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 칼럼] 삼성,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선두에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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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수 칼럼] 삼성,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선두에 서라!
  • 최남수 서정대 교수, 전YTN사장
  • 승인 2020.05.07 11: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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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재계의 주주자본주의 종언 선언 주목해야
‘재계 2.0’ 전문 경영인시대 예고
조직 운영과 임직원 의식 개혁 필요
최남수 서정대 교수
최남수 서정대 교수

[최남수 서정대학교 교수(전 YTN 사장)] 

이재용 부회장께.

어제 나온 대국민 사과문을 꼼꼼하게 몇 차례 읽어보았습니다. 예상을 깬 파격적 내용이었다는 전반적 평가에 공감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선언은 삼성은 물론 한국 재계에 중대한 의미를 갖습니다. 기업 총수 스스로가 가족경영의 전통을 깨고 전문경영인 시대가 열릴 것임을 예고했기 때문입니다. 기업지배구조 전반의 본질적인 변화 등 ‘재계 2.0시대’를 가져올 의미 있는 물꼬가 열리는 셈입니다. 앞으로 이 부분이 어떻게 구체화될지 국내외의 이목이 집중될 것입니다.

어제 사과문에서는 구체적 사과와 잘못에 대한 솔직한 인정도 있었습니다. “법과 윤리를 엄격하게 준수하지 못했다”, “사회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데 부족했다”는 자평이 바로 그것입니다. 삼성이 그동안 이룬 커다란 성과에도 불구하고 명실상부하게 ‘존경받는 기업’이 되지 못했던 것은 소프트 리더십이 취약했기 때문입니다. 법을 잘 지키고, 윤리적이며, 사회와 함께 가는 삼성이라는 이미지를 국민 가슴에 심어주지 못했습니다.

사과문은 ‘이런 과거의 삼성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읽힙니다. “법을 어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 “준법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가치다”,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도 하지 않겠다”, “노동삼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 ‘결코’와 ‘확실히’에서 그 다짐의 강도를 보게 됩니다.

“(한국) 사회가 더 윤택해지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습니다”에선 경제의 파이를 키우면서도 골고루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를 담으려 한 흔적이 보입니다. 문제는 개혁은 실행이 더 중요하고 실제로 가시적 변화를 만들어내야 완성된다는 데 있습니다. 국민 앞에서 한 약속인 만큼 후속 조치를 잘 밟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사과문과 관련해, 몇 가지 조언을 드립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오후 삼성전자 서초동 사옥에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오후 삼성전자 서초동 사옥에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먼저, 이왕 큰 틀의 개혁을 천명한 만큼 삼성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선두에 서줬으면 합니다. 지난해 8월 미국 재계는 뜻깊은 선언을 합니다. 미국 재계를 대표하는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RT)은 당시 주주자본주의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알립니다. 대신 기업의 목적이 고객, 근로자, 거래기업, 지역사회, 주주 등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봉사하는 데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깃발을 올린 것입니다.

당시 BRT가 발표한 ‘기업의 목적에 대한 성명’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고객의 기대를 넘어서 온 미국 기업의 전통을 발전시켜 나가겠다. 근로자들에게 투자하겠다. 거래기업을 공정하고 윤리적으로 대우하겠다. 지역사회를 지원하고 환경을 보호하겠다. 주주를 위해서는 장기적 가치를 창출하겠다.’ 자본주의의 방향성에 대해 더 포괄적인 큰 비전이 담겨있습니다.

BRT는 애플, 아마존, 포드자동차, 골드만삭스, 시티그룹, IBM 등 미국 대표기업을 이끄는 유명 CEO 181명의 모임입니다. 그런 만큼 미국 재계의 중대 선언입니다. 현재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세계경제포럼의 클라우스 슈밥 회장이 앞장서 전파하고 있습니다. 슈밥 회장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모범을 보인 세계적 해운기업 '머스크'를 침이 마르게 칭찬합니다. 머스크는 방역 활동을 위한 비상품목을 수송하기 위해 자사 선박을 제공하거나 손해를 보더라도 새로운 항로를 열기까지 했습니다.

삼성도 해온 일이 적지 않음을 압니다. 코로나19 환자 치료를 위해 연수원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뉴 삼성’의 깃발을 든 만큼 차제에 한국 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삼성, 즉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파종하는 새로운 삼성의 모습을 만들어 가면 어떻겠습니까.

무노조 경영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으니 이제 삼성이 노사대타협의 모범 사업장이 됐으면 합니다. 사라져가는 낙수효과를 복원하는데도 삼성이 앞장서 삼성과 거래하는 기업은 윤택해진다는 칭찬이 나왔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용 억제가 존재의 목적인 '구매본부'보다는 전사 차원에서 거래기업 관리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주주의 경우 BRT가 장기적 가치에 방점을 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자사주 취득이나 배당으로 단기 주가를 띄우기보다 사과문에 나온 대로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기업의 장기 가치를 키우는 게 정공법입니다.

또 삼성이 봉사해야 할 지역사회는 대한민국 그 자체일 것입니다. 예컨대 현재 최대 현안인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삼성이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국가적 이슈인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삼성부터 직원들의 출산에 파격적인 혜택을 부여하는 일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삼성의 창업이념 세 가지중 첫째는 사업보국(事業報國)입니다. 스웨덴의 국민기업 발렌베리 가문의 자녀 교육 십훈 중 하나는 ‘애국심을 갖자’입니다. 사업도 잘하면서 애국하는 삼성의 모습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중요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향후 삼성의 미래 지향적 변화와 관련해 몇 가지 말씀을 더 드려봅니다.

한국 경제와 기업이 한강의 기적을 이룬 힘은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고 마침내 이를 이뤄낸 ‘기획의 힘’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재무적 생존이 중요해지다 보니 한국 재계에선 재무의 힘이 지나치게 커지고 기획력은 취약해졌습니다.

보수적 재무 중심의 기업 운영은 선진국을 추격하던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단계에서는 유효했습니다. 하지만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앞으로 치고 나가야 하는 현 시점에서는 꿈을 꿀 줄 아는 기획으로 타이어를 갈아 끼워야 하지 않을까요.

재무에선 상상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삼성은 또 성공 경험의 축적이 많다 보니 조직이 관료화된 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재미, 단순함, 공정’을 추구하는 젊은 직원들로만 혁신팀을 만들어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켜 보는 건 어떨까요.

쉽지 않은 시기입니다. 코로나19 이전의 사회로 돌아갈 수 없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위기는 혁신이 꽃 피우는 때이기도 합니다. 쏟아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발상의 실력이 드러나는 시기입니다. 말씀처럼 ‘한 차원 더 높게 비약하는 삼성’이 그 실력을 발휘하길 기대해봅니다.

이제 삼성이 해야 할 일은 한국 사회와 함께 가며 ‘존경받는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조직 운영의 틀을 뜯어고침은 물론 임직원의 의식개혁도 필요할 것입니다. 약속대로 ‘대한민국 국격에 어울리는’ 업그레이드된 삼성으로 변화해갈지 이제 국민이 지켜볼 차례입니다.

● 최남수 서정대학교 교수는 한국경제신문, 서울경제신문, SBS 등 언론사에서 경제 전문기자로 일한 뒤 머니투데이방송 대표이사, YTN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SK증권 사외이사, 보험연구원 보험발전분과위원장, 유튜버(‘행복한 100세’) 등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 경제 딱 한 번의 기회가 있다’, ‘교실 밖의 경제학’ 등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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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선인 2020-05-08 07:27:17
주주 우선주의로는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기업의 이해관계자인 종업원ㆍ
지역사회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같이 할 때 더욱 훌륭한 기업으로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과에
피해자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미흡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자녀에게 가업을 잇게하는 것은 편법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진행하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