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저 계급론’…증오만 쌓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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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 계급론’…증오만 쌓을 것인가
  • 김인영 발행인
  • 승인 2015.11.1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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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자괴는 사회의 병…청년들의 창의성이 사회발전 원동력

 

‘수저 계급론’이 유행하고 있다. 영어 속담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라는 표현에서 착상한 유행어인 듯 하다. 부잣집에서 태어난 아이를 은유한 표현인데, 최근 한국 젊은 세대의 상황을 대변하는 용어로 정착되고 있다.

 

최근 퍼지고 있는 ‘수저 계급론’은 금수저에서 은·동수저, 흙수저까지 부모의 재산에 따라 자식의 경제적 지위가 결정된다는 내용이다. 심지어 다이어몬드 수저, 플래티늄(백금) 수저까지 나왔다.

한 방송사에서는 수저 계급론을 주제로 한 드라마를 상영할 예정이다. SBS가 12월에 방영할 드라마 ‘리멤버’는 주인공이 흙수저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주인공은 고교 동창인 부잣집 아들의 비서를 맡아 비굴한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부모를 잘만난 자와 부모의 실패를 안고 사는 자의 삶을 그려 낸다는 것. 세태를 반영한 드라마 상술인 것 같다.

▲ 수저 계급론은 헬조선을 넘어 젊은 세대의 계급 상속을 비하하는 말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부모를 잘 만나야 루저를 면한다’, ‘누구는 금수저를 타고났냐’는 등의 불만이 터져 나온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얼마전까지만 해도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했다. 지옥이라는 뜻의 ‘헬(Hell)’이란 단어에 한국을 비하한 ‘조선’을 붙인 용어다. 인터넷 신조어로 만들어진 ‘헬조선’은 청년실업 문제, 경제적 불평등, 열정페이라고 불리는 과도한 노동을 비꼬는 말이다. 광범위한 개념으로 세대 갈등에서 표철된 젊은 세대의 표현이다. 헬조선을 대변하는 용어가 ‘3포 세대’다. 연애와 결혼, 취업을 포기하는 젊은 세대를 자조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수저 계급론은 헬조선을 넘어 젊은 세대의 계급 상속을 비하하는 말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부모를 잘 만나야 루저(looser)를 면한다’, ‘누구는 금수저를 타고났냐’는 등의 불만이 터져 나온다.

 

부모의 재산에 따라 자식의 경제적 지위가 결정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경제개발이 시작된 1970년에서 2013년까지 한국에서의 부와 상속에 관한 연구 결과를 냈다. 김 교수가 낙성대경제연구소 홈페이지에 공개한 논문에 따르면 상속·증여가 전체 자산 형성에 기여한 비중은 1980년대 연평균 27.0%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 29.0%가 됐고 2000년대에는 42.0%까지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소득 대비 연간 상속액의 비율은 1980년대 연평균 5.0%에서 1990년대 5.5%, 2000년대 6.5%로 높아졌다. 2010∼2013년 평균은 8.2%로 뛰었다.

김 교수는 "어느 지표로 봐도 우리나라에서 상속의 중요성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상속 비중은 아직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고령화와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한국에서는 상속 자산의 기여도가 점차 높아져 머지 않아 서구 국가들을 따라잡거나 넘어설 가능성이 상당히 큰 것으로 분석됐다.

김 교수는 또다른 논문에서 국세청의 2000∼2013년 상속세 자료를 분석해 한국사회 부의 분포도를 추정했더니, 우리나라에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20세 이상 성인을 기준으로 한 자산 상위 10%가 2013년 전체 자산의 66.4%를 보유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0∼2007년 연평균인 63.2%보다 부의 불평등 정도가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상위 1%는 전체의 26.0%를 차지해 역시 2000∼2007년(24.2%)보다 불평등이 심화됐다.

이에 비해 하위 50%가 가진 자산 비중은 2000년 2.6%, 2006년 2.2%, 2013년 1.9%로 갈수록 줄고 있다.

 

“어떻게 부자가 됐는가”라는 이슈는 많은 사람이 궁금해 하는 주제다. 크게는 두가지다. 부모로부터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거나, 자수성가해서 당대에 부자가 되는 길이다.

미국의 온라인 경제정보업체인 「하우머치(HowMuch.net)」는 얼마전에 세계 각국에서 부자가운데 유산상속의 비율이 높은 나라를 빨강색으로, 자수성가의 비율이 높은 나라를 파랑색으로 표시한 지도를 공개했다.

이 지도에 따르면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스페인에는 자수성가형 부자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상속형 부자가 많았다.

이 지도에서 한국은 유산상속형 부자가 자수성가형 부자보다 많은 빨강색으로 표시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자수성가형 부자가 상속형 부자보다 더 많은 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 최대부자 3명(①미국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②스페인의 아만시오 오르테가 인디텍스그룹 회장 ③멕시코의 카를로스 슬림 텔맥스텔레콤 회장)이 자수성가형 부자다. 이들 세명은 아버지 덕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상속받은 프랑스 로레알 그룹의 상속녀 릴리안 베탕쿠르보다 부자라고 한다.

수저 계급론이 인터넷을 통해 크게 유행하고 있지만,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야당은 젊은 세대의 불만을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이려는 정치적 제스츄어에 급급하는 모습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최근 "국민이 현실비판적으로 되는 이유는 교과서 논란 때문이 아니라 부모의 부와 배경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수저 계급’ 사회, 대한민국 현실의 척박함 때문"이라며 "과감한 소득재분배 정책과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이 청년수당 또는 청년 배당을 신설할 하려 하자, 정부와 여당에서 반대론을 펼치고 있다.

야당의원들은 부모를 잘못만나 채용에 불이익을 받고 있는 ‘흙수저’들을 위해 채용절차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새정치민주연합 한정애 의원은 "입사전형의 첫 단계인 서류 전형에서 부모의 직업, 재산 등을 기재토록 하면 이른바 '흙수저' 논란은 영원히 가라앉지 않을 것"이고 주장했다.

수저 계급론이 젊은이들의 급진성향으로 이끌 가능성이 있다. 최근 교과서 국정화 반대시위 와중에 어느 여고생이 ‘프롤레타이라 레볼류션’을 주장하는 동영상이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 여고생이 공산 혁명을 얼마나 알지 의구심이 들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 퍼져나가는 계급 의식의 단초를 발견한다.

 

헬조선이든, 수저 계급론이든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결과다. 지난 50년 경제개발 과정에서 ‘개천에 용났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세대 전에는 시골 깡촌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의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게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정주영과 같은 사람도 크게 사업을 일으켰는데, 지금은 재벌 2세, 3세가 돼야 한다. 한미약품의 신기술이 해외에 수출돼 대박을 터트리자, 창업자의 손주들이 수천억대 부자가 된 사실이 뉴스가 되고 있다.

 

젊은 세대도 좌절만 할게 아니라, 창의력을 가지고 사회에 뛰어들어야 한다. 앞으로의 한국은 기성세대의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가 주인공이 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한국을 방문한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한국 젊은이들에게 큰 기대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최고 인재들이 성공하려면 차세대 사업가들이 더 분발해야 한다고 생각해 구글 캠퍼스를 서울에 열었다. 한국에 기반을 두면서 한국의 기술을 활용해 글로벌한 제품을 만든 기업이 성공한다. 세계의 리더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한국에서 창업하길 바란다.

젊었을 때에 나이가 더 들어서는 할 수 없는 위험을 부담해야 한다. 계속 시도하고 도전하면서 실패를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은 짧다. 지금 바로 창업하라.“

세계 굴지의 기업가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강한 기대를 걸고 있는데, 한국의 젊은 세대는 스스로 자조에 빠져 있는 것이다. 지나친 자괴감은 사회를 병들게 하고, 스스로의 발전을 저해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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