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슬기로운 의사, 고민하는 의사? 행동하는 의사가 필요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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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슬기로운 의사, 고민하는 의사? 행동하는 의사가 필요한 시점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20.04.11 09: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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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 '죽음과 삶' 경계의 기록을 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모든 것이 결국 사랑이었다"
의로운 의료인들, 의연한 시민들, 믿음직한 정부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교대 근무를 위해 방호복을 입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들이 있는 병동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교대 근무를 위해 방호복을 입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들이 있는 병동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의사가 많이 등장하는 시절이다. ‘코로나19’ 덕분에 한동안 뉴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더니 얼마 전부터는 드라마의 주인공으로도 등장한다. 그 드라마의 인기는 인터넷에 관련 기사와 영상이 많이 올라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지난 몇 주 목요일에 될 수 있으면 약속을 잡지 않았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을 보려고 그런 것이다.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나 같은 사람도 볼 정도면 ‘슬기로운 의사 생활’은 시청자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의사가 주인공이고 병원이 배경인 드라마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기 마련이다. 진료실이나 입원실 혹은 수술실에서만 의사를 접할 수 있는 일반인들에게는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는 건 신선하기 때문이다. 그 내용이 병원에서 벌어지는 권력 다툼이나 병원에서 만난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 같은 다른 드라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서사 구조라 하더라도 그렇다.

하지만 현실 속 의사들은 의사가 주인공인 드라마에 몰입이 안 된다고 한다. 등장하는 배우들의 정돈된 외모가, 어설픈 술기 흉내가, 현실에 절대 없는 천사 같은 의사가 나올 때면 특히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 드라마를 리뷰한 여러 의사 유튜버들은 의사인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드라마라고 고백한다. 드라마의 인기를 반영하듯 의사들의 감상이 유튜브에 많이 올라오고 그 콘텐츠들 또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사진=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사진=tvN

아무튼 ‘슬기로운 의사 생활’은 재미있다. 따뜻하고 감동도 준다. 현실이 아닌 드라마라서 그럴까. 주인공 의사들은 실력 있는 데다가 인성도 좋다. 자기 급여를 떼어 어려운 환자의 치료비를 대신 내주거나, 태어나자마자 죽을 수밖에 없는 아기를 출산한 산모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거나, 장기를 기증한 뇌사자의 어린 아들을 위해 어린이날을 넘긴 새벽에 수술하는 의사가 나온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 인기 있는 건 이렇듯 인간적인 의사들이 나오는 따뜻한 이야기여서일 것이다. 5회가 방영된 지금 다른 드라마에는 흔히 나오는 ‘빌런’도 등장하지 않는다. 슬기롭고 밝은 병원 사람들만 나온다. 드라마를 보면서 현실 속 병원도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병원의 실제 모습과 의사의 솔직한 마음을 엿보고 싶다면 ‘남궁인’ 작가가 쓴 글을 보면 이해될 것이다. 물론 그가 근무한 병원만 다루고 그 또한 많은 의사 중 하나라 일반화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글을 통해 전해주는 병원의 모습과 의사로서의 심리는 실제 그대로고 날것 그대로다. 환자 몸에서 나온 피가 냇가를 이루고 고름 냄새가 진동하는 그런 곳에서 고민하고 고민하는 의사가 등장한다.

'만약은 없다'와 '지독한 하루'. 문학동네 펴냄.
'만약은 없다'와 '지독한 하루'. 문학동네 펴냄.

남궁인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키는 응급실 의사이면서 그런 순간을 이야기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나는 그가 전공의 시절과 군 복무 시절 경험을 페이스북에 글로 올릴 때부터 독자가 되었다. 지금 남궁인은 대학 병원에서 근무하는 임상조교수 그리고 유명 출판사에서 책도 여럿을 낸 인기 작가가 되었다.

나는 몇 년 전 그의 첫 책인 ‘만약은 없다’가 나왔을 때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응급실의 가장 큰 목표는 위급한 환자의 숨을 붙여서 수술실이나 중환자실로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응급실 의사인 남궁인은 한때 죽음을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나는 분명히 죽으려 한 적이 있다. 죽음을 막연하게 여겼던 의대생 시절, 죽고자 하는 생각은 갖가지로 변형되어 머릿속을 맴돌았다. (중략) 그 터널을 간신히 몇 번 빠져나오고 나니, 나는 의사가 되어 있었다. (중략) 나는 죽음과 가까운 몇 개의 과 중에서 고민하다가, 별 망설임 없이 응급의학과를 선택했다.” (‘만약은 없다’ 서문 중)

 

한때 죽음을 생각했던 저자가 응급실에서 많은 비극을 접하다 보니 감정이 무뎌지는 게 느껴졌다고 한다. 남궁인은 그런 죄책감에서 글을 하나씩 써나가기 시작했다고. 특히 그가 응급실에서 만난 안타까운 죽음의 순간들을 표현한 글에서 그의 고민이 읽혔다.

수면제로 자살 시도를 한 환자가 회복되어 퇴원시켰더니 집에 가자마자 투신해서 끝내 자살에 성공하고야 말았다는 사연, 살아날 가망이 없는 환자에게 가해지는 의미 없는 연명 치료를 보면서 존엄한 죽음을 생각했다는 사연 등에서 작가의 의사로서의 자책과 고민이 내게도 느껴졌다.

남궁인의 첫 번째 책이 무뎌지는 감정에 대한 죄책감이었다면 그의 두 번째 책인 ‘지독한 하루’에서는 의료인으로서의 고민과 책임이 좀 더 강조되었다. 이 책에는 응급실을 무대로 한 다소 무거운 이야기부터 외부의 관심이 필요한 의료계 내부의 이야기들까지 수록되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싸우는 그의 눈에 세상의 불합리한 것들이 많이 보였다고.

작가는 그가 소방본부에서 근무한 시절에 목격한 소방대원들의 현실을 증언한다. 불길에서 사람을 구해내고,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소방대원들이 국민 안전에 직결된 역할을 맡고 있음에도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거의 모든 소방관이, 최근 기사에 의하면 98.7%가 국가직 공무원이 아닌 지방직이기에 소방 조직은 전면적인 국가 관리에서 벗어나 있는 부분이 많았다고. 많은 이의 관심과 노력 때문이었을까 지난 4월 1일 모든 소방대원은 국가직 공무원이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대 사고 환자를 전담하는 중증외상센터의 현실을 고발하고 응급실에서 만나게 되는 아동 학대 사례들을 증언한다. 의사로서 눈앞의 직무만 단순히 하는 것이 아닌 세상을 향한 그의 따뜻한 관심을 잘 알 수 있는 글들이다.

 

'제법 안온한 날들'. 문학동네 펴냄.
'제법 안온한 날들'. 문학동네 펴냄.

얼마 전 그는 세 번째 책인 ‘제법 안온한 날들’을 냈다. 이 책 또한 의사 남궁인과 그가 일하는 응급실 이야기가 주된 글감이다. 그런데 작가로서의 변화가 보인다. 앞의 두 책이 응급실 침상 가까이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듯이 썼다면 이번 책은 조금은 떨어져서 삶을 관조하듯이 쓴 글들도 있다.

출판사는 이번 책에서 “그는 종종 안온한 일상으로 물러나 고통 이후 찾아오는 인간의 회복을 멀리서 응시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좀 더 일상에 가까운 시선으로 삶을 말한다”며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매번 인간의 운명을 지켜봐야 했던 작가는 “모든 것이 결국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강조한다.

 

“가족이 돌이키지 못할 불행을 겪거나 가장이 쓰러져 휠체어에 앉아 있을지라도, 사람들은 현실을 비관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지 않는다. 오히려 곁에 있는 사람들은 그를 끌어안고 돌보며 각자 저마다의 위치에서 앞길을 찾고 희로애락을 느끼며 성장한다.” (‘제법 안온한 날들’ 194쪽)

 

저자가 인턴 시절 만났던 반신불수 환자와 가족들을 10년이 지나 다시 주치의로 만난 후 느낀 성찰이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환자들과 가족들은 사랑으로 이겨내는 것을 보고 저자는 반성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나는 응급실에서 절규하는 사람을 본다는 이유로 불행을 재단하는 습관을 이어왔다. 그러나 싹은 어디에서든 피어난다. (중략) 한참 고된 생활에 취한 나는 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사람은 일방적으로 불행하지 않다.” (‘제법 안온한 날들’ 195쪽)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그랬다. 감염병이 한 지역을 중심으로 온 나라에 퍼져갈 때도 불행까지 일방적으로 퍼져가지는 않았다. 물론 병에 걸리거나 죽은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는 큰 불행이었다. 하지만 나와 이웃에 병이 퍼질 위험에도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전선에서 물러서지 않은 의료인들, 멀리서 달려온 의료인들과 자원봉사 시민들, 그리고 역사에 없던 사례를 극복하려고 헌신하는 정부와 관계자들 덕분이었다.

물론 누군가는 이 상황이 크게 번지고 불행도 마구 퍼지길 바라기도 했겠지만 많은 사람은 힘든 시절을 함께 잘 넘기자며 서로를 응원해 왔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서 이 시절을 슬기롭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드라마 덕분에,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코로나19’ 현장 덕분에, 누가 진짜인지 너무나 잘 보인다. 중요한 건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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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셔 2020-04-18 17:31:55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