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금지' 뒷북 대응에 외국인만 활개...한시적 조치론 역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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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매도 금지' 뒷북 대응에 외국인만 활개...한시적 조치론 역부족
  • 김솔이 기자
  • 승인 2020.03.2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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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열종목 지정 요건 축소→공매도 금지→시장조성자 의무 완화
그래픽=연합뉴스
그래픽=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솔이 기자] 국내증시 폭락장이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들이 공매도 주식을 대량 보유해온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동안 이익을 보면서 주가 하락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거세다. 금융당국의 한시적 공매도 금지 제도마저 ‘뒷북’ 대책이었던 셈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공매도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계속 나올 전망이다.

23일 한국거래소 공매도 종합 포털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8일까지 공매도 잔고 대량 보유자 공시 6662건 중 외국계 금융사 공시가 6227건으로 93.5%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금융사 공시는 422건으로 6.3%, 개인투자자 공시는 13건으로 0.2%에 불과했다.

2016년 도입된 공매도 잔고 대량 보유자 공시는 한 종목 상장주식 총수의 0.5% 이상을 공매도 잔고로 가진 투자자가 공시하도록 했다. 비중이 0.5% 이하더라도 공매도 금액이 10억원이 넘으면 공시 대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전세계 확산으로 국내증시가 내리막을 걷는 동안 외국인투자자들이 공매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드러난 셈이다. 코스피는 지난 18일 1591.20에 마감, 지난해 12월 30일 종가(2197.67) 대비 27.6% 하락했다. 코스닥 또한 이 기간 27.6% 떨어졌다.

'롤러코스터' 국내 증시…외국인 공매도 세력 존재감 여전

외국계 금융사 중 공매도 잔고 공시가 가장 많은 곳은 모건스탠리인터내셔날피엘씨였다. 모건스탠리인터내셔날피엘씨는 올 들어 전체 공시의 34.2%에 달하는 2279건을 공시했다. 이어 ▲크레디트스위스씨큐리티즈유럽엘티디 1077건(16.2%) ▲메릴린치인터내셔날 1034건(15.5%) ▲골드만삭스인터내셔널 551건(8.3%) ▲제이피(JP)모간 증권회사 547건(8.2%) ▲유비에스에이쥐(UBS AG) 432건(6.5%) 등 순이었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되는 종목의 주식을 빌려 매도하는 투자방식이다. 향후 주가가 떨어지면 낮아진 가격에 주식을 사 주식을 갚아 차익을 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주가가 떨어지는 데에 ‘베팅’하는 만큼 시장에 거품이 끼거나 변동성이 커질 때 공매도가 기승한다.

다만 개인투자자의 경우 자금력이 부족하고 신용도가 낮은 탓에 공매도 거래에서 소외돼 있다. 기관‧외국인투자자에 비해 정보에 취약한 점도 개인투자자의 공매도에 걸림돌로 여겨진다. 그간 개인투자자들은 국내 증시에서 공매도가 외국인‧기관투자자의 ‘전유물’이 되면서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야말로 외국인‧기관투자자와 개인투자자의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국내증시가 급락한 가운데 외국인투자자들의 공매도가 몰리면서 개인투자자의 손실을 키웠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실제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공매도 잔고 공시를 살펴보면 각각 2040건(30.6%), 4622건(69.4%)로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은 코스닥시장의 건수가 두 배를 넘었다.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 포비아(공포증)’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은 국내증시 하락장 때마다 공매도를 막는 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수시로 공매도를 금지하면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달 들어 영국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주요국에서 부분적으로나마 공매도가 금지된 후 금융당국이 움직인 점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의 신뢰도를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개인투자자 입장에선 이 마저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당국이 선진시장 진입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상대적 약자인 개인투자자 보호에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 ‘찔끔’ 대응에 공매도 세력 확대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당국의 뒤늦게 내놓은 공매도 대책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공매도 대책 시행 시기가 늦었다는 지적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0일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 요건을 완화하고 거래 금지 기간을 1거래일에서 10거래일로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했지만 공매도 세력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주식시장 공매도 거래대금은 지난 9일 1조806억원을 기록한 후 이튿날 6686억원으로 줄었다. 그러나 11일 7931억원으로 불었고 12일엔 1조854억원까지 치솟아 관련 통계가 발표되기 시작한 2017년 5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외국인투자자만 살펴보면 유가증권‧코스닥시장 공매도 거래대금이 10일 4297억원으로 전일(5784억원)에 비해 감소했으나 11일과 12일 각각 4781억원, 7531억원으로 불었다. 공매도 대책으로 시장 안정은 커녕 시장에 혼란만 준 셈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13일에야 한시적 공매도 금지 방안을 내놨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이날 브리핑에서 “10일 당시엔 희망이 섞여 있어 부분적 공매도 조치를 했다”며 “‘그 때 할 걸’ 하는 지적에 대해선 변명하진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더불어 한시적 공매도 금지를 둘러싸고서도 잡음이 이어졌다. 이 대책의 핵심은 오는 9월 15일까지 6개월간 유가증권·코스닥·코넥스시장 전체 상장종목에 대한 공매도를 막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장조성자 예외 규정으로 기관투자가들이 여전히 공매도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13일 이후 시장조성자의 공매도를 막아달라는 청원이 잇따라 올라오고 각 게시물의 청원인을 합치면 5만명에 달했다. 결국 금융위원회는 한시적 공매도 금지 방안 발표 5일 후인 18일 다시 시장조성자 제도의 시장조성 의무 내용을 절반 수준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개인투자자들은 그간 공매도 세력이 주가를 끌어내리고 뒤늦게 금융당국이 뒤늦게 대응하는 걸 학습해왔다”며 “개인투자자 입장에선 어떤 제도 개선보다 공매도 폐지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물론 공매도의 순기능을 무시할 순 없다. 공매도는 증시에서 주가가 과도하게 급등할 때 거품을 제거해 시장 안정을 도모하는 효과가 있다. 또 증시 하락장에서도 유동성을 높이기도 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공매도 폐지를 주장하는 개인투자자들이 많지만 일각에선 개인투자자들에게 공매도 기회를 확대하라는 의견도 있다”며 “개인투자자뿐 아니라 시장 참가자별로 이해관계가 복잡한 문제이고 시장에서 공매도의 기능을 고려하면 어느 한 쪽 편을 정해 정책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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