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逆오일쇼크 한달] ①석유 왕국의 '자해행위'...모두 타격입은 유가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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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逆오일쇼크 한달] ①석유 왕국의 '자해행위'...모두 타격입은 유가전쟁
  • 김지은 기자
  • 승인 2020.04.06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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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전쟁 일으킨 사우디·러시아는 물론 미국 셰일·석유업계도 타격
일부 마이너스 원유도 등장..저장비용 비싸 돈 주면서 원유 처분 나서
저유가 상황은 사우디와 러시아의 재정흐름 악화시킬 듯
미국 셰일업계는 줄도산 가능성 높아져 
연기에 휩싸인 사우디의 석유시설단지. 사진은 지난해 9월 드론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사우디의 한 석유시설단지. 사진=연합뉴스
연기에 휩싸인 사우디의 석유시설단지. 사진은 지난해 9월 드론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사우디의 한 석유시설단지.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지은 기자] 지난달 6일(이하 현지시각), 오스트리아 빈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으로 구성된 OPEC+가
추가 감산안에 대한 논의를 벌였다.

전세계로 확산되는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감소를 감안해 OPEC 회원국은 하루 100만배럴, 비OPEC회원국은 하루 50만배럴을 추가적으로 감산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러시아 측은 감산안에 반대했고, 합의는 무산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날의 감산안 합의 불발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 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감산안이 불발되자, 사우디는 오히려 증산을 결정했고, 국제유가는 속수무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정확히 한 달이 흘렀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을 정도로 국제유가 시장은 한달동안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전쟁은 멈추지 않고 있다. 여전히 치열하고, 여전히 격동적이다. 

물론 한 달 동안 달라진 점도 많다. 유가는 폭락했고, 일부 셰일업계는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엑손모빌과 같은 굴지의 석유기업들도 현금흐름이 악화되면서 신용등급이 뚝뚝 떨어졌다.

이제 유가전쟁을 시작했던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는 다시 '감산'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레 꺼내고 있다. '소비자들에게 좋은 일'이라고 평가하던 트럼프 대통령도 자국의 가스 및 셰일산업을 지켜내기 위해 톤을 바꿨다. 불과 한달만에 모든 것이 바뀐 셈이다. 

유가 전쟁 발발에 일부 마이너스 원유까지 등장

지난달 6일 추가 감산안에 대해 러시아가 반대하고 나선 것은 원유 생산을 지속적으로 감산할 경우 오히려 미국 셰일기업들에게만 이득이 돌아간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우디의 실세로 알려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국제적으로도 그의 입지를 공고히 다지려 애써왔고, 원유 감산안을 주도해 그의 영향력을 인정받고자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러시아가 전혀 협조를 하지 않자 그는 '증산'이라는 또 다른 강수를 던졌다. 러시아를 다시 협상 테이블로 끌고 오거나,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것이 언론의 평가였다. 

당초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급감을 이유로 감산안이 제시됐지만, 상대국을 견제하거나, 자존심을 지키려는 각국 정상의 권력 싸움으로 옮겨가면서 유가 폭락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3월5일 종가 기준 배럴당 45.90달러를 기록했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3월 30일 한 때 배럴당 19.27달러까지 떨어졌다. 2002년 2월 이후 약 18년만에 최저치다. 

국제유가가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는 상황에서 일부 원유는 가격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했다. 돈을 쥐어주면서 원유를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달 28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와이오밍산 원유는 배럴당 -19센트까지 떨어졌다. 수요가 급감한 탓에 원유를 쌓아둬야 하는 상황인데, 저장비용이 만만치 않은 탓이다.

수요는 줄고, 공급은 늘어난 탓에 석유업체와 셰일업체들은 유조선을 포함해 비축분을 저장할 장소를 확보하려 애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 저장비용 역시 기록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노르딕뱅크SEB의 수석 상품 애널리스트인 비야네 쉴드롭은 "일부 유조선의 임대료는 지난해 하루 평균 3만달러 수준에서 최근 하루 20만달러로 올랐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높은 저장비용을 내느니 차라리 돈을 주고 원유를 처분하는 것이 이득이 되다보니 마이너스 원유까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패르 매그너스 니스빈 리스타드에너지리서치 애널리스트는 "아무도 석유를 가져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석유를 팔 수 없는 상황"이라며 "그렇다면 판매업자들은 석유를 팔기 위해서 돈을 지불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생산을 멈출 경우 에너지 자원 자체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역시 불가능하다는 것. 일부 생산업체들의 경우 돈을 내고 원유를 처분하면서 유가가 오르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의 배럴당 가격 흐름. (단위: 달러)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의 배럴당 가격 흐름. (단위: 달러)

셰일업체 줄도산 위기..엑손모빌 등 굴지기업도 타격

마이너스 원유가 등장할 정도로 유가가 끝없이 폭락하다보니 에너지 업계 역시 큰 타격이 불가피했다. 특히 채굴 단가가 높은 셰일업계의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일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 본사를 둔 대형 셰일유전개발업체인 화이팅페트롤리움은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원유전쟁으로 인해 유가가 급락한 이후 첫 파산 신청이다. 

미국 셰일업체들의 채산성은 배럴당 45~50달러 수준으로 알려져있다. 이 수준의 유가도 셰일업체들이 간신히 버틸 정도일 뿐, 이익이 나지는 않는다. 최소 배럴당 60달러 수준으로 올라야 셰일업체들의 이익이 발생한다. 배럴당 20달러 수준을 간신히 유지하는 현재 유가 상황에서 미국 셰일업체들은 생산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화이팅페트롤리움의 파산보호신청이 미 셰일업계의 줄도산의 신호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의 유가 상황이 미 셰일업계에만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엑손모빌을 비롯한 굴지의 석유기업조차 버티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2일 무디스는 엑손모빌의 신용등급을 기존 Aaa에서 Aa1로 하향조정했다. 올해 초부터 엑손모빌의 현금흐름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유가가 크게 떨어지면서 부채로 자금을 조달하는 마이너스 현금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엑손모빌은 주주들을 위한 배당금 등을 위한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자산매각 등을 실시하는데, 석유업계 사정이 좋지 않다보니 자산매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오일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엑손모빌은 지난해 주주들에게 153억달러를 지급했지만, 3분의 1인 54억달러 수준의 현금만 확보했고, 나머지 99억달러의 경우 차입 등의 방법을 통해 마련했다. 

무디스의 한 애널리스트는 "유가 하락을 둘러싼 최근의 상황으로 인해 현금흐름이 악화됐다는 것은, 엑손모빌이 향후 더 많은 부채를 떠안아야 함을 의미한다"며 "부채가 쌓이게 되면 신용등급에는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무디스는 엑손모빌이 2021년까지 더 많은 부채를 떠안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앞서 S&P 역시 현금흐름 악화를 우려해 엑손모빌의 신용등급을 기존 AA+에서 AA로 낮춘 바 있다. 

S&P글로벌플래츠는 "중기적으로 엑손 모빌이 더 높은 신용등급을 회복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왼쪽)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 사진은 지난 2018년 12월1일 정상회담을 가진 빈 살만 왕세자와 푸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왼쪽)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 사진은 지난 2018년 12월1일 정상회담 때 모습. 사진=연합뉴스

유가전쟁 주도한 사우디·러시아도 타격

유가전쟁을 주도한 사우디와 러시아 역시 타격을 입고 있다. 일부 외신에서는 '자해'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다. 

사우디 타다울 증시에 상장된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 주가는 5일 31.50리얄을 기록했다. 이는 공모가(32리얄)도 밑도는 수준이다. 지난달 27일 한 때 27.80리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아람코의 주가 급락은 빈 살만 왕세자에게도 타격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당초 빈 살만 왕세자는 유가가 장기적인 하락추세에 접어들어 사우디 경제 역시 부진한 움직임을 보이자 아람코 상장을 통해 경제구조 다각화를 꾀한 바 있다. 아람코 상장을 통해 부진한 경제를 일으키고, 자신의 입지도 공고히 다지고자 했던 것이다.

현재 아람코 주식을 들고 있는 대부분이 사우디 왕족과 귀족인데다, 최근 아람코 주가가 빠지면서 일반 시민들 역시 아람코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이는 아람코 주가가 추가적으로 하락할 경우 입지를 다지겠다는 빈 살만 왕세자에게는 물론 사우디 경제에도 큰 타격이 불가피함을 의미하는 부분이다.  

사우디의 콧털을 건드린 러시아 역시 마냥 편안하지는 않은 상황이다. 

오일프라이스닷컴은 "러시아 경제는 5년 전 저유가로 인해 충격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유가전쟁의 가장 파괴적인 결과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러시아는 미국의 셰일 업체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 유가를 떨어뜨렸지만, 러시아 역시 예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배럴당 40달러 이상의 유가 수준이 필요하다는 것. 

당초 러시아는 감산안을 거부하면서 최근 몇 년간 원유 수출을 늘리면서 일정 부분의 자산을 비축해놓은 데다, 경제 구조가 비교적 다양한 편이기 때문에 타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의 유가 상황에서는 러시아가 단기적으로만 버틸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만일 현 수준의 유가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러시아는 재정적인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장기집권을 노리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도 타격이 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장기집권을 위한 헌법 개정안을 승인했는데, 오는 22일 예정됐던 헌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는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연기한 상황이다. 

푸틴 대통령은 연초 국정연설에서 2024년까지 4조1000억루블을 사회 지출에 포함시켜 빈곤층 지원, 연금 지급액 상향조정 등을 약속한 바 있다. 유가가 회복되지 않아 푸틴 대통령이 약속한 사회지출 확대 공약을 이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면 푸틴 대통령의 신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유가가 급락하면서 자국 산업계에서 타격이 현실화되자, 미국과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는 감산 협상을 위한 긴급회의를 열기로 했지만, 이견을 좁히기는 쉽지 않은 상태다. 현재 OPEC과 OPEC+의 감산 협상을 위한 긴급회의는 당초 6일로 예정됐으나 9일로 연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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