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헌 칼럼] 온라인 강의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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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헌 칼럼] 온라인 강의를 위한 변명
  •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 승인 2020.04.1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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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충격이 '경로의존적 타성'을 무너뜨리는 계기 될 수 있어
미지에 대한 두려움 이겨내고 과감한 경제정책 시도할 필요
주동헌 교수
주동헌 교수

[주동헌 한양대 ERICA 경제학부 교수] 세상 일이라는 게 암(暗)이 있으면 명(明)도 있는 법이구나 싶다. 코로나19로 국가간 이동이 금지되고 도시에서도 이동이 제한되면서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하지만 멈춰 선 인간의 활동 덕에 베니스의 맑아진 수로에는 물고기가 돌아오고 수십 년 동안 스모그에 갇혔던 뉴델리에는 파란 하늘이 돌아왔다. 미세먼지로 신음하던 한국의 봄 공기도 올해는 상쾌한 날이 많아 보인다. 영화 매트릭스의 대사처럼, 지구에 가장 해로운 병균이나 바이러스가 인간이 아니었나 자문할 정도다.

코로나19로 대학은 2주나 개강을 미루고도 이번 학기를 통으로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해야 하는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학생들은 온전하지 못한 학사일정에 등록금 일부 반환을 요구하고 강의자들은 갑작스러운 온라인 강의 준비에 어려움을 토로한다. 하지만 여기도 다 나쁘지만은 않다. 코로나19로 강제된 온라인 강의가 관성에 따라 고수하던 과거의 교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자극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놀라운 ZOOM, 온라인강의에 큰 도움

언론에서는 갑작스럽게 진행되고 있는 온라인 강의에 대해 문제점과 학생들의 불만을 중심으로 보도를 하고 있지만, 온라인이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짧은 준비 기간에 강의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강의자들의 노력이 없을 리 없다. 대학의 강의 지원을 위한 전산 시스템이 활용도가 높지 않았던 온라인 강의 기능을 포함하고 있었던 것은 지금 시점에서 매우 다행스러운 낭비였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대학 강의 지원 시스템 이외에도 많이 알려진 것처럼 ZOOM을 실시간 온라인 강의에 활용하는 경우가 꽤 있다. 나도 학과 동료 교수의 제안으로 ZOOM을 활용하여 진행된 화상회의를 경험하고서는 ZOOM으로 실시간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수강자 입장에서는 강의실 환경만 못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강의자 입장에서는 이 좋은 강의 도구를 왜 몰랐나 싶다. 최근 제기된 보안상의 문제를 차치하고 보면 PC와 펜으로 화면에 필기가 가능한 태블릿을 동시에 활용하여 온라인으로 학생들과 소통하면서 진행하는 강의는 가히 신세계다.

사실 대학은 꽤 이전부터 IT 기술을 이용한 온라인 강의를 유도해 왔다. 강의실을 벗어나 사이버 공간으로 나온 강의는 강의에 대한 권리를 가진 자가 양해하기만 한다면 경합성(competitiveness)과 배제성(exclusivity)이 현저히 약화되면서 공공재로서 지식의 공유라는 이상을 실현한다.

OCW(Open Course Ware)나 K-MOOC(Korea Massive Open Online Course)같은 시도가 그러한 예이다. 또 강의 내용을 온라인으로 미리 학습하고 강의실에서는 토론이나 과제 풀이를 진행하는 형태의 flipped learning이라는 형태의 수업 방식도 시도되고 있다.

그래픽= 연합뉴스
그래픽= 연합뉴스

온라인 강의가 낯선 이유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와 같은 시도들이 대학의 강의자들에 의해 쉽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경제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네트워크 또는 밴드웨건 효과, 그리고 이들 효과를 설명하는 경로 의존성(history dependence)이 한 설명 방식이 될 수 있다.

네트워크 효과의 잘 알려진 예가 QWERTY 키보드 자판이다. 왼손과 오른손으로 자음과 모음을 번갈아 누르는 한글 자판과 달리 영문 자판은 처음 키보드를 치다 보면 자판 배열이 이상하게 불편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는 QWERTY 키보드가 타자기가 타자수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던 시절에 타자수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일부러 불편하게 만든 자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워드프로세서가 등장해 일부러 타자수의 속도를 늦출 이유가 없고, 또 더 편한 Dvorak 자판이 나왔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QWERTY 키보드 자판을 사용한다. QWERTY 키보드 자판에 익숙해진 사람은 개선된 자판이 나와도 새로운 배열을 익히기 보다는 QWERTY 자판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QWERTY 키보드 자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새로 타자를 배우는 사람들도 QWERTY 키보드 자판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아래 그림을 보자. QWERTY 자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72%를 넘으면 결국 98%의 사람들이 QWERTY 자판을 사용하게 된다. 반면 QWERTY 자판 사용자 비중이 72% 아래로 내려가면 QWERTY 자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게 된다.

이와 같은 균형은 그 균형이 효용 면에서 우월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 굳어진 관행을 특별한 외부적 충격이 없다면 이를 바꿀 이유가 없는 경로 의존성 때문인 것이다. QWERTY 비효율에서 빠져나오려면 외부적 충격에 의해 새로운 초기 값이 주어지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오프라인 강의와 온라인 강의의 관계가 QWERTY 자판과 Dvorak 자판의 관계로 온전히 치환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더디게 도입되던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강의 방법이 이번 코로나19 사태라는 외부적 충격을 계기로 그 영역을 빠르게 확장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강의 뿐 아니라 많은 조직에서 시도되던 첨단 통신기술을 이용한 비대면 업무방식이 확산되면 경제적 영역을 넘어 사회적으로 예상치 못한 변화들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로의존적' 타성 느껴지는 경제정책들

생각해 보면 코로나19 사태는 급변하는 정책 환경에도 불구하고 경로의존성으로 인해 경제정책에서 비효율적 사고 방식을 고수해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복지정책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 사이에서 제한된 재원과 인센티브 구조를 고려하여 선별적 복지를 우선해 왔다.

하지만 최근 긴급재난지원자금 정책 결정 과정은 선별적 복지를 위한 객관적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쉽지 않고 이에 수반되는 행정 비용이 만만치 않음을 드러냈다. 이는 향후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도입 논의를 촉진하는 단초가 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코로나19 사태가 재정정책 기조에 미칠 영향도 지켜 볼 일이다.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0%대에 이르고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도 재정정책 당국은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들어 재정지출 확대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코로나19 관련 국내외 경기부양책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한 우리 정부의 긴급 재정집행이 GDP 대비 1% 정도로 미국(6.3%), 영국(1.8%), 프랑스(1.8%), 독일(4.4%) 등에 비해 매우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시절 균형재정을 강조하던 올리버 블랑샤(Oliver Blanchard)가 Public Debt and Low Interest Rates(2019)라는 논문을 통해 지금과 같은 초저금리 상황에서는 국가채무 증가에 따른 자본 축적 감소 등 사회 후생 비용이 크지 않고 재정 비용이 없다는 주장을 기재부 정책 담당자들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디 코로나19가 여러 가지 경제, 사회적 측면에서 새로운 바람직한 균형으로 이동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본다.

●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1996~2011년 한국은행 자금부, 금융시장국, 조사국 등에서 근무했다. 2009년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어바나샴페인 소재)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8년부터 금융위원회 경쟁도평가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2011년부터 한양대에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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