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위기 3) 탐욕이 초래한 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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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위기 3) 탐욕이 초래한 파멸
  • 김인영
  • 승인 2015.11.1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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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경제에서 나타난 이상 징후…설비 경쟁으로 과잉 생산 부추겨

 

아시아의 위기 신호는 금융 부문에 앞서 실물 부문에서 먼저 나타났다. 아시아 국가간 설비 과잉으로 수출 단가가 하락했고, 결국 수출 둔화 현상이 나타났다.

위기의 출발은 생산 과잉에서 시작됐다. 연간 10%에 가까운 고도성장이 이뤄지는 지역에 선진국 은행들은 신용을 꼼꼼히 따져보지도 않고 돈을 물씬 빌려주었으며, 권력과 유착한 토착 독점자본가들은 해외자금을 물 쓰듯이 들여와 자동차, 유화, 전자, 철강 산업에 과감한 투자를 했다. 제조업에서의 거품은 부동산으로 옮아갔고, 과잉생산에 따른 공황의 조짐이 수출둔화로 나타났다. 한국에서는 아시아의 생산과잉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재벌기업 간의 과당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1990년대 아시아 경제의 호황이 가져온 결과를 짚어보자.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식 경제를 모방하면서 성장을 모색했다. 일본이 앞장서고, 그 뒤를 한국과 대만이, 그 다음에 태국, 말레이시아, 중국, 인도네시아가 따라가는 기러기 대형으로 발전했다. 일본에서 단물을 빼먹고 퇴장한 사양산업이 한국과 대만으로 건너갔고, 그 산업은 한국과 대만에서 한 사이클을 거쳐 후퇴기에 접어들면, 동남아시아로 이전됐다.

그 역도 성립했다. 1980년대 미국을 제패한 일본 반도체 산업은 1990년대에 한국과 대만의 추격으로 사양산업으로 전락했고, 한국의 신발산업과 섬유산업은 후발 동남아 국가의 추격으로 쇠퇴했다.

1990년대 들어 아시아 경제의 선두에 섰던 일본 경제가 침체에 빠졌다. 그러나 한국과 대만은 여전히 고도성장을 구가했고, 동남아 국가들은 이제 한국을 모델로 자동차, 전자, 유화산업에 뛰어들었다. 20여년에 걸친 고도성장은 아시아 국가들로 하여금 신기루와 같은 21세기 청사진을 그리고, 선진국형 산업구조를 갖겠다는 꿈을 갖게 했다.

기업들은 이익이 나지 않아도 매출만 늘리면 된다는 생각에 부풀었다. 중국의 농작지는 하루아침에 공업지대로 전환됐다. 제너럴 일렉트릭(GE), AT&T, 로열더치&셸, 포드 등 신진국 기업들은 「아시아 드림」을 꿈꾸며 공장을 지어댔다. 노동자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갔다. 동아시아의 임금은 10년 사이에 두배나 올랐다. 북경, 홍콩, 서울, 싱가포르 도심의 땅값은 뉴욕보다 비쌌다. 국내의 높은 저축률과 외국에서 들여온 돈으로 아시아는 풍요를 구가했고, 미국의 미래학자들은 서슴없이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라고 규정했다.

▲ 외환 위기 후 1998년 대대적으로 확산한 '금 모으기 운동'. 그해 2월13일 서울의 '부자촌'으로 알려진 대치동에서는 1㎏짜리 금괴가 95개나 접수됐다. /연합뉴스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그러나 탐욕은 언제, 어디에서나 파멸을 불러일으키는 법. 아시아의 고도성장은 독점 기업들의 탐욕을 부추겼다. 탐욕은 고전적 공황의 원인인 생산과잉을 유발했다.

아시아 국가들은 동일한 산업에 동시에, 그리고 경쟁적으로 과대한 투자를 단행했다. 한 나라에서 자동차 공장을 지으면 이웃나라에서도 이에 뒤질세라 비슷한 모형의 자동차를 생산하겠다고 덤볐다. 반도체, 전자, 유화분야도 마찬가지였다.

아시아의 유화산업은 한국을 선두로,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대만이 경쟁을 했고, 96년 하반기 들어 퇴조의 기미를 보였다. 유화제품은 과잉 생산으로 가격이 36%나 폭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유화학 공장 증설 붐은 식을 줄 몰랐다. 한국 유화산업은 해외에 덤핑 수출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3개의 대형 공장이 건설 중이었고, 3개 공장의 건설이 계획되어 있었다. 재벌기업인 삼성과 현대도 유화산업 증설에 가세했다.

미국의 컨설팅 업체인 매킨지(Mckinsey)사는 “삼성과 현대가 유화산업에 참여한다면 자동차 산업과 같이 과잉생산이 될 것”이라며 “그들은 세계 시장을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한국의 재벌기업들은 “미국과 유럽 국가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확장을 할 필요가 있다”며 증설경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자동차 산업분야는 더더욱 치열했다. 아시아 국가들은 자동차 산업을 국력의 상징으로 착각하고 서로들 덤벼들었다. 말레이시아는 2000년까지 연산 50만대 규모의 국민차 생산 계획을 추진했고, 태국은 5년내에 생산능력을 2배 늘려 연산 150만대의 자동차 생산 계획을 밀어붙였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 아들은 한국의 기아자동차를 불러들여 국민차 생산을 계획했다. 중국은 인민차 생산계획을 추진했고, 불과 연간 1만대의 소비시장을 갖고 있는 베트남 조차 11개의 완성차 공장을 계획했다. 인도에는 무려 15개 외국 자동차 회사들이 덤벼들었다. 미국의 자동차메이커 크라이슬러사의 로버트 이튼(Robert Eaton) 회장은 아시아에 「대량학살 (bloodbath)」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렇게 많은 자동차 공장이 지어져도 아시아 국가들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특화하는 일은 없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생산할 자동차와 인디아와 태국에서 생산하는 자동차의 사이즈나 모형이 거의 같았다. 내수 시장에서는 경쟁적으로 높은 관세를 부과, 외국 자동차 업계의 진출을 막으면서도, 수출을 해서 공장을 돌리겠다는 모순된 계획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일장춘몽이었다.

반도체 산업 증설 경쟁도 치열했다. 한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선두에 서자, 태국과 싱가포르가 실리콘 웨이퍼 공장을 증설했고, 말레이시아도 반도체 공장을 지어댔다. 96년에 D-RAM 반도체 가격이 82%나 폭락했음에도 불구, 대만은 10억 달러 규모의 실리콘 웨이퍼 공장 건설계획을 밀어붙였고, 말레이시아도 정글을 불도저로 밀어 반도체 단지를 조성했다.

그러나 세계 산업 수요가 아시아의 반도체 설비 경쟁을 소화해 내지 못했다. 타이완과 싱가포르 반도체 회사, 한국에서는 아남산업등 약한 고리에서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저임금을 바탕으로 성장한 아시아 국가들은 자체 내에 방대한 노동력 배후지가 있었기 때문에 임금 상승은 곧 그 산업의 사양을 의미했다. 인건비가 높아 한국에서 사양길에 들어선 신발산업은 인도네시아로 밀려갔고, 태국의 가전 산업은 근로자 임금이 높아지자 중국으로 건너갔다. 아시아 경제권은 유럽과 같이 일정 궤도에 올라선 선진국들이 모여 있는 경제 공동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한 나라의 임금 상승과 설비 증설은 다른 나라에 경쟁적 요소가 됐다. 아시아 국가들은 고도성장 과정에서 서로의 경쟁을 통해 공멸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선두를 리드하던 일본이라는 기러기가 땅으로 곤두박질치자 그 뒤를 잇던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 그 다음을 따라오던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의 떼가 서서히 기력을 잃기 시작했다.

한때 성장의 원동력으로 칭송받던 아시아 경제 시스템은 이제 문제의 원인이 되어 갔다. 국가 주도의 경제, 수출 중심의 경제에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등 선진국에서 자본을 빌리고, 선진국의 소비자 시장을 상대로 산업화를 밀어부쳤던 아시아 경제의 거품은 사그러 들 조짐을 보였다. 일본이 북을 치면 다른 나라들이 우르르 몰려갔던 「아시아의 밴드왜건(bandwagon) 현상」은 일본이 퇴조의 길을 걷자 함께 무너지는 역기류를 형성했다.

불행하게도 아시아의 정책 당국자들은 경기가 꺾어지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정책 산업에 은행 대출을 늘리도록 정책을 유도, 투자를 촉진시켰다. 그러나 이런 것은 모두 투기적 버블(거품)의 단계였다. 철강, 자동차, 전자 산업의 과잉 설비는 금융시스템의 위기를 불러일으킬 조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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