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락의 채권을 부탁해] Bill이 남겨준 계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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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락의 채권을 부탁해] Bill이 남겨준 계산서
  • 공동락 대신증권 채권애널리스트
  • 승인 2020.03.0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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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QE 2 종료후에 대한 주식시장의 공포감, 채권왕 빌 그로스의 몰락 초래
최근 한은 기준금리 동결, 주식·원화 약세...떨어졌어야할 채권가격 올라 '당혹'
채권시장의 역설, 금융시장내 극단적 공포감 표출한 시그널로 해석해야
공동락 대신증권 채권애널리스트
공동락 대신증권 채권애널리스트

[공동락 대신증권 채권애널리스트 겸 이코노미스트] 요즘은 새롭게 부상한 신(新) 채권왕 군드라흐에 의해 명성이 많이 밀리긴 했으나 아직도 채권시장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은 빌 그로스(Bill Gross)를 채권왕으로 기억한다.

전설이 된 채권왕 '빌 그로스'

지난 2017년 자신이 직접 설립하고 키웠던 친정집 핌코(PIMCO)와의 법적 분쟁으로 언론의 묘한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사실 빌 그로스는 말 한마디로 금리를 들썩이게 했던 명실상부한 채권왕이었다.

다른 논거도 필요가 없었다. “빌 그로스에 따르면”이라고만 하면 모든 것이 그대로 인정을 받았고, 그에 반하는 포지션은 채권 운용자들에게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필자 역시 그와 뷰(View)가 일치할 때는 자신 있게 주장을 펼 수 있었고, 반대로 뷰가 엇갈릴 때는 그를 반박하기 위해 그래프 하나, 자료 문구 하나도 예민하게 신경을 썼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처럼 채권시장을 선도하고 본인의 뷰를 부지불식간에 시장에 전파하며 명성을 떨쳤던 그로스였

채권왕 빌 그로스. 사진=연합뉴스
채권왕 빌 그로스. 사진=연합뉴스

지만, 그 역시도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때가 있었다. 강력했던 카리스마를 보유했던 그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속담을 떠올릴 정도로 큰 실수를, 더구나 매우 공개적으로 한 것이다.

때는 2011년으로 거슬러간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고 미국 연준(Fed)는 사상 유래가 없는 행보를 선보인다. 기준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전통적인 통화정책에 비유해 일찍이 시행한 적이 없던 비전통적 통화정책인 ‘양적완화(QE)’를 감행한 것이다. 물론 미국보다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시행했던 그 이전에도 있었다(당연히 일본은행). 그렇지만 특정 국가에만 시행될 것으로 여겨진 QE가 적잖은 중앙은행들이 광범위하게 시행하게 된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Fed의 덕분(?)이다.

금융위기 직후 정신없이 감행된 QE1(2009년 3월~2010년 3월)이 마무리되고 빠르게 안정을 찾던 미국 경제. 그러나 2010년에 들면서 힘을 잃기 시작했다. 금융시장은 동요했고 유로존의 재정위기까지 가세하면서 시장 참가자들은 다시 Fed의 등장을 기대했다. 결국 당시 버냉키 의장은 유명한 잭슨홀 연설을 통해 QE2 개시를 알렸고, Fed는 그 해 11월부터 다음 해인 2011년 6월까지 총 6000억달러 규모의 미국 국채 매입 프로그램에 착수한다.

빌 그로스의 엄청난 실수는 왜? 

하지만 문제는 QE2가 순조롭게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던 2011월 봄에 터진다.

빌 그로스는 당시 자신의 채권시장에 대한 견해나 투자 전략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을 좋아했다. 이번 달에 채권을 매수할 것이고, 목표했던 금리 수준에 도달하면 더 매수할 지, 매도할 지를 알렸다. 심지어 업무가 끝나고 골프를 치면서 공이 날라가는 궤적을 놓고 수익률곡선에 비유해서 글을 쓸 정도로 그의 전략이나 포지션은 시장 참가자들에게는 공공연하게 회자됐다.

그런데 순조롭게 진행되던 QE2가 반환점을 돌 무렵 빌 그로스는 자신의 포트폴리오에서 미국 국채에 대한 숏(Short) 전략을 선언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QE2는 미국 국채를 대상으로 이뤄진 비전통적인 Fed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이었는데, 당연히 QE2가 끝나고 나면 Fed라는 든든한 매수 주체 하나가 소멸되기 때문에 금리가 뛸 것(채권가격은 하락)이란 논리였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그로스의 예측이 완전히 빗나갔다. QE라는 금융시장의 버팀목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시장 참가자들은 불안했고, 그 결과 주식시장이 먼저 동요를 보였다.

이후 증시의 하락은 이른바 안전자산 선호의 경로를 자극하며 채권시장에서 금리 하락으로 나타났다. Fed가 채권을 더 이상 사주지 않겠다는 부정적인 채권 수급 경로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나비효과’를 발휘, 오히려 금리가 하락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됐다.

금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움직이자 결국은 빌 그로스는 기존 포지션을 접고 다시 채권을 매수했다. 하지만 이미 주변 상황은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 해 그로스는 미디어를 통해 ‘핌코의 잘못된 배팅’ 혹은 ‘그로스의 실수’ 등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집중 포화를 맞았고, 채권왕으로서의 명성에도 적잖게 흠집이 갔다.

혹자는 그나마 핌코가 빌 그로스가 설립했던 회사였기에 망정이지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로스가 이미 해고됐을 것이라고도 할 정도였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월27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하고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월27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하고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한국에서도 발생한 채권시장의 '역설'

최근 채권시장에서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면서 필자는 다시 ‘그로스의 실수’, 엄밀히 말하면 채권시장의 역설적인 동향을 떠올릴 수 있었다. 또한 이번에는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이런 일이 벌어지면서 흥미를 더하고 있다.

지난 2월 20일(현지시각) 리처드 클라리다 연준 부의장은 미국 경제가 튼튼하다며 “금리인하 기대와 관련한 시장의 가격 책정은 다소 의문스럽다는 견해를 밝혔다. 1월 FOMC 이후 형성된 기준금리 인하 기대를 차단하려는 의도가 역력했다.

그러나 클라리다 발언의 충격이 강하게 영향을 미친 시장은 채권이 아닌 주식시장이었다. 주지하다시피 당시 클라리다의 발언으로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고, 채권시장은 오히려 증시 하락에 따른 반사익으로 강세를 나타냈다.

그로부터 불과 1주일 후인 지난 2월 27일. 2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시장의 예상과 달리 기준금리가 1.25%로 동결됐다. 위기에서 모든 가용한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는 정책 당국자들의 발언에 초점을 맞췄던 시장 참가자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당혹스러운 결정이었다.

하지만 금리 동결에도 채권시장은 큰 충격을 받지 않는 분위기였다. 특히 가장 큰 충격이 예상된 금통위 당일 날에도 시중금리 상승 폭은 비교적 미미했고, 국고 3년 금리는 그날 마감 금리로도 기준금리는 하회했다.

반면 채권과 달리 주식이나 외환시장은 금리 동결에 크게 반응했다. 이론적으로 기준금리가 동결될 경우 하락해야 하는 환율은 오히려 금리 동결 이후 반등했고, 종가도 전일보다 상승한 수준에서 거래를 마쳤다. 주식시장 역시 기준금리가 예상과 달리 동결됐다는 소식을 기점으로 하락 폭을 더욱 늘렸다.

필자는 이처럼 채권시장에 분명히 악재로 작용할 수 있는 이벤트가 상대적으로 다른 시장 경로에서 더욱 큰 반응을 보인 결과로 오히려 채권이 강세를 나타내는 경우에 주목한다. 이와 같은 역설적인 상황은 금융시장이 극단적으로 위험에 대한 공포감을 표출하고 있다는 일종의 시그널일 수 있기 때문이다.

● 공동락은 대신증권 Research & Strategy 본부에서 이코노미스트 겸 채권 애널리스트로 재직중이다. 이데일리 채권전문기자로 출발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채권 투자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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