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관찰일기] 프랑스는 왜 코로나 이동제한령 해제를 강행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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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관찰일기] 프랑스는 왜 코로나 이동제한령 해제를 강행할까
  • 김환훈 파리 통신원
  • 승인 2020.05.13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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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200명 이상의 확진자 발생하는 프랑스, 이동제한령 해제 강행
'아직 불안하다'는 국민의 목소리 있지만 유치원 및 초등학교 개교는 확정
근본적인 대책은 부재… 코로나 앱 도입 추진에도 반대 목소리 많아
김환훈 파리 통신원
김환훈 파리 통신원

[오피니언뉴스=김환훈 파리 통신원] 혼란의 시대다. 혼란의 시대가 흥미로운 것은, 그 누구의 선택과 결정이 옳은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에 있다. 지식과 시스템의 정점에 있으리라 믿었던 국가의 선택 역시 근거가 불분명하다. 평생을 해당 분야 연구에 바친 전문가의 목소리에조차 확신이 없어보인다. 정말 아무도 모르는 듯하다. 

미국에선 이미 100만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고, 사망자 수는 8만 명을 넘겼다. 영국은 여전히 하루에도 4000명에 가까운 확진자가 발생하는 등 위험한 국면을 좀체 넘기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의 상황 역시 암울하다. 지난 3월 17일부터 이동제한령을 실시하긴 했지만, 감염자 수의 증가폭은 여전히 줄지 않고 있으며 특히 사망률은 무려 20%에 달한다.

사망률 약 20%에도 이동제한령 완화 조치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지난 5월 7일 프랑스 정부는 이동제한령 완화 계획을 발표했다. 식재료 구입이나 조깅 같은 간단한 운동의 목적을 제외한 외출을 제한하는 기존의 이동제한령을 5월 11일부터 점진적으로 해제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프랑스 보건복지부 장관 올리비에 베랑.
프랑스 보건복지부 장관 올리비에 베랑.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첫째, 전국 유치원 및 초등학교의 개교다. 프랑스 정부는 공식적인 브리핑에서 중학교 미만의 아이들에게 코로나는 크게 위험한 질병이 아니라는 것을 근거로 내세웠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들의 질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아동의 마스크 착용은 금지했다.

교사의 경우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려울 시 마스크를 착용해도 된다는 지침을 덧붙였는데, 그 때문에 아이들을 통한 감염전파를 우려하는 학부모와 교사들의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둘째, 소형 박물관, 도서관, 시도서관 등 소형 문화시설의 개방이다. 이번 결정의 취지는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문화 생활권 보장을 위한 것이라 프랑스 정부는 밝혔다. 마트와 같은 생필품 가게는 이미 모두 영업을 하고 있으니 국가에서 운영하는 문화시설 역시 국민의 기본권을 위해 재개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시설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무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일부 시설에서는 직원들의 안전이 확실히 보장될 때까지 이 조치를 거부하겠다는 의사까지 밝힌 상태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개의 조치는, 프랑스 정부가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전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셋째는 질병위험도에 따라 국토를 녹색/적색 지역으로 구분하고 지역별로 제재 완화속도를 조절하는 조치다. 프랑스 정부는 수도인 파리를 포함해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 프랑스 북동부 지역은 적색 구역으로, 이 외의 지역은 녹색 지역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이 구분에 따라 이동제한령 완화의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주목해야할 것은 지역 구분의 기준인데, 이 녹색 지역은 충분한 진단 키트 및 마스크를 확보하고 있는 곳, 일정 수 이상의 잔여 병실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됐다. 녹색 지역이란 코로나로부터 완전히 안전한 곳이 아니라 확진자가 나와도 환자 관리 및 통제가 가능한 지역임을 의미한다. 만약 지역별 통제 수준 이상의 환자가 발생한다면 언제든지 적색 지역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엄포도 있었다.

지막으로는, 일부 공원과 식당, 카페를 제외한 모든 상점의 개점을 허용한 조치였다. 이는 프랑스인들의 일상적 생활 동선을 생각한다면 매우 소극적인 완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평균적인 프랑스인들의 일상 동선은 사실상 카페-직장-식당-공원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상점의 허용은 큰 의미가 없는 셈이다.

실질적으로 이동제한령 완화 정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

애매모호한 대책에 불안하다는 의견 곳곳에서 들려

이 때문인지 프랑스 정부는 이동제한령을 완화한다고는 했지만 모호한 조치 때문에 오히려 따가운 지적을 받고 있다. 물론 2개월 동안 감금에 가까운 생활로 인해 이 조치를 반가워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아직까지 코로나 바이러스의 통제가 완벽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한 결정이었다고 하는 반대 의견 역시 거세다.

왜 프랑스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을까? 프랑스의 질병관리본부장 제롬 살로몽은 프랑스 정부가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 감염자 경로를 추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감염자의 이동 동선을 파악하고 통제하는 방법은 비효율적이며,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올바른 방식이 아니라는 의견도 직접 밝혔다.

일견 프랑스 공무원 조직의 행정력 부족 탓으로 느껴진다. 프랑스라는 국가 조직의 역량으로는 수많은 확진자 전부를 추적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프랑스 정부, 나아가 국민들이 내세우는 명분에 있어 보인다. 바로 '개인의 권리 보호'와 관련된 입장이다. 

프랑스는 공화국이라는 이름 아래 민주주의의 가치를 무엇보다도 중요한 국가 비전으로 여기는나라라 할 수 있다. 프랑스는 개인의 동선 추적에 대단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이는 절대적인 가치로서 결코 침해되서는 안되는 개인의 권리라는 확고한 의식이 존재한다.

세드릭 오 디지털 담당 국무장관이 6월부터 ‘스톱코비드(StopCovid)’라는 이름의 코로나 경고 어플리케이션을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국가 내부에서는 인권과 방역 사이의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매일 같이 200명씩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개인의 권리'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으려는 목소리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혼란의 시대에 누구의 판단이 옳았고 틀렸음을 쉬이 판단하는 것은 단순한 감정적 보상밖에 주지 않을지 모른다. 이것은 국민 몇 명이 죽었는지, 국민의 몇 퍼센트가 감염되었고 사망에 이르렀는지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숫자 게임이 아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말했다. ‘가장 슬픈 인간은, 본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인간’이라고.

외부자의 시선에서 우리가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부분은 과연 누구의 판단이 옳았는지가 아니다. 그보다는 누군가의 판단이 왜 옳았는지,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판단이 왜 틀렸는지 그 과정과 근거를 살피고, 경과와 결과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며, 마지막으로 그것을 또렷이 기억하는 일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자신에게 닥칠 시련 속에서 그릇된 판단을 내리지 않게 될 것이다. 본질이 말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하고, 스스로 배움으로써 인간은 성장하게 된다. 코로나 사태가 우리 인간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라면 교훈일까.  

● 김환훈 파리 통신원은 서울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파리에선 한국문학에 매진 중인 자유기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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