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칼럼] 코로나19에 맞서는 우리, 충분히 민주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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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칼럼] 코로나19에 맞서는 우리, 충분히 민주적인가?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0.04.0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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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팬데믹에 '민주주의 가치' 더 부각
함께 고통 나누고 협력하는 시민의식에서 큰 '희망' 발견
'민주공화국의 주인들', 이번 사태로 시민참여의 효능감 높여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전임연구원] 코로나 19 확진자의 급증 추세로 사회적 격리 장기화와 경제활동이 축소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이 합심하여 국민과 나라를 위해 희생정신을 보여주는 것이 마땅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정부가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긴급재난지원금 100만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선별적 지급 방식으로 인한 차별 논란과 추경예산 확대를 놓고, “신속한 집행”을 강조하는 민주당과 “재정건전성을 위협하는 총선용 매표행위”라고 비판하는 미래통합당은 초당적 협력보다는 네거티브 선거캠페인에 몰두하고 있다.

정치권이 협력보다 정쟁을 선택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4·15 총선승리를 위한 네거티브 캠페인 전략 즉,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승리에만 집착하는 ‘승리지상주의’가 작동하고 있다는 게 유력한 설명이다.

"중국이 민주주의 국가였다면..."

이런 와중에 지난 3월 18일 노벨문학상을 받은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관련해 중국 정부를 비판한 칼럼을 쓰고, 중국이 즉각 반발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것은 우리 정치권의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제의 칼럼은 바르가스 요사가 지난 15일 페루 일간 라레푸블리카와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에 실은 ‘중세로의 회귀?’라는 제목의 글이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를 중세 유럽의 흑사병 유행과 비교한 이 칼럼에서 “중국이 독재정권이 아니라 자유로운 민주국가였다면 세계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바르가스 요사는 “적어도 저명한 의사 한 명, 어쩌면 여러 명이 일찌감치 이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중국 정부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대신 모든 독재정권이 그러듯이 이 소식을 감추려 노력했고 양식 있는 목소리를 침묵시키려 했으며, 뉴스가 확산하는 걸 막으려 했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중국은 곧바로 반발했다. 페루 주재 중국대사관은 성명을 내고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그렇다고 자의적인 명예 훼손과 낙인찍기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중국 대사관은 “세계보건기구(WHO)는 지금까지 코로나19의 기원을 밝혀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바르가스 요사의 칼럼은 코로나19와의 싸움이 감염병과의 싸움 그 이상임을 웅변하고 있다. 거기에는 권위주의 정부모델보다 민주주의 정부모델이 감염병과의 싸움에서도 더 유효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싸움이라는 의미가 깔려있다.

이와 관련하여 일찍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인도 출신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도 민주주의 체제와 효과적인 기근대처의 친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센은 <자유로서의 발전>이란 저서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나라에서는 기근이 발생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에 의하면, 민주주의 국가라면 흉년에도 기근을 결코 겪지 않는다. 반면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가벼운 흉년조차 쉽게 기근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대단히 효율적인 정보 생산 체제이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아니었다면 권력자가 관심 갖지 않았을 구석구석의 수많은 정보를 상향식으로 빠르게 흡수하여 여기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즉, 충분히 민주적이지 않은 정부는 재난 현장에서 올라오는 목소리보다 권력자의 정권수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재난 수습보다 정권 보위에 자원이 집중된다. 재난 현장에서는 우왕좌왕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국가의 민낯이 드러나고, 정권 수호의 현장에서는 일사불란한 총력전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위기 앞에 분열하는 정치권 

아마티아 센은 코로나19라는 재난에 맞서는 우리 정치권의 모습이 충분히 민주적인가를 묻고 있다. 이에 대한 대답은 긍정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우리 정치권은 여전히 국민의 생명과 안전 국가의 공공선을 위해 건설적으로 싸우기보다는 자당의 당리당략과 선거승리를 위해 싸우는 진영논리의 관행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4·15 총선을 앞둔 한 달 전쯤만 하더라도 여야 정치권은 ‘한일전’으로 치룰 것인지 반대로 ‘한중전’으로 치룰 것인지 놓고 프레임 전쟁에 골몰했었다. 여당과 지지자들 사이에서 다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맞서 강경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야당과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진원지인 중국에 우호적인 현 정권을 총선에서 심판하자는 주장이 나오곤 했다.

당시 여야 정치권의 프레임 전쟁은 코로나 19 확산의 원인진단과 그 주범이 누구인가를 놓고 치열했다. 지난 2월 26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우한 코로나 확산 사태에 대해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라고 답변하면서 논란이 본격화되었다.

구체적으로 정갑윤 의원은 “숙주는 박쥐도 아니고 바로 문재인 정권과 그 밑에 있는 여러분들입니다”라면서 “중국인 입국 금지를 하지 않은 것이 코로나19 확산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이에 박 장관은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우리 한국인이었다”고 반박했고, 정 의원은 “발생지가 우리나라란 얘기냐”고 되물었다. 박 장관은 이에 “중국에서 들어온 우리 한국인들이란 뜻”이라고 답했다. 정 의원은 질의시간이 끝나 마이크가 꺼진 상태에서도 고성을 이어갔고, 박 장관도 팽팽하게 맞섰다.

이에 맞서 홍준표 전 새누리당 대표는 2월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이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으로부터도 입국제한을 받는 등 세계 각지에서 고립되고 있다”며 “이는 문재인 정권의 방역 실패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문 정권은 코로나 사태를 특정 종교 탓하거나 오히려 중국에서 입국한 우리 국민 탓을 하고 나아가 애꿎은 대구·경북 지역 봉쇄만 이야기하고 있다“면서 ”참으로 후안무치한 정권”이라고 지적했다.

각자도생에 맞서 봉사와 연대의 가치를 지키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빛을 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각자도생에 맞서 봉사와 연대의 가치를 지키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빛을 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입싸움이 아닌 감염병과의 싸움에 집중해야

논쟁은 지지층으로도 확산되었다 지난 2월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중국인 입국금지’ 청원에 76만 명이 동참했고, 같은 날 ‘신천지 강제 해체’ 청원 동의자가 70만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 단계에서 신천지 해체나 중국인 입국 금지 주장 모두 “핵심 논점을 흐리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실효적인 대책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는 취지다.

2월 25일 서울신문과 인터뷰인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중국인 입국 금지는 지역사회 감염 양상을 보면 과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면서 “신천지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이해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접촉을 최소화하고 종교 활동을 자제하는 등 개인위생 수칙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일 매일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는 이때 무엇보다도 국민 각자가 현실을 긍정하면서 지혜롭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처한 운명을 비관하는 태도보다는 운명을 사랑하는 ‘아모르 파티’(운명애)가 필요하다.

도대체 인적, 물적인 교류와 협력이 커지면서 지구촌이 형성되는 세계화 시대에 감염병이 국적을 따진 적이 있었을까? 초국적 감염병은 애초부터 한 국가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글로벌 난제였다. 그래서 오직 성숙한 지구촌 세계시민들의 협력으로만 해결할 수밖에 없는 글로벌 의제였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왜 한 국가만으로 감염병 대처가 어려운 것일까? 그 이유는 국가적 이해관계(민족주의, 국수주의 등)와 국내 정파적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가운데 방역의 골든타임을 놓칠 경우 그 피해는 전세계시민이 고스란히 입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로나19는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것이지만 국가를 구분해 피아를 구별할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배타적 이해관계를 견제하고 균형을 잡는 초국적 세계시민들이 글로벌 연대로 함께 협력하고 대처해야 하는 일이다.

물론 야당이 집권당과 정부를 견제하고 균형을 잡으려는 건설적인 노력은 계속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정부의 방역 실패를 과도하게 운운하는 것은 하등의 도움이 안 된다. 정부를 비난한다고 해서 감염병이 잡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감염병을 차단하고 민생경제의 악화를 막기 위한 실효적인 대책에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정치권 정쟁 바이러스 이겨내는 중

그나마 이번 사태에서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보여 준 건 불행 중 다행으로, 성숙한 시민의식이 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쇼크로 최악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들을 위한 임대료를 인하하는 건물주들의 ‘임대료 인하운동’이 시작돼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2월 25일 남대문시장 내 점포 1만2천개 중 4천여개 점포의 건물주들은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직면한 자영업자들을 돕기 위해 앞으로 3개월 동안 임대료를 20% 낮추기로 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대구·경북 지역에도 전국적인 응원이 잇따르고 있다.

이번 위기를 통해서 함께 고통을 나누고 협력하려는 성숙한 시민의식은 정치권의 정쟁바이러스를 막는 희망이 되고 있다. 공포와 배제의 논리가 아닌 공감과 수용의 논리가 불러온 희망이다. 시민들은 각자도생에 맞서 봉사와 연대의 가치를 지키고 있다.

특정 지역에 낙인을 찍고자 하는 차별적 태도에 맞서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동료시민이라는 애착심과 애국심을 키우고 있다.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사태는 재난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와 시민들의 모습이 충분히 민주적인지를 시험하면서 민주공화국의 주인으로서 시민참여의 효능감을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 채진원 박사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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