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헌 칼럼] 이주열은 정은경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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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헌 칼럼] 이주열은 정은경이 될 수 있을까?
  •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 승인 2020.03.19 11: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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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경은 의료 시스템 붕괴 막아
이주열은 경제 시스템 붕괴 막아야
금리정책에 대한 신뢰 구축할 수 있는 '내러티브' 만들어야
주동헌 한양대 교수
주동헌 한양대 교수

[한양대 ERICA 경제학부 교수 주동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세계화하면서 경제적 충격이 상상을 넘어서고 있다. 한국은행은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개최하여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인하했다.

초유의 통화정책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반응은 우호적이지 않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비해 4분의 1이 날아간 주식시장은 하락세를 멈추지 않고 있고 환율은 더 상승했다. 안전자산이라고 여겨지는 금값마저 폭락했다.

실기했다는 비판은 상투적이지만 금리 인하가 현 경제상황에서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비판 앞에서는 무력함에 절망을 느낀다. 희망은 있을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상황 만든 '신뢰의 질본' 

사실 우리는 치료제도, 백신도 없는 코로나19라는 새로운 형태의 바이러스 앞에서 이미 무력했다. 지난달 대구에서 신천지 교회를 중심으로 대규모 감염사태가 발생하면서 방역 체계와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여전히 매우 위험한 상황이지만 확진자수가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새롭게 확산 국면에 진입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미국은 투명하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코로나19 확산에 대처한 우리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고 한다.

한 달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돌아보면 특정지역 봉쇄도 없었고 사재기 같은 패닉 현상도 없었다. 마스크 수급에 문제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성숙한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시민의 자발적 협조를 이끌어 냄으로써 강제적 수단을 최소화 하는 방식으로 바이러스 확산에 대처하고 있다는 것은 자부할 만하다.

한국 사회가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사투를 이렇게 버텨내는 데는 질병관리본부 정은경 본부장의 역할이 작지 않았다. 방역에서 개인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언론을 통해 코로나19 상황을 브리핑하는 공무원을 그저 매일 매일의 상황을 전달하는 메신저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정 본부장의 역할은 그 이상이었다.

정 본부장이 매일의 브리핑을 통해 국민들에게 전달한 것은 통계만이 아니라 방역 당국에 대한 신뢰였다.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온갖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상황에서도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현재 상황을 정리하고 방역당국 정책에 협조를 당부하는 정은경 본부장이 없었다면 우리가 방역 전선에서 지금 이나마의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문제는 국내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소강 또는 진정 국면에 진입하더라도 유럽과 미국에서의 바이러스 확산으로 우리 경제가 더 깊은 골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쉴러 "경제 충격 확산, 바이러스 확산 과정과 유사"

2000년대 부동산시장 거품을 경고했던 예일 대학교의 경제학자 로버트 쉴러(Robert Shiller)는 최근 그의 저서 ‘서사 경제학(Narrative economics)’에서 경제적 충격이 발생하고 확산하는 과정이 바이러스의 전파(viral epidemic)와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경제적 충격의 확산과정, 정확히는 발생한 경제적 충격을 증폭시키는 서사, 즉 내러티브의 확산과정이 바이러스의 확산과정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비슷한 경제적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현상은 내러티브가 형성되어 그 효과가 증폭되고 어떤 현상은 그렇지 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플래쉬 메모리는 혁신적이지만 그 경제적 충격은 크게 실감되지 않는다. 반면 비트코인의 혁신은 경제적 효과가 극적으로 나타났는데 Shiller는 비트코인 창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에 대한 미스터리가 내러티브가 되어 그 영향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았다.

Shiller는 또 미국 레이건 정부 시절 감세정책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던 래퍼 커브 역시 당시 시카고 대학의 교수였던 아서 래퍼(Arthur Laffer)가 한 식당에서 냅킨에 세율과 세수의 관계를 간단하게 그려서 정책 담당자들을 설득했다는 내러티브를 통해 그 영향력이 확산되었다고도 주장한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당국의 방역정책에 국민적 신뢰와 협조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도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질병예방센터장으로 활약했던 정은경 본부장에 대한 기억이 내러티브로 작동한 데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 연합뉴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 연합뉴스

이주열 총재, 금리정책 무력하게 둬선 안돼

다시 통화정책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은행이 사상 초유의 0%대 금리를 결정했다. 그럼에도 경제위기 확산을 저지하는 데 있어 통화정책이 효과를 보일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보인다.

1997년 외환위기에서 한국은행은 금융감독기구 개편의 와중에 정책 주도권을 가지지 못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저성장과 가계대출 확대 사이에서 신중한 금리 조정으로 통화정책은 방향성을 가지지 못했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는 내러티브가 없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위기는 이주열 총재가, 그리고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의 유효성에 대해 시장의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내러티브를 만들 수 있는 기회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상당한 기간에 걸쳐 방치되어 누적된 내재적 불균형이 한 순간에 폭발한 경우다. 반면 지금의 위기는 전염병이라는 외부적 충격이 경제를 위협하는 상황이다. 금융부문으로 좁혀 보면 자금조달 위험(funding liquidity risk)이 시장 유동성 위험(market liquidity risk)으로 이어진 글로벌 금융위기와 반대로 시장 유동성 위험이 자금조달 위험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강력한 외생적 충격이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상황을 막는다면 이전 위기에 비해 극복이 용이할 수도 있다. 과감한 통화정책으로 금리정책 유효성의 내러티브를 만들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1987년 검은 월요일에 민간 금융기관 출신의 연준 총재였던 그린스펀(Greenspan)은 시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연준의 최종대부자 역할을 공언함으로써 정책의 유효성을 시장에 확인시키고 2006년까지 연준 총재를 역임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연준 총재였던 버냉키(Bernanke)는 대공황에 대한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제로금리, 양적완화와 같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메르스 사태를 경험한 정은경 본부장은 바이러스 확산 앞에서 무력할 수도 있었던 방역 정책의 유효성을 지켜냈다.

이주열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으로서 최초의 한국은행 연임 총재라는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 금리정책을 무력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1996~2011년 한국은행 자금부, 금융시장국, 조사국 등에서 근무했다. 2009년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어바나샴페인 소재)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8년부터 금융위원회 경쟁도평가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2011년부터 한양대에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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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교항 2020-03-19 12:55:34
동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