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삼성SDI 자체개발 전고체 배터리 직접설명
현대차 "배터리업체 방문일 뿐... 의미 부여 경계"
삼성SDI "현대차 입장 기다려 볼 것"
[오피니언뉴스=변동진 기자, 김상혁 기자]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50)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13일 회동을 갖고 전기차 배터리 사업 파트너십에 대해 논의했다. 두 사람은 재계 총수들이 모이는 자리를 통해 만난 적은 있지만, 양사 협업을 위해 공식적 회동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13일 국내를 대표하는 전장부품 배터리 업체와 자동차업체를 이끄는 두 부회장의 만남을 놓고, 세계 어디서도 넘볼 수 없는 최고의 협업 시스템이 한국에서 가동될지 큰 기대감을 표명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취임 3주년 연설에서 미래차를 ‘한국판 뉴딜’을 이끌 신성장 산업 중 하나로 꼽은 점을 감안하면, 이번 파트너십은 정부와 민간이 손뼉을 맞췄다는 데에 또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게 재계 중론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이날 오전 삼성SDI 천안사업장을 방문해 차세대 전기차용 배터리인 ‘전고체 전지 기술’ 현황을 살피고 미래 전기차 방향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전고체 전지는 1회 충전으로 800km를 주행할 수 있고, 1000회 이상 재충전이 가능한 삼성의 차세대 배터리다. 현재 상용화된 ‘리튬-이온전지’와 비교해 대용량 배터리 구현이 가능하고 안전성을 높인 게 특징이다.
이날 삼성에서는 이 부회장 외에 전영현 삼성SDI 사장과 황성우 삼성종합기술원 사장이, 현대차에서는 정 수석부회장과 알버트 비어만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 사장과 서보신 상품담당 사장이 현장을 찾았다. 특히 정 수석부회장은 이 부회장은 사업장 점검은 물론, 점심도 함께했다.
기대 커진 대기업간 협업...현대차-삼성SDI, '의미 축소' 나서
홍성수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는 "이번 이재용-정의선 부회장간 만남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쳐지지 않는 '배터리, 자동차'업체간 협업을 시작하기 위한 첫 걸음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면서 "포스트 코로나 이후 선택과 집중을 통한 국가 미래 먹거리 산업 지원을 고민하는 정부도 두 부회장의 만남에 대해 환영의 입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차와 삼성SDI는 두 부회장간 공식 면담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의선 수석 부회장의 삼성SDI방문은 이 회사가 완전충전시 운행거리가 획기적으로 늘어난 전고체 배터리 개발 성공을 했다하여 설명을 듣기 위해 방문한 것"이라면서 "해외 업체에 대해선 흔히 있는 일인데 국내 업체인데다 상대가 삼성이다보니 관심이 커진 듯 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 부회장과 배석자들은 전 세계 어디서나 새로운 기술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설명듣기위해 직접 공장방문을 해왔다"면서 "이날 방문도 그 정도 수준으로 판단해주길 바란다"고 말하면서, 현대차와 삼성SDI간 새로운 협업 모델에 대해선 분명한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삼성SDI 관계자는 "배터리 업체는 자동차 업체에 공급하는 업체로, 계약이 성사되기 전까진 굳이 따지자면 을의 지위에 있다"면서 "현대차의 입장이 그렇다면 그 정도 수준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 주문도 안들어온 상황에서 협업 등을 논하는 것은 이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
이재용·정의선, 초격차 기술 확보에 공감…미래 먹거리 확보 절실
두 부회장이 공식 만남을 가진 후 양사는 아무런 자료를 내놓지 않았다. 공식 브리핑 내용이 없다는 입장이었으나 이를 바라보는 재계의 시각은 다르다.
이번 재계 선두 업체 수장과 주요 경영진의 회동은 각각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꼽히는 ‘전기차’와 ‘차세대 배터리 기술’ 방향성에 대한 현황 및 의견을 공유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은 평소 비공식으로 식사를 함께하는 것은 물론 형·동생으로 부를 정도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번 공식 첫 단독 회동은 미래 신성동력 확보를 위해 초격차 기술이 절실하다는 데 두 사람 모두 공감했다고 본다”고 해석했다.
이어 “당장의 계약이나 양해각서(MOU) 체결 등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향후 전기차 배터리 관련 파트너십을 위한 의미 있는 첫 자리가 될 것”이라며 “삼성의 전고체 전지가 상용화까지 5년 이상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또다른 사업에서도 얼마든지 협력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실제 그간 두 사람은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대한 도전 의사를 거듭 밝혀왔다.
이 부회장은 지난 6일 대국민사과 당시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후 첫 공식 일정으로 이번 회동을 선택했다.
현대차 역시 1분기 컨퍼런스콜에서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기술개발 투자는 지속할 것”이라며 정 수석부회장의 미래차 투자 의지를 확고히 내비친 바 있다.
양사 모두 예측 불가능한 경영 불확실성 속에서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협업도 마다치 않겠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현대차, 배터리 동맹 왜?
글로벌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의 높은 성장세도 두 사람의 회동에 한몫했다는 평가다.
시장조사 업체 IHS마킷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7년 330억달러(약 37조원) 규모인 세계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은 연간 25%씩 고속 성장해 2025년에는 1600억달러(182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이는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 규모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올해 1분기 기준 세계 점유율 1위로 올라선 LG화학을 비롯해 삼성SDI(4위), SK이노베이션(7위) 등 배터리 3사 모두 ‘글로벌 10위’ 안에 포진해 있지만, 관련 시장을 잡기 위해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경쟁국도 가세했다.
일본의 경우 토요타가 2022년까지 전고체 배터리를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으며, 자체 내수시장이 큰 중국은 이미 기술력에서 한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는 내년을 목표로 차세대 전기차배터리 제품 ‘젠5’ 본격 공급을 준비하고 있다. 이 제품은 1회 충전 시 주행가능거리가 현재 양산전기차 20% 높은 수준인 600km 이상 성능을 자랑한다. 만약 삼성SDI가 현대차그룹을 우군으로 확보하면 세계시장 공략도 가능해진다. 현대차 역시 전장부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삼성전자와 시너지를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양사간 전략적 합의가 이뤄졌을 때 가능한 시나리오다.
현대차그룹은 삼성과 손을 잡으면 안정적 배터리 공급망을 갖출 수 있게 된다. 배터리는 전기차의 핵심 부품으로 꼽힌다. 게다가 정 부회장의 숙원인 글로벌 전기차 시장 공략을 위해서도 공급망 다각화는 필수 과제다.
현대차는 이전까지 LG화학의 배터리만 고집했다. 하지만 최근 차세대 전기차 모델에는 SK이노베이션 배터리를 탑재하기로 했다. 배터리 공급망을 다각화해 수급 안정성을 끌어올린다는 전략 차원에서다.
아울러 현대차그룹은 오는 2025년까지 총 44종의 친환경차를 선보일 예정인데, 이 중 절반이 넘는 23종이 순수 전기차다.
양사가 전고체 배터리 개발 단계부터 공조할 경우 향후 전기차의 완성도와 품질은 더욱 향상될 것으로 업계는 관측한다. 완성차 기업인 현대차가 배터리 기술 특허만큼은 관련 업계와 공동 발굴하는 것도 이와 맥이 닿는다. 현대차는 지난 2018년 미국 전고체 배터리 개발 업체인 아이오닉 머티리얼스, 솔리드파워에 집중 투자하기도 결정했다.
재계 1·2위, 정부 ‘3대 신성장 산업’ 육성정책에 화답
사업 외에 정부의 미래 먹거리 발굴 정책에 화답한 점도 재계의 이목을 끌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연설에서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와 함께 미래차를 ‘3대 신성장 산업’으로 강력히 육성해 미래먹거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 1, 2위 기업의 오너가 청와대의 정책 의지에 대해 화답한 것”이라며 “대한민국 산업을 이끌어가는 기업으로서 모범이 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고체 배터리는 삼성·현대차 협업의 물꼬를 트는 동기이자 명분”이라면서 “향후 자동차용 시스템반도체, 전장 등 모빌리티 사업 전반에서 세계 최고의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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