념하는 ‘상층교섭정치’노선에 열중했다. 심상정은 이 ‘상층교섭정치’노선에 중독되고 ‘선거승리지상주의’에 허우적거리면서 결국은 ‘민주당 2중대 노선’의 늪에 빠졌다. 그리고 이번 21대 총선에서 9.67%의 비례득표율을 가진 6석의 정당으로 위기를 맞았다.

세 번째 쟁점으로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이 추락한 이유가 뭘까? 여러 의견이 있을 것이다. 그 핵심은 그동안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정의당’을 찍었던 정의당과 강남좌파 지지자들의 동거가 깨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의당은 이 동거를 지키기 위해 ‘정의없는 정의당’과 ‘민주당 2중대 노선’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조국의 내로남불사건’을 비판하지 않았고 그를 데스노트에 올리지 않았다.

그리고 정의당은 생존의 방법으로 ‘연동형 선거법’을 너무나 갈구했기에 연동형선거법의 효과를 너무 좋은 쪽으로만 해석하고 알바니아나 레소토사례에서 위성정당이 출현해서 비례효과가 없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확증편향성’에 빠졌다.그래서 더불어 시민당과 열린민주당과 같은 민주당 위성정당의 출현가능성을 무시하다가 막상 그것이 등장하고 그동안 동거해온 지지자들이 대거 더불어 시민당으로 이탈하자 정의당이 추락하게 된 것이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 정의당 추락의 요인은 네 가지로 보인다. 첫째, 데스노트에서 조국 배제 등 조국 내로남불을 비판하지 않고 조국수호에 나선 점이다. 둘째 연동형 비례제 효과에 확증편향성에 빠진 점이다. 셋째 비례위성정당이 생기면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정의당’을 찍었던 유권자들이 대거 이탈한다는 것에 대해 무지했던 점이다. 넷째 ‘민주당 2중대노선’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은 점이다. 

‘분단속 대통령제’와 친화적인 양당제를 구축하는 구조적 환경속에서 정의당과 같은 이념정당이 생존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민주당 2중대노선’을 전략적으로 추구하거나 ‘민주당 빅텐트 내 진보블록’에 들어가는 길이다. 두 번째는 양당제에서 자유당을 밀어낸 영국 노동당 성공처럼, 민주당을 제3당으로 밀어내는 길이다. 그러나 이 둘 다 쉽지 않기에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장혜영 혁신위원장은 지난 3월 25일 비례대표 2번 후보시절 당 청년선대본부장자격으로서, 청년선거대책본부 출범식에서 “정의당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임명에 단호한 입장을 밝히지 못했다. 타협이 아니라 더 치열하게 싸웠어야 한다”면서 조국 사태 당시 정의당의 태도를 비판하는 반성문을 발표한 바 있다. 장 선대본부장의 이 같은 반성문은 만시지탄이지만 무척 다행스런 일임에 틀림이 없다. 

정의당 혁신위는 당 정체성과 정치·조직노선과 관련하여 패퇴했거나 쇠락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나 사회주의 및 사민주의가 공유하고 있는 ‘집단(계급, 민족, 국가)주의’나 ‘물질주의’ 및 ‘공리주의’를 대변하는 구좌파노선이나 구진보노선과 확실한 선을 긋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방안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세계화, 정보화, 후기산업화, 탈물질주의화, 탈냉전화 등으로 표현되는 21세기 시대상황에 부합하는 ‘탈권위주의적 개인주의 네트워크’와 ‘탈물질주의적 생활정치’를 기초로 하는 신좌파노선이나 신진보노선의 방향으로 변화와 혁신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혜영 정의당 혁신위원회의 성공을 기대한다.

● 채진원 박사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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