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코드] 우리를 눈멀게 하는 이들은 누구인가...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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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코드] 우리를 눈멀게 하는 이들은 누구인가...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
  • 김이나 컬쳐에디터
  • 승인 2020.03.0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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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실명한 이들이 사회로부터 격리된 후 이야기...사라마구의 원작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5단계중 우리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현실을 바라보는가
눈 멀지 않은 이들은 눈 크게 뜨고 현실에 맞서야...우리를 눈멀게 하는 이들을 감시하자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먼 한 사람으로부터 전염돼 도시 전체가 실명한 사람들로 가득차게 된다. 사진=네이버영화

 

[오피니언뉴스=김이나 컬쳐에디터] 퀴블러 로스라는 정신과 의사는 인간이 죽음을 받아들일 때 공통으로 겪게되는 심리 단계를 5단계로 요약했다. 많은 이들이 갑자기 예기치 않은 일을 겪을 때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5가지 심리를 순차적으로 경험한다고 한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거나 암 진단을 받으면 먼저 현실을 부정 하다가 왜 나에게 이런 병이 걸렸는지 분노하고 그 후 현실을 받아들였다가 우울감·무력감에 빠지고 최종적으로는 모든 걸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단계를 순차적으로 겪지 않을 수도 있다. 암 진단을 받으면 의료진을 못믿고 다른 병원에 돌아다니다 치료시기를 놓치기도 하고 분노 혹은 우울감에 빠져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죽음과 질병 외에 실연, 이혼 등 충격적인 사건 후엔 누구나 이러한 단계를 경험한다고 한다. 혹은 최근 심각한 전염병이 전국적으로 퍼진 경우에도 감염이 됐든 안됐든 이런 감정들로 많은 이들이 동요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포르투갈의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는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먼 사람과 그에게 감염돼 눈이 먼 이들이 사회로부터 격리된 후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들 역시 부정, 분노,우울의 감정을 겪는다.

눈이 먼 안과 의사 남편을 따라 같이 수용된 눈이 보이는 아내. 이 모든 아수라장을 목격한다. 사진=네이버영화
눈이 먼 안과 의사 남편을 따라 같이 수용된 눈이 보이는 아내. 유일하게 시력을 잃지 않은 아내는 이 모든 아수라장을 목격한다. 사진=네이버영화

 

원인불명의 실명...사회로부터 추방된 그들 

어느 한가로운 오후, 차 한대가 신호 대기 후 정차했다가 출발하지 않고 있다. 그로 인해 도로가 소란스러워진다. 그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외친다. 친절하게 어떤 이가 집에 데려다 주지만 차를 몰고 도망가 버린다. 실명한 이는 안과의사를 찾아가는데 의사는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 후 그를 데려다 준 남자, 안과의사, 병원 대기실의 환자들 모두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다. 그들은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고 말한다. 고통도 없이 그러나 세상은 온통 백색 바다처럼 변했다.

다행히 의사의 아내는 감염되지 않았지만 남편이 격리될 때 자신도 눈이 안보이는 것처럼 속여 남편과 함께 수용소로 들어간다. 열악한 시설의 수용소에는 앞이 안보이는 이들이 연이어 들어오는데, 갑작스런 실명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여기저기 부딪치고 다치며 보이지 않는 서로에게 악다구니를 쓴다.

처음엔 서로 조심하던 이들이 아예 옷도 입지 않고 씻지도 않으며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유령처럼 살아간다. 이 지옥같은 상황을 오직 의사의 아내만 지켜볼 수 있다.

그들을 격리조치한 정부는 최소한의 식량만 공급하고 지침에 따르라는 일방적인 방송만 내보낼 뿐 부상입는 이들을 치료하거나 돌보지 않는다. 자신들이 감염될까 철통같이 차단하는 것에만 집중할 뿐이다.

그러다 식량을 두고 서로 갈등을 겪다 결국 총을 손에 넣은 이가 주도권을 쥐게 되면서 식량을 얻으려면 귀중품을 바치라고 선언한다. 아내는 경비 군인들에게 가서 식량을 독점한 이들을 고발하지만 군인들은 "분배는 당신들 문제야"라고 선을 긋는다. 

결국 아내는 식량을 독점한 남자를 살해하는데 그 때 누군가 불을 지르고, 눈먼 이들이 수용소에서 뛰쳐나와 그들이 살던 도시로 향한다. 그러나 그곳은 이미 폭력과 약탈로 아수라장이 돼 있었고, 의사 부부는 한 무리의 이들과 함께 자신들의 집으로 들어가 음식을 나눠 먹으며 생활한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 눈이 멀었던 이가 눈이 보인다고 외치기 시작하는데... 

 

전국에서 대구 경북 지역으로 전달된 물품들. 사진=연합뉴스 유튜브 캡쳐
전국에서 대구 경북 지역으로 전달된 물품들. 사진=연합뉴스 유튜브 캡쳐

지금은 분노와 우울을 신뢰와 확신으로 바꿀 시간

어느 날 갑자기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이들이 늘어가자 세상은 격리하는 이들과 격리당한 이들로 나뉜다. 영화가 바로 지금 우리의 이야기다. 영화와 다른 점은 지금 우리는 그들을 격리해야 하면서도 한편으론 잘 치료하고 대우해야하는 두 가지 난제에 처해 있다.

많은 이들이 누구로부터 옮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병균이 전파된다는 불결함, 일상 생활을 하지 못하는 불편함 그리고 아무런 접촉 없이도 옮을 지 모른다는 공포감 등으로 패닉 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잠깐만 생각해본다면 코로나19는 치사율이 그리 높지 않은 질환이다. 평소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감기도 걸리고 두드러기도 나고 대상포진도 걸리는 일이 빈번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수많은 질병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혼란 상황에서 누군가는 불안에 떠는 이들을 보호하고 통제하고 생존을 위해 계획을 세워야한다. 우리는 과연 누구의 말을 듣고 누구를 따를 지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한다.

하지만 혼란을 틈타 여론을 호도하고 불안감을 조성하는 이들이 있다. 유튜브로 가짜 뉴스를 전파하는 이들도 많다. 초반 대처가 다소 미흡했다 하더라도 갑작스런 전파의 원인이 명백한데도 정부의 탓으로만 돌리는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들은 유튜브 구독자들을 눈먼 이들처럼 취급하고 그들에게 공포심을 자극하고 두려움을 증폭시키려 한다.

우리는 눈먼 이들이 아니다. 막연한 분노와 우울을 극복해야한다. 우리는 스스로 명확하게 볼 수 있으며 코로나19로 인해 감염된 이들과 '함께' 현재를 살고 있으며 그들이 사투를 벌이는 동안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해야 한다.

앞서 말한 5단계의 마지막 심리 상태는 수용이라 한다. 수용은 체념과 포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눈가리고 귀막고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도 아니다. 예기치 않았던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현실을 수용하고 극복해야 한다.  

영화와 달리 소설의 마지막은 의사 아내의 고백으로 끝난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은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눈 멀지 않은 이들이 두 눈 크게 뜨고 현실에 맞서야한다. 우리를 눈멀게 하는 이들을 감시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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