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보수·진보 언론들마다 왜 난리쳤나...강준만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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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보수·진보 언론들마다 왜 난리쳤나...강준만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20.04.13 14:4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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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사회에 반향...강준만 전북대 교수 신간
‘정치적 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도 ‘정치적 소비자 운동’이 중요하다 역설
조선일보 왜곡 서평에 출판사 "정치적 목적으로 편협하게 책 내용 해석" 반발
사진=pixabay
사진=pixabay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지난 3월 7일 밤 조선일보 인터넷판의 어떤 ‘단독보도’가 큰 화제였다. '진보 지식인 강준만 "문 대통령, 최소한의 상도덕 안지켰다"'라는 제목이 포털에서 눈에 확 띄었다. 대통령이 보수 진영뿐 아니라 진보 진영에서도 비판받는다는 느낌을 준 제목이었다. 다음날에는 지면 1면에도 실렸다.

기사는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새로 낸 책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의 서평 형식으로 쓰였다. 주요 내용은 자기 진영에 불리한 글을 쓰는 언론에 불매 압력을 넣는 진보 진영, 80년대 운동권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시민, 조국 사태 때 보인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 등을 저자가 강도 높게 비판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기사만으로 보면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지식인 중 한 명인 강준만 교수가 문재인 정부와 진보 진영을 비판하는 책을 쓴 것이다. 하지만 기사 결론 부분이 나를 멈칫하게 했다. 강준만 교수의 말을 인용했는데 그는 “왜 우리는 일반 소비자의 갑질에 분노하면서도 약자를 상대로 한 정치적 소비자의 갑질엔 침묵하는가라는 의문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인물과 사상사 펴냄.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인물과 사상사 펴냄.

학자가 문제 제기만 하려고 책을 내지는 않는다. 그리고 문제 제기만 하는 책을 내주는 출판사는 없을 것이다. 책에는 분명 기사로 다루지 않은 다른 내용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책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어쩌면 책의 방향과 서평의 방향이 크게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간이 흐르자 다른 매체에서도 조선일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의 기사를 내기 시작했다. “강준만, 문 정권 강도 높게 비판” 등과 같은. 그런 기사들에는 댓글들이 넘쳐흘렀다. 나라가 망해간다는, ‘코로나19’ 대책이 엉망이라는, 이번 총선에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댓글들이 기사보다 더 길게 펼쳐졌다.

그런데 이튿날인 3월 8일에 강준만 교수의 책을 낸 출판사 편집장이 반론을 한 기사가 나왔다. 그는 한겨레신문 '강준만 교수 책 낸 편집장 “조선일보, 정치적 목적 침소봉대” 비판' 기사를 통해 “정치적 목적으로 편협하게 책 내용을 해석해 보도했다고 반발”한 것이다. 기사는 “서평이 1면을 장식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출판사에서 기사 내용을 반박한 것도 드문 일”이라고 했다.

편집장은 전날인 “3월 7일 오후에 신간 보도자료와 저서를 약 70여 언론사에 배포했다”고 했다. 그런데 관련 기사가 조선일보 인터넷판에 7일 밤늦게, 8일자 지면에는 1면과 2면에 실렸다. 조선일보는 책 관련 기사를 토요일에 ‘Book’ 코너에 올리는데 평일에 그것도 1면으로 배치한 것은 무척 이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출판사 주장대로라면 책을 받은 지 몇 시간 만에 완독하고 기사까지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여기서 나는 책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호기심이 생겼다. 실제 내용은 어떨까 하는. 그래서 책을 급히 주문해서 읽었고 보도자료도 꼼꼼히 살폈다.

저자 강준만 전북대 교수. 사진=인물과 사상사
저자 강준만 전북대 교수. 사진=인물과 사상사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는 주석과 참고문헌을 빼면 230여 쪽이고 모두 아홉 장으로 구성되었다. 처음 다섯 장은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사례를 구성한 것이라 술술 읽혔다. 다음 세 장은 ‘정치적 소비자 운동’ 이론을 다뤘지만, 개요 수준이라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마무리한다. 집중해서 읽으면 반나절, 길어도 하루면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저자는 정치가 불신과 혐오의 대상이 된 세상에서 “정치적 소비자 운동이 세상을 바꾸는 데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정치와 무관한 것으로 생각된 “쇼핑 행위가 정치적 행동주의의 큰 수단으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상품의 생산 과정에서부터 기업, 경영자의 행태에 이르기까지 매우 포괄적인 범주에 걸쳐 이념적, 정치적,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정치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마치 정치인에게 투표하듯이 기업에 투표한다는 은유를 담았다.

저자는 ‘정치적 소비자 운동’을 위한 문제를 제기하며 한국 사례를 든다. 남성 이용자의 의견만을 수렴하여 페미니즘을 배격하는 게임회사들, 진보 진영 비판을 허용하지 않고 무조건 감싸는 진보 진영의 모습들을 비판하며 ‘정치적 소비자 운동’과 ‘소비자 갑질’의 차이를 지적한다. 나아가 저자는 시민이 건전한 소비자로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때에야 정치도 바뀔 수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 시민이 소비자 노릇만 제대로 했더라도 정치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138쪽)

 

강준만 교수는 소비자를 등한시하는 기업, 그런 기업들을 법과 제도로 보호하는 정부와 정치인, 그런 기업과 정부와 정치인의 행태에 눈감는 언론, 그런 모두를 제대로 비판하지 않고 행동으로 응징하지도 않는 시민의 모습을 지적한다. 저자는 이런 모든 것이 쌓여서 정치가 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적 시민’으로 바르게 거듭나기 위해서라도 ‘정치적 소비자 운동’이 중요하다는 게 이 책의 주요 골자다.

강준만 교수는 분명 조선일보와 보수 언론이 좋아할 만하게 진보 진영 비판을 한다. 하지만 진보 비판이 이 책의 주제는 아니다. 조선일보가 언급한 사례들은 전체 아홉 장중 두 장에서 나온다. 두 장에서도 소비자로서의 갑질을 설명하는 사례로서 언급한다. 그렇지만 보수 언론들은 저자가 주장하는 맥락을 생략했다.

그렇다면 강준만 교수가 총선을 앞둔 이 시절에 이런 책을 낸 목적은 무엇일까.

 

“이 책은 대중서의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실은 동료 연구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중략) 사회적 소통과 관련된 중요한 사건일지라도 미디어의 주목을 받지 못하거나 미디어 관련성이 약하면 아예 연구 의제로 채택되지 못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중략) 나는 그런 의문에서 출발해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는 슬로건으로 대변되는 정치적 소비자 운동을 중요한 정치 커뮤니케이션 연구 의제로 삼을 것을 제안하고 싶다.” (219~220쪽)

 

강준만 교수는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학자로서 ‘정치적 소비자 운동’이라는 의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런 목적이라면 성공한 듯하다. 저자가 원한 게 이런 평가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보수나 진보를 망라한 언론에서 관심을 받았으니 말이다. 또한, 책에서 자신과 의견이 다른 학자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한 게 그들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니 말이다.

 

12일 서울시 종로구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18세 유권자 홍보에 활용할 포스터 및 소품'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2일 서울시 종로구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18세 유권자 홍보에 활용할 포스터 및 소품'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나는 왜 하필 총선이 임박한 이때 이 책이 나왔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강준만 교수는 “올바른 ‘정치적 소비자 운동’이 시민의 올바른 정치 참여로 이어진다”고도 했는데 좀 더 일찍 공론의 장을 열면 안 됐을까. 물론 책에서 ‘코로나19’ 사태도 언급하기에 최근까지 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자와 출판사는 이 책이 이 시점에 나와야 할 시의성과 당의성을 담았다고 판단한 것일까. 독자와 평단 그리고 학계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출판사가 보수 언론들이 책 내용 일부만 가지고 ‘침소봉대’했다고 비난했는데 과연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보도자료를 읽어 보니 책 본문도 일부 발췌되어 있었다. 거기에는 보수 언론이 좋아할 만한 문장도 많았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기사에 그대로 인용했다. 중요한 맥락은 싹 빼놓은 채.

덕분에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는 보수와 진보 미디어를 구분하지 않고 며칠 동안 소개되었다. 책의 맥락과는 상관없는 일부 내용만으로 쓰인 서평 덕분에 독자들의 뇌리에 박힌 책이 된 것이다. 설마 이런 결과를 원한 건 아니었겠지. 언론은 자기 진영 선거 홍보에 이용하고 출판사는 그런 입소문을 이용하는 그런 결과.

4월 15일 총선을 앞두고 마트에서 소비자를 유혹하는 미끼 상품처럼 유권자의 귀와 눈을 쏠리게 하는 이슈가 쏟아져 나온다. 어쩌면 세상에 없는 사건이 갑자기 드러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부분에 얽매이기보다 전체 맥락을 바로 보는 시민의 성숙한 시각이 중요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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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하이 2020-05-18 15:11:20
물론, 책이 많이 팔려야 수입도 많아지고 논쟁도 일어나게 되는 것이니까 시점을 맞춘 거라고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