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재, 교보생명 지켜낼까] ① 풋옵션 덫에 걸린 '경영권'...방어 전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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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재, 교보생명 지켜낼까] ① 풋옵션 덫에 걸린 '경영권'...방어 전략은
  • 유호영 기자
  • 승인 2020.06.10 10:34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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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 어피니티 컨소시엄, 풋옵션 행사가 2조원대 요구
교보생명 IPO실패...계약 불이행 궁지에 몰린 신창재 회장
국제상사중재위, 올해 말 풋옵션 행사가격 판정
어피니티 승소시, 신 회장 경영권 박탈 위기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사진제공=교보생명

[오피니언뉴스=유호영 기자] 기업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기적을 일궈낸 원동력이었다. 196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기틀을 다진 우리 기업들은 1980년대 2세경영 시대를 열었고, 2000년대 들어 본격적인 3세 경영시대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 후계자들의 상속세 납부 문제는 첨예한 사회적 이슈가 됐고 착한기업과 나쁜 기업을 구분하는 가늠자가 되기도 했다. 

이 와중에  2018년 이전까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상속세를 내고 2세 경영을 시작한 기업이 있다. 이 기업은 창업주 별세 후 오너 가족이 경영권을 포함해 물려받은 재산의 60%인 1830억원을 상속세로 납부했다. 당시 규모면에서 상속세 납부, 국내 1위 기록을 세웠다.(이 기록은 2018년 구광모 LG회장이 깼다)

교보생명 이야기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가족에게 부과된 상속세 3002억원 중 1830억원을 상속세로 납부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CEO에 올랐다.  

물려받은 지분을 매각하면서 상속세를 납부한 신 회장 일가는 올해 말 가업으로 승계한 교보생명의 경영권을 외국계 펀드에 내놓을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신 회장 취임 후 우호지분 확보를 위해 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와 개인적으로 맺은 풋옵션 계약 때문이다. 어피니티는 지난 2018년 보유지분을 상대 계약자에게 팔 수 있는 권리인 풋옵션을 행사했다. 

풋옵션 행사시 중요한 건 행사가격이다. 행사가격은 비상장 기업의 경우 행사 당시 실적이 비슷한 주변업종의 시장가격에 프리미엄을 더해 정해진다. 

현재 어피니티는 신 회장에게 풋옵션을 행사하면서 교보생명 지분 24.1%를 주당 40만 9000원에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신 회장이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선 2조 122억원이 필요하다. 신 회장은 현재 2조원대 자금을 마련할 만한 방법이 딱히 없는 상황이다. 개인명의로 보유하고 있는 지분 33.78% 중 일부를 팔거나, 백기사를 동원해야만 경영권을 지킬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신 회장이 이변이 없는 한 교보생명의 경영권을 해외투자기업에 내 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에서 몇 안되게 착실하게 법을 지키며 사회공헌활동을 해온 기업인이 가업을 지킬 수 없는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결국 교보생명 최대주주인 신창재 회장과 재무적투자자(FI)인 어피니티 양측이 맞붙었다.

선제공격을 가한 것은 자금회수에 내몰린 어피니티였다. 어피니티는 지난해 초 미국의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에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에서 산출한 풋옵션 행사가격 주당 40만9000원을 인정해달라는 취지로 신 회장을 제소했다.

이에 맞서 신 회장은 지난 3월 31일 미국 회계감독위원회와 한국 검찰에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을 고발했다. 풋옵션 행사가격을 산출한 안진회계법인이 FI의 풋옵션 가치를 높게 산출했다는 이유에서다. 우선 ICC는 이르면 올해 말 어피니티의 제소에 대해 판정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교보생명 사옥. 사진= 연합뉴스
서울 광화문에 있는 교보생명 사옥. 사진= 연합뉴스

◆6년째 접어든 '신창재 Vs. 어피니티' 풋옵션 다툼

신 회장 가족은 2003년 교보생명 창업주인 신용호 전 명예회장이 별세한 후 교보생명 지분 40% 가량을 물려 받았다. 물려받은 가족지분 중 39.63% 지분을 상속받은 신창재 회장은 개인이 납부해야할 상속세 1300억원 가량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 재산과 함께 물려 받은 교보생명 지분 5.85%를 매각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교보생명 1대 주주인 신 회장의 지분은 33.78%로 줄어들었다.  

2003년 당시 교보생명의 주요주주는 신씨 일가(40%대)와  24.01% 지분을 보유한 2대주주 대우인터내셔널(옛 ㈜대우)이었다. 그러나 2012년 들어 대우인터내셔널은 미얀마 천연가스 채굴 등을 위해 교보생명 주식을 전격 매각한다.  

2012년 9월, 미국계 사모펀드 ‘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는 재무적투자자(FI)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 24.01%를 인수한다.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어피니티 (9.05%), 베어링PEA (5.23%), IMM PE (5.23%), 싱가포르투자청 (4.05%) 등이 참여해 교보생명 주식을 나눠 매입했다.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당시 교보생명 주식 24.01%를 주당 24만5000원에 매입했다. 지불한  총 금액은 1조2054억원 이었고 단숨에 교보생명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이 과정에서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신창재 회장과 교보생명의 상장을 조건으로 풋옵션 계약을 체결한다. 풋옵션은 일정기한 후 주식 매입자가 매도할 수 있는 권리다. 이 때 풋옵션 주식 인수 계약을 맺은 당사자는 신 회장이었다.

당시 신 회장은 2015년이후 교보생명 상장 가능성이 높았던 데다, 향후 주식가치를 봤을때 1조원대에 24%의 지분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기고 어피니티 컨소시엄의 풋옵션 계약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FI컨소시엄과 신회장은 2015년 9월까지 기업공개(IPO)가 이뤄지지 않으면 신 회장 개인을 상대로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는 주주간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신회장은 자본확충과 증시 상황 등을 이유로 계약상의 기한 3년을 넘겼고, FI컨소시엄측이 추가로 제시한 3년의 기간 내에도 교보생명은 IPO가 요구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에 투자금 회수가 급했던 FI컨소시엄은 2018년 10월 신회장을 상대로 2조122억원 규모의 풋옵션을 행사했다. 6년전 매입했던 가격보다 66.9%(8068억원)의 프리미엄을 얹은 가격이었다.  FI컨소시엄은 계약상 명기된 대로 신 회장이 지분을 사갈 것을 요구하며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의 감정평가를 근거로 풋옵션 가격을 1주당 40만9000원으로 제시했다. 

이에 신회장은 생명보험사의 시장가치가 떨어져 20만원 중반대에 불과하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결국 양측은 이견을 줄이는데 실패했고 지난해 3월 FI는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에 신 회장을 제소했다. 

◆ 경영권 향방은 부족한 1조원에 달려 

이에 대응해 교보생명은 지난 3월 31일 미국 회계감독위원회와 한국 검찰에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을 고발했다. 풋옵션 행사가격을 산출한 안진회계법인이 FI의 풋옵션 가치를 높게 산출했다는 이유에서다. 

양측은 현재 중재위원회의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신 회장과 FI컨소시엄은 지난해 10월부터 1차 서면 변론을 시작했고 올 상반기 중 2차 서면 변론을 기다리고 있다. 오는 9월 첫 대면 변론까지 거쳐 이르면 올해 안, 늦어도 내년 상반기 중에 풋옵션 행사 가격이 정해질 전망이다. 

이러한 중재소송의 결과는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경영권 방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중재과정에서 FI컨소시엄이 주장하고 있는 1주당 40만9000원의 풋옵션 가격이 인용되면 신 회장은 2조원대 자금 지출이 불가피하다. 

신 회장이 주장하는 1주당 20만원 중반대가 받아들여진다 하더라도 최소 1조원 이상의 지출이 필요한 상황이다. 

신 회장이 1조~2조원의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선 보유하고 있는 교보생명 지분 33.78% 중 일부를 처분하거나 다른 FI를 백기사로 영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2020년 4월 기준 교보생명 지분을 포함한 신 회장의 재산은 17억달러(한화 약 2조700억원)로 추산된다.

신 회장은 경영권 확보를 위한 지분을 빼놓으면 1조원대 자금은 지분매각을 포함한 재산 처분을 통해 마련할 수 있어도, 어피니티가 요구하고 있는 2조원대 자금 동원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신 회장이 1조원을 추가로 마련하느냐 못하느냐가 교보생명 경영권 향방을 결정 지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제상사중재위가 어피니티 컨소시엄의 손을 들어주고 이 컨소시엄이 판정을 근거로 지분 압류 등의 조치를 취하면 최악의 경우 신 회장은 채무불이행(신용불량)상황까지 내몰릴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 회장이 현금이 없는 상태에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보유하고 있는 교보생명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방법이 유일하지만 현재 시장에서 평가하는 교보생명 가치와 담보인정비율 등을 감안할 때 충분한 돈을 조달하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증시상장 당장 어려워... 해답은 결국 신 회장 손에

신 회장 입장에선 교보생명이 기존에 준비해 오던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는 방안이 최상의 시나리오로 꼽힌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 

교보생명이 추진해왔던 IPO 절차는 어피니티 컨소시엄이 지난해 중재 신청에 들어간 순간 중단됐다. 한국거래소의 IPO규정상 최우선으로 고려되는 사항이 주주 간 갈등 해소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보험시장의 업황이 급격히 악화되는 상황에서 분쟁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교보생명의 시장가치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제상사중재위원회의 결과가 나와 교보생명의 IPO가 재개된다 하더라도 한국거래소의 상장예비심사에서 이 같은 분쟁과정은 결격 사유로 작용할 소지가 다분하다"며 "한국거래소 상장 규정 세칙에 따르면 기업지배구조와 관련, 경영 독립성과 경영 지분 당사자 간 관계, 지분 구조의 변동 내용 등을 IPO과정에서 검토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상장예비심사 과정에서 지배 주주의 경영 안정성이 저하됐다고 판단될 경우 결격사유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주주간 분쟁으로 시작된 사태인 만큼 우선은 조정과정을 지켜봐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재 소송 결과가 신 회장에게 유리하게 내려지면 그나마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으나, 판결이 반대로 나올 경우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신 회장이 보유한 자산을 압류해 처분할 권리를 가질 수도 있다. 

표시된 부분이 '어피니티 컨소시엄' 지분. 자료제공=교보생명

교보생명 경영권이 외국계 자본에  넘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강제 절차에까지 돌입하게되면 신 회장은 지금보다 더 불리한 조건에서 지분을 처분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분쟁조정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신 회장이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자금확보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신 회장이 본인의 경영권은 물론, 교보생명 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어피니티 컨소시엄측과 물밑 협상 등을 진행해야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신 회장은 지난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제3의 투자자를 유치할 수도 있고,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지분이 있으면 살 수도 있으며, 기업공개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경영권이 위협받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키는 결국 신 회장 본인이 갖고 있다. 

교보생명에 근무했던 관계자는 "신 회장이 IPO 절차를 진행해 갈지, 새로운 FI를 찾아 우군으로 삼을지, 경영권을 매각할 지, 적극적인 물밑 협상을 해갈지 이젠 신 회장이 선택해야 할 시기"라면서 "신 회장을 위해서도, 교보생명을 위해서도 사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하루 빨리 회사가 정상궤도에 올라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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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은즐거워 2020-09-05 02:40:3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wlq8995 2020-06-11 16:07:00
한화생명이사지않을까요???

백두선인 2020-06-10 17:32:45
교보를 비롯한 생보산업 전체가 위기입니다. 정책을
담당한 고위 관료들이 생보관계자들의 아픈 소리를
듣고 시급한 대책이 필요한 때입니다. 실기하면 초고령사회에서 생보산업의 역활이 축소되어 국가의
재무적 부담이 눈덩이처럼 확대됩니다.

문상용 2020-06-10 13:38:5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 상속세를 회피하기 위해 탈법을 일삼고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는 국내 제일 기업과 많이 비교됩니다. 그러나 이번 사테는 신회장 본인의 우유부단함도 한 몫했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