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 칼럼] 기간산업 경영개입 우려는 기우(杞憂)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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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수 칼럼] 기간산업 경영개입 우려는 기우(杞憂)다
  • 최남수 서정대 교수, 전YTN사장
  • 승인 2020.04.2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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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산업안정기금’ 시의적절한 조치
고용유지 의무, 기업 자율성 훼손으로 볼 수 없어
우선주 취득 등 정부의 경영개입 우려 해소해줘야
최남수 서정대 교수
최남수 서정대 교수

[최남수 서정대 교수·전 YTN 대표이사] ‘빨리 행동하라,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하라!’ 위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순발력과 ‘과잉 대응’이다. 산불이 활활 번지고 있는데 앞뒤를 재는 신중함은 더 큰 위험을 불러온다. 평소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과도한 조치가 거센 불길을 잡는 처방이다.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화로 금융위기가 점화됐던 2008년. 진앙인 미국에서는 예상 밖의 조치가 취해졌다.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의 20%가량인 800억 달러를 자동차 업계에 긴급 수혈하면서 특히 민간 제조업체인 제너럴 모터스(GM)를 한시적으로 국유화해버렸다. 이 비상조치는 미 경제를 안정화하는 데 기여했고 GM도 회생의 기회를 잡았다.

사상 최대 경제위기에 세계 각국 주력 산업 '비틀'

이때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는 전례가 없는 초대형 위기 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건 위기로 시작된 이번 사태는 일상과 산업 활동을 거의 마비시키면서 사상 최대 규모의 경제 위기를 가져왔다. 각국의 주력산업이 매출 절벽으로 비틀거리고 있고 이는 고용 충격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자그마치 2천만 명이 넘는 근로자들이 실직 상태에 들어섰다.

하루하루 급전직하인 상황 앞에서 미 행정부와 의회는 2조 달러의 경기 부양 패키지를 꺼내 들었다. 이 중 250억 달러의 자금이 사실상 영업이 중단된 항공업계의 고용유지 지원자금으로 투입된다. 지원조건은 이렇다. 오는 10월까지 근로자들의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 도덕적 해이를 없애기 위해 배당과 자사주 취득이 제한된다. 특히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추후 항공사의 경영이 정상화되면 이에 따른 이익을 회수하기 위해 미 행정부가 대출액의 10% 정도를 주식연계증권으로 받아두기로 했다.

지원조건에 대한 일부 반발도 있었지만 ‘항공업계 구조’는 실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보도된 항공사별 합의 내용을 보면, 아메리칸 에어라인과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은 미 정부에 각각 1,370만 주와 460만 주를 매입할 수 있는 주식연계증권을 제공하기로 했다. 델타의 경우 미 정부는 앞으로 5년 동안 델타 발행주식의 1%를 매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독일 정부도 미국과 유사한 조건을 기업들에 요구하고 있다.

주력산업의 적신호는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국내외 수요가 얼어붙고 공급망마저 마비되면서 한국 경제의 대표 산업에 비상등이 깜박이고 있다. 대표 수출산업인 자동차의 경우 해외 시장이 극심한 침체에 빠지면서 4~5월 중 국내생산이 30% 이상 급감할 것으로 우려된다.

항공업은 183개국의 입국 제한 조치와 노선운항 중단으로 사실상 땅에 멈춰선 상태다. 4월 중 국제 여객은 일 년 전에 비해 무려 98%나 줄어들었고, 국내 여객 감소율도 61%에 이르고 있다. 여행객의 발길이 거의 끊기다 보니 면세점은 매출이 80% 이상 줄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나마 조선산업은 그동안 받아 놓은 수주로 현재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신규 수주가 많이 감소해 향후 경영난이 예고되고 있다.

정부는 최근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조성, 최근 자동차, 항공, 해운, 조선 등 기간산업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사진= 연합뉴스
정부는 최근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조성, 최근 자동차, 항공, 해운, 조선 등 기간산업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사진= 연합뉴스

 

정부 지원 받으며 일자리 유지 '공익적 책임' 지켜야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정부는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한다’는 원칙을 선명하게 제시했다. 최근 열린 5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자동차, 항공, 해운, 조선 등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40조 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특히 기간산업에 자금을 지원하되 미국과 독일에서 적용하고 있는 비슷한 조건을 걸기로 했다. 기업들은 일정 비율 이상의 고용 총량을 유지해야 하며 지원자금을 갚을 때까지는 고액 연봉과 배당, 자사주 취득이 제한된다. 특히 기업 사정이 나아졌을 때 이에 따른 이익을 공유하기 위해 정부가 주식연계증권과 우선주 등을 받아두기로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는 과거의 사례처럼 금융이나 기업부실로 일어난 것이 아니다. 바이러스 감염 억제를 위해 경제가 일시적으로 셧다운된 탓이다. 사람들이 다시 모여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버티기’가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주력산업에 긴급자금의 물꼬를 연 이번 조치는 필요하고 시의적절한 조치이다.

그런데 지원조건을 놓고 재계에서 경영개입의 여지가 있다든가, 기업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업이 이런 걱정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여기에서 분명하게 짚어볼 이슈가 있다. 기업의 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목적 중 하나는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미국과 독일 정부도 이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세금이 들어가는 이상 고용유지는 기업에 부여된 ‘공익적 책임’일 수도 있다. 더구나 미국 등 해외 재계에서조차 주주만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대신 고객, 근로자,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를 중시하는 자본주의를 지지하고 나선 흐름에 비춰볼 때 기업이 고용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모범적인 선례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익공유를 위한 주식연계증권 확보에 대해서는 정부 스스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고 경영개입이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 만큼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를 주로 확보해 기업의 우려를 해소해주는 배려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기간산업 경영개입 가능하지도 않아

중요한 점은 정부가 급변하는 국내외 산업환경 속에서 기간산업의 경영에 개입하는 게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기우(杞憂)일 뿐인데 기업이 이런 걱정을 하는 이유를 정부는 잘 헤아려보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재무부가 아메리칸 에어라인 등 대형 항공사의 의결권 있는 보통주를 매입할 권한을 갖기로 했지만 경영 개입 여부에 대한 논란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번 위기를 겪으면서 더 유념해야 할 점은 바이러스의 세계화로 팬데믹이 앞으로 빈발할 것이라는 경고다. 일상과 경제를 정지시키는 팬데믹이 이제 국가안보의 이슈로 떠오른 만큼 국가든 기업이든 비상 상황에 대비한 긴급자금을 평소에 적절한 수준으로 쌓아두는 등 위기 대응계획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겸손한 줄 몰랐던 것뿐이다. 그래서 자기에게는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고 믿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재앙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추측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믿었지만 재앙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가 ‘페스트’에서 한 말이다. ‘그들’은 바로 ‘우리’이다. 이번 사태가 끝나면 우리는 이를 망각의 물결에 흘려보내고 새로운 위기가 오면 또 허둥지둥할 것인가 아니면 겸손한 자세로 새롭게 닥쳐올지 모를 ‘재앙’에 대비할 것인가.

● 최남수 서정대학교 교수는 한국경제신문, 서울경제신문, SBS 등 언론사에서 경제 전문기자로 일한 뒤 머니투데이방송 대표이사, YTN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SK증권 사외이사, 보험연구원 보험발전분과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 경제 딱 한 번의 기회가 있다’, ‘교실 밖의 경제학’ 등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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