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逆오일쇼크 한달] ②기싸움으로 시작된 전쟁..기싸움에 출구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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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逆오일쇼크 한달] ②기싸움으로 시작된 전쟁..기싸움에 출구 막혔다
  • 김지은 기자
  • 승인 2020.04.07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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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산안 두고 서로 다른 셈법...유가전쟁 출구찾기 지연 우려
'대선'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더욱 복잡
감산 합의 이룬다 해도 수급불균형 해소될지 미지수
CNBC 전문가들 조사결과, 2분기 배럴당 20달러선 예상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왼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 사진=연합뉴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왼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지은 기자] 코로나19로 전세계 원유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서 발발한 석유전쟁은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유가가 한 때 18년만에 최저치로 폭락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비롯한 모두에게 타격을 입혔고, 이로 인해 '감산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각국 정상들의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계속되면서 석유전쟁의 출구를 가로막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6일(이하 현지시각) 러시아는 미국 셰일업계의 이익을 견제하기 위해 추가 감산안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고, 이에 사우디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증산'이라는 초강수로 대응하면서 유가전쟁이 시작됐다. 

결국, 각국 정상들의 기싸움으로 인해 벌어진 석유전쟁이, 이제는 '감산'이라는 해결책을 두고 또다시 기싸움의 장벽에 가로막힌 셈이다. 

서로 다른 속내.."미국 감산 동참" 목소리 높아져

당초 6일로 예정됐던 석유수출국기구(0PEC)와 OPEC+의 감산 협상을 위한 긴급 화상회의는 9일로 연기됐다. 러시아 측은 예정됐던 회의가 연기된 것은 기술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술적인 이유로 회의가 연기된 것인지 진위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감산'을 두고 사우디와 러시아, 미국이 모두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8% 급락한 것 역시 감산 합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는 이유에서다. 

감산안을 둘러싼 각국의 속내는 모두 다르다. 석유전쟁을 일으킨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두 나라였지만, 이제는 미국까지 끼어들어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우디와 러시아의 불화에 개입하면서 하루 1000만~1500만배럴의 감산을 제안했다. 러시아는 받아들였고, 사우디는 하루 600만배럴 감산이 적당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감산을 위한 조건도 있다. 사우디는 감산의 조건으로 러시아의 감산 동참을 내걸었고, 러시아는 미국도 감산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감산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비단 러시아 뿐만이 아니다. OPEC 회원국인 이라크와 아랍에미리트(UAE)도 미국의 감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OPEC 회원국은 아니지만 서유럽 최대의 원유 및 가스 생산국인 노르웨이는 주요 산유국의 합의가 이뤄지면 감산에 동참하겠다고 했다. 

'재선' 앞둔 트럼프, 더 복잡한 美 속내

하지만 미국의 속내는 더 복잡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가진 코로나19 브리핑에서 "아직 누구도 내게 그러한(감산에 대한) 문제를 요구한 적이 없었다"고 언급했다. 모두가 '미국이 감산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감산을 제안했던 미국은 슬그머니 발을 빼고 있는 것이다.

댄 브룰렛 미국 에너지부 장관 또한 이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우리는 자유 시장을 갖고 있고 업계는 알아서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적으로 연방정부가 생산을 관리할 수 없고, 감산에 나서는 기업은 오히려 반독점 위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반독점법 전문가들에 따르면, 주(州) 규제당국이나 연방정부가 더 낮은 생산수준을 설정한다면 반독점법에 저촉되지 앟으면서 산유량을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나서면서 '탄탄한 경제'를 강조해왔다. 50년만에 최저 실업률 또한 뻬놓지 않는 치적이다.

미국 에너지업계에 종사하는 인구가 50만명에 이르고,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이들까지 감안하면, 그 규모는 상당해진다. 이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인 만큼,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는 유가를 묵인할수도, 그렇다고 미국 기업들에게 감산을 강요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미국 타임지는 "현재 미국이 직면해있는 문제는 에너지 기업들의 생존과 여기에 종사하고 있는 상당수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이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주변 국가들도 이 문제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다양한 접근법을 제안했는데, 그 중 하나는 러시아·사우디산 원유에 수입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압박하는 것이었다. 사우디와 러시아가 석유전쟁을 계속한다면, 미국으로 들어오는 수입산 석유에 막대한 관세를 부과해 자국의 에너지 산업을 지키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이로 인해 상대 국가가 미국산 수입제품에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미 수출업자들에게도 상당히 부담이 되는 방법이어서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아보인다.

미국 석유연구소 역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UAE 등 그간 우호관계를 맺어왔던 국가들마저 미국의 감산을 주장하고 있는 것도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부담이다. 

타임지는 "해외에서 이들 국가와 싸움을 계속한다면 (중동 국가들과의) 오래된 동맹관계를 무너뜨리고, 중동에서 불안을 확산시킬수 있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미국 에너지업체 최고 경영자들과 라운드 테의블 회의를 갖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에서 두번째)이 3일 백악관에서 미국 에너지업체 최고 경영자들과 라운드 테이블 회의를 갖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감산 합의해도 유가 전망 밝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각국 정상들이 한 발씩 물러나 감산에 극적으로 합의한다 하더라도 유가 전망이 그리 밝지는 않다는 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국제적인 수요가 급감한 것이 유가 하락의 근본 문제이고, 추가 감산안 합의 불발 등은 부차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국제 외교 전문지인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공급 과잉된 석유 규모는 하루 2400만배럴에 달한다. 현재 사우디는 하루 600만배럴 감산을 주장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하루 1000만배럴 감산에 나선다 하더라도 공급과잉 물량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세계 원자재 무역업체인 트리피구라의 사드 라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4월 전세계 석유 수요가 하루 3000만배럴 이상 감소할 수 있을 것"이라며 더욱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감산에 합의한다 하더라도 수급상 균형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클리어뷰에너지파트너스의 컨설턴트인 케빈 북은 "감산과 관련된 모든 협정은 유용하겠지만 큰 차이를 불러오지는 않을 것"이라며 "감산 합의는 유가의 바닥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가파른 하락세를 주춤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RBC의 커트 할라드 공동 대표는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석유 수요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수준까지 감소할 것"이라며 "에너지 업계는 지난 1980년대 석유파동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이했다"고 말했다. 

공급과잉으로 인해 원유를 저장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도 부담이다. 현재 '저장탱크 꼭대기'까지 꽉 채워져있는 비축분을 감안하면 감산 합의 이후에도 갈 길이 멀다는 것.

시티그룹 애널리스트들은 "이론적으로 볼 때 석유 비축분을 저장할 공간이 고갈된다면, 저장비용은 치솟을 수 밖에 없다"며 "이 경우 생산업자들은 저장비용을 아끼기 위해 원유를 헐값에 처분해 유가가 하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현재 시장의 우려가 지나치다는 의견도 나온다.  

컴플리트인텔리전스의 창업자 겸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토니 내시는 "비록 코로나19의 종식 시기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시장은 코로나19 이후 석유 수요의 반등 정도를 경시하고 있다"며 "우리는 5월 수요가 강하게 살아날 것으로 예상하고, 6월 이후 수요가 다소 약해질 수 있지만 유가는 안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분기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42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CNBC가 스트레티지스트, 애널리스트, 트레이더 등 30여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2분기 브렌트유 선물가격 전망치의 평균 값이 배럴당 20달러 수준으로 나타났다. 30명 중 9명은 20달러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고 응답했으며, 9명은 20달러보다 높은 수준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 중 6명은 2분기 배럴당 20달러 중후반선에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으며, 한 명은 배럴당 30달러 수준으로 내다봤다. 2명은 각각 배럴당 42달러, 44달러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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