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 칼럼] ‘배달의 민족’ 기업결합, 우려가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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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수 칼럼] ‘배달의 민족’ 기업결합, 우려가 더 커졌다
  • 최남수 서정대 교수, 전YTN사장
  • 승인 2020.04.14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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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료 변경 시도는 ‘집단사고’ 탓인가
코로나19 타격 큰 업주 부담 먼저 줄여줬어야
99% 시장 점유 기업결합 바람직하지 않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세계 흐름에도 역행
최남수 서정대 교수
최남수 서정대 교수

[최남수 서정대학교 교수, 전 YTN사장] 코로나19 사태로 누구나 그랬겠지만, 필자 가족도 배달을 자주 이용했다.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배달되는 식료품. 평소와 다름없이 주문 후 이른 시간에 맛볼 수 있는 다양한 음식. 처음엔 단골 음식점에서 직접 배달을 받다가 배달 앱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거리두기’ 차원에서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음식 값을 내야 하는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 더욱 절감했지만 한국은 말 그대로 온라인 쇼핑과 배달 강국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 사회가 사재기 파동으로 부끄러운 민낯을 보인 것과 대조적으로 사재기 소동이 전혀 없었던 것은 온라인 쇼핑과 배달에 대한 강한 신뢰 덕분이다. 특히 ‘앱+배달’ 서비스는 이어령이 얘기한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의 대표적 융합 서비스로 위기 국면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했다.

배달의 민족 '자충수'

배달이 한창 칭찬을 받고 있을 때 '배달의 민족'이 사고를 쳤다. 입점 점주들이 내는 광고 수수료 체계를 정액제에서 매출의 5.8%를 받는 정률제로 바꾸려고 했다. 자금력이 있는 일부 업소가 광고 노출을 독식하는 ‘깃발 꽂기’를 해소하겠다는 게 명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악수다.

배달의 민족은 영세 점주의 부담이 줄어든다고 항변한다. 이 말을 뒤집으면 종전보다 부담이 늘어나는 점주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자영업자들이 ‘소득 절벽’으로 시름이 깊은 시기이다. 건물주가 임대료를 깎아 주고, 금융기관들은 대출 만기를 늦춰주고 있다. 도울 일이 있으면 뭐든 하려고 하는 때에 배달의 민족은 상당수 점주의 부담을 키우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방향을 잘못 잡았다.

코로나19 사태로 고통이 큰 점주들을 돕기 위해 한시적으로라도 수수료율을 낮추는 등의 지원 대책을 내놓았어야 했다. 배달의 민족은 왜 이리 자충수를 뒀을까. 내부의 사정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내부 논의 과정에서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진 게 아닌가. 전례가 없는 경제 위기 속에서 고객인 자영업자들의 생존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간과한 것은 큰 실책이다.

플랫폼 독과점 폐해 잇따라

이번 수수료 파동은 단순한 일과성 사안이 아니다. 배달의 민족 같은 디지털 플랫폼 경제와 관련해 크게 두 가지의 중요한 문제를 던져주었다.

먼저 플랫폼 독과점이 가져오는 폐해이다. 이 이슈는 배달의 민족에 국한되지 않는다. 구글, 페이스북 등 디지털 플랫폼이 거대화되면서 여기저기에서 독과점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2019년 초 미국 미디어 업계에서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이례적인 일이 일어났다. 디지털 미디어 선두주자로 주목받아온 버즈비드, 버라이즌(허프포스트, 야후, AOL 소유) 등 미디어들이 갑작스럽게 경영난을 이유로 감원에 들어갔다. 이상한 점은 디지털 광고 시장이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었는데 이들 디지털 미디어들이 그 바람을 타기는커녕 경영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점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니 근본 원인이 디지털 플랫폼의 독과점에 있었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디지털 공룡기업이 광고의 62%를 독식하다 보니 이들 미디어가 점점 코너에 몰려온 것이다. 혁신 미디어조차 이제는 공룡이 된 플랫폼 기업 때문에 숨통이 조여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플랫폼 대기업들은 경제의 새살이 돋아나는 혁신 자체를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플랫폼 거대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어 스타트업이 이들에 도전하기 어렵고, 혁신이 고사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의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더 이코노미스트가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1984년에 거대 통신기업인 AT&T를 기업 분할한 것처럼 플랫폼 대기업도 나눠야 한다는 데 미국인 3명 중 2명이 동의하고 있다.

미국 정부도 강공이다. 미 법무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들 기업이 온라인 광고 등 부문에서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또 이들 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할 경우 경쟁을 억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님을 반드시 입증하도록 했다.

수수료 체계를 변경하려던 '배달의 민족' 운영자 우아한 형제들이 여론의 반발에 포기, 원래 수수료 체계로 돌렸다. 사진= 연합뉴스
수수료 체계를 변경하려던 '배달의 민족' 운영자 우아한 형제들이 여론의 반발에 포기, 원래 수수료 체계로 돌렸다. 사진= 연합뉴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흐름에도 역행

'배달의 민족 수수료 소동'은 기업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2019년 8월 우리나라의 전경련과 유사한 미국 대기업들의 모임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은 의미 있는 선언을 했다.

1978년 이래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기업의 목적이라고 강조해온 BRT가 주주 우선주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입장을 바꿨다. BRT는 기업의 목적은 고객, 근로자, 거래기업, 지역사회, 주주 등 모든 이해관계자에 봉사하는 것임을 천명하고 그 순서에서도 주주를 맨 마지막에 두었다. 이를 계기로 세계경제포럼(WEF)의 클라우스 슈밥 회장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적극 전파하는 등 논의가 활성화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와중에서도 이해관계자를 중시하는 기업의 변신 움직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직원을 해고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보험사인 블루 크로스와 블루 쉴드는 수천 달러에 달하는 바이러스 진단과 치료비의 자기 부담금을 면제해주고 있다.

호주의 1위 슈퍼마켓 기업인 울워쓰는 항공과 소매업 등에서 실직한 2만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아마존도 10만 명을 신규로 채용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내에서도 일부 대기업이 자사 시설을 격리시설로 제공하는가 하면 전 직원에서 재난지원금 성격의 급여를 지급했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배달의 민족의 수수료 변경 시도는 기업이 고객을 포함해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에 봉사해야 한다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는 새 흐름에도 역행한다.

공정위, 경쟁 활성화 측면에서 기업 결합 결론 내려야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은 이번에 전혀 우아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플랫폼 독과점의 폐해에 대해 경종을 울려줬고, 지향하는 기업가치가 고객인 점주들의 이해와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드러냈다. 2, 3위 배달 앱인 요기요와 배달통을 운영하는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가 배달의 민족을 인수하기로 한 데 대해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수가 성사되면 DH는 국내 배달 앱 시장의 99%(2018년 기준)을 점유하게 된다. 사실상 국내 시장 전체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경쟁을 제한해 궁극적으로 국내 자영업자, 더 나아가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게 될 가능성이 있다.

플랫폼 기업의 시장 독식에 대해 세계적으로 견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똑같은 문제를 초래할 이번 인수 건에 대해 필자는 반대한다. 기업결합심사를 진행하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경쟁을 활성화하고 소비자 편익을 제고하는 결정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이번 일을 계기로 기업이 주주의 이익뿐만 아니라 고객, 거래기업, 근로자,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중시해야 한다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대한 논의도 국내에서 활성화됐으면 한다.

이익만 많이 내면 되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존중하는 ‘공감 경영’이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넥스트 노멀(next normal)’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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