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희 칼럼] ③ 낯설지 않은 ‘천재들의 실패’ – 잘못된 시작과 허무한 종말
상태바
[서진희 칼럼] ③ 낯설지 않은 ‘천재들의 실패’ – 잘못된 시작과 허무한 종말
  • 서진희 금융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3.03 14:14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라임자산·LTCM, 경험 없는 시장에 확신만으로 뛰어들어 '위험 자초'
운용역의 탐욕도 한몫...자신들 위해 우량자산 활용했다면 '범죄행위'
운용사, 증권사, 수탁사, 사무수탁사 모두 펀드 기준가 조정안해...투자자 속여
증권사가 판매사와 PBS 동시에 수행...금융사 전사차원 리스크 관리·투자자 보호 의무 위반 소지
사모펀드 시장 살려야...시장규제 보다는 사람에 대한 규제로...운용역·판매사원 역량 강화해야

 

서진희 금융 칼럼니스트
서진희 금융 칼럼니스트

[서진희 금융 칼럼니스트] 지난 컬럼을 통해 라임운용의 중소기업 메자닌펀드와 해외무역금융펀드를 살펴보았습니다. 칼럼을 시작할 때 미국 롱텀캐피탈 매니지먼트(Long Term Capital Management, LTCM)의 성공과 실패를 다룬 책의 제목인 '천재들의 실패(When Genius Failed)'로 제목을 붙였듯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LTCM과 라임 두 회사의 같은 듯 다른 모습을 살펴 보겠습니다.

1998년 미국에서 – 운용사와 펀드매니저들

롱텀캐피탈은 정교한 차익거래모델을 통해 설립 첫 해인 1994년에 28%, 두 번째 해인 1995년에 59%의 수익율을 기록합니다. 투자자가 1994년 펀드에 100달러를 투자했다면 1995년말에는 203.52달러로 불어났다는 것입니다. 설립 초기부터 거둔 놀라운 성과로 투자자들은 물밀 듯이 몰려왔고, 투자모델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롱텀캐피탈은 펀드 규모를 급속히 확대합니다.

월가의 검증된 스타로 불렸던 이 펀드에 대한 투자은행들의 경쟁적 마케팅을 통해 펀드는 업계에서 가장 높은 자본금의 26배에 달하는 레버리지를 일으켰고, 주요 투자처였던 미국뿐 아니라 일본, 러시아 및 이머징마켓으로 투자 대상을 확대합니다.

하지만 이 회사의 차익거래모델은 시장효율성이 검증된 미국과 달리 이머징마켓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롱텀캐피탈은 미국과 일부 유럽국가를 제외하면 경험이 많지 않았고, 이머징마켓의 외환과 파생상품 시장은 당시 취약한 기반에 더해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한 상황이었습니다.

1997년 러시아 모라토리움 선언으로 시작된 아시아와 남미의 금융위기는 롱텀캐피탈을 결정적인 유동성 위기에 빠트렸는데, 결국 투자전략에 대한 확신만으로 경험이 없는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 얼마나 큰 위험을 가져오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운용역의 탐욕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롱텀캐피탈 운용팀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 월가 최고의 채권트레이더를 포함한 학계와 금융계의 스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성과급은 물론 개인 대출까지 받아 자신들이 운용하는 펀드에 직접 투자했는데(공모펀드와 달리 사모헤지펀드는 운용역도 자신의 펀드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 자신들과 최고 경영진을 제외한 다른 직원들이 펀드에 투자하는 것은 엄격하게 제한했습니다.

롱텀캐피탈의 펀드는 당시 미국 최대 헤지펀드였고 최대 뮤추얼펀드였던 피델리티 마젤란펀드 대비 2배가 넘는 자산을 운용 중이었습니다. 펀드는 업계에서 가장 높은 2~25% 보수율을 적용했는데, 운용역들은 자신들의 성과보수도 모두 펀드에 재투자했습니다.

1998년 미국 – 레버리지 제공자이자 투자자였던 투자은행

롱텀캐피탈의 초기 성공이 알려지면서, 월가의 대표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골드만삭스는 물론 유럽과 일본의 투자은행까지 롱텀캐피탈과 거래하기 위해 경쟁을 펼칩니다.

펀드의 규모가 커지면서 롱텀캐피탈은 투자은행들을 서로 경쟁시키며 수수료 인하와 독점거래조건 등을 요구했습니다. 많은 투자은행들이 거래 파트너가 되기 위해 노마진에 가까운 수수료를 감수했는데, 일례로 당시 200bps(2%) 수준인 레버리지 비용을 롱텀캐피탈은 50bps 수준으로 거래했습니다.

투자은행은 펀드의 거래상대방에 만족하지 않고, 고객들의 자금과 회사 고유자금을 모아 펀드에 투자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투자은행이 PBS, 판매사, 투자자의 역할을 동시에 한 셈인데 이 때는 미국도 도드-프랭크법과 볼커룰 제정(2008년) 이전으로 투자-상업은행의 분리나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한도 규제가 매우 느슨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투자은행들은 거래 상대방으로 얻게 된 정보로 롱텀캐피탈의 차익거래모델을 카피하여, 내부 트레이딩 부서 또는 자신들이 출자한 다른 헤지펀드를 통해 같은 시장에 진입합니다.

롱텀캐피탈의 차익거래모델은 초장기에는 매우 혁신적이었지만 단순한 모델이어서, 경쟁사들이 대거 시장에 진입하자 기대수익이 낮아지기 시작합니다. First-mover 효과가 없어진 롱텀캐피탈은 경쟁사 대비 거래규모를 키우거나 새로운 차익거래 시장을 찾아야 했는데, 두가지 전략 모두 펀드의 리스크를 급격히 증가시키게 됩니다.

롱텀캐피탈 매니지먼트(LTCM) 사태가 터진지 10여년 뒤인 2011년 미국 뉴욕에서 금융권의 부패와 탐욕에 항의하는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연일 계속됐다. 사진 AP연합뉴스
롱텀캐피탈 매니지먼트(LTCM) 사태가 터진지 10여년 뒤인 2011년 미국 뉴욕에서 금융권의 부패와 탐욕에 항의하는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연일 계속됐다. 사진 AP연합뉴스

1998년 미국 – 감독기관, 어렵지 않은 감독과 책임방기

헤지펀드는 공모펀드와 같은 공시의무와 분산투자요건 등 엄격한 투자제한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헤지펀드처럼 롱텀캐피탈도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총자산-총부채 보고서를 분기별로 제출했고 파생상품거래 보고서도 연간으로 제출했습니다.

또한 투자자에게는 같은 내용을 매달 전달했고, 거래상대방인 투자은행에게도 분기별로 보고서를 제공했습니다. 사태가 터진 후 CFTC 의장은 “우리는 (롱텀캐피탈과 관련해서) 어떠한 경고음도 듣지 못했지만, 별로 어렵지 않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즉 이미 제출한 보고서 데이터들만 제대로 분석했어도 문제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으로

라임운용은 2012년 투자자문사로 출발했습니다. 주식운용에 특화된 개인투자자 자문서비스로 시작했지만 점차 기관자금을 맡을 정도로 실력을 알려갔습니다.

기존 운용사에 비해 젊은 펀드매니저를 과감히 기용했고, 운용에 대한 재량권을 보장하고 운용성과에 따른 투명한 보상체계를 시행하면서 운용역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회사였습니다.

회사 자료와 경영진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대로, 이 회사는 최대주주인 대표이사를 포함하여 직원들이 100% 회사 주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금융업계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케이스인데, 이러한 소유구조를 통해 대주주나 지주회사의 간섭없이 회사의 성장이 곧바로 직원의 이익이 된다는 점이 항상 강조되었습니다. 라임운용은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운용역 이탈이 없는 회사로 유명했습니다.

2013년 라임투자자문은 신한금융투자와 함께 신규 파생상품인 ARS을 기반으로 한 롱숏전략을 출시합니다. 절대수익스왑(Absolute Return Swap, ARS)이라 불린 파생결합증권(ELB)은 투자자가 증권을 매수하면 액면금액 만큼 채권투자를 통해 만기에 원금을 보존하는 역할을 하고, 이 증권을 발행한 증권사가 액면과 같은 규모의 레버리지(담보차입)를 일으켜 롱숏전략을 구사하는 투자자문사에 운용을 위탁하는 구조였습니다.

위 ARS구조를 살펴보면, 이번 사태를 가져온 TRS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ARS는 증권사가 발행한 파생결합’증권’이고, TRS는 운용사의 ‘사모펀드’라는 형태로 투자자에게 제공된다는 점은 다릅니다.

양쪽 모두 증권사가 중간 매개 역할을 하며 원금에 상응하는 레버리지를 통해 ‘원금보존+추가수익’을 목표로 했다는 점은 일맥상통합니다.

오래 전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는 이번 일이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자문사부터 이어진 증권사와의 협업(?)이 확대되면서 이전에 투자하지 않았던 해외펀드나 중소기업메자닌으로 투자대상이 급격히 확대되며 발생한 문제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0년 한국 '데자뷰'...운용사, 펀드, 매니저들

라임운용 역시 자신들의 주특기인 국내주식 롱숏전략에서 벗어나 새로운 투자전략으로 중소기업 메자닌(CB, BW)과 해외무역금융펀드를 내세웁니다. 중소기업 메자닌은 국내 유통시장이 형성되기 전으로 밸류에이션과 거래프로세스가 이제 막 정비되는 시기였고, 해외무역금융펀드 역시 소수의 운용사들이 움직이는 니치(Niche) 전략으로 국내전문가도 많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롱텀캐피탈 사례에서도 보듯 미국에서 성공한 차익거래전략을 경험이 부족한 이머징마켓으로 급속히 확대시키며 금융위기와 맞물려 펀드를 몰락시킨 대형 리스크가 되었습니다. 이번 경우 역시 새로 진입한 메자닌이나 무역금융펀드의 리스크에 대한 대응에 실패하며 투자자에게 큰 손실을 입힌 케이스이기 때문입니다. 

당국의 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조심스럽지만, 만일 펀드 운용을 담당한 매니저들이 별도 펀드를 조성하여 우량자산을 자신들만을 위해 투자했다면, 다른 어떤 문제보다 운용업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중요한 범죄입니다.

자산운용업은 투자자를 위한 신의성실의무(fiduciary duty)를 기반으로 존재하는 사업입니다.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최선의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투자자의 신뢰와 기대를 배반해서는 안된다”는 사전적 정의 그대로 지켜져야 합니다.

투자자산의 평가, 펀드의 기준가...미리 막을 수 없었을까?

공모펀드와 사모펀드 모두 운용사 외에 펀드자산을 보관, 관리하고 운용업무를 감시하는 수탁(신탁)회사와 펀드의 기준가를 산출하는 펀드사무수탁회사, 펀드를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판매회사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펀드는 투자자를 대신해서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자산을 운용하는데, 고객 자산인 펀드의 자산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기준가 작성 같은 중요업무를 운용사가 아닌 독립기관에 맡겨 안전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특히 시장가격이 없는 비상장채권, 사모발행 메자닌의 경우 펀드의 기준가 계산을 위한 가격평가방법을 미리 정해 두어야 합니다. 운용사에 따라 외부 기관(자산평가회사)이나 내부 평가모델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평가와 계산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집합투자재산평가위원회라는 의사결정기관을 통해 최종적으로 결정합니다.

라임운용이 2020년 2월 발표한 회계법인 실사 관련 보도자료에 따르면, 그동안 장부가격 평가를 적용했던 자산의 대부분(비상장 메자닌, 비상장 주식, 사모사채, 부동산금융 자산 등)에 대해 회계법인의 실사 결과 큰 폭의 손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2월에 개최된 라임운용의 집합투자재산평가위원회에서는 해당 자산의 가격을 실사결과에 맞춰 조정하고 펀드의 기준가도 수정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렇다면 실사가 시작되기 전에 평가방법이나 기준가를 조정할 기회는 없었을까요? 회계법인의 실사는 2019년 11월에 시작되었고, 펀드에 대한 환매중지는 10월에 발표되었습니다. 더욱이 해외무역금융펀드에 대한 일괄매각은 이보다 먼저인 6월(또는 4월)에 있었는데, 이 때는 일부 해외펀드에 이미 문제가 발생한 후였습니다.

그 사이에 운용사, TRS계약을 통해 거래를 실행한 증권사 PBS, 펀드 자산을 관리하고 기준가격을 작성한 수탁사와 사무수탁회사 중 어느 곳도 이상 징후를 인지하고 평가방법이나 기준가를 조정하지 못한 것이 매우 뼈아픈 부분입니다.

회계법인의 실사결과 발표 후 해당 펀드들의 기준가는 하루만에 -20~-51%까지 조정되었는데, 이는 끝까지 펀드의 기준가를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의 피해구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특히 환매중단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펀드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싱가폴 로디움사에 매각한 해외무역금융펀드에 대해서는 이번 회계실사 보도자료에서 다음의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2019년 10월] “라임자산운용은 4개월 가량 원매자 확보와 협상을 이어간 끝에 무역금융펀드 지분 전체를 매각키로 했다. (중략) A사는 2년 8개월 뒤 매수 대금의 60%, 4년 8개월뒤 나머지 40%를 지급할 예정이다. 지급 연장에 따라 연 5% 수준의 이자를 부담한다. 또 무역금융펀드에서 손실이 발생해도 30% 이내일 경우 라임자산운용의 책임이 없다는 조건이 붙었다. (후략)
[2020년 2월 보도자료] “(중략) 무역금융구조화펀드는 IIG펀드를 포함한 여러 펀드의 수익증권을 싱가포르 소재 회사에 직간접적으로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그 대가로 5억 달러의 약속어음(P-note)를 수취하였습니다.  이 약속어음에는 원금삭감에 관한 계약조건이 존재하는데, IIG펀드가 공식 청산단계에 돌입하면서 IIG 펀드 이사들로부터 지분 이전에 대한 최종적인 동의를 받지 못하였고, 그 결과로 1억 달러(액면금액의 25%*)의 원금삭감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러한 약속어음의 원금 삭감으로 인해 무역금융 구조화 펀드 기준가격의 하락이 예상됩니다. (후략)”

아직 해외무역금융펀드 실사가 진행 중이나, 이번 보도자료를 통해 이미 P-note는 25%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P-note에 대한 운용사의 손실책임은 30%로 제한된다고 했으니, 향후 매각한 자산에서 추가 손실이 발생할 경우 P-note 회수율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이 역시 그동안 펀드의 기준가를 공정가치라고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에게는 매우 뼈아픈 일이 될 것 같습니다.

판매사, PBS와 판매사의 역할 동시에 하다니

이번 사태에 연관된 판매사는 18개사, 투자자 수는 계좌기준 1369개로 알려졌는데, 펀드의 만기가 6개월~1.5년으로 단기임을 감안하면 환매가 연기된 펀드의 비중이 높은 판매사들은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투자자를 모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판매사 관련 이슈 중 하나는 증권사(또는 계열 증권사를 둔 은행의 경우)가 PBS 역할과 판매사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는지, 그리고 PBS가 펀드를 위해 거래하면서 부실징후를 파악했음에도 같은 회사의 판매부서에서 계속 해당 펀드를 판매한 것이 문제가 되는지 여부인 것 같습니다.

2008년 자본시장통합법이 제정되면서 운용, 유가증권 인수, 영업 등 주요 업무영역별로 Chinese Wall(fire-wall, 방화벽)을 엄격히 적용하도록 했습니다.

같은 회사라도 영역별로 업무상 취득한 정보를 다른 영역의 이익을 위해 공유할 수 없다는 것으로, 투자금융업무인 PBS와 리테일영업(또는 투자상품판매)도 영역이 구분되어 이 규정의 적용을 받습니다. ‘증권사가 (PBS부서에서) 사전에 부실을 알고도 (판매부서에서) 계속 펀드를 팔았으니 사기’라는 주장에 즉답을 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다만 전사차원의 리스크 관리와 투자자 보호의무 등 영역별 구분과 무관한 금융회사의 주요 의무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봐야할 지, 그리고 이러한 이슈들이 이번 사태에 어떻게 적용될지를 지켜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투자자의 권리와 의무 보다 명확히 해야

실제로 펀드 판매 현장에서 보면 투자상품에 대한 투자자의 이해 정도는 정말 편차가 큽니다. 주거래 채널(은행 또는 증권사), 전통자산과 대체자산에 따라서도 차이가 나지만, 같은 투자규모라도 투자경험, 특히 손실에 대한 경험치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현행 규정은 라임운용 같은 전문사모운용사의 사모펀드는 일반투자자는 1억 이상, 전문투자자는 최소금액 제한없이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습니다.

이번 환매중단 펀드들의 투자자 중 전문투자자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2019년 7월말 전문투자자 숫자가 3500명 정도인데 환매중단 펀드의 가입자(계좌) 수가 3600개임을 보면 일반투자자 비율이 높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옆의 표를 보면 일반투자자와 전문투자자의 권리와 의무를 좀 더 명확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운용과 판매에서 엄격한 룰이 적용되는 공모펀드에 비해 사모펀드는 가입 시 투자설명서도 주지 않고, 이후에도 운용보고서, 자산운용보고서 등 성과보고에 대한 의무도 매우 제한적입니다. 이는 사모펀드 투자자라면 전문투자자 혹은 전문투자자에 준하는 투자전문성이 있다는 가정 때문입니다.

특히 사모펀드가 투자하는 비상장, 사모증권, 대체투자에 대해서는 판매사조차도 운용사의 상품자료 외에 정보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모펀드 투자를 권유 받았을 때 이해를 안되거나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투자결정을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합니다.

판매사도 전문투자자 수준의 시장에 대한 이해와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고객이 아니라면 일반투자자에게 전문투자자용 펀드를 추천하는 것을 고민해봐야 합니다.

열광과 찬사, 그리고 반성

2015년 전문사모운용사가 도입되면서 기존 투자자문사와 신생 운용사들이 대거 진입하여 전체 운용사 숫자도 280개를 넘어섰습니다. 사모펀드는 기존의 공모펀드 수탁고를 2016년부터 추월했는데, 기존 공모펀드가 고위험-고수익(주식)과 저위험-저수익(채권)으로 양분된 상황에서 중위험-중수익, 높은 원금보존 가능성, TRS와 대체투자라는 새로운 투자전략은 0에 가까운 실질이자 수준에 고민하던 개인고객, 특히 거액자산가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헤지펀드 경험이 거의 전무한 우리나라에서 ‘한국형 헤지펀드’라 불린 이 펀드들의 성공은 2017년부터 미디어, 판매사, 투자자그룹에서 가상화폐와 투자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도 짧은 기간의 기록적 수익율과 수탁고에 대한 찬사는 많이 들려왔지만, 새로운 투자대상이었던 비상장메자닌이나 무역금융펀드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은 운용사, 판매사, 투자자, 업계 어느 곳에서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관련 시장 자체가 협소하다 보니 전문가도 많이 않았고 관련 참고자료도 구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듯 정보가 제한적이다 보니 투자자는 판매직원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고, 판매사 역시 운용사나 PBS만 바라보는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혁신적인 투자기법과 새로운 투자처의 발굴은 매우 중요하고, 이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시장의 찬사는 투자상품 시장의 발전에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과거의 사례를 보더라도 기반이 없는 성장은 큰 성장통을 가져오게 됩니다.

다시 미국으로

다시 1998년 롱텀캐피탈 사건으로 돌아가면, 연준이 ‘보이지 않는 손’의 조정자 역할을 하면서 롱텀캐피탈과 연관된 14개 주요 투자은행들은 공동구제기금을 결성하여 펀드를(정확히 표현하면 펀드의 자산을) 인수하게 됩니다.

전제 조건은 롱텀캐피탈의 핵심운용역들이 펀드가 청산되기 전까지 이직할 수 없다는 것과 핵심운용역들이 투자한 펀드의 자산은 전액 상각하는 조건이었습니다.

채권단이 파견한 전문가들의 감시(?) 하에 구제기금인 인수자금이 펀드에 투자되었고, 이후 금융시장이 안정화되면서 보유했던 파생거래의 손실을 상당부분을 만회하게 됩니다. 다만 여기서도 많은 투자은행들이 펀드에 투자한 자금의 회수를 포기한 후 손실로 계상했고, 대신 펀드의 거래상대방으로 발생한 레버리지대출이나 청산거래에서 발생한 손실은 이후 회수하였습니다. 즉 투자자로서는 손실을 보는 대신 투자금융업자로의 손실은 구제금융을 통해 회수한 것입니다.

롱텀캐피탈과 투자은행 중 재판을 받거나 감옥에 간 사람은 없었습니다. 펀드는 과도한 레버리지, 특정거래에 대한 과도한 베팅(글로벌 채권시장의 5%가 롱텀캐피탈 포지션과 연관), 그리고 금융위기로 인해 역사적 범위를 넘어선 시장변동성이 주 원인이었고, 내부자거래나 펀드 외에 개인투자 관련한 비리, 운용상 규정 위반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투자은행을 비롯한 펀드의 주요 투자자들 역시 별도의 문제제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롱텀캐피탈의 설립자는 회사가 청산된 직후인 1998년 핵심멤버들과 함께 새로운 헤지펀드 운용사를 설립했으나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로 문을 닫았고, 그 후 한 번 더 운용사를 설립했지만 실패하게 됩니다.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 연합 관계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라임사태 관련 금융위원회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 연합 관계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라임사태 관련 금융위원회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여전히 부족한 것들에 대해

이번 사태는 아직 진행 중이고, 여러 금융회사와 투자자, 일부 운용역의 개인 문제까지 복잡하게 엮여 있어 완전한 해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상당기간 저금리가 지속된다면, 비상장증권, 사모채권, 해외대체투자 등 사모펀드 관련 시장은 계속 확대될 것입니다.

결국 시장에 대한 규제 보다는 그 시장을 움직이는 사람(과 역량)에 대한 합리적인 규제와 판단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니, 다시 사람의 문제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동안 별다른 제약조건이 없었던 사모펀드 운용역에 대한 기준을 강화하거나, 전문투자자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강화하고 적합성 여부에 대한 금융회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보가 제한적인 사모펀드를 투자자에게 소개하는 판매직원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 과정에서 단순 판매가 아닌 투자 어드바이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교육기회와 책임이 동시에 주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칼럼이 나간 후 추가 정보를 전달해 주시거나 내용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부족한 칼럼을 읽어 주시고 의견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서진희 금융 칼럼니스트는 국내 보험사에서 채권운용을 시작으로 국내 및 글로벌 자산운용사에서 20년이상 펀드운용, 상품마케팅과 해외투자를 담당했다. 최근까지 외국계 은행에서 Wealth Management 부서를 맡아 해외 투자상품을 운용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욘선생 2020-03-04 22:16:36
금융사정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배려한 자세하고 상냥한 설명에 감동했습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문상용 2020-03-03 19:42:10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제까지 나온 글 중에서 제일 분석적이고 알기 좋게 써 주신 글이라 생각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