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이는 국제유가…불안한 DLS 투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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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이는 국제유가…불안한 DLS 투자자들
  • 김솔이 기자
  • 승인 2020.04.0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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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감산 발표에 의구심...산유국 간 이해관계 엇갈려
국제유가 30달러 넘지 않으면 DLS 원금 손실 가능성 여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솔이 기자] 미국이 ‘유가 전쟁’ 개입 의사를 드러내면서 국제유가가 수직 상승했지만 시장의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산유국 간 이해관계가 복잡해 대규모 감산 가능성이 높지 않은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수급 우려도 여전한 탓이다. 원유 가격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 투자자들은 불확실성 속에서 만기를 기다리게 됐다.

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5.01달러(24.67%) 뛴 25.3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상승률만 보면 사상 최대다. 같은날 영국 런던ICE선물거래소의 6월 인도분 브렌트유 또한 전 거래일 대비 배럴당 5.20달러(21.02%) 오른 29.94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유가를 끌어올린 건 전쟁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다. 그는 이날 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가 하루 1000만~1500만배럴 감산에 합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감산 소식은 같은날 미국 독립계 셰일 탐사생산(E&P) 기업 ‘화이팅(Whiting Petroleum)’이 파산보호신청을 한 후 전해졌다. 시장에선 에너지업계를 지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확인했다고 보고 있다. 미국 전체 고용에서 에너지업계 비중은 4분의 1에 달한다.

화이팅의 파산 자체만으로도 원유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향후 국제유가 하락 여파로 셰일기업이 줄줄이 파산할 경우 원유 공급이 감소, 수급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미 셰일기업의 신용등급은 빠르게 하향 조정되고 있다.

◆ 원유 감산 합의 성과 예단 어려워

문제는 감산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신감과 달리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에선 감산 신호가 나오지 않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는 지난 1일부터 하루 생산량을 200만 배럴 늘린 바 있다. 증산 경쟁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두 국가가 단기간 내 감산으로 돌아서기엔 걸림돌이 적지 않다. ‘셰일 혁명’ 이후 미국에 원유 패권을 빼앗긴 사우디아라비아로서는 감산을 주도할 이유가 없다. 

현재 미국은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이자 원유 수출국이다. 국제유가가 떨어지는 가운데 미국 에너지기업들이 잇달아 파산하면 사우디아라비아에겐 원유 패권을 되찾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그간 미국을 겨냥, 캐나다‧멕시코‧브라질 등 모든 산유국이 감산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중국 등에 에너지 수입을 강요해온 미국에 불만이 높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미국 에너지기업들이 감산에 공조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엑손모빌‧셰브론 등 생산 효율성을 갖춘 초대형 에너지기업들은 시장 재편을 노리고 있다. 국제유가 하락에 따라 화이팅처럼 파산하는 독립계 E&P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방식이다. 즉 감산과 유가 부양으로 경쟁력 낮은 기업들을 살려둘 필요가 없는 셈이다. 앞서 미국석유협회(API)는 감산 공조보다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

자료=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
자료=런던ICE선물거래소

현실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만 감산에 참여할 경우 하루 생산량에서 1000만배럴을 줄이는 것은 역부족이다. 지난해 말 기준 두 국가의 산유량은 하루 2000만배럴 수준이다. 미국 산유량과 OPEC+ 산유량까지 합치면 각각 3300만배럴, 5500만배럴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감산 규모를 달성하려면 OPEC+ 외 산유국의 감산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박영찬 KB증권 연구원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증산 의지가 확고한 데다 산유국 간 이해관계가 복잡해 단기간 내 본격적인 감산 합의가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며 “극단적인 감산 합의가 이뤄져야 유가의 저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원유 수요 감소도 국제유가에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당초 미국‧유럽 확진자 수 증가세가 이달 초 정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그 시점이 늦춰지고 있다. 이르면 이달 말에야 확산세가 꺾일 것으로 추측된다.

원유 수요 전망도 가파르게 하향 조정되고 있다. 당장 이달부터 하루 원유 수요가 2000만배럴~3000만배럴 감소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감산 규모 최대치 1500만배럴을 적용하더라도 공급량이 수급량을 크게 웃돈다.

스티븐 이네스 악시코프(AxiCorp)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감산을 중재하는 건 좋은 출발”이라면서도 “어려운 2분기를 헤쳐나가려면 더 큰 규모의 감산이 필요하다”고 미국 CNBC에 밝혔다.

◆ 만기 1년 이하 DLS 원금 손실 가능성 여전

국제유가 급락 국면에서 손실 위험(리스크)가 커진 금융투자상품 투자자들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대표적으로 WTI‧브렌트유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원유 파생결합증권(DLS)과 DLS를 담은 펀드(DLF) 상품 등이다.

원유 DLS는 가입 기간 기초자산으로 삼는 국제유가가 정해진 수준까지 하락하지 않는 경우 연 5% 이상 고수익을 얻는 구조의 상품이다. 만기 전까지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조기 상환 평가일에 유가가 정해진 수준 이상이면 조기 상환도 가능하다.

국제유가가 한 번이라도 녹인(knock-in‧원금 손실 구간)에 접어들 경우 원금 손실 가능성이 생긴다. 물론 조기상환 평가일과 만기 시 유가가 정해진 수준으로 회복되면 원금 손실을 피할 수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WTI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DLS 잔액은 9226억원이다. 브렌트유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DLS 잔액 또한 5360억원(중복 포함)에 달한다. WTI를 기초자산을 담은 DLS 중 녹인이 45%~55%인 DLS 잔액이 5751억원, 같은 녹인 구간을 지닌 브렌트유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DLS 잔액은 3971억원이다.

특히 국제유가가 50달러~60달러를 기록했던 지난해 하반기 만기가 1년 이하인 DLS에 가입한 투자자들은 대거 원금 손실 위기에 처해 있다. DLS 녹인 구간이 대부분 기초자산 최초 기준가의 45%~55%인 점을 고려하면 대부분 녹인 구간(25달러~30달러)에 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다가오는 조기 상환 평가일과 만기일에 유가가 올라오지 않으면 원금 손실이 불가피한 셈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6개월간 판매된 DLS 중 만기가 1년 이하인 상품 규모는 2조3314억원에 달한다.

예건대 NH투자증권에선 지난 1일 ‘공모 DLS 3955회  조기상환이 미뤄졌다. 이 상품은 지난해 11월 1일에 발행돼 오는 11월 6일 만기를 맞는다. 최초 기준가는 WTI 56.2달러, 브렌트유 61.69달러로 이미 지난달 16일 브렌트유 선물이 30.05달러를 기록하면서 녹인 구간(30.85달러)에 들어섰다. 

매월 첫 거래일에 돌아오는 조기상환 평가일에 WTI‧브렌트유 가격이 정해진 수준(최초 기준가의 95%‧90%‧85%) 이상이거나 만기일에 두 기초자산 가격이 최초 기준가의 80% 이상이면 연 6.54%를 수익을 낼 수 있다. 반면 조기상환 요건을 못 맞추고 만기일 두 기초자산 가격 중 하나라도 80%를 밑돌 경우 원금 손실을 보게 된다.

국제유가 반등세가 약해질 경우 DLS 조기상환 건수는 계속 감소할 전망이다. 지난달 DLS 조기상환은 77건으로 올 2월(171건)대비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반면 중도 상환 건수는 2월 96건에서 지난달 364건으로 급증했다.

현재로선 국제유가의 방향성을 논하긴 어려운 만큼 관련 투자에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심혜진 삼성증권 연구원은 “OPEC+ 외 국가들까지 감산에 참여했을 때 국제유가는 배럴당 30달러 초반까지는 오를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참여자들의 여러 사안들이 부각될 것”이라며 ”국제유가의 변동성은 여전히 높을 것으로 판단, 레버리지 투자는 권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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