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위기 8) 무디스의 한국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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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위기 8) 무디스의 한국 공격
  • 김인영
  • 승인 2015.11.21 16: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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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용을 ‘투자부적격’ 등급으로 하향…정크본드로 추락

 

1997년 12월 10일 오전. 한국산업은행(KDB) 뉴욕지점은 3년 만기 글로벌 본드 20억 달러를 발행하기 위해 막바지 준비를 가다듬고 있었다. 서울의 재경원과 현지 산은 직원들은 전날까지만 해도 발행금리가 높더라도 소화는 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었다. 주간사회사인 JP 모건은 금리를 미국 재무부채권(TB 금리에 400bp(1bp=0.01%)의 가산금리를 얹어 주더라도 발행 예정 금액인 20억 달러의 절반밖에 소화할 수 없다고 고집했다. 3개월 전인 9월 10일 산업은행이 4년 만기 글로벌 본드를 가산금리 98bp(0.98%)에 발행했던 것에 비하면 300bp(3%) 포인트 높은 고금리였지만, 한국 정부는 이런 치욕적인 조건이라도 국제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해야 한다고 판단, 밀어 부쳤다. 선진국 은행들이 일제히 자금을 회수하는 마당에 채권시장마저 문이 닫히면 외화를 구할 곳이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협상이 마무리될 무렵인 하오 3시, 국제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Moody's)사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리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무디스는 이날 한국의 국가신인도를 「A3」에서 「Baa」로 2등급 하향 조정했다.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정부 발표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에 취한 조치라는 게 무디스의 설명이었다.

그러자 월가 투자자들은 협상을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나왔다. 아무리 높은 금리를 주어도 신용이 바닥인 나라의 채권을 샀다가 제값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뉴욕 바닥에서 유엔 안보리 의장국임을 자부했던 나라였던 한국은 북한과 쿠바, 이란 등 자본시장을 폐쇄하고 있는 국가와 동일한 평가(논프라임:none-prime) 등급을 받는 수모를 당했다.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씨티은행등 월가의 은행들은 한국이 신용등급이 하락했기 때문에 국가 파산에 임박했다고 판단, 내부적인 대책수립에 나섰다. 월가 은행에서는 󰡔한국이 국가 파산을 당했을 경우 채권 회수등 다각적인 문제를 검토할 시점에 이르렀다. 한국의 국가파산 시점은 구체적으로 예상할 수 없지만, 그렇게 멀지 않았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이미 발행된 산업은행 글로벌 본드도 2차 시장에서 하루만에 100bp(1.0%) 오른 450bp(4.5%)로 치솟았다. 멕시코나 브라질등 중남미의 정크본드보다 높은 금리이고, 자본주의 시장에 갖나온 러시아와 비슷한 수준에 거래됐지만, 그나마 거래가 끊겼다.

당시 뉴욕에 나와있는 한국 시중은행 지점들은 “이제 국가 비상사태가 왔다. 가까운 시일에 1980년대 남미 국가들이 겪었던 모라토리엄(지불유예선언) 사태가 온 것 같은 예감”이라고 말했다.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tandard & Poors) 등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은 1997년말 한국의 신용등급을 마구 떨어뜨렸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두세 등급씩 무더기로 떨어뜨렸다.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의 신용등급은 국제 금융계의 신용 기준이 된다. 이 신용등급을 기준으로 은행들이 대출을 해주고, 채권시장에서 채권을 매각한다. 유수의 국제 은행들은 자체 신용 평가 기준이 있어 국가 신용등급을 결정하지만, 다수의 투자자들이 몰려있는 국제채권시장에서는 신용평가기관의 신인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선진국 은행들이 대출을 끊은 터에, 신용등급 하락은 직접금융시장에서도 돈줄이 끊기는 것을 의미한다.

▲ 뉴욕 맨해튼 남단 무디스 본사 정문 위에 붙어 있는 부조물. 신용평가인으로서의 정신을 그리고 있다.

아시아 위기, 특히 한국 경제 붕괴 과정에서 국제 신용평가기관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 그들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를 절감했다.

세계 신용평가 시장은 뉴욕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무디스와 S&P등 두 기관이 거의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다. 두 기관 사이의 경쟁은 유명하다. 한 쪽에서 신용을 낮추면 다른 쪽에서 신용을 더 낮춘다. 당하는 쪽에선 둘 다 밉지만, 평가기관들은 서로 자신의 신용등급이 맞다면서 우겨댄다. 투자자들은 두 평가 중 더 나쁜 평가, 즉 안전한 쪽을 선택해 투자를 한다. 특히 무디스 신용평가는 채권시장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무디스는 11월 27일에 한국의 신용등급을 2등급 떨어뜨린데 이어 12월 10일과 22일에도 2차례에 걸쳐 각각 2등급씩 떨어뜨려, 한국의 신용등급은 「정크본드(junk bond)」 수준인 「투자 부적격 등급(none-investment grade)」으로 전락했다. 두달전인 10월에 선진국 수준이었던 한국의 신용등급(A1)이 한달 사이에 무려 6단계나 떨어진 것이다. 다음날인 23일 S&P도 경쟁적으로 한국의 국가신인도(외환표시 신용등급)를 「BBB-」에서 정크본드 수준인 「B-」로 네 단계나 더 낮췄다.

 

국제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한국에 대한 대출을 중단한 것처럼 국제 신용평가회사들도 한국을 죽이는데 경쟁을 했다. 당선된지 며칠 되지 않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국제시장에서 쓰레기 취급받는 나라를 떠앉게 됐다.

한국과 함께 태국과 인도네시아도 동일한 선고를 받았다. 22일 무디스는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신용등급을 「Ba1」로 정크본드임을 선언했고, 말레이시아의 신인도를 「A1」에서 「A2」로 낮췄다.

비록 한 등급 차이지만 「투자 적격 등급(investment grade)」과 「투자 부적격 등급」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 국제금융시장의 투자기관들에는 투자부적격 등급의 정크본드에 투자하지 말라는 내규가 있고, 정크본드를 전문으로 하는 투자기관들도 물량의 제한이 있다. 따라서 투자적격 등급의 채권을 샀던 펀드매니저들은 그 채권의 신용등급이 정크본드로 떨어질 경우 내다 팔 수밖에 없다.

12월 22일 정크본드 판정을 받은 한국 채권들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찬밥 대우를 받았다. 23일 뉴욕 월가에서 산업은행 10년만기 채권의 가산금리는 950bp(9.5%)까지 폭등했다. 하루만에 200bp(2.0%)나 뛰어오른 것이고, 가격으로는 두달전에 1000달러에 샀던 산업은행 채권은 600달러에 거래됐다. 투자자들은 헐값으로라도 한국물을 팔아 젖혔지만,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었다. 원화 환율은 2,000원에 육박했고, 한국 주식시장은 하루아침에 7%나 곤두박질쳤다. 한국 금융시장이 흔들리자 말레이시아, 필리핀 주식시장도 2%나 떨어졌다. 무디스와 S&P는 투자자 심리를 위축시킴으로써 아시아 위기를 가중시켰다.

 

한국의 신용등급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신용평가기관들이 떨어뜨린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1994년부터 지속돼온 「Baa3」에서 3년후인 97년 12월에 「Ba1」로 한 등급 떨어진데 불과하고, 태국은 바트화 폭락이후 10월 1일 1등급, 11월 27일 2등급, 12월 22일 1등급 등 3개월에 걸쳐 4등급 하락했다.

경제 규모나, 건실성에 있어 동남아 어느 나라보다 낳은 것으로 국제적 인정을 받고 있던 한국의 신용등급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자, 국제 신용평가기관에 대해 국제적 여론이 비등했다. 신용평가기관들은 투자자들로부터는 아시아 국가의 금융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뒤늦게 신용등급을 떨어뜨렸다는 비난을 샀고, 해당국가로부터는 근거도 없이 급추락시킬수 있느냐는 지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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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2021-07-14 11:37:00
기사 잘 보고 있습니다. 다만 오타가 좀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