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⑱: 누가 공화제와 법치를 무너뜨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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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⑱: 누가 공화제와 법치를 무너뜨리는가?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0.02.2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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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제의 법치, '살아있는 권력'의 사유화 통제가 핵심!
민주화로 '살아있는 권력'도 다변화중
'검찰의 독립성·중립성' 내세워 검찰개혁을 반개혁으로 모는 건 과잉법치의 '역설'에 불과
'살아있는 권력' 된 검찰, ‘최고’권력자로 군림할 수 없도록 공화제적 개혁 필요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민주공화제에서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국가권력의 기본적 운용원리가 법의 지배, 즉 법치(法治)임은 여러 차례 강조했다. 법치를 존중하는 공화제의 정신은 객관적으로 확인가능한 규범인 법에 따른 지배만이 특정인이나 특정계급의 자의적인 지배로부터 시민의 자유와 공공선을 지켜낼 수 있다는 지혜가 반영된 것이다.

민주공화제 선포 100년, 시민혁명적 계기를 통한 민주화 33년을 넘긴 2020년의 대한민국에 부쩍 공화제 위기와 법치 훼손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원인과 책임소재 그리고 대안에 있어 공론이 격렬히 대립하는 형국이라는데 있다. 법치를 내세워 서로 민주공화국의 적으로 몰아세우는 일이 다반사다. 우리가 공화제의 정신에 입각해 끊임없이 무엇이, 어떻게 민주공화제의 법치를 훼손하는지를 물어야 하는 이유다.

법의 평등을 요구하는 법치와 법치의 적인 '권력의 사유화'

법치의 관건은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공동체 구성원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지배(rule) 혹은 통치(government)의 최종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에 달려있다.

법을 권리제한의 최종근거로 삼아 심지어 통치자도 법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 법치의 핵심가치다. 반면 권리제한의 최종근거를 법이 아니라 특정인이나 특정계급에 두게 되는 것, 즉 권력자가 법 위에 존재하게 되는 체제로 법치와 대칭에 있는 지배체제를 인치(人治, rule of man)라고 볼 수 있다.인치에 대한 법치의 근본적인 차이는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법의 평등한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데 있다. 권력자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권력도 성역일 수 없다는 것은 법치의 기본이다.

법의 평등한 적용이 법치의 핵심이라는 점을 이해할 때, 즉 살아있는 권력도 성역이 될 수 없다는 명제를 따른다면 법치를 위협하는 최고의 '적'은 공권력의 사유화다. 권력자나 권력계급 혹은 특정조직이나 집단이 권력을 이용해 법을 자의적으로 운용할 때 법치는 곧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아닌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로 변질되고 인치로 전락하게 된다.

"살아있는 권력 비리도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실제 살아있는 권력' 검찰의 반개혁적 반발에 애를 먹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살아있는 권력 비리도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실제 살아있는 권력' 검찰의 반개혁적 반발에 애를 먹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대통령이 법치의 적인가?: 대통령을 제왕으로 인식하는 독재문화의 유산

그렇다면 2020년 대한민국에서 살아있는 권력은 누구일까? 이 질문은 무엇이 법치를 무너뜨리는지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한 선결과제다.

그런데 우리가 이를 논할 때 명심해야 할 것은 민주화이후 권력의 자율성 증대와 인권보장의 충실화가 가져온 환경의 변화다. 즉, 민주화과정을 거치면서 전(前)민주화시대인 독재시대의 유산이었던 살아있는 권력의 구성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흔히들 살아있는 권력으로 대통령을 떠올리기 쉽다. 대개 우리 헌정의 근본문제로 소위 ‘제왕적 대통령제’를 지목한다. 헌법상 대통령이 많은 헌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고 현실적으로도 가장 강력한 정치적 존재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과연 제왕이라고 부를 만한 정도인가는 의문이다. 헌법상 제도가 그러하다면 현행 헌법은 민주공화국 헌법임을 자부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헌법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인식이나 관행이 독재의 유산을 끊임없이 소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공개적으로 현직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언급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특기한 것은 이 주장을 제기한 정파나 해당 정치인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정당성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거나 최소한 소극적으로 치부하는 정파라는 것이다.

재판 절차를 통해 권력 사유화에 따른 국정농단의 책임을 물어 파면이 확정되고 현재까지의 형사절차에서 유죄가 확정될 것이 거의 의심되지 않는 경우와 정치적 논란거리가 된 공소제기가 있을 뿐인 상황에서 양자를 굳이 동일선상에 놓고 보는 것조차 민망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미 확정된 권력사유에 의한 탄핵 사례는 부정하면서 동일한 기준으로 충분한 입증없이 현직 대통령의 탄핵을 운운하는 것은 논리모순이요 이율배반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 박근혜탄핵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문재인 탄핵을 거론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이런 행태는 소위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탄핵의 성공사례가 잉태한 공화제의 잠재적 위협요소인 과잉법치 혹은 법만능주의가 '탄핵만능주의'로 발현된 것이다.

설익은 주장으로 대통령 탄핵을 들먹이는 태도는 오히려 그 인식의 저변에 대통령이 제왕적 지위에서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다는 독재시대의 유산을 체화한 시대착오적 사고틀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헌법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채택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서 끊임없이 대통령을 제왕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치선진화를 목적으로 스스로 만든 국회법마저 유린하고 선거법을 훼손하는 위성정당을 공공연히 만들어 민주적 선거질서를 어지럽히는 거대야당이 건재한데, 유사정당화된 기성언론과 가짜뉴스를 조직적으로 남발하는 반대언론환경이 버젓한데, 박근혜탄핵을 부정하면서 공식정부의 전복을 확성기로 떠들어대는 장외집회가 수년째 계속되는 상황에서, 과연 대통령이 제왕일 수 있을까?

독재시절 미덕이었던 '검찰의 독립성'을 내세우며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을 거부하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측근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통해 스스로를 살아있는 권력으로 성역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 연합뉴스
독재시절 미덕이었던 '검찰의 독립성'을 내세우며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을 거부하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측근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통해 스스로를 살아있는 권력으로 성역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 연합뉴스

새로운 살아있는 권력의 출현: 정치화된 윤석열검찰과 검찰개혁의 공화제적 과제

대통령 탄핵을 운운하는 정략의 원인이 된 윤석열검찰의 수사권이나 기소권 행사사례를 보면 살아있는 권력을 재규정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87년 이후 민주화와 자유화가 진전되면서 그 민주공화제적 성과물을 역설적으로 오남용하는 많은 사례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검찰의 경우가 아닐까 싶다.

박근혜 탄핵의 원인을 제공했던 것으로 지목된 것이 검찰적폐이었지만 촛불혁명이후에도 근본적인 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검찰이 정치권력에 부역하던 독재시대에 민주화와 동일시되던 덕목인 검찰의 독립성 혹은 중립성을 전면에 내세워 역설적으로 검찰개혁을 반개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공화제정신에 입각한 분권과 상호견제적 권력구조를 추구하는 검찰개혁이 오히려 민주공화국의 법치를 무너뜨리는 정략적 과제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중요한 법치의 요소이지만 개혁으로부터의 성역을 구축하기 위한 '만트라'일 수는 없다. 민주공화제에서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란 애당초 있을 수 없다. 검찰도 예외가 아니다. 인사권에 대한 반발에서 확인되는, 민주적 정당성과 책임성이 수반되지 않는 독립성과 중립성의 명분은 공화제와 양립할 수 없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검찰독점주장에서 확인되듯이 시대적 요구이자 공화제 헌법의 요청인 권력의 분권과 상호견제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권력의 독립성 또한 또 다른 형태의 독재를 초래할 수 있는 위협요소이므로 용납될 수 없다.

2019년 여름이후 지속되어온 검찰중심의 정치적 교착상태와 사회적 분열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검찰 자체가 영장청구권, 수사권과 기소권, 공소유지권 등을 독점적으로 행사해온 살아있는 권력이라는 점이다.

법치를 명분으로 대통령의 정부와 검찰에 대한 인사권, 검찰행정에 대한 정책결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음은 물론 심지어 권력자들과 그 가족의 인생을 결딴낼 수 있는 무시무시한 권력임을 부인하지 못하게 되었다.

법치의 주요 첨병인 검찰권 스스로가 조직이기주의의 포로가 되어 검찰권을 자의적으로 오남용할 때 또 다른 권력의 사유화라는 ‘법치의 역설’이 초래될 수 있다.

아무리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이런 상황을 민주공화제와 법치를 내세우면서 정당화할 수 있는가? 전통적인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검찰권 행사는 절차대로 진행하더라도 또 다른 살아있는 권력이 된 검찰에 대한 개혁을 미룰 명분은 될 수 없다. 진정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라면 민주공화제의 법치가 요구하는 권력의 사유화에 대한 경계심과 고민없이 함부로 피상적인 권력현상에 매몰되어 공화제의 위기나 법치의 훼손을 논하지 않는 혜안과 통찰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사족
칼럼이다보니 거두절미가 없을 수 없고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아 보여 이미 너무 긴 글이 되었음에도 몇 줄 사족을 달지 않을 수 없다. 공화제의 법치에서 요구하는 살아있는 권력도 법에 복종해야 한다는 원칙이 문재인 대통령이나 청와대 전현직 공무원에 대한 수사를 정당화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검찰이 현직대통령을 겨냥한 수사를 하고 일부 정치권이나 언론이 탄핵을 운운할 정도로 이에 적극 동조하고 있는 점에서 보듯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는 더 이상 제왕적 대통령을 논할 수 없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문제는 그 수사의 동기와 시기, 절차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지향점에 대한 논란에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이 될 수도 있지만 애당초 법무장관 인선이나 검경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 이런 국면이 초래되었을지 의문을 가지는 상당수의 국민이 있다.

이 지점에서 이미 진행된 수사나 기소, 혹은 앞으로도 정치권력의 권력오남용에 대한 법집행권의 행사는 적법 절차에 따라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필자가 여기에서 그런 수사나 공소 자체를 문제 삼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이런 정황이 분권과 상호견제권을 강화하려는 검찰개혁을 미루거나 수정할 명분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검찰 자체가 전통적인 살아있는 권력을 겨눌 정도로 스스로 살아있는 권력이 되었으니 법집행기관에 불과한 검찰 자체가 ‘최고’권력자로 군림할 수 없도록 성역없는 공화제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검찰공화국이 아닌 민주공화국을 위해 검찰개혁은 한시도 미룰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개혁을 독재의 발로이자 공화제의 위기이고 법치의 훼손이라고 견강부회하지는 말자!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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