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지표 악화 불 보듯 뻔한데"...한은, 금리 동결 강행 까닭은
상태바
"경제지표 악화 불 보듯 뻔한데"...한은, 금리 동결 강행 까닭은
  • 김솔이 기자
  • 승인 2020.02.27 14: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0.2%P ↓
한은 “코로나19 사태 파장 예단 어려워”
시장선 "선제적 조치 아쉬워...4월 금리 인하에 무게"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려로 유튜브·페이스북 등 실시간 온라인 방송 형태로 진행됐다. 사진제공=한국은행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오피니언뉴스=김솔이 기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1.25%로 동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COVID-10) 확산 사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한 뒤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섣불리 금리를 내렸을 때 부동산시장을 자극할 우려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의 관심은 오는 4월 기준금리 인하 여부로 향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이 다음달 경제지표에서 확인될 경우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는 추측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27일 오전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1.25%로 동결했다. 금통위는 의결문에서 “국내 경제의 완만한 성장세가 예상되는 가운데 물가상승압력이 낮은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돼 완화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며 “코로나19 확산 정도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 가계부채 증가세 등 금융안정 상황의 변화 등을 면밀히 점검해 완화 정도의 조정 여부를 판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2.3%→2.1%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치는 코로나19 사태 여파를 반영, 기존 2.3%에서 2.1%로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기존과 같은 1.0%로 유지했다.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와 물가상승률 전망치 또한 각각 2.4%, 1.3%로 기존 전망을 그대로 제시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금통위 후 기자간담회에서 경제성장률과 관련 “코로나19 사태로 소비 등 실물경제가 위축됐고 1분기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있다”며 “코로나19가 다음달 중 정점에 도달한 후 진정된다는 시나리오를 전제로 올해 경제성장률을 2.1%로 제시했지만 사태 전개 상황에 따른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달 들어 한국 내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자 시장에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릴 수 있다는 추측이 나왔다. 금통위 회의 전날인 26일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어서면서 이같은 전망이 우세해지기도 했다. 한국은행이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태와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기준금리를 내린 점도 인하론에 무게를 실었다.

◆ 코로나19 파장 확인해야…기준금리 인하 부작용 고려

그럼에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건 코로나19 사태의 영향력을 관찰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이달 중순부터 한 달도 지나지 않은 만큼 그 파장을 예단하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 총재 역시 사태 장기화 여부 등 변수에 따라 경기 둔화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 동결과 관련 “최근 국내 수요·생산 위축은 코로나19 사태를 둘러싼 불안 심리에 따른 것으로 미시적인 정책이 더욱 효과적인 상황”이라며 “향후 금리 인하 여부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여부를 비롯해 금융안정 상황 변화, 금리 조정 효과 등을 고려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금통위는 코로나19 사태 대응 조치로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를 기존 25조원에서 30조원으로 5조원 증액하기로 결정했다. 코로나19 피해업체에 대한 실질적인 금융지원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선제적으로 내리기엔 부작용도 만만찮다. 금리를 한 번 더 내리면 ‘기준금리 연 1.00%’라는 전인미답의 길이 열린다. 동시에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여력은 사실상 없어진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기축통화국보다 ‘실효 하한’을 높게 운용해야 하는 점을 고려하면 ‘연 1.00%’가 현실적인 실효 하한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외에 예기치 못한 변수로 경기 상황이 악화될 경우 한국은행으로서는 쓸 수 있는 카드가 없을 수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은행

기준금리를 내리면 가계부채를 늘리면서 부동산시장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금리 인하로 시중에 푼 자금이 부동산으로만 쏠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부동산시장이 안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셈이다. ‘투기와의 전쟁’을 벌이는 정부 기조와도 어긋난다.

금통위에서도 누적되는 금융불균형에 대한 부담을 드러냈다. 이날 의결문에는 “가계대출 증가세가 확대됐고 서울 외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가격이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는 내용이 담겼다.

기준금리 인하 효과에 의구심을 갖는 의견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저금리‧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금리를 내리더라도 시중금리가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시중에 돌지 않으면 내수 진작 등 경기 부양 효과가 나타나기는 쉽지 않다. 이같은 ‘유동성의 함정’ 우려는 한국은행이 지난해 10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치인 현 수준으로 인하할 때부터 제기됐다.

◆ “4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 높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결정을 주시하던 금융시장은 금리 동결 소식에 출렁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오후 1시 52분 현재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21.48포인트(1.03%) 내린 2055.29를 가리키고 있다. 장 초반 등락을 거듭한 주가는 금통위 회의 직후부터 낙폭을 키우기 시작, 장중 한때 2051.72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국고채 금리는 상승하고 있다. 같은 시각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4.9베이시스포인트(bp·1bp=0.01%포인트) 오른 연 1.184%, 5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4.4bp 오른 연 1.281%에 형성됐다. 10년물 금리는 연 1.427%로 2.2bp 상승했다. 20년물과 30년물은 각각 2.5bp 상승, 2.4bp 상승해 연 1.440%, 연 1.445%를 기록 중이다.

시장은 오는 4월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는 만큼 다음 금통위에서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고 있다. 특히 다음달 발표되는 주요 경제지표를 확인하면 한국은행으로서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다음달 경제지표 악화가 기정사실화한 만큼 한국은행이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내렸더라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한국은행이 부작용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껴 금리를 올려야할 때 올리지 못하고 내려할 때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음달 발표되는 경제지표가 둔화된다면 구체적인 기준금리 인하 명분이 생긴다”며 “그 이후에는 한국은행이 부담을 덜면서 금리를 내릴 수 있을것”이라고 내다봤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