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위기 13) 상전노릇하려는 I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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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위기 13) 상전노릇하려는 IMF
  • 김인영
  • 승인 2015.11.2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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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은행단 이익 대변, 미국의 시장 논리 한국에 주입

 

IMF는 한국이 굴복하자, 채권자로서 한국 정부에 상전노릇을 하려고 덤벼들었다. 그들은 선진국 채권은행단의 이익을 대변하고, 미국의 시장 경제논리를 한국에 주입시키는 게 중요한 임무였다.

워싱턴에서 IMF 건물은 백악관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미국 재무부와도 걸어서 10분 거리다. 이같은 지리적 인접성은 IMF가 역사적으로 미국 정부의 이해관계와 얼마나 밀접하게 움직여왔는가를 웅변해 준다. 20세기는 미국의 세기였고, IMF는 미국의 이익에 충실했다.

IMF는 2차 대전 종식 직전인 1944년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를 주창한 브레튼 우즈 체제의 산물이다. 2차대전후 미국 달러화를 세계 기축통화로 하되, 금을 기준으로 각국 환율을 안정시키는 것이 IMF의 주요 목적이었다. 그러나 70년대초 미국이 금본위제도를 파기하면서 IMF의 역할을 끝났다.

IMF를 다시 살려준 것이 80년대 중남미의 경제 위기와 90년대 멕시코와 아시아 금융위기다. IMF는 금융위기로 부도직전에 있는 나라를 지원해준다는 명분으로 선진국 채권단을 대변함으로써 퇴장직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IMF에 가장 많은 돈을 낸 나라는 역시 미국이다. 그러나 비율은 18%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이 1997년말까지 IMF 충당금 납부 액수는 전체 2,000억 달러중 360억 달러에 이르렀다. 다음이 독일과 일본이 각각 112억 달러(5.7%), 프랑스와 영국이 101억 달러(5.1%)이고, 석유 부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70억 달러로 3.5%를 차지하고 있다. IMF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지분은 18%에 지나지 않지만,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한국의 재벌 오너가 20%도 못되는 지분을 가지며 소액주주의 의견을 무시하고 회사를 좌지우지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IMF에 관한한 미국은 한국 재벌의 경영관행에 못지 않는다.

영국과 프랑스도 IMF 내에서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프랑스는 아프리카의 프랑스어 사용국가에 지원을 늘리는데 앞장서고 있으며, 영국도 빈곤국가의 외채부담을 경감하는데 다른 회원국들보다 열심이다. 그러나 멕시코나 아시아 위기와 같은 결정적 문제에서는 미국의 목소리와 IMF의 목소리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국이 IMF를 주도했다.

1990년대 들어 IMF 지원 자금 규모는 늘어나는 추세다. 93년 세계 각국에 지원된 IMF 자금은 45억2,900만 달러였으나, 94년엔 91억8,900만 달러, 멕시코 위기가 발생한 95년에는 320억5,100만 달러로 급증했다. 96년엔 182억2,100억 달러로 다소 주춤했으나, 아시아 위기가 본격화한 97년엔 95년보다 많은 400억6,000만 달러의 자금이 지원됐다.

▲ 1998년 1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DB

IMF는 수혜국에 돈만 지원한 것이 아니다. 약을 주는 대신에 처방을 꼭 붙였다. 이른바 IMF 이행조건이다. 여기서 IMF의 문제가 또 드러난다.

IMF 처방은 철저히 선진국 채권은행의 논리를 담고 있다. IMF는 돈을 대주면서 채권 은행이 돈을 받도록 하는 것이 처방전의 주요 목적이었고, 수혜국의 경제 회복은 나중의 문제다.

IMF는 필리핀에 30년간 관리하면서 체득한 아시아적 경험과 멕시코 위기에서 성공한 개념을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에 적용했다. 각국마다 구체적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원칙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고금리

2) 긴축예산

3) 세율 인상을 통한 세수확대

4) 부실은행 폐쇄 및 대출 건전성 확보

5) 특정 기업 및 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 금지

6) 금융시장 개방

7) 노동의 유연성 확보

 

해당국가로선 IMF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은 국권을 주는 것과 다름없다. 한국이 IMF에 손을 내밀었을 때 국민들이 「국치(國恥)」라며 반발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국가의 특수성을 고려치 않고 획일적으로 적용한 이행조건은 부작용만 크게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IMF는 앞서 인도네시아가 합의사항 이행을 지연시키는 바람에 한국에서 보다 강도높은 이행조건을 제시했다는 것이 국제 금융계의 시각이다.

 

그러나 IMF 조건이 갖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한국과 같은 경우 IMF 이전에 정부가 추진한 일련의 개혁조치가 정치권과 이익집단의 반발로 수차례 무산됐었다. 뉴욕 월가 사람들은 한국이 3개월 전에 시장 원리를 받아들였다면 외환 위기는 이겨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IMF라는 외압에 의해 시장 개방과 경제 개혁을 단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의 수치이자,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매사추세츠 공대(MIT)의 루디 돈부시(Rudi Dornbusch)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시장을 외부(외국인 투자자)에 완전히 개방해야 한다. 그래서 외국인 투자자가 채무 만기를 넘긴 비협조적인 기업과 은행의 쓰레기를 인수해 청소를 해야 한다. 한국 정부나 재계가 그 일을 맡을 수 없다.

현재의 경제 위기는 보다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경제체제를 구축하는데 활용되어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든, IMF든, 미국이든 간에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만일 한국이 따르지 않는다면, 민간 외채에 대한 모라토리엄이 그 나라와 시장에 뒤늦은 교훈을 줄 것이다.“

IMF는 돈을 얻어 쓴 아시아 국가와 미국 의회, 국제적인 석학으로부터 심한 반발을 샀다. 그러나 그 반발은 각각 달랐다. 요약컨데, 아시아 국가들은 돈만 주지 왜 간섭하느냐는 것이고, 미국 의회는 간섭만 하지 돈을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돈의 여부보다는 처방전에 각기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IMF가 아시아에 가져온 결과는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율, 고금리, 은행 및 기업 도산이었다. 아시아인들은 󰡔IMF가 미국의 꼭두각시이고, 캉드시 총재는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의 대리인󰡕이라는 욕이 서슴없이 터트렸다. 실제로 아시아 위기에서 미국 재무부는 때론 IMF를 배후에서, 때론 전면에서 이끌고 나갔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로렌스 서머스 미국 재무부 부장관은 2차대전과 한국전의 영웅인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cArthur)」 장군이라는 칭호를 붙여줄 정도로 아시아 위기 해결 과정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정작 미국 내에서도 IMF는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비판의 각도는 달랐다. 왜 미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자신의 잘못으로 파산한 나라를 돕느냐는 것이었다. 미국 의회는 IMF 자금이 공짜로 돈을 주는 것으로 착각했다. 미국 시중은행 금리보다 높은 금리로 쳐서 나중에 돌려주는, 이문이 높은 돈 장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에는 혈세를 쓸데없는데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IMF는 아시아 국가들과 약속한 자금 지원 이행과 앞으로 있을 수도 있는 위기에 대비, 1,000억 달러를 추가로 계획이었고, 지분 18%인 미국에 180억 달러를 할당했다.

(미국 의회는 러시아 사태가 터진후인 98년 10월까지 이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았고, 유럽과 일본도 미국을 핑계삼아 IMF 할당금을 보류했다. 미국은 좋은 일이나, 명예스럽지 못한 일에도 세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미국 의회내 보수세력인 공화당과 민주당내 급진파가 각기 주장하는 내용이 달랐지만, IMF 지원법안 통과에 반대했다.

공화당 강경파들은 미국민들의 세금으로 한국과 태국, 인도네시아에 자금을 지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공화당은 아시아 국가들이 도움을 받아 다시 일어나면 미국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게 된다며 극히 고립주의(isolationism) 견해를 갖고 있다. 미국만 잘살면 되지 남을 도와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야당인 공화당이 의회 다수당이었기 때문에 공화당이 반대하면 법안이 통과할 수 없다. 공화당은 낙태금지법안과 IMF 지원법안을 연계시키며 통과를 저지시켰다. 그들의 눈에는 미국 국민들의 낙태 금지가 빈곤에 시달리는 아시아 국가를 도와주는 것과 동일하거나 그보다 못한 것으로 여겼다.

재미있는 것은 민주당내 급진주의자들의 반대론이다. 이들은 IMF 자금이 JP 모건이나 시티은행, 체이스맨해튼 은행등 채권은행이 돈을 빌려주고 떼이자 미국 국민의 세금으로 돈을 받도록 하는 것은 도덕성에 문제(Moral Hazard)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IMF 자금 지원은 위기에 처한 나라를 돕는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채권 은행이 돈을 떼이지 않도록 국제적으로 도와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이 모라토리엄을 자발적으로 선택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럴 경우 채무자인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경제는 파산하고, 기름도 살수 없어 자동차가 움직이지 못하고 전산업이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 반면 채권자 입장에서는 미국, 일본, 유럽 은행들은 1,000억 달러의 돈을 못 받게 되고, 은행의 부실은 커지게 된다.

따라서 IMF는 아시아 각국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채무국에 도덕적 해이를 제기, 까탈스러운 이행조건을 제시했으나, 채권은행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았다. 선진국 은행들은 돈을 가져가라며 세일을 했다. 국내 금리가 높다고 투덜거리던 한국 재벌들은 금리가 싼 선진국 은행 돈을 빌려다가 자동차며, 반도체, 유화, 조선분야에 설비를 건설하고 외국에 공장을 사러 다녔던 것이다.

한국 재벌과 금융기관, 이를 뒷받침하던 정부의 도덕성이 문제가 됐다면, 신용도를 점검하지 않고 돈을 대주던 선진국 은행들의 잘못도 컸다.

텍사스 출신의 론 폴(Ron Paul) 하원의원은 󰡔IMF 구제금융이 소용없으며, 비효율적이다󰡕며 시장 경제 왜곡을 강조했다. 그들은 채권은행들이 대출금이 물리면 IMF가 도와주겠지 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 때문에 아시아에 대한 구제금융이 미래에 또 재앙을 불러온다고 주장했다.

IMF는 부자들(채권은행)의 복지 기관이라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이익이 날 때는 정부가 간섭하지 말라고 아우성치다가 손해가 나면 정부에 손을 내미는 이중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이런 것들이 시장원리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민주당 반대론자들이 채권은행의 도덕성 해이를 지적한 것은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자기 나라 은행들을 공격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반대는 아시아 위기에 미국국민들의 세금이 전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공화당 의원들의 주장을 도와줬다.

미 의회내 인권론자들은 아시아 독재정권을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정권과 그 가족의 독점 기업을 도와주기 위해 IMF 자금이 사용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의회 강경파들은 아시아 국가의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를 지원해서는 안되며, 한국 재벌을 도와주기 위해 돈을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98년 10월 미 의회는 IMF 지원법안을 통과시키면서 󰡔IMF 자금이 한국의 반도체, 자동차, 철강, 섬유산업 등을 지원하는 결과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단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그러면 왜 미국은 의회에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IMF를 지지하고 있는가. 의회가 IMF 지원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은 바람에 IMF 금고에 바닥이 드러났고, 미국의 세계 전략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었다.

로버트 루빈은 1998년 1월 의회에 나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뒤에 물러 나앉아 (아시아 위기가) 스스로 해결되기를 기다리며 도박을 할수 없다. 아시아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은 미국의 국가 안보와 경제를 위해서도 아주 중요한 문제다.”

서머스 부장관은 월스트리트 저널지에 낸 기고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IMF가 아시아를 돕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더큰 위기를 맞았을 것이다. 아시아 채무국들의 모라토리엄 선언, 개발도상국에 대한 투자 자금 인출, 미국의 수출 감소, 미국 금융시스템 교란등이 순차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지난 1930년대의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대공황의 원인으로 국제 금융기구의 부족을 들고 있지 않다. 당시 「오스트리안 크레딧 안슈탈트 은행」의 파산이 국제적인 대공황으로 확산됐다. 아시아 위기의 확산에 대한 보험을 드는 것이 미국이 IMF를 지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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