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ETN 주의보’에도 투자자 몰려...손실 우려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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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ETN 주의보’에도 투자자 몰려...손실 우려 커진다
  • 김솔이 기자
  • 승인 2020.04.1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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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러 유가 전쟁에도 국제유가 반등 기대
괴리율 90%까지 치솟아…손실 불가피할 듯
그래픽=연합뉴스
그래픽=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솔이 기자] 지난달 국제유가 급락 이후 매수세가 몰린 유가 연계 상장지수증권(ETN)에 경보음이 울렸다. 가격 변동성은 커지는데 반등에 ‘베팅’하는 투자자가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원유 시장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만큼 신중한 투자가 요구되고 있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개인투자자는 삼성증권·신한금융투자·NH투자증권·미래에셋대우 등 4개 증권사의 ‘레버리지 원유 선물 ETN’을 3800억원어치 사들였다. 올 2월(702억원) 대비 5배 이상, 1월(278억원)보다는 13배 넘게 증가한 규모다. 이달 들어서도 460억원 가량 레버리지 원유 선물 ETN에 투자했다.

ETN은 주식, 채권, 원자재 등 기초자산 수익률과 연동된 수익을 지급하는 파생결합증권이다. 증권사가 발행, 거래소에 상장돼 상장지수펀드(ETF)처럼 매매가 가능하다. 레버리지 ETF는 등락폭의 두 배만큼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한 상품으로 일명 ‘곱버스(2X)’로 불린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은 지난 9일 ‘레버리지 원유 선물 ETN’에 사상 처음으로 소비자경보 최고 등급인 ‘위험’을 발령했다. 주의·경고·위험 3단계로 이뤄진 소비자경보 제도가 2012년 도입 이후 위험 등급이 발령된 건 처음이다.

◆ 지표가-시장가 괴리율 90% 웃돌아

문제는 WTI 선물 가격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레버리지 ETN 괴리율이 비정상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괴리율은 ETN 시장가격과 ETN 기초자산 지표가치(국제유가) 간 차이를 비율로 나타내는 투자위험 지표다. 괴리율이 플러스(+)이면 시장가격이 ETN 가치보다 고평가됐다는 걸 의미한다.

통상 괴리율은 5~10% 수준이지만 최근 레버리지 원유 선물 ETN 괴리율은 80~90%대까지 확대됐다. 대표적으로 ‘삼성 레버리지 WTI 원유 선물 ETN’은 지난 8일 95.4%까지 치솟았다 이튿날에도 87.5%를 기록했다. 9일 신한과 NH 괴리율 또한 각각 63.9%, 58.2%에 달했다.

이처럼 괴리율이 커진 건 올 들어 국제유가가 반토막 넘게 급락했는데도 향후 가격 상승을 예상하는 투자자들이 레버리지 원유 선물 ETN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수요가 늘어난 ETN 시장 가격이 급등하면서 유가를 추종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자료=한국거래소

유동성공급자(LP)인 증권사의 유동성 공급 기능도 원활히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 통상 LP는 괴리율이 6%를 초과하지 않도록 매도호가나 매수효과를 제출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강해지면서 LP의 보유 물량이 모두 소진된 것이다. 즉 현재로선 LP의 힘만으로는 괴리율을 좁히기 어려워졌다.

괴리율이 확대되면 시장가격이 지표가치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투자자들의 손실도 불가피하다. 예컨대 WTI가 24달러일 때 지표가치가 1762원인 레버리지 WTI 원유 선물 ETN을 시장가격 3190원에 매수했을 경우 81%(괴리율)의 잠재적 손실이 내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향후 유가가 40% 올라 33.6달러가 되더라도 지표가치는 매수 가격보다도 낮은 3172원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국거래소 또한 원유 선물 ETN 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지난 8일부터 거래 정지 조치를 시행했다. 정규 시장 종료 시 괴리율이 5거래일 연속 30%를 넘을 경우 다음 날 거래를 정지하는 게 핵심이다. 더불어 오는 13일부턴 괴리율이 지나치게 확대된 ETN의 경우 대해 단일가 매매를 시행할 방침이다.

◆ 국제유가 변동성 확대…투자 신중해야

특히 국제유가 향방을 가늠하기 쉽지 않은 만큼 관련 상품 투자에 유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유가가 곧 반등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저유가가 길어지면 투자자에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앞서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지난 9일 배럴당 9.3% 내린 22.7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국제유가는 산유국 간 감산 협상에 주목하면서 ‘롤러코스터’ 흐름을 보이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비회원국을 아우르는 ‘OPEC플러스(+)’는 원유 수급 조정안을 논의 중이다. 그러나 ‘유가 전쟁’을 벌이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비롯해 산유국 간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인한 수급 우려도 커지고 있다. 현재 글로벌 경기 침체로 하루 원유 수요는 3000만배럴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산유국이 1000만~2000만배럴 감산하더라도 공급 과잉 상태가 계속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원유 선물 ETN 측면에선 WTI 원유 근월물 가격이 원월물 가격이 높은 ‘콘탱고’ 현상이 이어지는 점도 수익률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근월물과 원월물 가격 차이로 선물 롤 오버(roll over‧근월물과 차근월물 교체)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하면 WTI 선물가격이 상승하더라도 ETN 가격은 기대만큼 상승하지 않을 수 있다. 당장 원유 공급량이 수요량을 초과하면서 WTI 원유 5월물 가격을 6월물 가격이 10~20% 웃도는 ‘수퍼 콘탱고’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게 한국거래소 측의 설명이다.

심혜진 삼성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요 충격이 산유국 감산 물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합의 자체도 난항을 겪어 국제유가 반등을 예상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며 “감산안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합의가 되더라도 이행 여부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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