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시드니] 호주 항공사 ‘버진' 파산...정부, 왜 구제금융 거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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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시드니] 호주 항공사 ‘버진' 파산...정부, 왜 구제금융 거부했나
  • 고직순 시드니 통신원
  • 승인 2020.05.0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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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3조원 부채 누적+ 매출 부진+ ‘코로나 사태’ 등 3중 타격
호주 정부 "5대 주주들, 지원능력 있다" 구제금융 거부
4월 21일 ‘자발적 법정관리’ 진입
주관사 딜로이트 10여개 투자사와 인수 협상 진행 중
고직순 시드니 통신원
고직순 시드니 통신원

[오피니언뉴스= 고직순 시드니 통신원] 호주 국적 항공사 콴타스(Qantas)와 함께 호주 국내선 시장을 양분해 온 버진 오스트레일리아 항공사(Virgin Australia0가 지난 4월 21일 '자발적 법정관리(voluntary administration)'에 들어갔다. 총 68억 호주달러(한화 약 5조3516억원)의 부채를 지고 있는 버진이 코로나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미국, 한국 등 전세계 항공사들이 코로나 19 팬데믹 사태에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든 것처럼 버진 오스트레일리아 항공도 이를 피하지 못했다.

모리슨 총리, 구제금융 지원 "명분없다" 거부   

버진은 호주 정부에게 14억 호주달러(약 1조1018억원)의 구제금융(bailout)을 요청한 바 있다.  약 1만5천명 직원들의 일자리 보호와 호주 국내 주요도시 항공 교통망 운영을 지원 이유로 내세웠다.

그러나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버진의 5대 대주주들의 자본력이 상당한데 호주 정부가 개입할 명분이 없다”면서 끝내 외면했다.

버진 오스트레일리아 항공. 사진=홈페이지
버진 오스트레일리아 항공. 사진=홈페이지

버진은 2000년 8월 항공기 2대, 직원 200명으로 ‘버진 블루(Virgin Blue)'란 명칭으로 호주에서 출범한 저비용 항공사다. 호주 퀸즐랜드주 주도인 브리즈번에 본사가 있고 브리즈번공항을 허브 공항으로 호주 28개 도시와 뉴질랜드, 사모아 등 남태평양 일부 도서군도에 취항해 왔다. 2011년 5월 버진 오스트레일리아로 사명을 변경했으며 현재 100여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

주요 항공사와 버진그룹이 지분 보유

버진 오스트레일리아 항공은 영국의 '괴짜 사업가' 리처드 브랜슨이 이끄는 버진그룹의 호주 자회사로 설립됐다. 버진은 외국 항공사들이 주요 주주로 있는 지분 구조다. 싱가포르항공, 아랍에미리트(UAE)의 에티하드항공, 중국 하이난항공그룹, 난샨그룹 등이 회사 지분 약 20%를 보유하고 있다. 버진그룹은 지분 10%를 보유하고 있다.
 
브랜슨 회장은 “버진 오스트레일리아가 파산하면 콴타스항공이 호주 하늘을 독점하게 될 것”이라며 호주정부의 구제금융을 요청했지만 호주정부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파산한 버진의 법정관리사 딜로이트(Deloitte administrators)는 인수 의향을 가진 국내외 투자가들과 협상을 진행 중이다. 딜로이트는 “버진의 직원 약 1만5천명에 대해 명예퇴직(redundancies)를 통한 대대적 감원은 계획에 없다”며 인위적 구조조정은 진행하지 않을 뜻을 밝히고 있다.  

버진 오스트레일리아 항공사의 채무 68억 호주달러는 ▲26개 금융기관들(corporate lenders)의 대출 22억8천만 호주달러(약 1조7943억원) ▲회사채(bondholders),로 20억 호주달러(약 1조5740억원) ▲50개 항공기 임대 회사의 빚 18억8천만 호주달러(약 1조4795억원) ▲9020명 직원들의 급여 등 4억5천만 호주달러(약 3천541억원) 등 주요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버진의 단골 고객을 관리하는 항공사의 자회사인 빌로시티 리워드(Velocity Rewards)도 1억5천만 호주달러(약 1180억원)의 채권(담보 대출)을 갖고 있다. 총 채권자(creditors)는 직원 9천여명을 포함해 1만247명에 달한다. 버진 오스트레일리아 항공사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채권단 회의가 4월 29일 처음 열리기도 했다.   

버진의 파산이 표면상으로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항공사가 치명타를 입은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누적된 부채와 매출 부진으로 코로나 사태 훨씬 이전부터 경영난에 직면해 있었다. 지난 20년 동안 적자를 내지 않은 해가 2년에 불과했을 정도다. 

가장 최근인 지난 2월말 발표된 2019년 하반기(7~12월) 경영실적은 8860만 호주달러(약 697억원)의  영업손실이었다. 버진은 장기적 차원에서 매출보다 비용의 효율성(cost efficiency)을 높이는 경영 전략에 집중해 왔는데, 이것만으로는 시장을 주도하는 항공사가 되기에 충분하지 못했던 것이다. 막강 라이벌 콴타스는 항공기, 자금 등 모든 면에서 버진을 압도했다. 힘겹게 콴타스 항공과 경쟁하고 있는 구도에서 코로나 사태로 직격탄을 맞고 결국 파산한 셈이다. 

호주의 최대 항공사인 콴타스 항공. 사진=EPA/연합
호주의 최대 항공사인 콴타스 항공. 사진=EPA/연합

미국 항공사들도 과거 심각한 구조조정을 거쳐 회생된 사례가 있었다. 델타(Delta)는 2005년, 유나이티드는 2002년, 아메리칸항공은 2011년 '챕터 11'(회생절차)을 신청했고 몇 년 동안의 구조조정을 거친 끝에 회생했다.

투자자들, '버진 오스트레일리아' 투자에 관심 보여

버진 오스트레일리아 항공사의 회생관리를 맡은 딜로이트는 10여개 투자사들이 버진 인수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는 합작투자를 모색하고 있다. 사모펀드 BGH와 호주 퇴직연금펀드 오스트레일리안수퍼(AustralianSuper)가 파트너십을 논의 중이다.

또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Temasek)도 관심을 나타냈다. 테마섹은 싱가포르 항공의 지분 56%를 소유하고 있고, 싱가포르 항공은 버진 오스트레일리아의 지분 20%를 소유 중이다. 미국 사모펀드 인디고 파트너즈(Indigo Partners), 호주 철광석부호인 앤드류 포레스트(Andrew Forrest) FMG(포테스크철강그룹) 대표와 버진 그룹 창업자 리차드 브랜슨 경의 전 자문관이던 데이비드 박스비(David Baxby)도 공동 투자를 검토 중이다. 자산관리사 브룩필드(Brookfield)의 사모펀드 자회사도 인수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고직순 시드니 통신원은 호주동아일보 편집국장, 호주한국일보 발행인을 역임했고 현재 한호일보 편집인으로 재임중이다.  한국에서 외대를 졸업한 후 호주 맥쿼리대학원에서 경제학(석사)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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