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위기 14) 미국식 자본주의 주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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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위기 14) 미국식 자본주의 주입
  • 김인영
  • 승인 2015.11.2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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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스 미 재무부 부장관은 6,25때 맥아더 장군 역할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 연후였던 1997년 11월말, 로버트 루빈(Robert Rubin) 미국 재무장관,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연준리(FRB) 의장은 휴일임에도 불구, 한국 정부가 IMF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넣는데 여념이 없었다. 루빈 장관은 몇 차례나 임창렬 부총리에게 전화를 걸었고, 데이비드 립튼(David Lipton) 차관을 서울에 보내 IMF 조건을 받아들이라는 미국 재무부의 입장을 전달했다. 미국 재무부와 중앙은행의 수장들이 직접 나서서 IMF 조건 수락을 요구한 것은 IMF 조건이 미국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 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IMF 이행 조건은 전통적으로 금융정책과 재정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금융정책으로 고금리를, 재정정책으로 긴축예산, 즉 재정흑자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아시아 위기에서는 여기에 혹이 하나가 더 붙었다. 즉 미국식 시장경제의 원리를 도입하라는 것이다. 이 추가 요구는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 미국 재무부 부장관에 의해 강력히 주장됐다.

서머스 부장관은 공직에 몸담기 전에 하버드대에서 유명세를 날리던 경제학 교수 출신이다. 거칠고 무뚝뚝한 목소리를 가진 그는 아시아의 금융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이 경제 위기의 해결방법이라고 믿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금융 시장은 경제 성장을 밀고 나가는 바퀴에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게 아니다. 금융 시장 그 자체가 바퀴다.”

미국의 언론들은 서머스 부장관이 한국에 미국식 자본주의를 주입함으로써 50년전 한국전에 참전했던 맥아더 장군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 외환위기 당시에 미국 재부부 부장관이었던 로렌스 서머스. 그후 그는 미국 재무부 장관, 하버드대 총장을 거쳤다. 사진은 지난 15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학교 경제학 교수를 접견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국 경제 붕괴는 미국이나 IMF의 눈에는 일본식 경제모델의 붕괴로 여겨졌다. 일본식 경제를 선호했던 미국 지식인들도 한국 경제 몰락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생각을 바꾸어 나갔다. 예일대의 제프리 가튼(Jeffrey Garten) 교수도 그런 부류다. 그는 1992년에 펴낸 「차가운 평화(Cold Peace)」라는 저서에서 장기적 관점에서 산업을 부흥시키는데 일본과 독일식 금융시스템이 우월하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가튼 교수는 일본식 경제모델을 모방했던 한국등 아시아국가들이 차례로 무너지자 󰡔일본 시스템의 힘에 대해 무언가 오해를 했던 게 확실하다󰡕고 시인하고, 󰡔(아시아 위기는) 월가의 승리󰡕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이렇게 썼다.

“한국과 IMF의 전례 없는 합의는 이점(미국식 자본주의의 도입)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관리들의 지원을 받아 IMF는 한국 정부가 일본 스타일의 금융시스템을 미국 스타일로 바꾸는 일련의 구조 변화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했다.”

IMF의 2인자인 스탠리 피셔(Stanley Fischer) 부총재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식 모델 또는 일본식 모델로 구조 개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글로벌 경제의 이점을 향유하려면 자본 시장의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미국식 금융시스템이란 1)은행을 통한 간접 금융비율을 줄이고 2)주식 또는 채권등 직접금융 비율을 늘리며 3)재벌 계열사간 상호지급 보증을 폐지하고 4)정부와 금융기관, 대기업이 유착, 이루어온 국가주의적 모델을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IMF는 한국 경제 구조 개혁에 미국이 1980년대 불황을 이겨내는 과정을 도입했다. 즉 기업의 인수및 합병(M&A)을 활성화하고, 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며, 은행이 부실 기업에 대한 채권을 즉각 회수함으로써 금융기관에 의한 기업 퇴출을 유도하는 것등이 미국에서 사용됐던 방식이다.

 

그러면 미국과 IMF는 어떤 점에서 미국식 금융 시스템이 일본식 또는 한국식보다 우월하다고 믿었던 것일까.

첫째, 미국 금융시스템에선 은행보다 「시장(market)」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시장」이란 주식, 채권시장등 직접 금융시장을 말한다. 기업들이 은행에서 돈을 대출받기보다는 주식과 채권을 발행함으로써 조달하는 자본 비율이 더 높다.

세계은행(IBRD)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은행 총대출 규모는 GDP의 50%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말레이시아는 100%, 일본 150%, 독일 170%에 이른다. 반면, 직접 금융시장인 채권시장을 보자. 미국의 채권시장은 GDP의 110%에 이른다. 이에 비해 독일 90%, 일본 75%, 한국 50%, 태국 및 인도네시아 10%에 불과하다.

이 두 가지 통계는 미국 기업들이 은행 대출에 의존하는 비중이 적고,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을 입장하고 있다.

둘째, 주주들의 힘이 강하다는 점이다. 주식시장에서 자본을 끌어오기 때문에 미국 기업에는 대주주의 지분도 적고, 영향력이 약하다. 뮤튜얼펀드, 연금 기금 등이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고, 이들 기금에 일반 미국인들이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기업들은 어느 특정인의 기업이 아니라, 전체 미국인의 기업이다.

예컨데 포천지 선정 500대 기업 중 2위인 포드 자동차를 보자. 포드사는 「자동차왕」이라고 일컫는 헨리 포드가 창업, 그의 후손들이 4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재벌 가문의 지분보다 많다. 그러나 포드 가문은 다른 소액주주의 총계인 60%를 감안할 때 상대적으로 소액주주에 해당한다. 60%의 주주 의견을 무시하고 40%의 대주주가 기업을 좌지우지 하지 못하는 것이 미국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포드 자동차의 경영은 전적으로 전문경영인인 알렉산더 트로트만(Alexander Trotman)회장을 정점으로 한 이사회에 의해 결정된다. 최대 주주인 포드 가문은 정식 이사 한 명만 등재시키고 있으며, 주총에서 자신의 지분만큼 의사를 반영할 뿐이다.

(1998년 1월부터 포드 가문의 윌리엄 2세가 포드자동차의 회장직을 맡았다. 그러나 윌리엄 2세는 한국 기업의 대표이사 격인 CEO(최고경영자) 직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겨줬다.)

미국에는 수천 개의 뮤튜얼 펀드, 연금 기금등이 있다. 이들은 소액주주로서 기업이 이윤을 낼 것을 강요하고, 대주주의 전횡을 제지한다. 소액주주들은 같은 전문 경영인에게 권한을 위임하기 때문에 포드사와 같은 대주주 지분이 많은 회사도 트로트만 회장에 의해 경영 안정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식 금융 스타일엔 단점이 있다. 소액주주들, 즉 주식투자자들이 단기 이익을 노려 기업에 투자하기 때문에 경영이 불안하거나 수익이 낮은 기업에 대해서는 순식간에 투자에서 손을 떼는 게 문제다. 기업들이 주주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수익률을 올리는데 급급하다보니 연구 및 개발(R&D)에 신경 덜 쓸 수밖에 없다.

IMF의 피셔 부총재도 미국식 시스템에 오류가 있음을 인정했다.

“미국 경제가 지난 10년간 이룩해온 결과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단기 이익에 매여있는 단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에 비해 일본식 또는 한국식은 대주주 또는 대주주와 특정 인연이 있는 사람, 계열사들이 단기 이익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를 한다. 당장의 기업 수익이 낮다고 하더라도 짧게는 2~3년후, 길게는 10년후에 이익이 날 것을 기대하며 투자를 하는 것이 아시아식 금융시스템이다. 그러나 아시아식 시스템은 한국의 재벌 그룹,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족벌기업과 같은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를 초래했다. 권력과 유착한 기업주들은 유리한 조건으로 금융대출을 얻어 썼고, 과학적 근거보다는 기업주의 직관에 의존한 투자를 결정하는 문제점을 낳았다.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자동차 생산 과잉이라는 분석을 내놓아도 한국의 재벌들은 총수의 기호와 취미에 의해 자동차 사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했다. 한국식 금융시스템이 만들어낸 재벌 구조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매사추세츠 공대(MIT)의 루디 돈부시(Rudi Dornbusch)는 한국 경제를 혹평했다.

“한국식 장기 투자, 공생 관계는 자본 배치에 오류를 유발했다. (소액) 주주들이 잘못된 결정을 한 경영자를 쫓아낼 수 있다는 생각은 한국에선 믿어지지 않은 이야기다. 한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소액주주 운동가들이다.”

 

서로의 시스템에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렇지만 결국 20세기말은 아시아식 시스템, 즉 일본식 경제모델의 패배로 결론지어 졌다. 미국은 IMF를 내세워 일본식 모델의 전형적인 답습자인 한국 경제를 미국식 경제 모델로 성형수술함으로써 해결을 모색했다. 비용보다 이익이 많다는 것이다.

MIT의 피터 테민(Peter Temin) 교수는 󰡔미국식 모델이 (아시아를) 깊은 수렁에서 건져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IMF 합의 이후에 1)외국인 지분 한도 철폐 2)적대적 인수 및 합병(M&A) 허용 3)소액주주 권리 보장 4)기업 부채 비율 200%로 축소 5)부실 금융기관 및 기업 퇴출 등의 조치를 단행했다. 이런 조치들은 미국의 자본주의의 원대한 전략과 부합하는 것이었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이식은 평탄대로가 아니었다. 고통과 시행착오를 유발할 수밖에 없었다. 한방 치료로 고칠 수 없던 환자에게 갑자기 양약을 투입할 경우에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제프리 가튼 교수의 말을 인용해보자.

“이머징 마켓은 길고도 어두운 터널에 들어섰다. 저 끝에는 밝은 빛이 있겠지만, 터널을 지나는 과정엔 많은 사회적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시아 국가들이 선택할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이머징 마켓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이익을 향유하려면 빠른 시일 내에 글로벌 시장에 맞게 (경제 구조를)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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