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위기 10) 정체성 위기에 빠진 경제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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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위기 10) 정체성 위기에 빠진 경제관료
  • 김인영
  • 승인 2015.11.2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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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재무부, 한국에 관심…한국 관료들 “한국은 태국과 다르다”

 

한국 경제가 비틀거리자 미국은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미국의 주관심사는 애당초부터 한국을 도와주자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 경제 붕괴의 여파가 일본, 중국에 미치고, 그렇게 되면 7년째 지속되고 있는 미국 경제 호황에 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게 미국의 주요 관심사항이었다.

11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미국은 한국 정세에 바짝 긴장했다. 이 무렵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은 미쓰주카 히로시 일본 대장상에게 사신(private letter)을 보내 한국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한 일본의 협조를 구했다.

미국 재무부는 한국 원화 급락이 일본 엔화 하락을 부채질하고, 엔화 하락은 미국 무역적자를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공공연히 밝혔다. 미국 관리들은 “아시아에 대형 기차탈선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취리히 보험의 데이비드 헤일(David Hale)씨 같은 투자분석가는 엔화가 추가 하락하면 1996년 1,920억 달러였던 미국 무역적자가 1999년엔 2,500억~3,000억 달러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으로선 무역적자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일본은행들이 1990년대 이후 버블 경제가 꺼지면서 막대한 부실 여신에 시달리고 있고, 한국경제마저 무너지면 일본도 안전지대가 아니다는 것이 미국의 시각이었다.

따라서 구체적인 전문을 확인할 수 없지만, 미국 언론을 통해 유출된 내용을 정리하면 미국 재무부는 일본과 공동으로 한국 지원 패키지를 추진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의 관측통들은 한국 경제 위기에서 미국 재무부가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진단하고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취리히 보험의 헤일씨는 “미국이 아마 한국 지원 패키지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며 “그 이유는 한국이 일본 정부가 중심역할을 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36년간의 식민지 통치를 받았기 때문에 일본의 경제적 지배를 싫어한다. 물론 미국의 지배도 싫어할 것이지만, 벼랑 끝에 설 때에는 미국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미국인들은 간파하고 있었다.

미국 재무부는 한국을 내려다보며 곧 무너질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을 때 한국 정부와 관변 경제학자들은 태연했다. 솔직히 말하면 무식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지적했다.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파국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무너지면 전세계에 파급될 것이다. 한국 경제는 태국의 2.5배나 크고, 외국 은행에서 빌린 돈도 태국보다 많다. 한국은 3만7,000명의 미군이 주둔할 만큼 안보상의 문제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 은행들이 한국을 더욱 불안해하고 있다. 외국 은행들의 불안이 연쇄적으로 확산되면서 한국은 붕괴 직전에 있고, 그렇게되면 일본도 불안하다.”

 

강경식 부총리겸 재경원 장관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한국이고, 태국은 태국이다. 한국 경제는 태국이나 다른 동남아 국가보다 훨씬 건강하다.”

 

한국 정부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좋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 이유로 첫째, 태국과 달리 한국의 부동산 거품은 진정돼 있고, 둘째 태국등 동남아 국가들이 고정환율제를 취하다가 무너졌지만 한국은 변동환율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1996년에 원화를 8% 절하했고, 1997년에도 15%나 절하했지 않느냐는 것이다.

루빈 장관의 사신이 일본에 도착할 무렵인 11월 12일 자존심 강한 한국 재경원은 외부의 지원이 필요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거품은 부동산에 있질 않고, 금융기관과 재벌기업들의 막대한 해외채무에 있었다. 금융기관의 해외 부채도 대부분 재벌에게 돌아간 것이므로 결국 재벌의 해외채무에 버블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변동환율제의 명목으로 채택하고 있는 하루 2.25%의 금리변동폭(밴드)도 급속히 빠져나가는 외국 자본의 엑소더스 앞에서는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 IMF 관계자들이 극비리에 방한해 구제금융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한 서울경제신믄의 1997년 11월 21일자 특종기사.

국제 외환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원화 방어를 위해 200억 달러의 보유외환을 풀었고, 100억 달러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11월 16일 미셸 캉드시(Michel Camdessus) IMF 총재와 허버트 나이스(Hubert Neiss) 아시아 태평양 담당국장이 비밀리에 한국을 방문했다. 그들이 한국을 방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국제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해 원화가 폭락하고, 외화 자금 회수속도가 빨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국제 투기자들에겐 IMF 간부들의 동정과 언행이 중요한 투기 정보가 된다.

그들은 서울 교외의 조용한 호텔을 방을 구했다.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호텔에 한국 사람 이름으로 적어놓고 식사도 방에서 시켜 먹었다.

강경식 부총리와 이경식 한은 총재가 이들을 만나러 왔다. 캉드시와 나이스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한국 금융상태가 붕괴되고 있다. IMF가 개입해야 할 때다.”

캉드시 총재는 월스트리트 저널에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들은 우리의 제안에 「당신 미쳤소, 한국 경제는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경제 위기가 진행되는 사이에 「정체성의 위기(identity crisis)」에 빠져있었다.”

 

「정체성의 위기」란 자기의 실체에 의심을 가진다는 뜻의 심리학적 용어다. 한국 관리들이 오랫동안 경제 위기에 빠져 있다보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강경식 당시 부총리는 월스트리트 저널지에 해명기사를 통해 캉드시의 해명이 와전됐다고 밝혔다.

“캉드시는 IMF 지원을 사전 협의하기 위해 한국정부가 초청으로 온 것이다. 한국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초청)하도록 했다. 그날 회의는 처음부터 잘 진행됐다. 나와 캉드시 사이에 의견대립은 없었다.

캉드시 총재는 나에게 「정체성의 위기」를 언급했는데, 그것은 나와의 만남에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내 후임인 임창렬 부총리가 취임 직후 기자회견에서 나와 캉드시 사이의 합의를 부정했을 때 다분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어느 정부라도 IMF 패키지를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멕시코나 다른 동남아시아의 경우를 볼 때 IMF는 금융위기에 처해 있는 나라에 단순히 부족한 돈을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다. IMF는 돈을 빌려주는 대신에 금리를 올려라, 경제 성장은 둔화시켜라, 기업이 근로자를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어라, 정부 예산을 줄여라는등 이것저것 간섭을 한다. 정부의 거시 경제 운영은 IMF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캉드시는 한국이 주제도 모르고 IMF 처방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고 불쾌한 회고했지만, 강경식씨는 월스트리트 저널 반박문에서 이미 그때 원칙적인 합의(understanding)가 이뤄졌다고 기억했다.

어쨌든 IMF 관리들은 처음에 한국의 이질적인 문화로 심한 충돌을 빚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곧 한국 관리들은 IMF에 협조적이 됐고, 협상에 응해왔다는 것이다.

11월 17일 원화 환율은 1달러당 1,008.6원으로 1,000원의 마지노선이 무너졌다. 한국은행은 더 이상 원화 방어를 않겠다고 발표했다. 국제 시장에서는 한은 발표가 나오자 한국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돼 달러는 더 빠른 속도로 한국 땅을 빠져나갔다.

한국은행은 외환보유고를 끝까지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 재무부 관리들은 󰡔그 녀석들(these guys)은 아직까지 부정하고 있다󰡕며 불쾌해 했다. (주:6)

로렌스 서머스 미국 재무부 부장관은 11월 한국을 방문, 외환보유 실상을 정확히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지의 보도에 따르면 서머스 부장관이 돌아간 뒤인 11월 27일 빌 클린턴 대통령은 한국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전해듣고 김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이 외국인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선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문제는 한국에 그치지 않았다. 일본이 흔들렸다.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아들일 무렵 일본 경제는 극도의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일본 내 4위인 야마이치 증권이 파산신청을 하는 등 일본 금융계에 부도의 망령에 휘말렸다. 일본 엔화는 1달러당 125엔을 넘어 하락일변도로 치닫고 있었다. 한국도 다급했지만, IMF와 미국도 다급했다. 미국으로선 한국 경제 위기의 불똥이 일본으로 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한국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정부가 제출한 금융개혁법안 처리가 국회에서 무산된 사건이었다. 국제 시장에서는 한국 정부가 강력한 금융개혁을 추진하더라도 원화 평가절하는 불가피한 마당에 개혁 의지가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원화는 매도주문만 있고 매수주문은 거의 없었다. 월가의 메릴린치 증권은 원화 하락이 엔화 하락을 부추겨 연말에는 엔화가 1달러당 140엔, 원화는 1,200원까지 갈 것으로 예측했다. 한보사태 때까지만 해도 대출 금리만 올랐을 뿐 외화 차입물량엔 지장이 없었지만, 이젠, 미국 은행들이 한국에 신규대출을 중단해버려 어디서 달러를 구할 구멍이 없었다. 월가에서는 한국 정부에 대한 리스크도 못 믿겠다고 나왔고,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채권의 가산 금리는 정크본드 수준인 3.0~4.0%까지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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