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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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20.04.26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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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순례하다보면 어릴적 추억 떠올라...지금은 사라진 곳 많아 아쉬워
중고서점 만이 가진 독특한 매력...절판된 책이나 기대하지 않은 보물 찾기도
대형서점 가면 눈치 안보고 맘껏 책을 읽었던 기억...최근엔 문구류가 많은 자리 차지해
'사회적 거리두기'완화되면 그동안 만나지 못한 책들 보러 달려가고 싶어
대오서점은 1951년 서촌에 개업해 60년간 운영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 현재는 카페 겸 기념관으로 운영중이다. 사진=서울스토리
대오서점은 1951년 서촌에 개업해 60년간 운영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 현재는 카페 겸 기념관으로 운영중이다. 사진=서울스토리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금요일 오후에는 서점 순례를 한다. 내가 살며 일하는 서울 근교의 한 도시에는 내가 ‘서점 거리’라고 이름 붙인 곳이 있다. 서점 거리에 가면 대형 서점 두 곳과 대형 중고서점 한 곳이 가까이 모여있다. 난 서점 세 곳을 돌며 한 주일을 마감한다.

서점을 나들이 삼아 다닌 건 중학교 때부터다. 친한 동네 형이 ‘종로서적’이라고 쓰인 포장지로 표지를 싼 책을 자랑한 게 난 무척 부러웠었다. 당시에는 책을 사면 서점 로고가 박힌 포장지로 표지를 싸주던 서점이 여럿 있었다. 종로서적 포장지는 쑥색 바탕에 김홍도의 ‘서당 풍경’ 그림이 있었더랬다. 그냥 책이 아닌 시내의 큰 서점 표지로 싼 책을 들고 다니면 왠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한 그런 시절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방학이면 난 종로서적에 나들이 삼아 다녔다.

그 후 종로서적 근처 종각 네거리와 광화문에 대형 서점이 생기자 종로서적은 몰락했고 끝내 사라졌지만, 가끔 생각이 나곤 한다. 책을 계산할 동안 포장지를 가위로 사각사각 자르던 그 소리와 고객 동선은 무시하고 책을 미로처럼 쌓아놓은 종로서적 특유의 분위기가 그립다.

금요일 오후에 내가 서점 순례를 하는 이유는 ‘오피니언뉴스’ 칼럼 마감을 기념하기도 하고 주말과 그다음 주에 읽을 책들을 고르기 위해서다. 그리고 내가 평소 구하고 싶던 책을 혹시 찾을 수 있을까 보아서다.

 

서울 송파구 신천유수지 창고를 리모델링한 공공 헌책방 '서울책보고'에서 한 시민들이 헌책으로 만든 조형물을 촬영하고 있다. '서울책보고'는 '책벌레'를 형상화한 구불구불한 긴 통로를 따라 양옆으로 철제 서가 32개를 설치한 국내 최초의 공공 헌책방이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신천유수지 창고를 리모델링한 공공 헌책방 '서울책보고'에서 한 시민들이 헌책으로 만든 조형물을 촬영하고 있다. '서울책보고'는 '책벌레'를 형상화한 구불구불한 긴 통로를 따라 양옆으로 철제 서가 32개를 설치한 국내 최초의 공공 헌책방이다. 사진=연합뉴스

서점 순례의 첫 순서는 중고서점이다. 저자나 출판사 입장에서 보면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 곳일 수도 있다. 아무리 판매를 해도 저자나 출판사의 수익과는 상관이 없으니까. 다만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양한 매력이 있다. 물론 중고서점 본사가 가장 큰 수혜자일 것이다. 아무튼, 난 새 책을 파는 서점에는 없는 보물을 찾기 위해서 중고서점을 찾아다닌다.

중고서점에 가면 우선 내가 찾는 책이 있는지 검색해본다. 절판되어서 구할 수 없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인터넷으로도 검색할 수 있지만 재고를 확인하고 서점에 올 동안 누군가 채가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인터넷 검색에는 없었지만 현장에 있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에서 나온 문학 시리즈가 있는지 살펴본다. 내 서재 책장에 꽂힌 해외 소설들을 보면 유명 출판사 세 곳에서 낸 책들이 많다. 그 책들은 표지 디자인이나 책등 디자인이 일관성 있어서 책장에서 커다란 존재감을 발휘한다. 그래서 모으기 시작했는데 특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이 매대에 있으면 꼭 집으로 데려온다. 최근에는 두꺼운 양장본 표지가 특징인 어떤 출판사 문학 시리즈의 페이퍼백 보급판도 모은다. 10년 전쯤 잠깐 나오고 절판된 시리즈인데 책 디자인이 예뻐서 눈에 띄면 나의 선택을 받는다.

이렇게 중고서점 곳곳을 누비다 보면 한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걷기도 하지만 서 있기도 하고, 때론 허리를 굽히거나 무릎을 굽히며 서가의 책을 구경하다 보면 무척 피곤해진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은 보물을 찾게 되면 그 피곤은 싹 사라진다. 난 어떤 중고서점의 ‘플래티넘’ 회원 자격을 꽤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위주로 서적을 진열한 대형서점 서가. 사진=강대호 북칼럼니스트.
베스트셀러 위주로 서적을 진열한 대형서점 서가. 사진=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중고서점을 나와서는 대형 서점 두 곳을 차례로 방문한다. 내가 중학생 때 처음 종로서적을 가봤을 때 느꼈던 책들로 뒤덮인 그런 장엄함은 더는 느낄 수 없다. 종로서적은 건물 전체가 책으로 높다랗게 그리고 미로처럼 빼곡히 둘러싸였었다. 가장 좋았던 건 동네 서점과는 달리 아무리 책을 펼쳐 읽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길고 높다란 책들의 미로에 갇힌 중학생 소년은 그 후 책을 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요즘 대형 서점에 가면 커다란 문구점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언젠가 아들이 서점에 다녀온다고 해서 이제 책 좀 읽으려나 해서 기특하게 생각했더니 책은커녕 핸드폰 액세서리만 잔뜩 사 왔었다. 대형 서점은 최신 IT 기기나 음향 기기의 트렌드까지 엿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대형 서점의 그런 분위기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나는 문구류도 좋아해서 맘에 드는 펜이나 노트를 모으는 것도 즐긴다.

우리 동네 대형 서점을 들어서면 입구에 각종 이벤트 안내가 있다. 거의 문구류나 전자제품 할인 행사다. 매주 서점을 방문하다 보니 어떨 때는 책 코너가 구색 갖추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공간 구성도 그렇고 상품 구성도 문구 코너가 책 코너보다 비중이 더 큰 듯하다. 문구 코너의 주력 상품 진열은 자주 바뀌지만, 책 코너는 몇 달 동안 그대로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대로라는 말은 책 구성이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다. 적어도 내가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 동네 대형 서점을 들어서면 입구에 각종 이벤트 안내가 있다. 거의 문구류나 전자제품 할인 행사다. 매주 서점을 방문하다 보니 어떨 때는 책 코너가 구색 갖추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사진=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우리 동네 대형 서점을 들어서면 입구에 각종 이벤트 안내가 있다. 거의 문구류나 전자제품 할인 행사다. 매주 서점을 방문하다 보니 어떨 때는 책 코너가 구색 갖추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사진=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지난 몇 달 지켜본 바로는 내 눈에 띄는 새 책이 별로 없었다. 매대는 지난주와 달라진 모습은 아니고 지난주는 그 지난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조금씩은 달라졌겠지만 내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는 의미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읽고 싶은 책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고.

베스트셀러 코너도 거의 변동이 없다. 여러 달 동안 같은 책이 순위권에서 움직이질 않는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순위에 오른 책 중에는 없다. 출판사들이 (서점에 돈을 내고) 광고하는 책들을 눈에 띄는 곳에 배치하긴 했지만 역시 내가 읽고 싶은 책은 아니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여러 달 우리 도시의 서점을 관찰하다 보니 구색만 갖추고 다양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방문객들에게 보여주는 절대 개수가 적고 다양하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팔리는 책만 눈에 띄는 곳에 진열하고 있다는 그런 느낌.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서 새로 나왔다고 알려준 책이 궁금해서 신간 코너에서 찾아보지만 안 보일 때도 있다. 매대 옆 컴퓨터로 검색해보지만 아직 재고를 들여놓지 않았다는 메시지다. 물론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 정보가 인터넷이나 모바일에 친절하게 나와 있다. 그리고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주문하면 편하긴 하다.

꼭 사야 한다는 확신이 드는 책이 있으면 난 모바일 당일 배송으로 산다. 하지만 나는 서점에서 책 내용은 물론 편집 디자인과 표지 디자인까지 확인하며 사는 걸 더 좋아한다. 크기는 어떤지 무게감은 어떤지 느껴도 보고 어떤 종이를 썼는지 페이지를 넘기는 촉감은 어떤지 만져도 본다. 심지어 반사도는 어떤지 직접 조명과 간접 조명에 비춰보기도 한다.

 

이탈리아 정부가 영업 재개를 허용함에 따라 20일(현지시간) 다시 문을 연 로마의 서점에서 손님이 책을 고르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전국의 서점과 문구점,유아 의류ㆍ용품 판매점에 한해 영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AFP(연합뉴스)
이탈리아 정부가 영업 재개를 허용함에 따라 20일(현지시간) 다시 문을 연 로마의 서점에서 손님이 책을 고르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전국의 서점과 문구점,유아 의류ㆍ용품 판매점에 한해 영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AFP(연합뉴스)

때론 광고에서도 접하지 못한 좋은 책을 매대에서 만날 때가 있다. 그런 보물은 집에서 받아보는 책 정보로는 알아보기 어렵다. 현장 탐험을 해야 겨우 찾을 수 있다. 난 과거에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지금은 방송을 타서 유명해진 ‘올리버 색스’의 에세이가 그렇고 한국에서 팬덤이 생기기 시작한 (애니메이션 ‘펭귄 하이웨이’의 원작자) ‘모리미 도미히코’의 소설이 그렇다.

그런데 지난 석 달 우리 도시에 자리한 대형 서점들의 책 구색은 영 아니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랬다. 읽고 싶은 새 책이 있으려나 해서 방문하지만, 그 전주와 크게 달라진 모습은 아니었다. 지난주까지는 그랬는데 이번 주는 또 어쩌려나.

광화문이나 강남의 대형 서점과 비교해서 면적이 작아서 그런가. 그런데 그곳과 책 구성을 비교하려고 해도 가본지 여러 달이다. 우리는 지난 석 달여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사는 곳과 일하는 이 도시를 떠나지 못했고, 대중교통으로 30분 정도 걸리는 서울을 못 간 것이다.

사람들이 지난 몇 달간의 자발적 격리에 많이 답답해하는 듯하다. 그래서 5월 연휴 기간에 전국의 관광지가 들썩일 것이란 예측이 있다. 나도 바다나 산을 가고 싶다는 바람이 있지만, 서울 강남과 광화문의 대형 서점에 가고 싶다는 바람이 더 크다. 지난 몇 달 동안 만나지 못한 책들이 그곳에는 꼭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평소에 만나지 못한 새로운 책들을 만나는 게 어쩌면 내게 큰 휴식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 ‘사회적 거리 두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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