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줌마의 종횡무진] 제21대 국회의원 재외선거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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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줌마의 종횡무진] 제21대 국회의원 재외선거記
  • 차가진 카이로 통신원
  • 승인 2020.04.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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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진 통신원
차가진 통신원

[오피니언뉴스=차가진 카이로 통신원] ‘외국에서도 꼭 챙겨야 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왔다.

코로나 정국에, 왕복 1시간 거리의 대사관에서 투표를 해야 하느냐를 고민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지난 3월 15일, 아이들 휴교령이 발동된 직후부터 마트를 가야 하는 일이 아니면 집 밖을 나서지 않았는데, 하물며 밀폐된 공간인 셔틀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니… 용기가 필요했다.

남편이 먼저 재외선거 시작 첫 날인 4월 1일에 다녀왔다. 아침에 나서더니 점심시간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빠른 귀가에, 조심스레 분위기를 물어봤다.

“순식간에 끝났어.”

재외선거는 4월 1일부터 총 6일간 실시되는데 둘째 날인 2일은 금요일, 이집트 주말이 시작되는 날이다. (이집트는 한 주가 일요일부터 시작돼 금, 토가 주말이다) 남편의 말에 용기를 얻어, 아침부터 서둘러 선거戰을 준비했다. 선거용 셔틀버스는 교민 밀집지역인 마디에서 오전과 오후에 각각 1차례씩 운행된다. 나는 교통 체증 등을 고려해 아침을 선택했다.

큰 버스에 달랑 혼자 탑승하다니...

오전 9시 반에 버스를 탑승해야 하므로, 아이들에게 서둘러 아침을 먹이고 씻겼다.  설거지를 하고, 귀가가 늦어질 경우 바로 점심을 차릴 수 있게 재료를 준비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마스크 2개, 장갑 2개를 준비하고 손 세정제와 알콜 스프레이, 물티슈 등을 바리바리 챙긴 뒤 신분 확인을 위한 여권을 들고 길을 나섰다.

약속된 장소에 가니, 투표 안내 조끼를 입은 안진홍 실무관과 셔틀버스 두 대가 투표에 참가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셔틀버스는 오전, 오후 각각 1차례씩 교민 밀집지역인 마디에서 도끼(대사관) 구간을 왕복 운행한다. 사진= 차가진 통신원
셔틀버스는 오전, 오후 각각 1차례씩 교민 밀집지역인 마디에서 도끼(대사관) 구간을 왕복 운행한다. 사진= 차가진 통신원

코로나의 영향은 역시 세다. 대사관에서 이집트의 코로나 확산 추세에 따라 이동제한 조치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조기 투표를 독려했는데도, 선거등록 교민 총 224명 중 이 날 오전에 셔틀을 탑승한 교민은 나를 포함해 단 2명이었다.

두 대의 셔틀버스는 탑승여부와 관계없이 왕복 운행한다고 했다. 나와 다른 한 분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각각 한 대씩, 버스를 자가용처럼 이용하는 호사를 누리며 대사관으로 이동했다. 

마스크와 장갑을 구비하지 못한 교민을 위해 여유분이 준비돼 있다는 설명과 차량 에어컨으로 인한 기침 발생시 당황하지 않고 복용할 수 있는 목캔디까지, 그동안 이집트에서 느껴보지 못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받으니 감개무량했다. 한국에선 당연하고 빨리빨리 이뤄졌던 서비스들이, 이집트 생활 2년 반 만에 얼마나 감사해야 할 것들이었는지 새삼 느껴졌다.

카이로 시내, 평소와 다름 없는 일상이...

오랜 만의 바깥세상은 여전히 예전 그대로였다. 이집트 정부는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휴교령에 이어 비행기 운항금지, 야간 통금(저녁 7시부터 아침 6시)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집트인들은 거침이 없는 것 같았다.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마디와도 다른 분위기였다. 마디 역시 대낮엔 동그랗게 모여 수다를 떠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긴 하지만, 그래도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주요 이동수단인 마이크로 버스. 좁은 공간에 여러 명이 탑승했다. 사진= 차가진 통신원
이집트의 주요 이동수단인 마이크로 버스. 좁은 공간에 여러 명이 탑승했다. 사진= 차가진 통신원

그러나 시내에서 옆을 지나치는 마이크로 버스엔 아무런 장비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밀조밀 앉아있었다.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필자에게 마이크로 버스 안 덩치 큰 이집트 아저씨는 오히려 혐오와 협박의 표정을 보냈다.

한국 대사관에 도착하자, 입구에서부터 코로나 감염에 대한 예방 조치가 철저히 진행됐다. 버스에 내린 뒤 대사관에 들어가기 위해선 앞 사람과 2m이상 거리를 유지해 줄을 서도록 했다. 문에 들어서면 경비원이 열 감지 카메라와 체온계로 번갈아  발열 여부를 체크했다. 만약 열이 높으면, 별도로 준비된 임시투표소에서 투표하도록 조치한다고 한다.

발열 체크를 하는 동안 문 앞에서 선거를 마친 동네 지인을 만났는데, 아이들을 모두 동반하고 와서 그런지 반가움도 뒤로 한 채 서둘러 나갔다. 아이들 때문에 셔틀버스 대신 자가용으로 이동한 모양이었다. 붙잡고 수다도 떨기 힘든, 코로나 시대의 씁쓸함이 느껴졌다.

드디어 카이로에서 21대 총선 투표를 하다

투표소 앞에는 대기용 의자들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호명을 받고 투표소에 들어가니, 본인 확인 후 지역구 투표용지와 비례투표 용지 2장을 배부해줬다. 비례투표 용지는 가장 긴 투표용지다운 위용을 과시했는데, 진행 위원이 사표 방지를 위해 접는 방법까지 자세히 설명해줬다.

주이집트대사관내에 마련된 투표소 내부 모습. 사진= 차가진 통신원
주이집트대사관내에 마련된 투표소 내부 모습. 사진= 차가진 통신원

기표를 마치면, 용지를 접어 봉투에 넣고 잘 밀봉해 투표함에 넣어야 한다. 그런데 봉투에는 주이집트 대사관에서 '동작구'에 투표했다는 내용이 친절히 기재돼 있었다. 224명의 이집트 교민 중 동작구 지역 투표자가 몇이나 될까를 생각하니, 내가 비밀투표를 한 것인지 재외투표의 불가피성이라 여겨야 하는지 머리가 갸우뚱해졌다.

주이집트대사관 재외투표소를 나서면서, 라텍스 장갑에 인증 도장을 찍었다. 사진= 차가진 통신원
주이집트대사관 재외투표소를 나서면서, 라텍스 장갑에 인증 도장을 찍었다. 사진= 차가진 통신원

수고하시는 대사관 직원과 선거위원에게 인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걱정과 달리 투표에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나마 이집트는 한인 내 확진자가 아직 발생하지 않았고, 이탈리아 등 근접 유럽 국가에 비해 확산 속도가 늦은 덕에 나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만간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서면 이집트도 다른 국가들처럼 완전 통행금지를 실시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식재류 구입이나 약국 방문만 허용되고, 외출시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선거가 불가능하게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아직 남은 2일의 선거기간 동안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차가진 카이로 통신원은 기자, 국회의원 비서관, 더불어민주당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다 지금은 이집트에 잠시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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