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의 인사이트] 엇나간 '재난 기본소득'의 포퓰리즘
상태바
[권상집의 인사이트] 엇나간 '재난 기본소득'의 포퓰리즘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 승인 2020.03.13 09: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지난 8일 경남도청에서 “모든 국민에게 재난 기본소득으로 100만원을 일시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재난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관한 불을 지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곧바로 자신의 SNS를 통해 적극 공감한다는 의견을 표명했고 뒤이어 이번 총선에 출마하는 51명의 민주당 후보자는 줄줄이 재난 기본소득에 찬성 입장을 던졌다. 

김경수 지사를 포함 정치인들이 재난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경기 침체와 소비 급감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현재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와 영세 소상공인의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울러, 비정규직 근로자, 방학 때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은 학생들, 대학 시간강사 등은 장기간 이어지는 코로나 재난으로 경제적 손해가 막심하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모두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김경수 지사가 제안한 재난 기본소득은 나가도 너무 엇나간 발언이다. 이번 재난으로 가장 피해를 크게 입은 취약계층을 상대로 지급하자는 것도 아니고 작금의 상황이 소득이 부족해서 소비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건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가장 절실하게 국가에 요구하는 건 현금이 아니라 마스크에 있다. 

바보야, 문제는 소득이 아니라 마스크야 

기본소득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모든 시민에게 소득, 취업 여부, 연령 등 조건을 구분하지 않고 일정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이유는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복지 혜택을 제공하여 인간다운 삶을 국가가 보장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소비가 증가하고 경제가 활성화되어 다시 일자리가 창출되는 선순환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노동력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음에도 인공지능, 로봇 등으로 일자리가 대체되고 갈수록 산업이 고도화되어 인간이 기계에 대체될 때 지급해야 한다는데 대다수 경제학자가 동의하고 있다. 일할 의욕과 의지가 충분한데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고 소득이 장기적으로 불확실할 때 지급해서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자는 것이 기본소득제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갑작스럽게 대두된 재난 기본소득 이슈는 문제가 많다. 첫째, 일단 현 시점에서 모든 국민에게 100만원을 제공한다고 해서 침체된 소비가 살아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텅 빈 식당과 영화관 등을 기본 소득을 통해 소비로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명백한 오산이다. 지금은 소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소비하기 위해 밖을 나서는 것이 두려운 시기이다. 

둘째, 현금으로 제공할 경우 소비와 경제 활성화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케인즈 경제학의 논리는 ‘소비를 결정하는 것은 소득이며, 한계소비성향(소득이 1만큼 증가하면 소비가 증가하는 비율)은 늘 일정하다’고 간주한다. 그러나 불황 대책의 일환으로 현금을 제공하면 오히려 소비가 아닌 저축을 늘려 소비를 진작시키지 못한다는 경제학 연구는 무수히 많다. 

셋째, 가장 중요한 점은 국민들이 현금보다 마스크를 원한다는 점에 있다. 김경수 지사는 인당 100만원을 제공할 때 51조원의 국가 예산이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 국민이 요구하는 1500원 마스크를 1주일에 인당 2장씩 제공하면 1600억의 예산이면 충분하고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질 때가지 10주간 제공하면 1조 6000억의 예산으로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지난 8일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전 국민에게 1인당 재난기본소득 100만원을 지급하자고 정부와 국회에 건의했다. 사진=연합뉴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지난 8일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전 국민에게 1인당 재난기본소득 100만원을 지급하자고 정부와 국회에 건의했다. 사진=연합뉴스

포퓰리즘 발언 통해 국민 우롱하는 건 곤란

청와대는 재난 기본소득에 대해 검토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지만 여전히 민주당은 추가적으로 논의할 만하다고 미묘한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기본적으로 현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민하는 취지는 이해하나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선거 운동이 원활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민 세금으로 생색내기 기본소득을 주장한다면 포퓰리즘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항상 강조하지만 재난 위기 사태에는 해당 전문가의 입장을 가장 중시해야 한다. 도지사, 정치인들은 마스크를 손쉽게 구할지 모르나 전 국민은 여전히 마스크가 부족해 마스크 문제만이라도 해결해달라며 요구하고 있다. 대구와 경북에서 봉사하는 의료진은 빈약한 도시락과 부족한 방호복의 원활한 제공을 호소하고 있다. 국가 예산은 이런 곳에 집중하는 것이 타당하다. 

방역 전문가들은 질병에 맞서 싸우는 의료진들에게 좀 더 좋은 식사를 제공하고 이들이 안전하게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방호복 및 의료 지원에 집중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국민들은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마스크만이라도 제대로 지원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기본소득이 정말 필요한 정책이라면 자영업자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제공,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현명하다. 

참고로 국내 음압병실 1개를 만드는데 1억의 설치 비용이 든다. 현재 국내 음압병실은 1100개에 불과하다. 음압병실을 현재보다 3배 더 만들어도 3000억원의 예산이면 충분하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국민에게 10주간 마스크를 인당 2장씩 제공해도 1조 6000억원의 예산이면 가능하다.

누군가는 51조원의 예산을 너무 손쉽게 얘기하지만 5조원만 제대로 투입되어도 의료진과 국민의 불안을 최소화할 수 있다. 위기 상황에서는 전문가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제발 정치인들은 잠자코 있자. 

 

● 권상집 교수는 CJ그룹 인사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카이스트에서 전략경영·조직관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2017년 세계 최우수 학술논문상을 수상했으며 동국대에서 명강의 교수상과 학술상을 받았다. 2020년 2월 한국경영학회에서 우수경영학자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경영학회와 한국인사관리학회, 한국지식경영학회에서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