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관찰일기] 이 시국에 마스크 기부하라는 프랑스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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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관찰일기] 이 시국에 마스크 기부하라는 프랑스 정부
  • 김환훈 파리 통신원
  • 승인 2020.03.2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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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법, 우리와 많이 달라
프랑스 정부 "코로나는 위험하지 않다" 일관된 메시지
학교폐쇄·이동금지령도 공포감 낮추고 확산 방지 주력
정부 방침 옳지 않을 수도...그러나 프랑스국민은 따른다
김환훈 파리 통신원
김환훈 파리 통신원

[오피니언뉴스= 김환훈 파리 통신원] 한국이었다면 십자포화를 맞고도 남을 대단한 망언이었다.

“시민 여러분. 집에 남는 마스크가 있다면, 가까운 의료기관에 기부해주십시오. 일반인에게 마스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의료인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물품입니다.”

지난 19일 저녁, 프랑스 질병관리본부장 제롬 살로몽은 코로나 바이러스 일일 현황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한국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누군가 진짜 돌을 던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국민의 생명과도 같은 마스크를 지급해주기는커녕 기부하라는 말이 정부 관계자 입에서 나온 것이다.

프랑스 인들이 이상한가

프랑스 정부가 이동금지령을 발령한 지 만 삼일째다. 프랑스 국민들은 생필품이나 의약품 구매, 간단한 운동 같은 목적 없이는 외출할 수 없게 되어있다.

그러한 경우에도 반드시 지정된 양식에 따른 ‘외출 목적 증명서’를 지참해야 하며, 해당 서류를 소지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작성한 경우, 최대 18만원 상당의 벌금이 부과된다.

그리고 그 소식이 한국에 전해진 날, 생각지도 못한 안부 연락을 수도 없이 받았다. 이동금지령이 발령될 정도로 엄중한 상황이라는 걱정에서였을 것이다.

헌데 그 중 누군가의 말이 억세게 다가왔다. “프랑스는 마스크도 안 쓴다며? 그쪽 사람들 너무 생각 없는 거 아니냐?”

곧장 한국에 보도된 프랑스 실태에 관한 온라인 기사 몇 개를 찾아보았다. 대부분의 요지는 이런 것이었다. ‘프랑스인들은 질병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로 여긴다. 그래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또는 ‘마스크는 아픈 사람만이 쓰는 거라는 고정관념 탓’이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프랑스 다중이용시설 영업금지령, 그러자 마지막 만찬을 즐기려는 광란의 파티 벌어져’와 같은 내용의 기사나, ‘레스토랑 및 카페 폐쇄하자 시민공원에 바글바글하게 모인 프랑스인들’ 같은 다소 비판적인 논조의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개인 블로그나, 유튜버들의 프랑스 현황에 관한 콘텐츠 역시 한결같았다.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프랑스인들 굳이 변호하겠다는 목적이 아니다. 서로 다른 문화 집단이 서로를 오해하고, 오로지 자신의 잣대로만 상대를 평가하는 일이, 그리고 그러한 평가의 결론이 일반적인 관념으로까지 확산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타인이 우리와 다르게 행동한다면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따져보는 게 먼저가 아닐까.

프랑스 질병관리본부장 제롬 살로몽이 지난 19일 코로나 바이러스 일일 현황 기자회견 자리에서 "마스크를 기부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사진= 현지방송 캡쳐
프랑스 질병관리본부장 제롬 살로몽이 지난 19일 코로나 바이러스 일일 현황 기자회견 자리에서 "마스크를 기부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사진= BFM TV 화면 캡쳐

프랑스 정부의 일관된 메시지

프랑스의 철학자 푸코는 일찍이 개인이 세계를 보는 바라보는 방식이나 그에 반응하는 행동의 조건이 사회적인 층위에서 결정된다 말한 바 있다. 사회적 층위에서 형성되는 지식이 개인 주체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그러한 시선으로 관찰했을 때,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프랑스인들의 행태가 우리의 상식과 다른 이유는 단 하나다. 프랑스 정부가 국민들에게 일관된 메시지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위험하지 않은 질병이다. 단, 노인이나 암과 같은 기저 질환자에게만 위험할 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반 국민, 나아가 아이들에게조차 코로나 바이러스는 치명적인 질병이 아니다’라고 프랑스 정부는 꾸준히 말해왔다. 코로나 발병 사태 이래 프랑스 정부는 이러한 대국민 메시지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심지어 엠마뉴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학교 폐쇄령을 내리는 대국민 담화문에서 “학교의 문을 닫는 이유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이들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아이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아무런 증상이 보고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다만 학교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아이들이 집에 있는 부모와 조부모에게 바이러스를 전파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라고 명확히 밝혔다.

마스크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프랑스 정부의 입장은 전혀 변함이 없다. “일반인에게는 마스크가 굳이 필요없다. 손을 씻고 얼굴을 만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방역이 된다. 단, 의료인에게는 필수품이다.”

TV는 물론 라디오에서까지 이러한 내용의 공익광고가 10분에 한 번씩 송출된다. 길거리에는 전봇대마다 동일한 내용의 포스터가 붙어있다. 대통령에 국무총리에 보건부장관에 질병관리본부장에 뉴스 인터뷰에 등장하는 객원 전문가까지 모두가 같은 내용을 이야기해왔다.

코로나 바이러스 의심 증상이 있는 경우 정해진 대처법 또한 명확하다. 정부 메시지에 따르면 이동금지령 기간 동안 기침 또는 발열 증세가 보이는 경우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을 의심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심각한 증상이 아닌 경우, 집에서 단순히 쉬는 것만으로 자가치료로 충분하다. 다만 호흡이 심하게 가빠오는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는 경우는 위급한 것으로 즉시 정해진 번호로 연락해야 한다.

이것이 정부에서 반복적으로 내세우는 메시지의 끝이다. 다만 며칠 전 이부프로펜 계열이 아닌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의 해열제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된 게 전부다. 이것 역시 아침저녁으로 TV와 라디오에서 세뇌되듯 교육받고 있다.

21일 프랑스 현지의 한 여론조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신뢰한다'는 의견이 51%로 나타났다. 코로나 19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처에 국민들이 신뢰를 보내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21일 프랑스 현지의 한 여론조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신뢰한다'는 의견이 51%로 나타났다. 코로나 19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처에 국민들이 신뢰를 보내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타인을 위해 이동금지령을 지켜달라"

마지막으로는 프랑스 대통령의 메시지를 들 수 있겠다. 엠마누엘 마크롱이 오늘도 국민들에게 단 한 가지를 부탁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으며, 아마 내일도 그럴 것이다. 그 부탁의 내용은 이렇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취약한 계층을 위해, 부디 바깥을 돌아다니지 말아달라. 아마 당신은 멀쩡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이동금지령을 준수해달라.”

결론은 이렇다. 프랑스 정부는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동일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에게 있어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저 일반 독감과 비슷하다는 것. 다만 그 바이러스에 취약한 계층이 있으며, 그 계층을 위해 바이러스를 전파를 막아야할 필요가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

프랑스 국민이 결코 바보라서가 아니다. 만약 정부에서 ‘마스크를 쓰지 못하면 당신은 이틀 내로 바이러스에 걸려 사망할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프랑스 국민들은 아마 화염병을 들고 약국을 털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변함없이 일관된 메시지로 국민들은 안심시켰다. 다만 그 의학적 판단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에 대해서는 나는 판단할 자격이 없다. 하지만 프랑스 국민들은, 분명 자신들의 정부의 말을 믿고 따르는 게 틀림없다.

“시민 여러분. 집에 남는 마스크가 있다면, 가까운 의료기관에 기부해주십시오. 일반인에게 마스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의료인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물품입니다.”

예상컨대 아마 내일부터 의료진을 위한 마스크 기부 행렬이 이어지지 않을 듯싶다. 프랑스 국민들로서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 김환훈 파리 통신원은 서울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파리에선 한국문학에 매진 중인 자유기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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