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위기 16) 모라토리엄의 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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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위기 16) 모라토리엄의 벼랑
  • 김인영
  • 승인 2015.11.2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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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재무부, 한국을 모라토리엄에 빠트리고 만기 연장할 전략

 

1997년 12월 9일자 뉴욕타임스는 1면 머릿기사로 「한국 정부가 미국과 일본의 조기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는 타이틀의 기사를 보도했다. 한국 위기를 취재하기 위해 서울에 특파돼 있던 앤드류 폴락 기자는 임창렬 부총리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한국 정부가 악화되고 있는 경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IMF 지원 패키지에 들어있는 미국과 일본의 지원 분을 빨리 달라고 협박 조로 압력을 넣고 있다고 전했다. 이 기사가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임부총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과 일본이 한국을 지원해주기로 했으면, 기다리지 말고 초기 단계에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면 이곳의 시장은 안정될 것이다. 570억 달러의 구제금융자금을 더 늘릴 필요는 없다. 그것으로도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이 빨리 도와주어야 한다.달러가 절실히 필요한때에 워싱턴과 동경에서 달러가 유입되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미국과 일본)은 말로 서비스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한국의 경제) 정책에 충고만 하려하지, 돈은 조금도 주지 않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한국 국민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라.”

IMF 패키지에 미국이 50억 달러, 일본이 100억 달러를 한국에 지원하기로 약속이 돼 있다. 그런데 조건은 IMF와 세계은행등 국제 금융기관의 지원으로 부족할 경우 도와준다는 이른바 「2선 지원(second line of defense)」의 조건이었다. 요컨대 한국 정부의 희망은 IMF가 찔끔찔끔 도와주기보다는 한꺼번에 도와주길 바랬고, 미국과 일본이 2차 방어선에 있지 말고 전면에 나서달라는 것이었다.

임부총리의 인터뷰 발언은 워싱턴의 재무부를 자극했다. 공식적인 채널로 자금 지원을 요구해도 시원치 않은 터에 신문 인터뷰를 통해 말을 흘리는 것이 분했고, 개혁 의지를 보이지 않고 돈만 달라는 것이 못마땅했다.

▲ 사진은 1993년 7월 청와대에서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선물할 휘호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쓰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의 실정은 절박했다. IMF와의 합의가 1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시장은 악화되고 있었다. IMF 실무진이 조사해보니, 12월초 한국은행의 가용외환보유고는 60억 달러에 불과했다. 얼마 전까지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가 뉴욕과 워싱턴에 와서 미국 투자자들에게 외환보유고가 300억 달러나 있고, 최악의 위기는 지나갔다고 말했는데, 며칠사이에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 한국 정부는 서로의 통계 방법이 달라서 그렇게 됐다고 말했지만, 외국 투자자들은 그렇게 믿지 않았다. 한국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 국제사회에 드러났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또 믿지 못하는 대목이 한국의 대외부채 규모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재경원은 대외부채가 660억 달러라고 발표했지만, 월가에서는 아무도 그 발표를 믿지 않았다. 월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한국 금융기관과 기업의 해외 현지법인을 통해 빌린 역외채무 500억 달러를 합쳐 1,000억 달러가 넘는 외채를 안고 있다는 분석이 나돌았다.

투자자들은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것을 싫어한다. 속이 얼마나 썩었는지도 모르는 과일을 사려들지 않는다. 확실히 썩었으면 퇴비나 사료용으로라도 쓸 요량으로 헐값으로 살 생각을 하지만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는 것은 피한다. 외국인 투자자, 즉 외국 은행들은 거짓말을 하는 한국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원화 환율은 12월 8일 현재 1,460원으로 떨어졌고, 주가도 IMF 합의 직후 반짝 올랐다가,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기만 했다. 3년만기 회사채 금리는 법정 한도인 25% 바로 아래인 24.95%까지 치솟았다.

한국 정부가 그 동안 거짓말을 한 것도 문제지만, 한국 외환보유액이 60억 달러밖에 남지 않았다는 IMF 발표도 외국 투자자들의 탈출을 가속화시켰다. 외국 뱅커들도 그렇게까지 한국 상황이 나쁜 줄 모르고 있었다. 이런 금액이면 한국은 며칠 내에 국가 파산, 즉 모라토리엄을 선언해야 할 판이다.

임부총리의 인터뷰 발언은 좀 거친 면이 있었다. 약간 협박성이 있었고, 공식 외교채널을 활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는 있었다. 그러나 국제 관계에서, 특히 모라토리엄의 위기에서 최고 결정권자는 때로 터프가이가 될 필요가 있다. 너무 고분고분하면 얕보는 것이 강대국의 속성이다. 더구나 한국과 미국은 군사적으로 50년간 혈맹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미국 재무부는 야박하게도 한국을 저버렸다.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한국)은 한국을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리기 위해 개혁을 충실히 진행해야 한다. IMF 프로그램의 전체 구조가 강력한 것이고, 다른 나라(미국과 일본)는 제2선 방어를 수행함으로써 지원할 것이다. 미국과 다른 나라(일본 등)의 직접적인 한국 지원은 나중에 갈 뿐이다.”

일본도 미국을 따라갔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최대 채권국이지만, 역사적으로 한국에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나라다. 그렇지만 한국의 경제 위기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일본은 한번도 앞장서서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다. 동경의 대장성은 워싱턴을 쳐다보며 따라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일본은 미국의 압력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12월초 사카키바라 대장성 차관이 은밀하게 워싱턴을 방문하고 돌아온 후 그런 분위기가 고착됐다고 한다. 아시아 위기가 일본 경제의 부실과 이를 탈피하기 위한 엔 약세에서 비롯됐지만, 일본은 결정적인 단계에서 자국 이기주의에 빠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미국 재무부는 왜 한국의 절실한 호소에 발을 돌렸는가. 그것은 멕시코 사태의 후유증 때문이었다. 미국은 1995년 멕시코 위기때 120억 달러의 자금을 멕시코에 지원했다. 그때는 「제2선 지원」이 아니라 「제1선 지원」이었다. 멕시코 위기에서 IMF는 들러리였고, 주인공은 미국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였다. 미국 의회는 국민의 세금으로 파산 국가를 지원할 수 없다며 클린턴 행정부를 공격했다. 당시 루빈 장관은 더 이상 미국 국민의 세금으로 외국의 금융위기에 사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2년후 아시아 위기에서는 IMF를 앞세우되 미국은 「2선」으로 물러나기로 원칙을 세웠다. 한국에 있어서 루빈은 자신의 원칙을 시험하는 첫 번째 무대였다.

그러나 미 재무부 당국자들은 IMF가 한국 구제에 실패하면 세계 경제에 미칠 파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한국은 무너질 수 없는 방화벽이다. 우리는 한국인들에게 「도와줄 것을 다 도와주었으니, 이제는 당신들이 할 몫이다」고 분명히 말할 수 없다.

재무부는 고민에 싸여있었다. IMF 지원 프로그램으로 한국을 모라토리엄에서 막아내기엔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멕시코 지원 이후에 만든 자신들의 원칙을 고수해야 했다. 재무부는 한국에 대해 두 가지 선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하나는 모라토리엄의 상황까지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980년대에 있었던 중남미식 외채 상환방식이었다. 그래서 재무부 관리들은 80년대의 사례를 들춰보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 재무부를 들락거리던 한국측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 재무부는 한국을 시범케이스로 삼아 국제사회에 본때를 보여주려고 생각했습니다. 모라토리엄으로 가서 다시 외채 만기를 연장하는 방안을 생각했었습니다. 한국이 도와달라고 하소연했지만, 워싱턴의 재무부는 들은 척도 안했습니다.”

 

IMF는 착각하고 있었다. 스탠리 피셔(Stanley Fischer) 부총재는 󰡔다소의 딸꾹질(hiccup)이 몇 번 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악의 위기는 지나갔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한국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 선거를 열흘 앞두고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IMF와의 재협상론을 들고 나왔다. 당연한 주장이지만, 국제 자본시장은 차기대통령으로 유력시되고 있던 후보의 주장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12월 10일,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신인도를 「A3」에서 「Baa2」로 두 단계 하향 조정했고, 산업은행이 추진해온 20억 달러의 글로벌 본드 발행이 무산됐다. 한국 채권은 국제시장에서 사실상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美언론·교수 “구제금융의 플러그를 뽑아라”고 성토

선진국 은행들은 한국에 대한 신규 크레딧 라인을 거의 끊고 모라토리엄에 대비했다. 미국 조야에서는 한국의 모라토리엄을 기정사실로 상정했다.

미국 정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다는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를 보자.

“한국이 붕괴되면 아시아와 개도국에 새로운 금융위기를 촉발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투자자, 정부관리들은 한국 혼자만 무너지는 것으로 그칠 것이며, (그 파장이 한국) 국경을 넘어 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중략) 한국이 완전히 무너져도 미국 경제와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는 조금도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프린스턴 대학의 피터 케넨(Peter Kenen) 교수(국제금융)는 듣기 거북한 말까지 하며 한국을 공격했다.

“한국을 도와주고 있는 IMF 구제금융의 플러그를 뽑아버려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구제금융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다른 이머징 마켓에 보여주어야 한다.”

얼마나 무식한 발언인가. 미국 명문대 교수가 한나라의 운명을 이렇게 함부로 말해도 된단 말인가. 워싱턴 포스트란 신문도 이런 사람의 코멘트를 여과 없이 보도했다. 미국의 대학교수, 언론이 한통속이 돼서 한국을 죽이는데 나섰던 것이다.

당시 미국 언론들이 한국을 표현하는 방식은 지나칠 정도였다. 한국 관리들을 「그 녀석들(these guys)」이라고 표현하면 그래도 점잖은 편이고, 「사기꾼들(crooks)」이란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월가의 전문가들은 한국을 이미 포기했고, 󰡔한국은 사실상 부도상태󰡕라고 말했다.

외환 위기 이후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미국의 학자들도 모리토리엄을 권고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국제경제 연구소(IIE) 프레드 버그스텐(Fred Bergsten) 소장은 󰡔한국의 파산은 필연적이며, 외채를 리스케줄링(구조조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외채에 대해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것을 주장했다.

한국 정치인들은 벼랑에 가서야 타협을 한다. 모라토리엄에 임박하자 한나라당 이회창, 국민회의 김대중,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등 3당 대통령 후보는 선거를 닷새 앞둔 13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만나서 IMF와의 합의사항을 준수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원화 환율은 계속 떨어져 1달러당 1,800원대까지 떨어졌고, 한국 정부는 마침내 12월 16일 10%로 묶었던 환율변동폭(밴드)을 완전 해제했다. 더 이상 환율 방어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자니 선거가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정부는 김만제 포철 회장과 정인용 전 부총리를 미국에 급파했다. 모두 10년전에 재무장관을 역임했던 인물들이다. 그들은 뉴욕 월가의 유수 은행들과 워싱턴을 방문, 미국 재무부와 IMF를 방문했다. 그러나 루빈 장관은 이들을 만나주지 않았다. 휴가를 떠났다는 이유였다.

경제 특사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한 이들은 “어려울 때 도와준 친구가 진짜 친구”라며 호소했다. 경제 특사들은 감정적 호소만 했을 뿐 한국 경제에 대한 장단기 전략을 밝히지 못했다. 정권이 며칠 후에 바뀌는데 어떻게 전략을 이야기하겠는가. 사절단은 오히려 월가 은행들로부터 좋은 공부를 하고 갔다. 월가 은행들은 1)단기외채 극복방안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책을 만들 것 2)기업과 은행이 부도났을 경우 정부가 개입하지 말 것 3)정부 주도의 성장 전략에서 시장 원리가 지배하는 경제로 전환할 것 4)외국 금융기관의 진출을 허용, 선진 금융기법을 배울 것 등을 한국 특사들에게 가르쳤다.

김기환 순회대사도 워싱턴을 방문했다. 그는 워싱턴에서 미 재무부를 방문했을 뿐 재무부 청사에서 네 블록 떨어진 IMF는 지나쳤다. 김대사는 IMF 자금을 조기 지원해달라고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 부장관에게 호소했다. 그는 IMF가 추가지원을 하면 이왕의 합의에서 한걸음 더나간 개혁을 실천할 것을 다짐했다. 이른바 「IMF 플러스」였다.

미국 심장부의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의 경제 외교가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 고위정치권 내부에서 한국을 방치할 수 없다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 이틀전인 16일 빌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은 필요한 경우 일본 및 다른 나라와 함께 지원 능력을 갖추고 한국을 지원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대한 추가지원여부와 관련, “미국은 이미 수립된 기본틀(IMF 이행협정) 내에서 보다 많은 것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선거가 끝나면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 발언이었다. 클린턴의 발언은 한국 시장을 일시적으로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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