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칼럼] 민주당의 악재가 ‘액 땜’이 되게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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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칼럼] 민주당의 악재가 ‘액 땜’이 되게 하려면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0.05.0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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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전임연구원] 지난 21대 총선에서 180석을 거머쥐며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이 선거승리에 취해서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벌써부터 권력의 단맛에 취해서 오만방자에 빠진 것인가? 아마도 이렇게 취한 상태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선거가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민주당이 각종 설화와 악재로 시끄럽단 말인가? 민주당 지도부가 여러 차례 “자중하라”는 메시지를 내놓았음에도 당의 규율이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슈퍼여당' 잇따른 사고...'경고음'

충남 당진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한 어기구 민주당 의원은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유권자와 논쟁을 벌이다 욕설까지 하게 되었다. 어기구 의원과 논쟁한 유권자에 따르면, 어 의원은 코로나19(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정부안인 소득 하위 70%만 지급하라는 유권자의 메시지에 “당신이 대통령하라”고 답했고, 이후 논쟁이 이어지자 “X자식이네” “유권자가 유권자다워야지”라고 비난했다.

어 의원은 이틀 만에 SNS를 통해 “지난 20일 많은 문자폭탄이 날아들었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고 순간 평정심을 잃고 부적절한 언사를 사용하는 큰 실수를 범했다”며 욕설을 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논란이 된 후, 꼬박 이틀간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면서 “앞으로 매사에 더욱 신중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자그마한 현안이라도 생기면 일방적인 주장과 지시, 심지어 인간적으로 견디기 힘든 모욕조차 서슴지 않는 내용의 문자 폭탄은 정상적인 생활을 불가능하게 할 지경이었다”며 “이유야 어찌 되었든 제 부적절한 언사로 많은 분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SNS 글은 네티즌들로부터 사과보다 욕설을 하게 된 배경을 변명하는 데 중점을 뒀다는 핀잔을 듣고 있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씁쓸하다.

어기구 의원의 설화가 지진이라면 오거든 부산시장의 성폭력 사건과 양정숙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자의 부동산 투기의혹사건은 당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쓰나미에 가깝다.

더불어시민당 윤리위원회는 4월 28일 부동산 매입 과정에서 가족의 명의를 도용해 세금을 탈루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양정숙 당선인에 대해 최고 수위의 징계인 제명을 의결하고 당 최고위원회에 형사 고발을 건의했다. 명의신탁 의혹 외에도 정수장학회 임원 취임에 따른 품위 훼손, 허위 자료 제출, 검증 기망 등이 징계 사유로 열거됐다.

최근 벌어진 민주당 악재는 민주당 지지율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 지지율도 떨어뜨리고 있다. 이것은 당이 대통령과 정부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부담이 되고 있는 꼴이다. 리얼미터가 tbs와 YTN의 의뢰를 받아 조사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 6주 연속 상승했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63.7%에서 3.1%포인트 내린 60.6%로 집계됐고, 민주당 지지율은 52.6%에서 7.4%포인트 내린 45.2%로 하락했다. 조사를 실시한 리얼미터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문과 양정숙 국회의원 당선인 논란 등이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이런 악재들은 4·15 총선에서 여당이 180명의 당선인을 배출한 지 2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국회의원 당선증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연출된 이런 희비극은 우리 정치의 비루한 단면과 정당공천의 후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민의 눈높이와 상식에 맞지 않는 반칙과 특권을 일삼는 부적절한 인사들을 제대로 검증하여 속아내지 못한 집권여당의 ‘졸속공천’과 ‘부실공천’의 폐해라 할 수 있다. 국정을 쇄신하고 정치개혁을 선도해야 할 책임이 있는 집권당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문, 양정숙 국회의원 당선인 논란 등의 영향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다시 빠지는 상황을 맞았다. 사진= 연합뉴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문, 양정숙 국회의원 당선인 논란 등의 영향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다시 빠지는 상황을 맞았다. 사진= 연합뉴스

열린우리당의 실패...민심 오판말아야

이참에 민주당은 이 같은 악재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고, 예방하면서도 더 좋은 일이 생기도록 하는 ‘액 땜’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치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액 땜’이란 말은 앞으로 닥쳐올 액을 다른 가벼운 곤란으로 미리 겪음으로써 무사히 넘긴다는 말이다.

지금의 악재를 새로운 도약을 위한 ‘액 땜’의 기회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대화와 타협 및 협치를 통한 원활한 국회운영과 국정운영을 강조해 온 정치원로인 이해찬 대표, 이낙연 전총리,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당부사항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이해찬 민주당 당대표는 4월 16일 선대위 해단식에서 “더욱 겸손한 자세로 민심을 살피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각별하게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4월 20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도 “이만한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잘해야 한다”고 당부했었다.

4월 16일 해단식에서 상임선대위원장인 이낙연 전 총리도 “열린우리당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국민 앞에 조금이라도 오만이나 미숙, 성급함이나 혼란상을 드러내면 안 된다”며 “항상 겸손하며 안정감, 신뢰감, 균형감을 드려야 한다”고 했다. 또한 이낙연 전 총리는 “새로운 의제를 선정할 때는 그것이 경제와 민심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실현가능한 것인지 등을 고려해 신중하고 지혜롭게, 우선순위와 완급을 가렸으면 한다”고 했다.

이낙연 전 총리가 열린우리당의 아픔을 화두로 꺼낸 이유는 뭘까? 열린우리당 시절 ‘4대 개혁입법’이 급진적으로 무질서하게 추진돼 논란만 일으키고 좌초된 일을 꼬집은 언급으로 보인다. 2004년 총선에서 집권당이던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얻어 단독 과반을 확보했으나, 야당에 대한 적대적 태도, 질서 없는 개혁 추진, 당내 계파 갈등에 골몰하다 정권을 내줬다는 아픔을 상기하자는 취지이다.

2004년 열린우리당 의장이었던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4월 21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에 낮은 자세를 주문했다. 특히, 대화와 토론없이 ‘다수파의 논리’를 앞에서 강행처리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는 “의석수를 앞세워 오만을 부리거나 우격다짐으로 법안을 강행할 경우 대선에서는 21대 총선만큼의 지지를 확보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당내에서 개헌론과 토지공개념을 밀어붙이자는 의견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강행 처리하라고 여당에 180석을 준 것이 아니다”라며 “토론을 벌이고 그 결과를 토대로 논의의 속도를 높여야지 지난 2004년 열린우리당 시절처럼 ‘당론으로 정했으니 강행’이라고 나서다가는 다음 대선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조언했다.

특히, 그는 ‘다수파의 논리’를 앞세워 일을 그르친 예로 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 개혁실패를 꼬집었다. 그는 당시 ‘국보법 폐지’ 대신 야당과 이를 개정하는 선에서 합의하고 개혁입법을 추진하고자 했으나 유시민 의원 등을 중심으로 하는 국보법 폐지파 의원들이 여야합의를 무산시킨 탓에 개혁입법이 저지됐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금 벌어지는 민주당의 악재가 ‘액 땜’이 되면서 새로운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세 정치원로들의 당부사항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민주당이 정당개혁과 국회개혁 및 선거법과 개헌논의에 나설 때 역시도 다수파의 논리보다는 대화와 타협의 정신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다수결이 아니라 보편성이다

대화와 타협은 정치의 기본이다. 하지만 이 기본이 자꾸 무시되는 게 문제다. 대표적인 예로 21대 총선을 치룬 연동형 선거법이었다. 원칙이 한 번 무너지니 위성정당과 비례연합정당이라는 꼼수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비례대공천과정을 부실과 졸속으로 만들어 결국 정치판을 추하게 만들었다.

민주당은 세 정치원로의 당부상황에 덧붙여 소수파가 동의하는 보편성이 확보되지 않을 시 무리하게 다수파의 논리를 관철시키기 보다는 그 자리에서 멈춰야 한다는 칸트의 정언명령을 기억하고 이를 원칙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칸트는 자신이 따라야 하는 행동준칙이 다른 사람의 인간적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보편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다수결이 아닌 보편성과 타당성을 가져야 한다고 정언명령(“그대가 하고자 꾀하고 있는 것이 동시에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도록 행하라”)을 주장하였다. 이 같은 칸트의 정언명령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소수파를 배제한 다수파 연합이 만든 합의 내용들이 곧바로 보편적 진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만약 다수파 연합이 만든 다수결을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히틀러와 나찌 독일이 저지른 수많은 악행이 다수결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밖에 없다. 나찌 독일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수파는 소수파가 동의하지 않는 무리한 결정을 과유불급(過猶不及)으로 처리해서는 안 되고, 소수파가 동의하지 않을 때는 반드시 멈출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채진원 박사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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