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이런 가족은? 가정의 달에 생각해 보는 가족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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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이런 가족은? 가정의 달에 생각해 보는 가족의 의미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20.05.0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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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소설 두 편
6년간 키웠던 자식 뒤바뀐 후 벌어지는 이야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그러나 애틋한 인연을 그린 '좀도둑 가족’
작가 고레에다, 문장과 행간 오가며 많은 질문 쏟아내...영상과 다른 독특한 매력
영화의 각본을 직접 쓰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각본을 소설로 펴냈다. 사진=연합뉴스.
자신의 영화 각본을 대부분 직접 쓰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각본을 소설로 펴냈다. 사진=연합뉴스.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렸거나 젊었을 때는 기념해야 하는 날이 많은 달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이 들어가니 단어가 주는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가정’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구성원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혹은 아내와 남편. 그리고 자녀나 부모님. 때로는 ‘집’이라는 주거 공간도 떠오르는데 ‘부동산’을 중요한 척도로 생각하는 한국에서는 어쩌면 구성원보다 더 중요한 개념일 수도 있겠다.

구성원이 떠오르건 주거 공간이 떠오르건 가정은 ‘관계’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가족 관계’. 이런 화두를 던지면 사람들은 어떤 그림을 떠올릴까. 그 그림들은 제각각이겠지만 어느 정도 공통점이 발견되기도 할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각자가 생각하는 ‘가정’ 혹은 ‘가족’의 모습이 있을 것이고 어느 정도는 사회 통념에 가까울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 하면 떠오르는 그런 평범한 가족이 아닌 이런 가족은 어떨까. 영화로도 소개된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소설들을 소개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과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그 영화들을 소설로도 썼다.

고레에다 감독이 직접 쓴 각본을 소설로 펴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쓴 블루엘리펀트 펴냄
고레에다 감독이 직접 쓴 각본을 소설로 펴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블루엘리펀트 펴냄

 

자식이 뒤바뀐 후의 두 가족 이야기...'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같은 이름의 영화를 소설로 옮긴 것이다. 평소 글쓰기를 즐기고 본인이 직접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 가능한 작업일 것이다.

영화와 소설에서 고레에다 감독은 6년간 키웠던 아들이 뒤바뀐 것을 알게 된 두 가족의 이야기를 특유의 잔잔하면서도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다.

일류 대학을 졸업한 뒤 대형 건축회사에서 승승장구하며 도쿄 중심가의 최고급 맨션에서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건축가 료타. 그러나 료타는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과 다른 아들 게이타가 왠지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료타는 게이타가 병원에서 누군가의 실수로 뒤바뀐 아이였다는 것을 알고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만약 6년간 함께 지낸 아들이 자신의 ‘진짜’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심정이 어떨까.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자신이 6년간 키운 자식이 병원에서 뒤바뀐 것을 알고 난 후 겪게되는 이야기를 그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사진=네이버영화
자신이 6년간 키운 자식이 병원에서 뒤바뀐 것을 알고 난 후 겪게되는 이야기를 그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사진=네이버영화

 

6년간 키우고 정이 붙은,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아이를 여전히 자기 아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6년간 다른 집에서 키워진, 그렇지만 자기 핏줄인 낯선 아이가 자기 아이라는 생각이 들까.

 

“핏줄이야.” 아버지가 또다시 료타에게 말을 건넸다.
“알겠니? 핏줄이라고. 사람이든 말이든 혈통이 중요해. 앞으로도 그 애는 점점 더 널 닮아가겠지. 네 아이는 반대로 점점 더 상대 부모를 닮아갈 테고.” (188쪽)

“아빠는 아빠도 아니야.”
게이타의 말에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최근 몇 달간의 괴로움, 아니, 그전부터의 괴로움이 그 한마디에 담겨 있었다.
“그렇지. 하지만 육 년 동안은……. 육 년 동안은 아빠였어. 많이 부족하긴 했어도 아빠였잖니.” (299쪽)

 

영화에서도 그랬지만 소설은 갈등하는 인물의 심리묘사에 더 집중한다. 영상으로는 느끼지 못할 등장인물들의 마음에 쑥 들어가서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황금종려상 수상한 '어느 가족'을 소설로 만나다,'좀도둑가족'. 비채 펴냄.
황금종려상 수상한 '어느 가족'을 소설로 만나다,'좀도둑가족'. 비채 펴냄.

 

피 한 방울 안섞였으나, 애틋한 인연으로 살아가는 '좀도둑 가족’

이 소설의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어느 가족’으로 개봉되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평범하지 않은 구성의 가족이 보여주는 독특한 가족 미학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영화이든 소설이든 ‘좀도둑 가족’은 가족의 의미를 물어본다.

도쿄 도심에서 벗어난 어느 허름한 동네, 고층맨션으로 둘러싸인 오래된 단층 목조주택. 여기 ‘어느 가족’이 살고 있다. 옆자리 파친코 구슬을 천연덕스럽게 훔치는 할머니, 할머니 연금을 축내며 좀도둑질을 일삼는 아버지, 세탁공장에서 손님 옷 주머니를 뒤지는 어머니, 가슴을 흔들며 연애를 파는 어머니의 이복동생, 아버지에게 진지하게 좀도둑질을 배우는 아들.

이 가족은 다섯 식구였지만, 어느 겨울날 작은 소녀가 새 식구로 합류하게 되면서 모두 여섯 명의 가족이 완성된다. 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애틋한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이 완벽한 타인일 뿐, 진짜 가족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혈연아닌 기이한 인연으로 맺어진 가족. 사진=네이버영화
혈연 아닌 기이한 인연으로 맺어진 가족. 사진=네이버영화

소설은 ‘가족’을 넘어 ‘인연’을 이야기한다. 피를 나눠야 진짜 가족일까. 혈연 공동체인 가족 안에서의 부재와 상실, 결핍의 문제와 더불어 남겨진 자들이 어떻게 죽은 자를 기억하고 살아가느냐에 대해 천착해온 고레에다 감독은 ‘좀도둑 가족’에서 고민의 깊이를 한층 더한다.

 

노부요는 아무래도 그렇게 믿고 싶은 듯했다.
혈연이라고는 아무도 없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쓰에는 노부요가 의지하는 희망을 더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뭐, 쓸데없는 기대를 안 해야 말이지…….”
피로 이어져 있으면 오히려 그렇게 되는 법. 아득한 옛날에 접었다고 생각한 감정이 사실은 마음 한구석에 가라앉아 있었던 것뿐임을 깨달을 때가 있다.
그것은 자신이 전남편과 그 가족에 대한 질투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피는 성가실 뿐이다. 하쓰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185~186쪽)

 

피로 이어지지 않은 사람들도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묶일 수 있을까. 혈연이 아니라면 아무리 정을 쌓고 함께 시간을 보내도 가족이라는 연대는 불가능한 것일까.

그렇다고 고레에다 감독이 어떤 답을 제시하는 건 아니다. 작품을 보거나 읽는 사람들에게 생각에 빠지게 한다.

소설을 영화로 만들거나 혹은 영화를 소설로 만들면 그 작품은 완전히 달라진다. 영상이 말하는 문법과 문장이 말하는 문법이 아예 다르기 때문이다. 고레에다 감독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그가 오랫동안 이 작품을 구상하며 고민해온 지점들을 소설에다 듬뿍 담은 것 같다. 영화에서 말하지 못한 것을 다 쏟아내듯이.

고레에다 감독의 영상은 함의를 가득 안은 표정과 속내를 꾹꾹 눌러 담은 짧은 대사만이 오간다. 하지만 고레에다 작가는 소설에서 문장과 행간을 오가며 많은 질문을 쏟아낸다. 정답보다 질문에 매혹되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영상과는 또 다른 문장만이 뿜어내는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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