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이재웅이 이룩한 최초들..."루브르 그림을 인터넷으로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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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이재웅이 이룩한 최초들..."루브르 그림을 인터넷으로 보고 싶었다"
  • 김상혁 기자
  • 승인 2020.03.13 1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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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사이트 다음 창업자, 13일 쏘카 대표에서 물러나
대한민국 벤처 1세대, 국내 최초의 무료 e메일 '한메일넷'
"사회는 언제나 혁신해, 다음 세대가 만들어 낼 것"
'포털 카페'·'뉴스 큐레이션'도 작명도 그의 몫
국내 최초 임팩트투자 전문 캐피털 '옐로우독' 설립
13일 박재욱 최고책임운영자(오른쪽)가 쏘카 신임 대표로 선임됐다. 이재웅 대표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웅(왼쪽)쏘카 대표이사는 13일 최대주주 지위는 유지하되 모든 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그의 뒤를 이어 박재욱 최고책임운영자가 신임 대표로 선임됐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상혁 기자] 이재웅 쏘카 대표이사가 경영에서 손을 뗀다. '타다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한지 일주일 만이다.

쏘카 이사회는 13일 "신임 대표이사로 박재욱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선임했다"고 밝혔다. 박 신임 대표는 타다 운영사이자 쏘카 자회사인 VCNC 대표를 겸직한다. 

다만 이 대표는 쏘카 1대 주주로서의 역할은 지속한다. 쏘카 관계자는 "(이재웅 대표가)경영일선에서 물러났지만 대주주로서의 지위는 유지한다"고 전했다. 쏘카의 1대 주주는 지분율 28.48%의 유한회사 에스오큐알아이(SOQRI)이며, 이 회사는 이 대표가 지분 100%를 보유한 개인 투자 회사다.

박 신임 대표는 "쏘카는 과도한 차량 소유로 인한 사회, 경제, 환경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카셰어링을 비롯한 다양한 모빌리티 혁신을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쏘카는 "오는 4월로 예정됐던 타다의 기업분할 계획을 철회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이날 SNS를 통해 "저를 믿어주신 여러 투자자들, 드라이버들, 동료들에게 면목 없고 미안한 마음"이라며 "저는 책임을 지고 쏘카 대표이사직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 다음 세대에게 문제 해결을 맡겨야할 때다. 혁신을 꿈꾸는 후배들, 그리고 다음 세대에 미안하다"며 "앞을 열었어야 하는데 제 역할을 다 못하고 떠나게 돼 면목없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러면서 "하지만 사회는 언제나 혁신해왔다. 언젠가는 기득권도 물러날 수 밖에 없다"라며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다음 세대에게 짐만 드려 면목없지만, 다음 세대에서는 지속가능한 혁신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믿고 있다. 저도 온 힘을 다해 옆에서 돕겠다"고 강조했다.

2004년 다음의 본사 제주 이전 당시 기자회견에 임하는 이재웅 대표(왼쪽)과 우근민 제주도지사. 사진=연합뉴스
2004년 다음의 본사 제주 이전 당시 기자회견에 임하는 이재웅 대표(왼쪽)과 우근민 제주도지사. 사진=연합뉴스

◆ 대한민국 벤처 1세대…국내 최초 무료 전자 우편 '한메일넷'

1968년 서울생인 이 대표는 대한민국 벤처 역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벤처 1세대 기업가인 그가 이룩해 낸 '최초'는 여럿이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창업주로서 국내에서 무료 전자 우편을 최초로 도입한 인물이고, '카페'라는 새로운 커뮤니티를 선보인 주인공이다. '포털사이트 뉴스 큐레이션' 시스템도 그의 작품이다.

이 대표는 연세대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했다. 당시 인터넷의 전신인 '비트넷'을 접한 그는 인터넷의 미래를 보게 됐다. 이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ENS(Ecole Normale Superieure)에서 인공지능 로봇 박사과정을 밟았다.

인터넷이 대중매체로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한 이 대표는 1995년 학업을 중단하고 프랑스에서 만난 고등학교 동창이자 사진 작가인 고 박건희 씨와 귀국했다. 그리고 대학 후배 이택경 씨와 함께 그 해 다음커뮤니케이션을 공동 창업했다.

당시 이 대표는 '다음'이란 이름에 대해 "인터넷 사업은 아이템을 수시로 바꿔야 하며, 제조업과의 차이는 '다음(NEXT)'을 생각해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자 표기 '多音'은 많은 소리를 한 곳으로 모은다는 조화의 의미도 있다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바 있다.

이 대표는 프랑스 유학시절 루브르 박물관의 그림들을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때문에 사실 초창기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예술 관련 사이트였다. 그리고 영화, 문화, 레저 관련 콘텐츠를 제공하고 인트라넷 소프트웨어 개발에 치중했다. 그렇게 기술력을 인정받아 창업 1년 만에 3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순수 인터넷 서비스로는 생각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그는 '커뮤니티가 크면 인터넷 비즈니스의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생각으로 '사람 모으기'부터 시작했다. 당시 이 대표는 "도심의 넓은 광장에 많은 사람이 오가면 가판이 깔리 듯,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에 사람이 많이 모여들면 그 곳에서 새로운 산업이 될 수 있다"며 인터넷산업에 대한 비전을 설명했었다.  

그렇게 지난 1997년 5월 국내 최초의 무료 인터넷 전자우편 '한메일넷'이 등장했다. 회원들에게 ID를 주고 평생 무료로 이메일을 사용할 수 있게 해 가입자를 모은 것이다.

서비스 출범 전 매일 1000명 남짓했던 가입자는 이후 1만 명 이상으로 폭증했다. 그렇게 다음커뮤니케이션은 국내 최초로 200만, 300만, 400만 명 가입자를 돌파했다. 또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인터넷 전자우편 기술을 수출한 최초의 국내 기업이기도 하다. 

한메일넷이 등장한 후 국내 이메일 사용자의 80%가, 전세계 비영어권의 35% 이상이 한메일넷 가입자였다.

2017년 4월 쏘카 대표로 취임한 이재웅이 7월 VCNC를 인수한 이유를 기자간담회에서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쏘카
2017년 4월 쏘카 대표로 취임한 이재웅이 7월 VCNC를 인수한 이유를 기자간담회에서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쏘카

◆ '카페'도, '뉴스큐레이션'도 처음...그가 이룩한 '최초들'

이 대표는 지난 1999년 사명을 '다음'으로 바꿨다. 그리고 5월 온라인 동호회 서비스 '다음 카페'를 선보였다. 당시 인터넷 속 모임은 PC통신의 몇몇 동호회나 채팅방 수준이었지만 '다음 카페'를 통해 인터넷 커뮤니티가 본격화 되기 시작했다.

같은해 11월 이 대표는 다음 주식을 코스닥에 상장하며 단숨에 '청년 벤처 부호'에 등극했다. 다음은 12월 새롬기술을 제치고 주가 1위 기업으로 올라서기도 했다. 당시 코스닥 신규등록 후 26일 연속 상한가 행진으로 신기록을 경신했고, 34일 연속 상승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03년에는 '미디어다음' 서비스를 선보였다. 그 전에는 언론사의 뉴스를 그저 시간 순서로 나열했지만 '미디어다음'은 인터넷 이용자들의 관심을 분석해 뉴스를 골라줬다. 국내 최초의 포털사이트 뉴스 큐레이션 시스템이다.

이 대표는 현재 대부분의 IT 기업에서 도입한 서구식 평등 문화의 표준을 제시한 것으로도 알려져있다. 임직원들이 서로를 호칭할 때 'OO부장님', 'OO대표님' 대신 'OO님'이라고 하는 방식이다.

그는 다음 초창기 스스로를 '이재웅 님'이라고 호칭해달라며 이러한 사내 문화를 심으려고 노력했다. 다음과 이 대표가 이러한 문화를 최초로 도입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업계에서는 적어도 이같은 사내 문화의 표준을 제시했다고 평가한다. 이는 가상의 국내 포털 1,2위 속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를 통해서도 유추할 수 있다.

지난 2007년 이재웅 대표는 창업 12년 만에 석종훈 대표에게 자리를 물려 준 후 2008년 다음에서 퇴사했다. 그리고 같은해 투자회사 '소풍'을 설립해 벤처 생태계 확장에 나섰다. 그리고 2011년 차량 공유업체 쏘카를 창업할 때 그는 지분 100%를 보유한 투자회자 'SOQRI'를 통해 쏘카의 최대 주주에 올랐다. 

지난 2016년에는 자본금 200억원을 전액 출자해 국내 최초의 임팩트투자 전문 벤처캐피털 '옐로우독'을 설립했다. 임팩트투자는 교육·건강·기후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해 이들의 재무적·사회적 성장을 함께 이끌어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후 옐로우독은 스타트업 20여 곳에 투자하며 국내 임팩트투자 시장을 키웠다.

그는 지난 2018년 4월 쏘카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다음 퇴사 10년 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그리고 그 해 9월 커플 앱 '비트윈'을 서비스하는 스타트업 VCNC를 인수하며 기사포함 렌터카 서비스 '타다'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약 1년 6개월 여 만에 '타다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하며 타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타다를 통한 이 대표의 새로운 도전은 사실상 실패했다. 그러나 업계에선 그를 실패자로 낙인찍기 보다는 "새로운 모빌리티 사업에 대한 국민적인 문제 제기와 혁신 인식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내 놓고 있다. 

그와 같은 벤처 1세대인 이찬진 한글과컴퓨터 창업자는 "타다는 결코 좌절하고 패배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찬진 대표는 또 "타다는 위대한 변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계기를 만들고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자신의 역할을 어렵지만 충실히 해줬다"며 "그것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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