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7번 낙마後 우승한 최초 여성기수 이야기...영화 '라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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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7번 낙마後 우승한 최초 여성기수 이야기...영화 '라라걸'
  • 김이나 컬쳐에디터
  • 승인 2020.04.23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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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0번 레이스, 16번 골절상, 7번 낙마후 멜버른컵 우승한 '미셸 페인'의 실화
'여성으로서', '여성답게' 남성과 대등하게 겨뤄 우승 쟁취
인생의 레이스에서 참고 기다리면 기회온다는 메세지 전달
호주 멜버른 컵 최초 우승자. 미셸 페인. 사진=IMDb
호주 멜버른 컵 최초 여성우승자 미셸 페인 (테레사 팔머 분). 사진=IMDb

 

[오피니언뉴스=김이나 컬쳐에디터] 여성 단독 주연의 영화다. 아니나 다를까 감독도 여자다. 얼마전 개봉됐던 '작은아씨들'의 경우도 여성 감독 그레타 거윅이 연출했다. 아직 국내에 개봉되지 않은 흑인여성 인권 운동가 해리엇의 이야기를 다룬 '해리엇' 역시 여성 감독 카시 레몬이 연출을 맡았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아니, 여자의 편은 여자다. 여성의 스토리에 귀를 기울이고 여성들에게 희망을 주고 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할리우드발(發)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 된 거물 제작자 '와인스타인'의 스캔들로 영화계가 흉흉해지면서 더욱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굳이 '라라걸'로 영화명을 번역한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원제는 'Ride Like a girl'.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거친 레이스로 꼽히는 호주 멜버른 컵 최초 여성 우승자 미셸 페인의 실화를 담았다.
남녀 모두가 참가 가능한 대회지만 미셸이 우승하기 전 155년 동안 단 한 번도 여성 기수가 우승하지 못했다.

드넓은 목장에서 아버지와 9명의 언니오빠와 살고있는 막내 미셸. 생후 6개월만에 사고로 엄마를 여의었다. 사진=네이버영화
드넓은 목장에서 아버지와 9명의 언니,오빠와 살고있는 막내 미셸(가운데 의자에 앉은 이). 생후 6개월만에 사고로 엄마를 여의었다. 사진=네이버영화

3200번의 경기 출전, 16번의 골절, 7번의 낙마

집보다 마굿간이 더 편한 아이 미셸(스텔라 팔머).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담요를 들고 마굿간으로 향한다. 광활한 목장에서 아버지 패디(샘 닐)와 9명의 언니, 오빠와 살고 있는 막내 미셸은 생후 6개월만에 사고로 어머니를 여의었다. 아버지와 언니, 오빠들의 보살핌 아래 평범한 목장소녀로 성장해 가지만 미셸 역시 언니, 오빠들처럼 기수가 되고 싶은 꿈이 있다.

역대 멜버른 컵 우승자와 경주마의 이름을 줄줄 외우고 마굿간에서 놀다가 학교에 지각하기 일쑤인 미셸에게 말을 타는 것은 삶 그자체 였던 것이다. 언니처럼 훌륭한 기수가 되고 싶지만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경기에 나가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던 중 언니 브리짓(아넬리세 앱스)이 경기 도중 낙마로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의 반대는 더 완강해진다.

하지만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셸은 꿈을 이루기 위해 도시로 떠난다. 그곳에서 마주(馬主)들의 눈에 들기 위해 기회를 달라며 허드렛일도 마다않으며 기다린 미셸. 결국 기회를 얻어 경기에 출전하지만 결승선에 가장 먼저 들어오면서 말이 넘어지고 미셸은 낙마한다. 

골절, 뇌출혈, 언어장애 등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 미셸은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재활에 성공, 꿈의 레이스 멜버른 컵에 도전한다. 미셸은 경주마로선 많은 나이인 6살에 여러번의 부상으로우승 확률 1%에 불과했던 ‘프린스 오브 펜젠스’를 운명적으로 만나, 여성기수로 겪었던 불신과 편견을 딛고 멜버른 컵 우승을 차지한다.  

미셸은 멜버른 컵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3200번의 레이스에 출전했고 16번 골절을 당했으며 7번이나 낙마했다.

155년 역사에서 멜버른 컵에 우승한 최초의 여성 기수 미셀 페인. 사진=네이버영화
155년 역사에서 멜버른 컵에 우승한 최초의 여성 기수 미셀 페인. 사진=네이버영화

 

'Like A Girl', 여자는 여자답게? 그 숨은 의미는…

한동안 SNS와  유튜브에서 펼쳐졌던 글로벌 캠페인 '#LIKEAGIRL'은 세상 모든 여성들을 응원하는 메세지다. '여자처럼 굴어라', '여자니까 이래야 한다'는 통념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됐다. '#LIKEAGIRL'은 '#나답게', '#여성으로서' 행동하고 세상에 나아가는 여성들을 응원하며 여성의 연대를 더욱 공고히 만드는데 기여했다. 원제에 포함된 'Like a girl'은 그래서 여성으로서 남성들과 대등하게 겨뤄 우승을 쟁취한 미셸의 스토리를 더욱 실감나게 만들었다.  

영화 '라라걸'에서 여기수의 대기실이 쪽방처럼 만들어졌다던가 남성기수들이 태연하게 여성 기수에게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장면 등은 영화의 배경이 2015년임을 의심케 한다. 21세기에도 아직까지 남아있는 성차별적 환경과 남성 우월적인 편견 속에서 앞서나간 여성들의 행동은 정말 갚진 것이다. 미셸이 우승하기 까지만 해도 멜버른 컵 155년 역사상 여성 참가자는 단 4명뿐이었다고 한다. 미셸의 우승은 멜버른 컵의 역사를 다시 썼으며 많은 여성들에게 용기와 감동을 주었다.

감독 레이첼 그리피스는 미셸이 우승한 멜버른컵 경기를 실시간으로 지켜본 후 우승자 미셸의 자료를 찾아보고 영화화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감독과 각본가(엘리스 맥크레디), 주연(테레사 팔머) 이 모두 여성으로 ‘트리플 F등급' (여성 감독,여성 작가,여성 주연 영화)으로 분류된다. 그외 주요 제작파트의 팀장도 모두 여성이 맡았고 카메라 팀도 과반수가 여성으로 구성되어 진정한 여성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미셸은 그 후 2016년 호주 스포츠 명예의 전당이 수여하는 '돈 어워드(The Don Award)'를 수상했고 현재는 다운증후군을 안고 있는 오빠 스티비와 함께 목장을 운영하며 다시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미셸을 항상 지켜준 마필관리사이자 친구인 스티비는 직접 영화에 출연했으며 특유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촬영장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는 후문.

최고의 코치 아버지 패디가 미셸에게 가르쳐준 최고의 기술은 ‘인내심’이었다. 처음부터 선두로 달리다 보면 체력이 버티지 못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며 긴장을 늦추지 말고 말과 말 사이로 ‘틈’이 보이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파고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데 그 '틈'을 보기 위해서는 기회가 올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만 한다. 7번의 낙마를 딛고 다시 일어선 미셸은 자신의 경주에서 그 기회를 기다리는 인내심을 발휘했다.

인생이라는 레이스. 지금 예상하지 못한 위기 속에 달리는 말에서 떨어져 다시 일어설 수 없으리라 좌절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참고 기다린다면 다시 그 '틈'은 보일 것이다. 나의 레이스에서 우승하기 위해 조금 더 힘을 내서 달려보자.   

한편 멜버른 컵은 1861년 170파운드 상금을 놓고 17명의 기수와 말이 경주한 이래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마대회로 자리 잡았다. 매년 11월 첫째주 화요일 오후 3시 멜버른시 근교의 플레밍턴 경마장에서 열리는데 멜버른 컵이 열리는 11월이 되면 세계 각지에서 최고의 경주마와 조련사, 기수 등이 한자리에 모여 기량을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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