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위기 9) 신용평가회사의 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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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위기 9) 신용평가회사의 독선
  • 김인영
  • 승인 2015.11.2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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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의 저승사자'라는 악평…한국 금융위기 가속화에 일조'

 

뉴욕 월가에서도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너무 하지 않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국가를 기업과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되는 것인데도 불구, 건실한 국가를 파산 선고할 수 있느냐는 목소리도 있었다. 제반 여건을 면밀히 조사해 보지 않고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등급을 떨어뜨리는 것은 분명 신용평가기관의 잘못이었다. 전문가들은 “선진국 수준에 있던 국가의 신용등급을 6주만에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가”라며 무디스와 S&P의 이례적인 평가에 의문을 제기했다. 설사 한국에 관한 정보가 투명하지 않았다면 한국정부에 자료를 달라고 했어야 하는 것이다. 두달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건실한 무역구조와 균형 잡힌 예산 구조를 이루고 있는 나라라며 한국에 좋은 점수를 주었다. 그들은 하루아침에 자신들의 평가를 잘못으로 돌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한번도 국제사회에, 구체적으로 한국정부에 사과한 적도 없다. 그리고 자신의 오류를 면피하기 위해 한달 사이에 세차례에 걸쳐 한번에 두 등급씩 한국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렸다.

신용평가회사의 신용을 의심했던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보자.

한때 S&P에서 국가신인도를 담당했던 UBS 은행의 기도 씨프리아니 부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신용평가기관들이 신용하락의 문제를 면밀히 점검하지 않은데 대한 비난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때(신용하락의 시기)를 놓쳤다고 해서, 면밀한 조사하지 않고 한꺼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다.”

▲ 월가 금융기관이 밀집해 있는 뉴욕 로어맨해튼.

신용평가회사들은 부채와 외환보유액에 대한 불투명한 자료를 근거로 국가신인도를 햐향조정했는데,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투자자들에게 한 국가의 문제점을 부각시켰다.

JP 모건의 이코노미스트인 필 서틀씨는 “국가 리스크에 대한 투자 적격 등급과 투자 부적격 등급을 분류하는 것은 신용평가회사의 독선”이라고 말했다.

채권 전문가인 재클린 도허티씨는 신용평가 회사들이 한국에 대해 오류를 범한 것을 세 가지로 지적했다.

 

첫째, 무디스는 한국의 대외부채가 1992년 428억 달러에서 1996년에 1,045억 달러로 늘어났다고 밝혔지만, 한국 금융기관 또는 기업의 역외 채무(off-shore debt)를 고려치 않았다. 한국의 역외 채무는 92년 15억 달러에서 96년 213억 달러로 늘어났다. 이 자금이 서울의 모기업에서 지급보증을 했는데, 대부분이 단기 외채였다.

둘째, 신용평가 회사들은 한국에 돈을 많이 빌려준 일본 은행들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치 않았다. 한국의 대외 채무중 절반이 일본에서 빌린 것인데, 일본 은행들이 부실 여신으로 중병에 앓다보니 한국에 빌려준 단기 외채의 만기를 연장해주지 않고 있다.

셋째, 한국 정부가 바보스럽게도 외환보유고를 바닥낼 줄을 신용평가기관들도 생각지 못했다는 것이다.

 

도허티씨의 세번째 지적은 순전히 한국의 잘못이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 정부가 외환보유고를 거덜내면서 미련스럽게 환율을 방어할 줄을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국제적인 신용평가회사에 대해 알아보자. 뉴욕 월가에서도 무디스와 S&P등 신용평가 회사에 대해 “저승사자‘라는 평가를 내린다.

월가의 신용평가회사들은 한국과 같이 약한 나라만 골라 치명타를 던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처럼 경제적으로 미국에 경쟁적인 나라나, 러시아와 같이 군사적으로 미국에 경쟁하는 나라에 대해서도 무차별 포격을 가한다.

1998년 4월 3일 무디스사는 일본의 국가신용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negative)」로 하향 조정했다. 그러자 국제금융시장에서 일본 채권 금리가 0.4% 포인트나 폭등하고 일본 엔화 값이 1달러당 135엔을 넘어서며 폭락했다.

무디스의 신용평가로 일본 경제는 충격에 휩싸였다. 미국 신용평가기관이 매긴 등급에 일본 금융시장은 물론 국제금융시장에서 일본물은 일제히 폭락하는 결과가 빚어지자 일본 내에서 미국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일본의 「국제금융정보센터」는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민간 신용평가기관을 대상으로 신용평가의 신뢰성을 독자적으로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이 센터는 국제신용평가기관에 대한 자체평가 결과를 공표하겠다고 밝혔지만, 무디스와 S&P는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금융의 자유화 및 국제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가운데 국제신용평가기관의 신용등급 발표가 주식 및 채권 매매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비해 신용평가를 당하는 국가, 기업들로선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불만도 그만큼 커지고 있는 추세다.

1998년 러시아도 국제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불만이 크다. 1998년 3월 무디스사가 러시아의 국가신인도를 하향조정하자 크레믈린 당국이 거친 표현으로 무디스를 공격했다.

1997년 하반기 아시아에 금융위기가 터져나온 이후 무디스와 S&P등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은 세계 경제의 심판관으로서 국가와 기업의 신용을 평가했다. 이들 기관의 평가 여하에 따라 평가대상인 국가, 기업의 흥망이 결정되는 무서운 파괴력을 보여 주었다.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1997년 11월 21일 무디스는 일본 4위의 야마이치 증권의 신용등급을 「Baa3」에서 「Ba3」으로 3등급 낮춘데 이어 몇 시간만에 「Caa1」로 떨어뜨렸다. 야마이치 증권의 등급이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크본드란 수익성이 높지만 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높은 투기성 등급을 말한다. 그로부터 3일후 야마이치 증권은 대장성에 자진폐업신청을 냈다. 국내외 금융기관들이 야마이치에 대한 신용거래를 끊었기 때문에 야마이치는 다른 선택의 방법이 없었다.

신용평가회사의 평가는 투자자의 투자결정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금융기관들은 신용평가를 기준으로 채권, 증권의 보유, 매매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국가나 기업은 금융시장에서 증권과 채권을 발행을 하기 어렵게 된다.

 

신용평가 업계의 선두주자인 무디스는 투자은행인 스펜서 트래스크사에서 수석분석관으로 있던 존 무디가 1900년 「산업 및 기업 증권에 관한 매뉴얼」을 발간한 것이 시초였다. 그후 무디는 1909년 무디스사를 설립, 독립했고, 채권 평가기준을 도입, 당시 미국 서부개척의 원동력이었던 철도회사 채권을 평가했다. 1924년 미국 채권시장을 거의 100% 장악했으며, 1929년 대공황이 발발하자 부실기업과 은행에 대해 가차없이 「부도(default)」를 선언, 위력을 과시했다.

무디스는 1970년대 들어 상업어음(CP), 은행 예금에 대해서도 평가를 확대했으며, 80년대 후반 들어 국제적으로 지점을 확대, 현재 11개국에 15개 지점을 확보하고 있다. 전세계 70여개국의 7만여 기업, 6만여 채권이 무디스의 평가를 받고 있다.

S&P는 1916년 설립된 스탠더드 사를 모태로 하고 있으며, 1942년 푸어스 사와 합병, 오늘에 이르고 있다. 66년엔 언론그룹인 맥그로힐 사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세계 채권물량의 70%를 무디스가 평가하고 있고, S&P는 이보다 약간 뒤쳐지는 50%를 다루고 있어 중복 부분을 감안하면 두 회사가 세계 신용평가물량의 거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신용평가회사의 평가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그들은 자체적인 판단기준을 갖고 평가국가 또는 기업을 상당기간 모니터한 후에 평가를 내리지만, 평가의 비밀성, 공정성에 많은 의혹과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불신이 제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 지는 신용평가회사의 평가가 정치인들의 로비에 의해 오염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 예로 공화당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히고 있는 크리스틴 위트먼 뉴저지 주지사가 채권 발행에 앞서 공화당 원로 해롤드 맥그로 3세를 찾아가 뉴저지주 채권이 좋은 가격에 발행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해롤드 맥그로씨는 S&P의 모기업인 맥그로힐 사의 고위간부였다. S&P는 뉴저지주 채권 발행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갖고 있었는데, 주지사가 뛴 이후 뉴저지주 채권 27억 달러는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발행에 성공했다. S&P는 주지사의 로비가 평가에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주지사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로비활동을 했음을 인정했다.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도 시채권을 발행하면서 하위순위인 피치IBCA에 로비를 벌였다. 뉴욕 시는 5만 달러를 신용평가기관에 연간 수수료로 지불하면서 까다로운 무디스나 S&P보다 유리한 평가를 얻어냈다.

월스트리트 저널 지는 이러한 예를 들면서 신용평가기관들이 외적 요인, 즉 정치적 요인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고 비평했다.

영국의 피치 IBCA, 더프&펠프스등 후발 평가회사들이 그 동안 세계 평가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해왔던 무디스와 S&P에 도전하는 바람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평가회사간에 물량 확보에 종전보다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되었고, 따라서 외부의 입김에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평가회사들이 멀쩡한 국가, 기업을 평가절하하지는 않는다. 동아시아 전역에 불어닥친 금융위기 와중에서도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대만은 여전히 높은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든든한 외환보유고, 막대한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등이 좋은 평가의 근거였다. 그렇지만 거대한 국제금융시장이 몇몇 평가회사들의 독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데 문제가 있다는 국제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신용평가회사들이 공황을 초래하는데 일조한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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