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들 '삼중고(苦)'...코로나19에 통화가치·상품가격 폭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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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들 '삼중고(苦)'...코로나19에 통화가치·상품가격 폭락까지
  • 김지은 기자
  • 승인 2020.03.26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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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달간 700억달러 규모 자본 순유출
통화가치 급락은 중앙은행 대응여력 낮춰
상품가격 급락에 외화조달 여력 더 낮아져
인도 뭄바이의 한 주민이 마스크를 쓴 부처 벽화 옆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도 뭄바이의 한 주민이 마스크를 쓴 부처 벽화 옆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지은 기자]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신흥국가들의 시름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신흥국가들은 의료 시설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아 코로나19가 자국으로 확산될 경우 이에 따른 파장이 심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 부채가 눈덩이처럼 쌓여있는 일부 신흥국가들의 경우 경제적 타격을 우려한 해외 투자자들이 투자자금을 회수하면서 자국 통화 가치가 빠르게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중앙은행들이 경제적 파장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을 제한시키는 요인이다.

구리와 원유 등 상품가격이 급락하고 있는 점도 이들 국가의 자산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전례없는 보건 위기 상황에서 통화가치 급락·상품가격 폭락까지 더해지자 신흥국가들의 고통은 더욱 깊어지는 추세다. 

"21일 대응 못하면 21년 후퇴한다"

코로나19가 전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인도를 비롯한 신흥국가들에서도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다. 인도는 25일(현지시각) 기준 확진자가 519명 발생했고, 이 중 1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전국 13억 인구에 대해 3주간 '완전 봉쇄령'을 내렸다. 경제적 피해가 불가피하지만 '21일을 대응하지 못하면 21년을 후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25일 기준 확진자가 709명으로 집계됐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경폐쇄 등의 비상조치를 발표했다. 

파키스탄은 국제통화기금(IMF)에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지난해 IMF로부터 3년간 60억달러(약 7조4000억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한 상태이지만,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추가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적 피해를 감수하면서 봉쇄 대책을 내놓을 정도로 신흥국가들의 코로나19에 대한 위기감은 상당하다. 의료용 마스크를 비롯해 호흡기 장비 등 코로나19 대응에 필수적인 의료장비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신흥국가 통화가치 급락

신흥국가들이 우려하고 있는 것은 비단 의료장비 부족 만이 아니다. 이미 정부 부채가 눈덩이처럼 쌓여있는 상태에서 코로나19에 대한 우려로 채권자인 투자자들은 신흥국가에서 자금을 빼내기 시작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일부 국가는 '국가부도'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경제조사기관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조사 결과 신흥국가들의 공공 및 민간 부채는 지난 2007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70% 수준이었으나, 현재 165%까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경제적 타격이 클 경우 이들 부채비율이 높은 일부 국가에 대한 디폴트 우려도 확산되는 추세다. 이를 우려한 해외 자본 이탈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국제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두달간 신흥국가에서 700억달러 규모가 순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신흥국가에 순유입된 금액이 790억달러 수준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양이 코로나19 영향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외국인 자본이 빠른 속도로 빠지면서 통화가치는 더욱 떨어져 중앙은행들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통화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금리를 높여야 하지만, 경기가 급속도로 악화된 상황에서 금리 인상을 단행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터키다. 터키는 기업들의 부채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는데, 그 중 상당부분이 달러화 표시 부채다. 최근 몇년 간 투자자들이 자금을 빼내면서 터키의 통화인 리라 가치는 급락해왔는데,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그 위기가 더욱 심화되는 분위기다. 

터키의 통화는 1월 이후 10% 하락했으며, 코로나19로 관광이 멈추면서 터키 경제의 약 10분의 1이 소멸된 상태다. 

남아공의 경우 코로나19 확산 이전부터 경기침체 그림자가 드리웠다. 남아공은 지난해 3분기와 4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해 공식적인 경기침체에 접어든 상태였다. 일반적으로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보인 경우 경기침체로 규정한다. 남아공은 실업률이 무려 29%에 달하는 등 극심한 경기침체에 빠져 있었는데, 코로나19까지 더해진 것. 이에 남아공 통화인 랜드화 가치는 지난 3월9일 한 때 40년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멕시코 페소나 러시아 루블화는 이번 달 들어 달러 대비 15-20% 하락했고 브라질 통화인 헤알 가치는 11% 하락했다.

JP모건에 따르면 지난 4주간 신흥국 통화 매도세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 그 속도가 비슷한, 사상 최고 수준에 달했다.

데이비드 루빈 씨티그룹 신흥경제 헤드는 "신흥시장에서는 자본 흐름의 문제는 유독 중요하다"면서 "자본유입이 멈출 경우 그 자본에 의지하고 있던 신흥국가들은 큰 침체를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상품가격 급락에 외화 조달 여력 떨어져

상품가격이 속수무책으로 떨어지고 있는 점도 간과하기 힘든 부분이다. 칠레와 페루, 콩고, 잠비아 등 구리 생산국을 비롯해 러시아, 콜롬비아, 나이지리아, 멕시코 등 원유 수출국은 상품가격 급락에 따른 경제적 타격이 우려되고 있다. 

구리 가격은 2016년 10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와 브렌트유는 모두 배럴당 30달러 아래에서 거래되고 있다. 

신흥시장의 경우 석유나 상품가격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 이들 가격이 폭락하면서 경제적 위기를 더욱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세계 경제는 불황이었으나 상품 가격이 치솟으면서 신흥국가들의 타격은 그리 크지 않았던 것.

하지만 지금은 달러 경색에 따른 통화가치 급락과 동시에 상품가격까지 무너지면서 두 가지 충격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원자재 가격의 급락은 신흥국가들이 그들이 필요로 하는 외화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더 적음을 의미한다"며 "가난한 나라일수록 더 절실히 느낄 것"이라고 설명했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거래되는 구리 선물 3개월물 가격 추이.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거래되는 구리 선물 3개월물 가격 추이.

IMF·WB "신흥국가 고통 나누자...부채상환 유예 촉구"

한편 신흥국가들의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발벗고 나서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19일(현지시각) 한국·브라질·호주·멕시코·싱가포르·스웨덴 중앙은행과 600억 달러, 덴마크·노르웨이·뉴질랜즈 둥앙은행과 300억 달러 규모로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했다.

통화 스와프는 자국 통화를 상대국 중앙은행에 맡기고 상대국 통화를 빌려쓸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이다. 달러 조달에 압박을 받고 있는 신흥 국가들 입장에서는 달러 부족 문제에서 다소 숨통을 틔울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도 나섰다.

이들은 25일(현지시각) 세계 최빈국들이 코로나19에 대응할 수 있도록 부채 상환 유예를 촉구했다. FT에 따르면, IMF와 WB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채권국 정부가 최빈국을 상대로 이같은 조치를 취해줄 것을 당부했다. 

데이비드 말패스 세계은행 총재는 "모두에게 힘든 시기이지만 특히 가난하고 취약한 나라들은 더욱 힘들 것"이라며 "우리의 첫째 목표는 국가가 필요한 지원을 신속하게 제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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