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아이들에게 유명한 동화작가 송언 著 ‘둘이서 걸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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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아이들에게 유명한 동화작가 송언 著 ‘둘이서 걸었네’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20.05.0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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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콧수염에 ‘150살 빗자루 선생님’ 동화 작가 송언의 여행 에세이집
소녀같은 아내와 동해의 해와 바다를 길동무 삼아 걷는 해파랑길 답사
작가 송언,길을 걸으며 환경을 걱정...폐교를 보며 교육을 걱정하다

 

동해의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길동무 삼아 걷는다는 뜻의 해파랑길. 사진=한국관광공사
동해의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길동무 삼아 걷는다는 뜻의 해파랑길. 사진=한국관광공사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내가 좋아하는 동화작가가 쓴 산문을 접했다. ‘송언’ 작가의 ‘둘이서 걸었네’라는 책에서다. 송언 작가의 실제 모습과 똑같이 묘사된 그림들과 그의 말투가 생각나는 아기자기한 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은 동화가 아닌 작가가 부인과 둘이서 동해안 길을 남에서 북으로 두 발로 걸어 다닌 생생한 여행기이다.

송언은 유명한 동화작가이다. 작가 자신이 직접 등장하기도 하는 작품들로 어린이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끈다. 동화에서 그는 흰 머리만큼 하얀 콧수염을 한 ‘150살 선생님’으로 등장한다. 실제 모습도 그러한데 150살보다는 많이(?) 젊어 보인다. 송언은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다. 지금은 교직에서 은퇴해서 창작과 어린이 문학 관련 강연 활동을 활발히 한다.

‘둘이서 걸었네’는 송언 작가가 환갑을 맞이한 어느 해 겨울 부인과 함께 도보 여행을 계획하며 시작한다. 그 여정은 부산에서 동해안을 쭉 따라 올라가 강원도 고성까지 걷는 것이다. 다만 한꺼번에 전체 여정을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코스를 나누고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 여러 번에 걸쳐 소화한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즈음 시작한 여행은 해를 넘겨 이듬해 봄에 마친다.

 

'둘이서 걸었네'. 엘도라도 펴냄.
'둘이서 걸었네'. 엘도라도 펴냄.

‘둘이서 걸었네’는 다른 여행기들과 비교해서 눈에 띄는 차별점이 있다. 서점에서 여행책 판매대를 차지하고 있는 책들을 보면 코스를 막론하고 사진으로 어필한다. 물론 여행지를 글로 길게 설명하기보다는 단 한 장의 사진으로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송언 작가의 책은 문장만으로 승부를 본다. 흑백 사진 한 장 없다. 다만 군데군데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 ‘유승하’ 작가의 귀여운 그림이 전부이다.

그런데 글만으로도 실감이 난다. “코끼리보다 덩치가 큰 거대한 트럭이 바싹 다가와 괴물 같은 소리를 내지른” 국도 풍경, “삼겹살은 3인분부터 팔아요. 두 분이서 3인분 드세요”라던 식당 주인, “보이지는 않아도 멀리서 밤 파도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는” 숙소 분위기 등 마치 책을 읽는 나도 그 여정을 함께한 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

송언 작가는 모든 일정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세히 묘사한다.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났는지, 갈림길은 어디서 어떻게 갈라지고 국도와 해안도로의 차이점은 어떤지, 표지판이 필요한 곳마다 달린 친절한 지역은 어디인지 자세히 알려준다. 심지어 식당 메뉴와 친절도 품평은 물론 소주를 몇 병 마셨는지까지도 고백한다. 송언 작가의 평소 주량을 알게 할 정도이다. 아무튼 난 그런 문장들을 읽으며 송언 작가가 작품에 쏟는 디테일이 떠올랐다.

 

'둘이서 걸었네. 삽화. 엘도라도 펴냄.
'둘이서 걸었네. 삽화. 엘도라도 펴냄.

동화작가 송언의 작품에는 교실이 항상 나온다. 당연히 선생님과 어린이들도 등장한다. 작품에 나오는 어린이들과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나 구체적이고 사실적인데 그건 모두 송언 작가의 세심한 관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관찰은 대상을 향한 따뜻한 관심에서 출발하는 듯하다.

 

“현실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을 촘촘하게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사연을 갖고 있다” (송언 ‘선생님, 우리 집에도 오세요.’ 본문 중)

 

‘선생님, 우리 집에도 오세요’는 요즘 흔치 않은 가정 방문을 모티브로 하여 어린이들이 처한 현실과 변화를 담은 동화이다. 어린 제자들의 학교생활은 물론 가정사까지 관심을 두는 작가의 평소 모습과 따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둘이서 걸었네’도 송언 작가의 그러한 세심한 관찰과 기록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그가 쓴 동화에서와 달리 ‘둘이서 걸었네’에서 송언 작가는 본인의 역사의식과 가치관을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 그는 길을 걸으며 환경을 걱정하고, 폐교를 보며 교육을 걱정하고, 민간인 통제 구역을 보며 분단된 조국을 걱정한다. 송언 작가는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이었다.

 

“그 무렵 나는 세상을 어떡하든 바꾸어 보려고 골몰했다. 그 결과 1989년 여름 교육 대학살로 인해 해직교사가 되었다. 네 식구 밥줄이 끊겨 하루하루 사는 것도 힘든 시기였으나,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135쪽)

 

송언 작가는 오랫동안 교단을 떠났다가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그의 고민과 염원을 동화에 담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아이들이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었고 철저히 그들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해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주인공이 되라는 염원을 담아서.

 

흰 수염으로 150살 선생님으로 통하는 송언 작가. 사진=웅진 주니어 블로그
흰 수염으로 150살 선생님으로 통하는 송언 작가. 사진=웅진 주니어 블로그

‘둘이서 걸었네’는 송언 작가의 문학적 연륜도 느끼게 한다. 그는 젊은 시절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였다. “낯이 후끈거린다”라고 고백한 그가 젊은 시절에 쓴 소설 몇 대목도 인용한다.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보니 그는 자연스럽게 동화를 쓰게 되었다고. 하지만 ‘둘이서 걸었네’의 문장은, 혹은 문체는 그가 쓴 동화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그의 동화는 누가 읽어도 천상 동화스러운 문체로 이루어져 있다. 다음 문단처럼.

 

“어린 참새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두 눈을 비빈 다음, 할짝할짝 세수하고 마냥마냥 양치질하고, 콕콕 먹이를 쪼아대고는 랄랄라 학교로 간단다.” (송언 우화집 ‘이야기 숲에는 누가 살까’ 본문 중)

 

하지만 이번에 내가 읽은 문장들은 유장하면서도 단호함을, 진지하면서도 유머를 담고 있었다. 최근에 쓴 그의 동화와 또 다른 문체였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따져 물을는지 모른다. 5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을 2시간 걸려 걷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럼 나는 대답하리라. 직접 걸어 보라고. 걸어 보지도 않은 사람에게 그 어떤 이유를 갖다 붙인들 마음에 가 닿겠는가.” (180쪽)

 

‘둘이서 걸었네’의 가장 큰 미덕은 송언 작가가 그의 부인과 함께 걸은 일상의 기록이라는 데에 있다. 티격태격하면서도 부부가 서로를 위하는 모습이 너무나 따뜻하게 다가왔다. 둘이라서 더 그랬을 것이다.

 

“혼자 걷는 외로움보다 함께 걷는 따뜻함이 훨씬 의미 있다는 걸 비로소 알겠다.” (67쪽)

 

기행문, 혹은 여행기의 목적은 무엇일까. 우선은 그곳에 가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다음은 글을 읽은 사람들에게 그곳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데 있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둘이서 걸었네’는 성공한 여행기이다. 책을 읽는 도중 나는 그곳에 가고 싶어졌다. 모든 코스를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강원도 속초에서 해변 길을 따라 북쪽으로 걸어가고 싶다.

높이 열린 하늘과 멀리 펼쳐진 바다, 그리고 사람이 드문 그 길을 나는 걷고 싶다. 그리고 멀리서라도 금강산을 바라보고 싶다.

왜 걷고 싶냐고? 송언 작가의 말을 인용한다. “그 어떤 이유를 갖다 붙인들 마음에 가 닿겠는가.” 다만 걷고 싶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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