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통신] 코로나보다 무서운 인도네시아 방역격리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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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통신] 코로나보다 무서운 인도네시아 방역격리 조치
  • 배동선 자카르타 통신원
  • 승인 2020.04.2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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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300~400명씩 신규 확진자 발생...방역조치 느슨
한국교민 감염 확진자는 아직없어...격리시설 낙후 '공포감'
5월중순 최대명절에 방역전선 무너질수도...경제침체에 폭동우려도
배동선 통신원
배동선 통신원

[오피니언뉴스= 배동선 자카르타 통신원] 지구촌이 팬데믹 위기에 빠진 가운데, 인도네시아에서도 코로나 상황이 국내 모든 이슈들을 뒤덮고 있다. 등 뒤로 바짝 다가온 코로나-19 사태가 인도네시아 교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형국이다.

마지막 '자카르타 통신'을 보낸 지난 3월 30일 당시 인도네시아는 코로나 확진자 1414명에 사망자 122명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20일이 지난 4월 21일 현재 누적확진자 7135명, 사망자 616명을 기록했다. 

매일 300~400명씩 늘어나는 확진자 수치는 곧 한국 누적확진자를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8.6%라는 높은 치명률은 지역감염이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황이고, 검사가 위독한 중증환자들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뜻한다.

인접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인구 1백만명 당 각각 평균 1만6203명과 2988명을 검사했으나 인도네시아는 136명에 불과하다. 무증상 감염자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무섭게 확산되는 코로나 감염사태

전체 확진자의 절반 이상이 발생, 인도네시아의 코로나 바이러스 진원지가 된 자카르타의 주정부는 지난 3월 20일 역내 모든 학교의 원격 수업과 기업들의 재택근무를 권고했다. 이어 중앙정부의 승인을 얻어 4월 10일부터 ‘대규모 사회적 규제(PSBB)’라는 강제조치를 확대 실시했다.

아니스 바스웨단 자카르타 주지사는 당초 도시봉쇄 수준의 보다 강력한 조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임기 내 동부 깔리만탄으로 행정수도를 옮기기로 하고 이를 위한 경기부양과 투자유치에 전력하고 있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중앙 정부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현재 자카르타에 인접한 수도권 위성도시들과 서부 자바에서도 PSBB가 실행되고 있다. 이들 지방정부들은 최소 1억 루피아(약 780만원) 벌금 또는 1년 이하 징역의 벌칙을 앞세워 5인 이상의 모임, 허가없이 영업하는 업소들을 철저히 단속하고 있다.(보건, 식료품, 에너지, 통신, 유통, 생필품 및 전략산업 등은 제외) 대중교통도 오전 6시~오후 6시 사이로 단축 운행토록 했고 민간차량은 정원의 절반 이상을 태울 수 없게 했다.

방역당국의 코로나 방역조치 강화로 인도네시아에서 오토바이는 물품운송만 가능하다. 4인승 차량은 3명, 7인승 차량은 4명만 탑승하도록 강제했다. 출처= 일간 꼼빠스 그래픽
방역당국의 코로나 방역조치 강화로 인도네시아에서 오토바이는 물품운송만 가능하다. 4인승 차량은 3명, 7인승 차량은 4명만 탑승하도록 강제했다. 출처= 일간 꼼빠스 그래픽

자카르타 주정부는 당초 4월 23일까지로 계획했던 PSBB 조치를 무기한 연장한다는 입장을 일찌감치 시사했다. 수도권 감염상황이 여전히 악화일로에 있고 그간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생활방역으로 완화하려던 싱가포르에서 최근 코로나 감염사태가 재폭발한데 따른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전 산업, 그 중에서도 특히 여행, 호텔 항공, 소매, 외식사업들에 직격탄을 날리면서, 수많은 서민들의 생계가 끊기다시피 하는 상황이다. 4월 15일까지 1642개의 호텔들이 잠정 휴업에 들어갔고 올해 직장에서 밀려난 280만명중 절반이 임시해고 상태에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긴급구제책을 내놓으며 대응에 부심하고 있다. 올해 예산 중 코로나 대책으로 405.1조 루피아(31.4조원)를 재배정해 ▲보건 부문에  75조 루피아(5.9조원) ▲사회안정망 확충에 110조 루피아(8.6조원) ▲중소기업 지원에 70.1조 루피아(5.5조 원) ▲경제회복에 150조 루피아를 투입하기로 했다. 팬데믹 피해를 입은 빈민들에게 가구당 60만 루피아(한화 4만7천원)씩 현금 또는 현물로 3개월 간 지원키로 했다. 하지만 해묵은 관료주의의 폐해로 인해 집행 속도가 더디다.

PSBB 시행이후 치안당국은 시내 고층건물 입구를 막고서 입주기업들에 자택근무를 강제하기도 했다. 가동허가를 받은 생산공장들이라도 수출 오더가 속속 취소되고 자재수급이 지연되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자카르타 전역에서 4월 17일 현재 PSBB 조치 위반으로 임시 폐쇄된 회사들은 모두 23개. 

바흐릴 라하달리아 인도네시아 투자조정청장이 일주일전 버카시 군 현대자동차 공장건설현장과 자카르타 북부 보세공단 한인봉제업체를 방문해 한인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저임금인력에 기반한 제조업을 운영하는 현지 한인사회는 코로나 사태의 파괴력을 결코 피할 수 없는 구조다.

감염의심자 격리시설, 아무런 보호장구 없어 '더 불안'

한인중에는 아직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진 않았다. 그러나 한국으로 귀국한 한인중에는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에 동포사회가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공오균 코치가 신속진단키트 검사 양성이 나와 신태용 감독을 비롯한 한국인 코치진 전원이 4월 4일 귀국한 일도 있었다. 

최근 동포사회에 큰 충격을 던진 사건은 지난 4월 9일 자카르타 북부 끌라빠가딩 지역의 한 아파트에서 방역당국이 외국인들만 대상으로 진행한 검사에서 한국인 한 명이 양성판정을 받아 현지 시설에 격리된 사건이다.

교민 A는 코로나 격리병동으로 임시 개조된 끄마요란(Kemayoran)지역 아시안게임 선수촌 아파트에 격리됐는데, 음식이나 물품반입도 자유롭지 않은 상태에서 별다른 보호장구나 방역 프로토콜도 없이 감염의심자들과 같은 공간을 사용해야 했다. 이런 격리된 환경을 A씨가 유튜브 영상을 통해 알리면서 교민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A씨는 5일간의 격리생활 끝에 유전자 증폭검사(PCR)에서 최종 음성확정을 받고 퇴원해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지난 17일부터 4월 말까지 남부 자카르타 끄망빌리지 아파트 입구를 비롯한 수도권 3곳에서 한국식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가 설치됐지만, 양성 판정이 나면 무조건 선수촌 병동으로 격리시킨다는 얘기에 한인 동포사회에서 공포감이 고조되어 있다. 

때문에 상황이 허락하는 한 교민 가족들은 비싼 항공 티켓가격에도 한국으로 이미 떠났거나 자녀들의 법정 학교출석일수를 채워 서둘러 귀국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귀국한 교민들의 소식이 또 동포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이 입국자 전원에 대해 의무적인 코로나 검사, 자가격리를 실시하고 있는데, 한국정부가 입국자 개개인에게 보내준 격리물품들의 내용과 퀄리티에 감격한 교민들의 후기가 계속 SNS를 통해 알려지고 있다. 

더욱이 매일 업데이트되는 본국의 성공적인 방역과 신속진단키트와 코로나 구호물품을 통한 외교 소식에 재인도네시아 한인동포들의 자존감과 자긍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상황이다. 

한국 정부가 인도네시아에서 입국자 교민 가족에게 보내준 개인 격리물품 3인분. 사진 제공= 조은아 교민
한국 정부가 인도네시아에서 입국자 교민 가족에게 보내준 개인 격리물품 3인분. 사진 제공= 조은아 교민

5월 위기설...경제 침체로 '폭동사태' 우려도

한편 국가개발계획위원외(Bappenas)와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UI) 보건전문가들은 지난 3월 하순 시뮬레이션을 통해 정부가 선제적 대응조치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지 않을 경우 4만7984~24만244 명 사이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설령 최선을 다한다 해도 최소 50만 명의 감염자와 1만1898명의 사망자를 낳을 것이며, 아무런 조치없이 놔둔다면 감염자 수치가 최대 250만 명에 육박할 것이란 분석도 내놨다.

아랍의 이슬람 국가들조차 감염병 확산을 우려해 올해 참배와 순례를 축소하거나 폐지한 마당에 아직도 상당수의 인도네시아인들은 지방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세기 동안 지켜온 라마단 금식월의 종교행사과 '이둘피트리' 귀성행렬을 고집하고 있다. 중앙 정부는 이 위험한 사안을 적극적으로 금지하지 않고 있다. 

'이둘피트리'는 이슬람력 금식월인 라마단이 끝난 다음 샤왈(달)의 첫날 금식월을 잘 견뎌낸 것을 기념하는 이슬람 최대 명절이자 축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이틀간의 공식휴일과 앞 뒤 2~3일의 연계휴일을 끼워 보통 1주일 정도 휴무하고 공장들은 2~3주를 쉬기에 귀성행렬이 벌어진다. 

인도네시아내에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사태의 진원지가 된 자카르타는 '대규모 사회적 규제'를 실시, 주민들의 이동을 제한하고 있다. 사진= EPA/연합뉴스
인도네시아내에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사태의 진원지가 된 자카르타는 '대규모 사회적 규제'를 실시, 주민들의 이동을 제한하고 있다. 사진= EPA/연합뉴스

한편 국민 상당수의 생계가 끊기고 있는 와중에 국가 최대 명절이 임박하면서 폭동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5월 중순이 되면 이미 두 달 넘게 엄청난 영업손실을 입은 기업들은 대부분 장기 휴무 중인 직원 전원에게 '이둘피트리' 상여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정부예산이 배정되어 있겠지만 관련 처리가 매끄럽지 못할 것으로 보여 사회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지난 4월 15일 대통령 집무실은 경찰청 치안첩보국(Baintelkam)과 화상회의를 통해 폭동예방을 비롯한 치안문제를 협의했다. 그 며칠 전인 4월 11일 ‘부자를 죽여라’는 구호를 담벼락에 그리며 약탈과 소요를 선동한 10대 5명이 수도권 위성도시인 땅그랑에서 검거된 사건도 있었다.

인도네시아 경제는 코로나 사태를 맞아 크게 위축되고 있다. 세계은행 총재를 역임한 스리 물야니 인드라와티 재무장관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최대 2.3%로 조정하고 최악의 경우 GDP가 0.3% 수축할 수도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1998년 수하르토 대통령을 하야시킨 태국발 외환위기 때처럼 인도네시아 경제가 거품이 잔뜩 낀 것은 아니지만 그때만큼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화폐가치가 급락하는 등 여러 신호들이 보이면서 5월 하순 '이둘피트리'를 전후해 사회불안이 최고조에 달할 것이라는 우려다.  

절체절명의 방역과 임기내 이루어야 할 원대한 계획을 위한 조속한 경기부양 사이에서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정부. 머지않아 어느 쪽으로든 야무진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고 2만5천여 명에 달하는 우리 동포사회는 그 결단에 따른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배동선 자카르타 통신원은 1995년 당시 (주)한화 무역부문 주재원으로 인도네시아에 입성했다. 2016년 제18회 재외동포문학상 소설부문 수상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인도네시아 통신원을 지냈고, 재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편찬위원회 공동 총괄편찬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가 있고, 한국외대 양승윤 명예교수와 함께 <막스 하벨라르>를 공동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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