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칼럼] 누가 환향녀와 위안부를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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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칼럼] 누가 환향녀와 위안부를 만들었나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0.03.20 11:4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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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비관하는 태도보다 운명 사랑하는 ‘아모르 파티’(운명애) 필요
병자호란 '환향녀', 일제후 '위안부' 사건들, 사과 반성하지 않은 우리들
'르상티망' 아닌 '아모르 파티'로 위기극복하자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전임연구원] 4.15 총선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감염병 확산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비례위성정당’에 대한 여야의 네거티브 캠페인 대결 등 국민불신을 자초하는 정치권의 ‘정쟁바이러스’까지 더해져 대한민국을 멈춰 세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3월 17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양제츠 중국 외교 담당 정치국위원은 전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과 전화 통화를 갖고 코로나19 확산의 책임을 중국으로 돌리는 비난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고 한다.

양 위원은 “일부 미국 정치인들이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노력을 폄훼하고 중국에 오명을 씌우고 있어 중국 인민의 강한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면서 “중국은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에 강력히 반대하고 규탄한다. 미국이 즉각 잘못된 행동을 시정하고 중국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많은 역사적 사건들 올바른 원인진단은 

과연 누구의 말이 맞을까? 이 같은 미·중 외교수장간의 코로나19의 확산의 원인과 책임공방은 우리 정치권의 행태와 닮았다. 우리도 감염병 확산의 원인진단과 그 주범이 누구인가를 놓고 여야가 충돌했었다.

지난 2월 26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우한 코로나 확산 사태에 대해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라고 답변하면서 논란이 시작되었다. ‘코로나 3법(감염병예방법, 검역법, 의료법)’ 개정안을 심의하기 위해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선 통합당 정갑윤 의원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설전을 벌였다.

박능후 장관을 향한 “왜 우한 코로나 유입을 막기 위해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하지 않았느냐’는 취지의 미래통합당 정갑윤 의원 물음에 “우한 코로나를 국내에 확산시킨 사람은 애초부터 중국에서 들어온 우리 한국인”이라고 답변하면서 충돌했다.

코로나 19 확산의 진짜 원인은 무엇이고 진짜 주범은 누구일까? 코로나 19 확산의 원인이 중국 우한 내방 한국인인가? 아니면 중국 우한과 시진핑 정부인가? 한국 정부인가? 아무튼 과학적으로 인과관계를 따지는 게 쉽지 않다.

만약 정치권이 이것에 과학적 인과관계를 주장할 수 있다면 다음의 질문에 대해서도 똑같이 접근하여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제국이 일본 식민지가 된 원인은 무엇일까? 일본에 유학을 갔다가 온 친일파인가, 아니면 일본 정부인가, 일본 정부의 명령에 굴복한 고종정부와 관료들인가. 특히, 우리 역사의 뼈아픈 과거사인 ‘환향녀’와 ‘위안부’를 만든 원인이 무엇이고 그 주범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답해야 할 것이다.

매일 매일 확진자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이때 무엇보다도 국민 각자가 현실을 긍정하면서 지혜롭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가 처한 운명을 비관하는 태도보다는 운명을 사랑하는 ‘아모르 파티’(운명애)가 필요하다.

아모르 파티의 실천 여부로 건강한 자와 병든 자, 강자와 약자를 구분한 사람은 철학자 니체였다. 니체의 화두를 통해 우리 모두가 위로와 안식을 얻을 필요가 있다.

니체의 '르상티망'과 '아모르 파티'

니체는 돈과 권력이 많아도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면 건강한 자와 강자가 아니라 병든 자와 약자로 보았다. 그에겐 '가오'없이 돈과 권력의 포로가 되어 사는 사람이 약자이다.

니체는 약자가 강자에게 품는 반감인 질투, 시기, 열등감, 증오 등의 원한감정을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고 정의했다. 이 르상티망이 ‘도덕적 선악의 이분법’을 만들어내는 심리구조라고 했다. 르상티망은 사전적 의미로는 불안하고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패배주의적 분노를 뜻한다.

니체에게 강자는 주어진 자기 삶과 운명을 긍정하고 사랑하며 충만한 생명력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해 가는 인간이다. 이런 인간이 건강한 강자이다.

약자는 그것의 반대로 병든 자이다. 자기 삶을 긍정하지 않고 남 탓과 환경 탓으로 원한감정을 갖는 사람이 약자이다.

특히, 니체는 원한감정을 갖는 것이 건강한 삶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선악의 이분법’에 빠지게 하여 약자를 만든다고 우려했다. 내게 상처와 고통을 준 자들을 악마나 적으로 지옥에 갈 타도대상이고, 상처받은 자신은 천국에 사는 천사로 둔갑되는 것이 ‘선악의 이분법’이라고 보았다.

니체는 현대사회가 물질주의와 권력지상주의의 만연으로 삶의 목적을 상실해 도구화된 인간의 비애와 비관으로 희망이 없는 허무주의 사회가 되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모르 파티’(운명애)로 무장하고, 자기 한계를 극복해가는 초인(超人)을 닮은 시민이 요구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생각과 처지가 다른 여러 사람이 모이는 정치영역에 이런 선악의 이분법이 들어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것이 흑백논리나 진영논리가 되어 들어오면 ‘무서운 질병’이 될 수 있다. 정의의 이름으로 상대를 죽이고 심판할 수 있는 살인자, 테러리스트, 전쟁광을 만드는 질병이 되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차별하는 ‘선악의 이분법적 논리’에는 현실의 “원한감정”에 따른 차별과 적대 그리고 복수심이 숨어 있기에 대화와 타협의 정치와 성숙한 시민의 탄생을 어렵게 한다. 이에 상대의 존중과 여러 목소리의 공존을 모색하는 민주공화주의 규범을 파괴할 수 도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한 선행과 악행을 어느 한사람의 영웅과 악인이 했다는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다수의 사람들을 배제하는 시각은 공화주의 시각과 거리가 있다. 그래서 선행이든, 악행이든 침묵, 묵인, 방조로 협력한 다수의 중간지대 사람의 역할을 드러내는 공화주의 시각은 중요하다.

역사에서 종종 벌어지는 독단적인 ‘영웅만들기’에 따른 ‘우상숭배’, 반대로 독박을 씌워 ‘악인만들기’에 따른 ‘마녀사냥’을 경계하는 데에 공화주의 시각이 효과적이다.

결론적으로 앞서 질문한 것처럼, 환향녀와 위안부를 만든 원인은 무엇이고, 누가 주범일까? 그들은 왜 환향녀와 위안부가 생겼고, 누가 그들을 멸시와 천대로 대했던가? 아마도 공화주의 시각으로 보면 이렇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인조정권이 병자호란에서 패배했다. 그 뒤, 조선 여성 50만명이 청나라로 끌려갔다.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여성들을 환향녀로 불렀다. 환향녀는 고국에 돌아와서 남편과 집안으로부터 ‘더러운 몸’으로 온갖 천대와 멸시를 받고 자결을 강요당했다.

인조정권과 사대부들은 자신의 무능과 한계를 반성하지 않았다. 그들은 국력과 지략의 한계를 반성하지 않고, 살아서 돌아온 헐벗은 피해자인 환향녀의 인권과 복지를 돌보지 않았다. 자신의 무능을 가리기 위해 환향녀의 존재를 쉬쉬 은폐하며, 오랑캐 청나라 탓만 했다.

해방후 45년이 흐른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고백하기 전까지, 좌우를 떠나 우리 정부와 국민 대다수는 위안부 피해자에 무심했고, 은폐에 동조했다. 사진= 연합뉴스
해방후 45년이 흐른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고백하기 전까지, 정부와 국민 대다수는 위안부 피해자에 무심했다. 사진= 연합뉴스

좌우 어느쪽도 사과·반성않는 위안부 문제

조선은 일제 식민지를 피할 수 없었다. 해방 후 위안부에 대한 한국정부와 집권층의 태도는 인조정권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살아서 돌아온 피해자인 위안부의 인권과 복지를 미리 먼저 챙기지 않고, 쉬쉬 은폐했다. 해방 이후 45년이 흐를 때까지 위안부의 존재를 선제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사실상 은폐했다.

정부 관료와 정치권 및 국민이 헐벗은 위안부의 존재에 오랫동안 침묵하고, 은폐·묵인·방조로 협력한 것을 자기반성하지 않았다. 진심어린 자기반성 없이 뒤늦게 일제 탓을 하거나 친일파를 비난하면서 면죄부를 받으려 애를 썼다. 더더욱 친일파를 비난하면서 정권잡기에 이를 활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는 그렇게 해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더더욱 위안부 이슈를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로 편을 가르고 상대방 탓하거나 친일파 탓을 하면서 선거에 이용하려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우선적으로 당시 우리 조선정부가 국력이 약하고, 인권과 복지 등 시민권을 보장하지 않아서 벌어진 비극과 참사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성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러한 비극과 참사를 또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우리 모두가 당시의 한계를 인정하고 진지한 반성을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진정한 반성은 우리 모두가 민주공화국에 맞는 정신과 시민의식으로 자강하고 혁신하는 일이다. 따라서 일제나 친일파 탓을 하면서 면죄부를 받기 보다는 비극과 참사를 만들어 낸 민주공화국의 헌법정신에 반하는 전근대적인 내부의 낡은 사고와 폐습부터 혁신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이에 선거 때마다 과거사를 두고 아웅다웅 싸울 것이 아니라 초당적으로 정부 내 이른바 ‘과거사 청산부’를 두고 함께 운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반성차원에서 조선 집권층인 사대부의 실책은 무엇일까를 고민해봐야 한다. 중화제국의 주변부 신세인 지식인들은 자발적 복종을 내면화한 사대주의적 성리학 교리를 선택했고, 그 추종의 강약에 따라 좌파와 우파로 갈린 점이다.

우파는 살려면 사대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존론’을, 좌파는 사대도 적당히 하지 자존심도 없냐는 ‘명분론’으로 서로 부딪쳤다. 마치 이런 노선들은 북핵위기에 맞서는 현대판 우파의 ‘핵무장론’과 좌파의 ‘평화론’을 닮았다.

극단적인 생존론과 명분론의 이분법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공통점도 있다. 그것은 좌파와 우파가 자발적 노예근성으로 주변국의 속방지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율적 독립심을 위한 자주국방을 잃어버린 채, 백성과 민중의 고혈을 짜고 갑질하는 데 혈안이 된 무능한 지배자였다는 점이다.

그들이 남긴 사대부 습속의 뿌리는 깊고 영향력은 크다. 중화제국에 자발적 복종을 내면화하는 노예도덕을 고상한 ‘친중 소중화·위정척사 논리’로 둔갑시킨 ‘위선적인 도덕주의’를 가지고 지금까지 우리정치를 극단적인 좌우진영 논리와 파당정치로 몰아넣고 있다.

그렇다면, 반성차원에서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하는 골든타임에서 고종의 최대 실책은 무엇일까? 고종이 해야 할 일은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에서 드러난 민중의 고통과 불만을 수렴하고 근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급선무였을 것이다.

즉, 일찍이 개화를 주장했던 개화파의 의회설치안과 동학농민군의 참여의식을 흡수하고 개화적 민중들에게 시민권과 참정권을 보장하여 자발적 애국심에 기초하여 운영되는 국민개병제 군대와 근대적 의회를 만들어 청과 일본에 맞서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고 고종은 실패했다. 만약 이런 것들이 성공했다면, 일제의 강제 노역과 전쟁터에 끌려간 수많은 위안부와 민중들을 헐벗은 인권피해자로 만들지는 않는 근대화를 이끄는 데 성공한 혁신군주가 되었을 것이다. 요즘 같은 시기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운명을 사랑하는 ‘아모르 파티’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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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D1 2020-03-23 21:14:07
그 당시 시대적 상황도 알아 되지 참나 애초에 청나라 확장 정책으로 근처에 있던 국가들 속국이 되었는데? 베트남, 티베트, 위구르가 있지 애초에 그 당시 반성 한다 해도 속국으로 벗어날수 있어던 것도 아니고 근대화 이전인데 왠 환향녀 인권 타령? 일본군 성노예 같은 경우는 6.25 전쟁으로 인한 경제 파탄으로 인권을 보장 받기 힘들었고 피해자들이 문제 삼아도 독재 정권 때문에 힘들었다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에게 있다 애초에 독일처럼 피해 국가들이 뜻을 함께 해 차단을 해야 하는데 일제 침략으로 피해 국가들이 공상화나 분단이 일어나 뜻을 함께 하지 못해 사전 차단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상황이다

김가은 2020-03-22 02:02:15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교수님...
이 글을 모든 정치인들이 좀 읽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